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교의 정체성(침례신학대학교 세미나발표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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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의 정체성(침례신학대학교 세미나발표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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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의 정체성

월터 B. 셔든/김태식

1. 서론

일반적으로 장로교는 칼빈주의로, 감리교는 웨슬리안 주의로 그리고 성결교 알미니우스주의로 그 신학적 노선이 규정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침례교의 신학적 노선 내지는 그 특징은 과연 무엇인가? 혹자들은 침례교에 신학이 없다고 한다. 신학이 없는 것이 침례교의 신학이라는 말이다. 또 혹자들은 침례교가 칼빈주의에서 얼마, 알미니우스주의에서 얼마의 신학적 이론들을 도입했다고 하면서 침례교는 칼미니우스 주의라고 비꼬기도 한다.

과연 어느 말이 맞는 말일까? 침례교에는 신학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칼미니우스주의가 침례교의 신학이라고 하는 말이 맞는 것일까? 물론 침례교의 기본 정신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면 신학이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침례교니 장로교니 하는 교단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렇지 않아도 탈 배타주의 내지는 혼합주의를 선호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왜 꼭 기독교를, 그리고 그 중에서 꼭 침례교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를 선택해야 하고, 또 어떤 이유로 우리는 침례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이는 실로 현실적이고 절박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정체성 위에서 우리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침례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 월터 B. 셔든의 [침례교의 정체성]은 매우 중대한 기여를 한다. 이 책에서 침례교를 네 가지 자유 정신에 입각해서 침례교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셔든은 그 네 가지 자유의 정신을 역사적 확신 즉, 역사적 사건과 기록들로부터 얻어내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여기서 셔든의 책 [침례교의 정체성]을 요약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내려본 후 이 책을 읽으면서 생겨날 수 있는 몇 가지 논의사항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2. 내용 요약

서론.

침례교인들의 역사적 특징을 한 단어로 “자유”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그들은 자유의 정신을 가지고 자유에 대한 열정으로 살았다. 루터교 교회사가인 머티(Martin E. Marty)는 미국의 새로운 종교적인 풍토를 “Baptistification”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침례교인들의 신앙의 스타일이고, 신앙에 대한 독특한 자세이며, 신앙의 문제들에 대한 특별한 태도이고, 모든 침례교의 원리들 혹은 독특성을 지배하는 정신 즉, “자유”(FREEDOM)의 정신이다. 이렇게 침례교인들의 특징을 “자유”에서 찾는 것은 그들의 “탁월성”(prominence)과 “다양성”(diversity) 때문이다.

17세기 영국의 초기 침례교인들의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18세기 미국 남부의 일반 침례교인들과 특수 침례교인들, 19세기 영국의 스펄전(Charles Spurgeon)과 클리포드(John Clifford), 근본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순위 10위 내에, 그리고 미국의 행정부 내에 서로 극단적이거나 다양한 인물들이 한 침례교단 내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사실들이 침례교의 “탁월성”과 “다양성”을 말해준다.

이 외에도 1905년부터 1980년까지 세계 도처에서 개최되었던 침례교 세계 연맹(Baptist World Alliance) 모임들에서 침례교인들이 행했던 설교들과 연설문들을 분석함으로써 침례교인들의 특징이 자유 정신에 있다는 확신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침례교인들의 모습을 서술하면서 사용될 범주는 그들의 자유의 정신 뿐 아니라 그들의 전적인 신뢰와 부담, 의무, 끊임없는 책임이다.

침례교인들의 모습을 조각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 사용하는 네 가지 자유들은 성서의 자유, 영혼의 자유, 교회의 자유 이다. 침례교인들만이 유일하게 이 네 가지 자유들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네 가지 자유들 속에 나타난 내용들을 언급해야만 침례교인을 이해, 정의, 규정 그리고 설명할 수 있다.


1장. 성서의 자유

성서의 자유(Bible Freedom)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아래서 성서가 개인과 교회의 삶 가운데 중심이 되어야 하며, 학적으로 탐구할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게 그러나 반드시 성서를 연구하고 복종할 책임이 침례교인들 안에 있다는 역사적인 확신이다.


17세기에 기원한 침례교인들은 성서 66권을 하나님에 의해 쓰여진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들의 중요한 대부분의 신앙들은 다른 교단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다른 지체들과 하나이며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고 고백해야 하며, 이 고백이 침례교인들로 하여금 성서의 자유에 참여하게 한다.

성서의 자유는 그리스도 “아래에서”(Under) 성서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즉, “예수 아래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이는 성서가 예수보다 결코 앞서지 않는 다는 점을 그리고 “성서가 해석되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을 말한다.


