윗글 논문은 기독교적 삼신론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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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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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3 00:00
제목분류 : [~교리~신론~삼위일체~]
내용분류 : [-교리-신론-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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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영희 신앙노선의 삼위일체관은 정통 삼위일체관을 그대로 잇고 있습니다.
①백영희신앙노선의 모습은 일반 교계와 크게 다른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그 교리와 교회의 행정 체계를 두고 현 교계 일반 상식과 비교를 한다면, 완전히 책을 새로 썼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현재 대한민국의 전국 도로체계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구축했던 체계를 본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토목기술의 발달로 과거 도로체계는 완전히 사로진 듯이 보이는 정도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구축했던 1910년 이후의 도로체계는 해방 후 수십년이 지나던 1970년대까지도 우리나라 도로체계 및 도로외형의 전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1980년 이후 추진된 도로사업의 결과 현재 2003년의 한국 도로 모습은 식민지 시절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도로체계와 모습이라고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때 형성된 도로체계는 200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당시 기술로는 뚫을 수가 없어 우회하던 것을 지금은 자금과 기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직선화한 정도입니다. 그리고 당시 모래와 자갈로 만든 길을 아스팔트나 콘크리이트로 포장을 한 정도입니다. 당시 1차선을 지금은 4차선 또는 8차선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빈들이던 곳에 지금 신도시가 들어섰기 때문에 신규 연결망을 건설한 정도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그 오늘의 외견 모습으로 보면, 식민지 시절 도로망을 그대로 보수만 하고 사용하는 일반 교단에 비해 전혀 별개의 교회로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펴보면 일반 교단이 사용하는 전통의 정통 교회 선상에서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도로노선은 고집스럽게 수십년이 아니라 수백년이 지났지만 그대로 옛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선화가 필요한 부분이나 교통 안전에 필요한 시설들은 기술력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배려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②삼위일체 교리는 과거 도로체계를 보수만 하고 사용하되 안내표시판을 많이 사용하는 정도입니다.
구원론과 같은 교리는 마치 식민지 도로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고속도로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른 보면 전혀 새로운 도로체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교회 행정 노선도 항공노선 개설처럼 느껴질 정도로 전혀 새로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 행정 노선은 실은 2천여 년전 초대교회 모습을 최대한 복원한 고대사회의 도로망이라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특히 삼위일체 교리는 역사 교회의 본류 모습을 가장 그대로 잘 지켜 나가고 있는 교리 중에 하나입니다. 다만 그 교리를 일반 교인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방법과 표현은 일반 신학과 달리 접근하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설교록 일부만 대하면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우려처럼 전형적인 양태론 이단으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목회설교록은 그 설교록 안에서 여러 번 설명을 하고 있지만 '목회' 현장에서 설교한 것을 가감없이 그대로 싣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목회설교록의 '목회'라는 의미는 교인들의 일상 생활을 신앙으로 지도하는 '목장 마굿간'의 일을 현장 일지와 같이 기록했습니다. 목회설교록이 아니라 그냥 '설교록'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 목회현장과 유리된 신학대학 강의실 강의도 설교록일 수 있지만 '목회설교록'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굳이 목장 마굿간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꼴을 먹이는 목동의 언행을 그대로 담았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를 비롯하여 교리 문제나 여러 노선에 대한 백목사님의 정확한 입장을 살필 때는 그 설교록 전반을 다 살펴봐야 하고 때로는 설교록 전반을 다 살펴도 거의 파악되지 않는 세계도 있다는 점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재론하지만, 일반 정통 교리체계를 가장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자께서 보신 것과 같이, 또 신학에 관심있는 분들이 이전에도 가끔 지적하시는 것처럼 백목사님의 목회설교록 내용의 표현은 분명히 단일신론으로 가는 양태론 이단이라고 비판받게 되어 있습니다.