또한 성서의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적으로 순종하기 “위하여”(For) 성서에 다가갈 수 있는 자유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서에 제한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서를 통해 분명하게 들려진다. 침례교인들에게 성서는 살아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서는 그들에게 도덕적인 의무와 신학적인 믿음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최종적인 권위이다. 성서는 완료된 것이지만 성서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결코 최종적이거나 완전하거나 완성된 것이 아니다.(게인스버로 원리, 스미스(John Smith)가 1606년에 만든 규약(Covenant)). 침례교인들의 성서에 대한 이와 같은 자유와 믿음의 유산은 변화하는 그들을 변화하는 세계에 가장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성서의 자유는 다른 모든 종교적인 권위들 “로부터”(from)의 자유를 의미한다. 침례교인들은 “이 주님 그 이상은 아니!”(This Lord and no more!)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이 책 그 이상은 아니”(This Book and no more!)라고 말하면서 시작했는데, 이 말은 모든 신조들, 신앙고백서들, 교회의 기구들과 종교 회의들에 대한 모든 교리적인 선언들이 성서의 권위에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침례교인들은 “어떠한 교리적인 진술로 행습과 신앙에 대한 성서의 명령을 적절하게 요약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교리를 기준으로 만들고 이어서 교리에 맹종하도록 강요하는 피할 수 없는 경향 때문에” 교리들을 거부한다. 오히려 침례교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신앙 고백들을 채택했는데, 이는 그들이 교리에 대한 복종으로부터의 자유하며 게인스버로 원리에 명시된 대로 계속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성서의 자유는 해석“의”(of)의 자유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모든 신자가 하나님 말씀에 정확히 일치해야 함을 명령하지 않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신자들이 성령에 인도된다면 신자들은 자유롭게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 해석의 권리는 어떠한 해석 혹은 모든 해석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사적 해석의 권리는 그 저자들이 의미하고자 했던 것을 파악하기 위하여 열심히 연구할 책임을 수반한다.


2장. 영혼의 자유

영혼의 자유(Soul Freedom)는 신조의 강요나 목사의 간섭, 시민 정부의 방해 없이 모든 개인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의무가 침례교인들 안에 있다는 역사적인 확신이다.


영혼의 자유라고 부르는 것은 침례교인들 안에서 “개인의 능력”, “하나님 앞에서의 영혼의 능력”, “개인적인 신앙”, “영혼의 자유”, “영적인 신앙”, “신자의 제사장 직분”, “신성한 개인주의” 등의 여러 가지 말들과 용어로 설명되어 왔지만, 이 용어들 속에 나타난 바램이 그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사상이다.


마태복음 16장 13절에서의 예수님 자신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개인의 반응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각 개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므로 각 개인은 하나님 아래에서 도덕적인, 영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결정들을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에게는 이러한 특권이 있을 뿐 아니라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의 탁월-영국에서 침례교인들이 등장한 1세기 후에 그들은 “개인은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직접적으로, 그리고 자원하여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제도적인 것 보다는 개인의 중심을, 성예전적인 것 보다는 개인의 우선성을, 그리고 간접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보다는 직접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주장했다. 예수님의 “개인적인 부르심” 600년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31장 33절에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판에 새겨 기록하여” 라고 선포함으로 신앙의 문제에서의 개인의 탁월에 대해서 말했다. 이러한 개인의 탁월함은 개인들이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결단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뉘우침에 의한 회개-영혼의 자유는 개인의 선택할 권리를 의미한다(베드로의 스스로 선택한 고백적 대답). 여기에는 잘못된 선택들과 그릇된 해석의 여지까지 포함한다(예수가 고난 당할 것이라는 말 앞에서의 베드로의 반응). 그러나 개인적인 선택 위에는 개인적인 결단의 책임이 강조된다(여호수아가 여호수아서 24장 15절에서 “여호와든지 이방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고 했을 때 개인적인 선택 위에 개인적인 결단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영혼의 자유는 신앙이 개인적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기에 회개의 방식을 규정짓지 못하며, 다양한 신앙의 경험을 수용해야 한다.


신자들을 위한 침례-침수례를 통해서 그들의 신앙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포한 침례교인들은 초기에 침례의 주체 즉 누가 침례를 받는가에 주목했다. 개인적이고 자원적인 신앙이라는 사상으로부터 그들은 신자의 침례를 주장했다.


3장. 교회의 자유

교회의 자유(Church Freedom)는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서 지역 교회가 자신들의 회원과 지도자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잇으며, 자신들의 예배와 봉사를 자유롭게 요구할 수 있고, 남녀를 불문하고 사역자로서의 은사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목사로 임명할 수 있으며, 교파 연합과 선교 운동을 위한 타교단의 운동에 침례교인들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역사적 확신이다.


교회: 자원적으로 자유롭게 좇음-교회는 게약(covenant)라고 부르는 두 가지 약속 즉, 예수를 자신들의 삶의 주로 따르기로 그리고 예수를 주인으로 따르려는 사람들을 서로 돕기로 한 약속을 자유롭게 그리고 자원적으로 행한 사람이다. 침례교인들이 생각한 교회의 본성은 신자들이 “모인 교회”이다. 침례교인들은 보편교회(모든 세대들의 모든 구속받은 자들)와 지역교회를 말하지만 주로 지역교회를 말한다.


교회: 정중하게 다스릴 자유-침례교인들의 교회정체는 회중적인 정체이다. 침례교회에는 목사와 집사의 두 가지 직분이 있는데, 회중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목사 혹은 집사로 봉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직분자로 임명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신자 자신들의 수동성과 독재주의자들의 활동에 의한 위험이 따른다.

지역 교회들 위에 군림하거나 법적으로 제지할 조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남침례교단”이나 “미국침례교단”이라는 말은 신학적으로 옳지 못하고 “(교회들의) 남침례교회 총회”, “(교회들의) 진보적인 국제 침례교회 총회”, “미국 침례교회들”이라고 해야 한다.


교회: 독창적으로 예배할 자유- 침례교회들의 회중교회 정체에서 다양성이 유래하고 이 다양성은 여러 가지 예배 스타일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적인 제사를 드리기 위한 예배의 개인화와 회복이다. 침례교인의 예배는 예배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는다. 교회의 자유는 여러 가지 유형의 예배를 초래하였다.


교회: 책임을 다하여 사역할 자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모든 침례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봉사할 자유와 책임이 있다. 복음은 우리 자신들과 교회의 교제를 벗어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으로 우리들을 나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지역 침례교회는 자신들의 섬김의 사역을 자유롭게 계획해야 할 책임이 있다.


4장. 종교의 자유

종교적인 자유(Religious Freedom)는 카이사르(Caesar)가 그리스도가 아니듯이 그리스도도 카이사르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종교의(OF)자유, 종교를 위한(FOR)자유, 종교로부터(FROM)의 자유가 침례교인들 안에 있다는 역사적인 확신이다.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성서는 다양한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마 22:15-22에서는 국가의 합법성과 제한성이 함께 인정되고 있고, 롬 13:1-7에서는 국가의 합법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계 13장에서는 순교를 각오하고 국가에 저항할 것이 주장된다. 침례교인들은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성서의 다양한 가르침을 인정하면서도 일관되게 종교의 자유와 교회와 국가와의 분리를 요구해 왔다.


역사적인 침례교인들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증거-17세기 영국의 침례교 전통의 선구자인 스미스와 헬위스는 자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침례교단을 시작했다. 1612년 헬위스가 저술한 “A Short Declaration of th Mistety of Inquity”는 영어로 쓰여진 완전한 종교 자유를 요구한 첫 번째 책이라고 평가되고 있는데, 이 책에서 헬위스는 국가에 대한 충성, 국가의 한계,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한 종교의 자유의 원리를 주장했다. 또한 17세기에는 로저 윌리암스(Roger Williams), 존 클락(John Clarke), 오바디아 홈즈(Obadiah Holmes)는 식민지에서 무제한의 종교를 주장했고, 아이작 바쿠스(Isaac Backus)와 존 레란드(John Leland)는 18세기와 19세기 초기에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으며, 20세기 동안에는 E.Y.Mullins, Rufus Weaver, J.M.Dawson, George W. Truett, James E. Wood, G.Hugh Wamble 2세, James M. Dunn 등이 이러한 자유에 대한 침례교인의 증거를 기억할 것을 천명했다. “그러나 교단이 커지고 힘이 있게 되고 정치적인 목적들을 얻고자 할 때에는 자유의 종소리는 점점 더 약해져만 간다.”


역사적인 침례교인들과 종교자유의 토대- 기독교 역사를 통해 교회들은 종교의 자유와 박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서를 정반대의 방향으로 상요했다. 눅 14:14-24이 교회가 행사하는 힘을 정당화 하는데 사용되었고 마 13:24-20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데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헌신을 성서의 원리들 위에 세우려고 노력했다. 침례교인들은 하나님의 본성과 사람에 대한 성서의 견해 그리고 신앙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다. “참된 신앙은 국가에 의해 강요될 수도 거부될 수도 없다”.


역사적인 침례교인들과 종교의 자유의 의미- 침례교의 유산 속에서 종교의 자유는 완전한 종교의 자유의 성취,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종교의 자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의미하는 종교의 자유의 세 단계의 차원이 있다. 역사적으로 네 가지 유형의 교회-국가 관계가 있는데 중세시대의 국가 위의 교회, 20세기 공산국가의 국가 밑의 교회, 영국 성공회의 국가와 교회의 타협, 그리고 미국의 교회와 국가의 분리이다.