③백목사님의 양태론적 삼위일체 설명은, 삼위일체의 본체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1985년 경, 미국 카브난트신학교 재학 중인 학생 한 명이 백목사님께 배운 삼위일체론이 양태론 이단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서부교회에서 배우던 습관대로 신학교에서 그대로 삼위일체를 이야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 한 분이 자녀들에게는 아버지로,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또 직장에서는 사회인으로 3가지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일인 삼역의 하나님이라고 삼위일체를 알고 있었는데 신학교 교회사 과목에서 조직신학과 교회사를 배우면서 그것은 대표적인 이단이라고 배우면서 갈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부산 백목사님께 삼위일체교리와 양태론에 대한 문제를 직접 질문하게 됩니다.
당시 백목사님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답변자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교리적 입장에서 설명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교리 역사나 교리적 강의 수준에서 삼위일체를 가르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교리든지 평소에 신학교 강의 차원에서 인용하거나 가르치는 적이 없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표현은 신학 상식을 가진 분들이 보면 신학의 아주 초보적 수준입니다. 너무 상식적인 용어도 혼동을 하거나 잘못 소개하는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리 발언들은 교리체계의 강의 차원에서 표현한 것이 아니고 일상 생활에서 교인들이 도로처럼 또 지팡이처럼 잡고 나갈 교리로 설명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꼭 필요한 교리만 가르치고 또 실제로 신앙생활에 붙들기 좋도록 설명하다 보면 종합 교리서의 표현과는 충돌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백목사님의 양태론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게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할 때 굳이 가장 위험한 설명 형태 중 하나인 양태론처럼 설명을 하는 이유는, 삼위일체교리의 근본 교리체계는 정통교리식이라야 하지만 일반 교인들에게 알기쉽게 이해를 돕도록 할 때는 양태론적 표현이 오히려 더 좋기 때문입니다.
즉, '이상적인 자본주의'를 설명하자면 자본주의 본 바탕에서 공산주의의 복지개념이 강조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실력대로 벌고 실력대로 살아라고 더 이상 강조를 하지 않아도 그것은 근본 사상이며 상식입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1학년만 아는 사람은 자본주의가 실력대로 벌고 사는 것으로만 알지만, 2학년으로 올라가면 자본주의가 끝까지 잘 존속하려면 실력없는 사람들의 불만이 누적되기 전에 미리 해소시키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진해서 하층 계급에게 기부금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고차원적이고 진정한 자본주의는 기부금 제도를 발달시키게 되는데, 이 기부금 제도를 1학년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명을 많이 하다보면 마치 공산주의자이거나 암약하는 적색분자로 보이기 쉽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본색이 공산주의자인데 남한 내 자본주의 체계를 흔들어 남한 사회를 파괴하기 위해 '분배정의'를 내걸고 나오는 사람들도 상상못할 만큼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외부 발언만을 놓고 보면 남한 내 암약하는 북한 노동당 대변인인지 남한의 자본주의 체계를 진정 사랑하는 고차원의 자본주의자인지 사실 그 구분이 애매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과거 활동과 경력이나 사상 전반을 면밀하게 추적해보면 그 본질 성분을 파악하는 데에는 별로 어려운 일이 없다고 봅니다.
진정한 삼위일체론자가 이 시대 신앙인들에게 참으로 삼위일체를 바로 알리려고 하다보면, 어떤 때는 삼신론으로 오해될 정도로 '삼위'를 강조해야 하는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단일신론으로 오해가 될 정도로 '일체'를 강조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현 시대의 교회와 교인의 형편을 고려할 때 마치 단일신론으로 보일 정도로 '일체'를 강조해야 할 때로 보기 때문에 양태론처럼 설명을 하고 있으나 양태론자들과는 전혀 다른 '정통 삼위일체교리'에 확고한 분이라고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④참고로, 백영희신앙노선의 특징 중 하나는 거리낌없이 발표하는 '단순'과 '직선'의 원칙이 있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시작부터 오늘까지 모든 종류의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주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만 집중하는 편이지 그 깨달음이 가져오는 뒷날의 이해득실은 기본적으로 초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깨달은 것을 외부에 발표하는 일에 있어 주저하거나 망설여보거나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혹 외부로 밝혀질 경우 자신의 자랑이 강조될까 하여 숨는 경우는 있고 또 상대방의 입장이 곤란해질까 하여 혹 발언 수위를 낮추는 수는 있습니다. 한 가지 명백한 것은 총공회는 진리 연구와 발표를 모든 가치보다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고 직선으로 발표를 해 왔습니다.