오늘날의 침례교인들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위협들- “위험은 없다”, “위험이 너무 사소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생각(글렌 힌슨), 구약성서의 토대 위에 미국 사회를 재건하자는 재건운동(Reconstruction Movement)으로 알려진 것에 열중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신정주의적 사고방식. 시민권(citizenship)과 제자도(discipleship)의 혼돈등이 침례교인들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위협들이다..


요약과 결론

모든 자유 즉 성서의 자유, 영혼의 자유, 교회의 자유 그리고 종교의 자유는 책임 위에 세워진다. “자유는 항상 위험스러우며 위협적인 사상이다”. 그러므로 침례교의 자유는 아주 자우 쉽게 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주와 중심이 될 때, 그 분의 주되심 아래에서 자유는 힘을 발휘한다.

“역사적인 침례교의 정체성은 통제성 보다는 자유, 강제보다는 자원주의, ‘집단사고’보다는 개인주의, 대리종교보다는 개인적인 종교, 획일성 보다는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3. 결론 및 평가

침례교인, 그들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본 서가 내리는 결론은 “그들은 자유인이다” 이다. 무조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또 하나의 강조되어야 할 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자유인이라는 것이 본서의 결론이다.

저자와 역자 그리고 추천자가 주장하는 것 처럼 본 서는 침례교인들이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본 서에서 “침례교인”을 미국에 살고 있는 침례교인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서는 “미국 침례교의 정체성” 이라고 이름 붙여야 마땅하다고 본다.

또한 침례교의 기원설에 대한 충분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정체를 알려면 뿌리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본 서는 침례교인들의 “고백” 또는 17세기 이후의 역사적 사실들에만 주목했는데, 이 점은 저자의 노고들이 편협함으로 평가절하 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침례교의 뿌리, 기원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함을 느낀다.

침례교의 정체성에 대해 네 가지 자유 혹은 깨어지기 쉬운 네 가지 자유로 정리한 것은 침례교 신앙의 특성이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지 않을까?

4. 토론.

1. 셔든은 침례교의 기원을 17세기에 두고 있다(p.24). 이는 침례교 기원에 관한 학설(전통설(사도계승사상), 영국 재침례교와의 영적 혈연설, 영국 분리주의자 후예설)들을 간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침례교 기원에 관한 세 가지 학설들에서도 셔든이 말하는 성서의 자유를 찾아볼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침례교의 기원에 따라서 침례교의 특징이 달라진다면 이 책에서 셔든이 주장하고 있는 침례교의 성서의 자유 이미지는 셔든만의 주장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2. 성서해석에 대한 자유가 있고 침례교의 교리가 없다면 침례교가 이단으로 정죄한 대상들(예를 들어 성락교회 김기동, 그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의 정죄 기준은 무엇인가? 그들에게도 성서를 사적으로 해석할 특권이 보장된다면 굳이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해서 “피해”를 볼 이유는 없지 않은가?

3. 하나님과의 교제는 개인적인 관계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지 교리나 의식을 통하여 얻어지지 않는다면(p.47),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예수께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신 지상대명령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것이 교리나 의식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고 전제할 지라도 가르쳐 지키게 할 교리 혹은 의식이 있지 않은가? 개인적인 관계만을 주장한다면 그로 인해 생겨나는 오류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4. 회중적인 정체를 말할 때 신자의 수동성과 독재주의자들의 활동에 의한 위험이 수반된다고 했는데(p.66), 이러한 위험들에 대한 대표적인 실례와 한국의 침례교회들 속에서의 실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5. 교회의 자유 속에 “예배 스타일의 다양성”(p.69)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되어 오늘날 “예배 패러다임 쉬프트”로 인해 구현되어지고 있는 많은 교회들의 다양한 예배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예, 공주교회의 예배, 온누리교회의 구도자예배 등)

6. 역사적으로 네 가지 교회-국가 관계 유형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유형은 거의 동시대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각 유형들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의 유형은 어떤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을까? 또한 미국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침례교인들이 이러한 유형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는데(p.84) 이에 대한 견해들을 토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신학] 우리나라의 신학대학(원)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학~]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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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각 신학대를 평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평가라는 말 자체가 좀 그렇지만 각 신학대학(원)의 특징을 이야기 해주십시오

예를 들어 고신은 극보수, 총신은 절대성경, 장신은 자유주의가 많은걸로 알고있습니다.침신은 잘 모르겠습니다.침신은 전체를 다 가지고 갈려고 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답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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