혹 문제점 있는 발언에 대하여 그 배운 사람들이 스승의 잘못을 덮기 위해 외무부 대변인의 발표와 같은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반 방문인이 계실까 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2.소개하신 논문에 대하여 평가하겠습니다.
①소개하신 논문은 백목사님과 정확하게 반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논문 내용은 삼위일체론을 가장한 삼신론이라고 단정을 했으면 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삼위일체라는 표현을 명백하게 사용한 이상 신학적으로는 이단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백목사님이 현 교계가 삼위일체 교리를 떠나 급격하게 삼신론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양태론으로 오해될 수 있는 표현을 가지고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위 논문은 현 교계에 아직도 '일체'를 강조하여 단일신론으로 가는 위험이 많다고 보고 '삼신론'으로 비판받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위 글 논문이나 백목사님의 설교록 일부를 잘못 인용한다면 하나는 삼신론으로 또 하나는 양태론적 단일신론으로 비판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여기서는 위 논문을 평가하는 자리이므로 글의 방향을 넓히지 않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위 논문은 백목사님과 삼위일체론을 두고, 신학 이론적으로는 이단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가장 반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②그렇다면, 현 교회의 형편은 삼위를 강조할 시점인가, 아니면 일체를 강조할 시점인가?
목회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신학교의 조직신학 강의실에서 이론만 가르치려고 한다면, 백목사님의 입장이나 위 논문을 기록한 교수님은 둘다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위글 논문은 보기 드물게 소신있게 발표가 되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발표가 되면 이단시비에 휘말려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대외 발표문에서는 이리 저리 빠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 상례인데, 솔직 담백하게 자신 속에 있는 그대로를 밝혔습니다.
논문의 솔직한 주장은 '삼위일체' 교리는 그 이름만을 유지시키고, 내용적으로는 분명히 삼신론이 옳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이름만 삼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한분 하나님으로 가는 것에 대한 반향이 아니고, 삼위로 계신 세 분 하나님을 세 분 하나님으로 그대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일체로 계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정통 교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논리라고 비판한 다음, 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통 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교리로 제시하기 위해 삼신론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논문은, 삼위일체 교리를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쉽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그 첫째 장점이고 또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친 세 분 하나님을 세 분 하나님 그대로 모시는데 주력했다는 것이 그 둘째 장점이지만, 이 논문은 동시에 이 세 분 하나님은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단점이 있고 또 삼(2)이 일(1)이 되는 주장을 하나의 '사변'으로 보면서, 사변이라는 것은 엄히 금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두번째 단점입니다. 이 논문의 단점은 바로 인간의 이해력 이상의 세계를 '사변'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3)이 일(1)이 되고, 일이 삼이 되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고 통탄을 하고 있지만 삼위일체를 이렇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이 논문은 하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과학적 기독교나 인문주의에 바탕을 둔 신학에서나 가능할 것입니다. 이 주장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바로 기장측의 여러 논리가 나올 수 있는 직전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특히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를 호평하여 그가 자유주의 신학을 막았다고 언급한다는 것은 이 논문의 저자가 서 있는 기준점이 얼마나 자유주의로 치우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라 할 것입니다. 마치 장신대를 두고 한신대에서는 보수단체라고 비판을 하고 고신대에서는 진보단체라고 비판을 했던 것과 같습니다.
현 교계는 사회 상식의 발달로 교회의 구성원도 그 수준이 급격하게 세상 교육과정을 정상으로 통과한 사람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 한국교회는 아직까지도 성경에 확인되는 명문 성구들은 대체로 진리로 인정하는 교단들이 대세를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의 과학과 인문학을 기본 소양으로 가진 교인들이 성경의 명문 성구들은 그대로 인정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면, 그런 두 물줄기가 합류하여 그 이후에 나아갈 방향은 어디로 가겠는지,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논문은 현대 한국교회의 보수교계 내부에서 지성과 신앙을 함께 갖춘 교인과 목회자들 그리고 신학자들의 일정한 향방을 대단히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봅니다. 성경을 믿되 지성인으로 믿고, 지성인이지만 성경은 그대로 믿고자 노력한다면, 필시 세분 하나님의 기능적 활동적 일체를 주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삼위일체 교리에 인간적 이해와 지성을 고려했다면 그 교리는 누구의 주장이라도 삼위일체 교리 본류에 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3.이번 질문을 두고는 답변할 내용이 너무 많으나, 이 정도에서 일단 마쳐야겠습니다.
백목사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표현은 한번쯤 상세하게 설명을 드렸어야 했던 내용입니다. 또 위에 소개한 논문은 이곳이 선호하는 형태의 논문입니다. 간결하면서도 단호하고 또 내면에 있는 주장을 정치적 고려없이 솔직하게 발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논문을 두고는 이곳은 여러 면으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많습니다.
특히 위 논문은 장신대에서 나온 것이므로, 현재 장신대가 속한 통합측에서는 이단비판가로 제일 활동을 많이 하던 최삼경목사님이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한 삼신론자라고 반대측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활동가가 이단을 추적하다가 자신이 이단에 연루가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 논점이 되는 교리에 관하여는 당대 모든 교리 입장이 한번 총괄 정리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서로가 점잖게 절제된 교리 표현으로 자신의 속 마음을 감추고 있다가, 이제 생사를 걸고 투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속에 들어있는 솔직한 주장이 그대로 쏟아져 나오게 되고, 때로는 격분해서 자기도 모르게 가장 깊이 감추어두었던 설명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조금 거치게 되면, 마치 현 우리 사회에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정치사상이 남북관계 등의 첨예한 사건들을 통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그 내면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최삼경목사님 관련 삼신론 논쟁은 비록 통합교단 내부의 문제였지만, 삼위일체 교리를 두고는 보기 드물게 좋은 사건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면까지를 고려하며 위 논문을 대하다 보면 삼위일체 교리 연구에 대하여는 여러 모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아쉽게도 지금 답변자에게 밀려 있는 일정이 많아서 당장 충분히 살피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현재, 정리 중인 백영희교리작업 중 신론 부분을 곧 이곳 /연구실/정리방/에 제공할 예정입니다. 우선 초안 형태로라도 며칠 내에, 혹 1-2주일 내에 올릴 예정이니 백영희신앙노선에서 보는 삼위일체론 전체 입장을 우선 살펴보신 다음, 다시 문제점이나 반론 또는 지적하실 부분을 말씀해 주신다면, 이곳 답변자로서는 질문자께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가까운 주변에서 오가는 토론이나 의견은 너무 많이 접하다 보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을 그냥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께서 현재 주로 활동하시는 범위가 이곳과 많이 다른 듯 합니다. 이곳이 잘 접촉하지 않는 곳에 계신분이 그 시각에서 발언을 해 주신다면, 이곳도 공식적으로 대외 발표를 하기 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곳의 생각과 외부인이 읽을 때 느껴지는 첫 인상은 원래 글을 적는 사람의 뜻과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미리 고치고 수정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같습니다. 또한 이곳이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 주신다면 이곳이 발표에 앞서 연구할 기회를 갖게 되어 이 면도 크게 유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에서 올려주신 자료는 이곳 홈의 /초기화면/연구실/일반자료/에 올려 소개하겠씁니다.
내용분류 : [-교리-신론-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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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영희 신앙노선의 삼위일체관은 정통 삼위일체관을 그대로 잇고 있습니다.
①백영희신앙노선의 모습은 일반 교계와 크게 다른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그 교리와 교회의 행정 체계를 두고 현 교계 일반 상식과 비교를 한다면, 완전히 책을 새로 썼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현재 대한민국의 전국 도로체계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구축했던 체계를 본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토목기술의 발달로 과거 도로체계는 완전히 사로진 듯이 보이는 정도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구축했던 1910년 이후의 도로체계는 해방 후 수십년이 지나던 1970년대까지도 우리나라 도로체계 및 도로외형의 전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1980년 이후 추진된 도로사업의 결과 현재 2003년의 한국 도로 모습은 식민지 시절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도로체계와 모습이라고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때 형성된 도로체계는 200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당시 기술로는 뚫을 수가 없어 우회하던 것을 지금은 자금과 기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직선화한 정도입니다. 그리고 당시 모래와 자갈로 만든 길을 아스팔트나 콘크리이트로 포장을 한 정도입니다. 당시 1차선을 지금은 4차선 또는 8차선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빈들이던 곳에 지금 신도시가 들어섰기 때문에 신규 연결망을 건설한 정도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그 오늘의 외견 모습으로 보면, 식민지 시절 도로망을 그대로 보수만 하고 사용하는 일반 교단에 비해 전혀 별개의 교회로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펴보면 일반 교단이 사용하는 전통의 정통 교회 선상에서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도로노선은 고집스럽게 수십년이 아니라 수백년이 지났지만 그대로 옛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선화가 필요한 부분이나 교통 안전에 필요한 시설들은 기술력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배려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②삼위일체 교리는 과거 도로체계를 보수만 하고 사용하되 안내표시판을 많이 사용하는 정도입니다.
구원론과 같은 교리는 마치 식민지 도로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고속도로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른 보면 전혀 새로운 도로체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교회 행정 노선도 항공노선 개설처럼 느껴질 정도로 전혀 새로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 행정 노선은 실은 2천여 년전 초대교회 모습을 최대한 복원한 고대사회의 도로망이라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특히 삼위일체 교리는 역사 교회의 본류 모습을 가장 그대로 잘 지켜 나가고 있는 교리 중에 하나입니다. 다만 그 교리를 일반 교인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방법과 표현은 일반 신학과 달리 접근하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설교록 일부만 대하면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우려처럼 전형적인 양태론 이단으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목회설교록은 그 설교록 안에서 여러 번 설명을 하고 있지만 '목회' 현장에서 설교한 것을 가감없이 그대로 싣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목회설교록의 '목회'라는 의미는 교인들의 일상 생활을 신앙으로 지도하는 '목장 마굿간'의 일을 현장 일지와 같이 기록했습니다. 목회설교록이 아니라 그냥 '설교록'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 목회현장과 유리된 신학대학 강의실 강의도 설교록일 수 있지만 '목회설교록'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굳이 목장 마굿간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꼴을 먹이는 목동의 언행을 그대로 담았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를 비롯하여 교리 문제나 여러 노선에 대한 백목사님의 정확한 입장을 살필 때는 그 설교록 전반을 다 살펴봐야 하고 때로는 설교록 전반을 다 살펴도 거의 파악되지 않는 세계도 있다는 점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재론하지만, 일반 정통 교리체계를 가장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자께서 보신 것과 같이, 또 신학에 관심있는 분들이 이전에도 가끔 지적하시는 것처럼 백목사님의 목회설교록 내용의 표현은 분명히 단일신론으로 가는 양태론 이단이라고 비판받게 되어 있습니다.
③백목사님의 양태론적 삼위일체 설명은, 삼위일체의 본체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1985년 경, 미국 카브난트신학교 재학 중인 학생 한 명이 백목사님께 배운 삼위일체론이 양태론 이단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서부교회에서 배우던 습관대로 신학교에서 그대로 삼위일체를 이야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 한 분이 자녀들에게는 아버지로,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또 직장에서는 사회인으로 3가지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일인 삼역의 하나님이라고 삼위일체를 알고 있었는데 신학교 교회사 과목에서 조직신학과 교회사를 배우면서 그것은 대표적인 이단이라고 배우면서 갈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부산 백목사님께 삼위일체교리와 양태론에 대한 문제를 직접 질문하게 됩니다.
당시 백목사님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답변자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교리적 입장에서 설명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교리 역사나 교리적 강의 수준에서 삼위일체를 가르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교리든지 평소에 신학교 강의 차원에서 인용하거나 가르치는 적이 없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표현은 신학 상식을 가진 분들이 보면 신학의 아주 초보적 수준입니다. 너무 상식적인 용어도 혼동을 하거나 잘못 소개하는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리 발언들은 교리체계의 강의 차원에서 표현한 것이 아니고 일상 생활에서 교인들이 도로처럼 또 지팡이처럼 잡고 나갈 교리로 설명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꼭 필요한 교리만 가르치고 또 실제로 신앙생활에 붙들기 좋도록 설명하다 보면 종합 교리서의 표현과는 충돌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백목사님의 양태론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게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할 때 굳이 가장 위험한 설명 형태 중 하나인 양태론처럼 설명을 하는 이유는, 삼위일체교리의 근본 교리체계는 정통교리식이라야 하지만 일반 교인들에게 알기쉽게 이해를 돕도록 할 때는 양태론적 표현이 오히려 더 좋기 때문입니다.
즉, '이상적인 자본주의'를 설명하자면 자본주의 본 바탕에서 공산주의의 복지개념이 강조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실력대로 벌고 실력대로 살아라고 더 이상 강조를 하지 않아도 그것은 근본 사상이며 상식입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1학년만 아는 사람은 자본주의가 실력대로 벌고 사는 것으로만 알지만, 2학년으로 올라가면 자본주의가 끝까지 잘 존속하려면 실력없는 사람들의 불만이 누적되기 전에 미리 해소시키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진해서 하층 계급에게 기부금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고차원적이고 진정한 자본주의는 기부금 제도를 발달시키게 되는데, 이 기부금 제도를 1학년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명을 많이 하다보면 마치 공산주의자이거나 암약하는 적색분자로 보이기 쉽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본색이 공산주의자인데 남한 내 자본주의 체계를 흔들어 남한 사회를 파괴하기 위해 '분배정의'를 내걸고 나오는 사람들도 상상못할 만큼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외부 발언만을 놓고 보면 남한 내 암약하는 북한 노동당 대변인인지 남한의 자본주의 체계를 진정 사랑하는 고차원의 자본주의자인지 사실 그 구분이 애매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과거 활동과 경력이나 사상 전반을 면밀하게 추적해보면 그 본질 성분을 파악하는 데에는 별로 어려운 일이 없다고 봅니다.
진정한 삼위일체론자가 이 시대 신앙인들에게 참으로 삼위일체를 바로 알리려고 하다보면, 어떤 때는 삼신론으로 오해될 정도로 '삼위'를 강조해야 하는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단일신론으로 오해가 될 정도로 '일체'를 강조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현 시대의 교회와 교인의 형편을 고려할 때 마치 단일신론으로 보일 정도로 '일체'를 강조해야 할 때로 보기 때문에 양태론처럼 설명을 하고 있으나 양태론자들과는 전혀 다른 '정통 삼위일체교리'에 확고한 분이라고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④참고로, 백영희신앙노선의 특징 중 하나는 거리낌없이 발표하는 '단순'과 '직선'의 원칙이 있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시작부터 오늘까지 모든 종류의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주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만 집중하는 편이지 그 깨달음이 가져오는 뒷날의 이해득실은 기본적으로 초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깨달은 것을 외부에 발표하는 일에 있어 주저하거나 망설여보거나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혹 외부로 밝혀질 경우 자신의 자랑이 강조될까 하여 숨는 경우는 있고 또 상대방의 입장이 곤란해질까 하여 혹 발언 수위를 낮추는 수는 있습니다. 한 가지 명백한 것은 총공회는 진리 연구와 발표를 모든 가치보다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고 직선으로 발표를 해 왔습니다.
혹 문제점 있는 발언에 대하여 그 배운 사람들이 스승의 잘못을 덮기 위해 외무부 대변인의 발표와 같은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반 방문인이 계실까 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2.소개하신 논문에 대하여 평가하겠습니다.
①소개하신 논문은 백목사님과 정확하게 반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논문 내용은 삼위일체론을 가장한 삼신론이라고 단정을 했으면 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삼위일체라는 표현을 명백하게 사용한 이상 신학적으로는 이단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백목사님이 현 교계가 삼위일체 교리를 떠나 급격하게 삼신론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양태론으로 오해될 수 있는 표현을 가지고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위 논문은 현 교계에 아직도 '일체'를 강조하여 단일신론으로 가는 위험이 많다고 보고 '삼신론'으로 비판받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위 글 논문이나 백목사님의 설교록 일부를 잘못 인용한다면 하나는 삼신론으로 또 하나는 양태론적 단일신론으로 비판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여기서는 위 논문을 평가하는 자리이므로 글의 방향을 넓히지 않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위 논문은 백목사님과 삼위일체론을 두고, 신학 이론적으로는 이단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가장 반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②그렇다면, 현 교회의 형편은 삼위를 강조할 시점인가, 아니면 일체를 강조할 시점인가?
목회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신학교의 조직신학 강의실에서 이론만 가르치려고 한다면, 백목사님의 입장이나 위 논문을 기록한 교수님은 둘다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위글 논문은 보기 드물게 소신있게 발표가 되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발표가 되면 이단시비에 휘말려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대외 발표문에서는 이리 저리 빠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 상례인데, 솔직 담백하게 자신 속에 있는 그대로를 밝혔습니다.
논문의 솔직한 주장은 '삼위일체' 교리는 그 이름만을 유지시키고, 내용적으로는 분명히 삼신론이 옳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이름만 삼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한분 하나님으로 가는 것에 대한 반향이 아니고, 삼위로 계신 세 분 하나님을 세 분 하나님으로 그대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일체로 계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정통 교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논리라고 비판한 다음, 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통 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교리로 제시하기 위해 삼신론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논문은, 삼위일체 교리를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쉽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그 첫째 장점이고 또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친 세 분 하나님을 세 분 하나님 그대로 모시는데 주력했다는 것이 그 둘째 장점이지만, 이 논문은 동시에 이 세 분 하나님은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단점이 있고 또 삼(2)이 일(1)이 되는 주장을 하나의 '사변'으로 보면서, 사변이라는 것은 엄히 금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두번째 단점입니다. 이 논문의 단점은 바로 인간의 이해력 이상의 세계를 '사변'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3)이 일(1)이 되고, 일이 삼이 되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고 통탄을 하고 있지만 삼위일체를 이렇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이 논문은 하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과학적 기독교나 인문주의에 바탕을 둔 신학에서나 가능할 것입니다. 이 주장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바로 기장측의 여러 논리가 나올 수 있는 직전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특히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를 호평하여 그가 자유주의 신학을 막았다고 언급한다는 것은 이 논문의 저자가 서 있는 기준점이 얼마나 자유주의로 치우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라 할 것입니다. 마치 장신대를 두고 한신대에서는 보수단체라고 비판을 하고 고신대에서는 진보단체라고 비판을 했던 것과 같습니다.
현 교계는 사회 상식의 발달로 교회의 구성원도 그 수준이 급격하게 세상 교육과정을 정상으로 통과한 사람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 한국교회는 아직까지도 성경에 확인되는 명문 성구들은 대체로 진리로 인정하는 교단들이 대세를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의 과학과 인문학을 기본 소양으로 가진 교인들이 성경의 명문 성구들은 그대로 인정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면, 그런 두 물줄기가 합류하여 그 이후에 나아갈 방향은 어디로 가겠는지,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논문은 현대 한국교회의 보수교계 내부에서 지성과 신앙을 함께 갖춘 교인과 목회자들 그리고 신학자들의 일정한 향방을 대단히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봅니다. 성경을 믿되 지성인으로 믿고, 지성인이지만 성경은 그대로 믿고자 노력한다면, 필시 세분 하나님의 기능적 활동적 일체를 주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삼위일체 교리에 인간적 이해와 지성을 고려했다면 그 교리는 누구의 주장이라도 삼위일체 교리 본류에 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3.이번 질문을 두고는 답변할 내용이 너무 많으나, 이 정도에서 일단 마쳐야겠습니다.
백목사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표현은 한번쯤 상세하게 설명을 드렸어야 했던 내용입니다. 또 위에 소개한 논문은 이곳이 선호하는 형태의 논문입니다. 간결하면서도 단호하고 또 내면에 있는 주장을 정치적 고려없이 솔직하게 발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논문을 두고는 이곳은 여러 면으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많습니다.
특히 위 논문은 장신대에서 나온 것이므로, 현재 장신대가 속한 통합측에서는 이단비판가로 제일 활동을 많이 하던 최삼경목사님이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한 삼신론자라고 반대측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활동가가 이단을 추적하다가 자신이 이단에 연루가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 논점이 되는 교리에 관하여는 당대 모든 교리 입장이 한번 총괄 정리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서로가 점잖게 절제된 교리 표현으로 자신의 속 마음을 감추고 있다가, 이제 생사를 걸고 투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속에 들어있는 솔직한 주장이 그대로 쏟아져 나오게 되고, 때로는 격분해서 자기도 모르게 가장 깊이 감추어두었던 설명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조금 거치게 되면, 마치 현 우리 사회에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정치사상이 남북관계 등의 첨예한 사건들을 통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그 내면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최삼경목사님 관련 삼신론 논쟁은 비록 통합교단 내부의 문제였지만, 삼위일체 교리를 두고는 보기 드물게 좋은 사건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면까지를 고려하며 위 논문을 대하다 보면 삼위일체 교리 연구에 대하여는 여러 모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아쉽게도 지금 답변자에게 밀려 있는 일정이 많아서 당장 충분히 살피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현재, 정리 중인 백영희교리작업 중 신론 부분을 곧 이곳 /연구실/정리방/에 제공할 예정입니다. 우선 초안 형태로라도 며칠 내에, 혹 1-2주일 내에 올릴 예정이니 백영희신앙노선에서 보는 삼위일체론 전체 입장을 우선 살펴보신 다음, 다시 문제점이나 반론 또는 지적하실 부분을 말씀해 주신다면, 이곳 답변자로서는 질문자께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가까운 주변에서 오가는 토론이나 의견은 너무 많이 접하다 보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을 그냥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께서 현재 주로 활동하시는 범위가 이곳과 많이 다른 듯 합니다. 이곳이 잘 접촉하지 않는 곳에 계신분이 그 시각에서 발언을 해 주신다면, 이곳도 공식적으로 대외 발표를 하기 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곳의 생각과 외부인이 읽을 때 느껴지는 첫 인상은 원래 글을 적는 사람의 뜻과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미리 고치고 수정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같습니다. 또한 이곳이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 주신다면 이곳이 발표에 앞서 연구할 기회를 갖게 되어 이 면도 크게 유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에서 올려주신 자료는 이곳 홈의 /초기화면/연구실/일반자료/에 올려 소개하겠씁니다.
[삼위일체] 삼위일체론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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