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오늘 이 복음을 쥐어 준 신앙의 감사한 분들로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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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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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5 00:00
제목분류 : [~교회사~청교도~]
내용분류 : [-교회사-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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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귀한 종들을 일으켜서 그 시대를 밝혔습니다.
다윗 시대처럼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통해 복음운동이 가장 강성할 때도 있었고
예수님 초림 직전 400여년 처럼 선지자가 없어 흑암의 시절을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그 흑암의 400년이라 해서 완전히 빛이 끄진 것은 아니었고 또 귀한 종들이 그 시대를 감당하던 때라고 해서 그 비추는 불빛이 동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맡긴 사역의 종류가 조금씩 달랐고 또 복음운동의 밝기도 조금씩 다 달랐습니다. 구약 4천년이 그렇게 흘러왔듯이 신약 2천년도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이곳 신앙노선은 비록 이 시대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홀로 불을 켜고 있는 듯 하지만 그 과거를 살펴보면 과거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크게 붙들고 역사하시던 신앙의 인물들 또 복음운동들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없는 가운데에서 한번 창조한 이후, 하나님께서 그 다음 역사세계의 전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운동이나 그런 인물을 만들지 않으시고, 앞서 세운 종들을 통해 면면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2.청교도 운동은 중세 천주교로부터 탈출한 기독교 운동을 잇고 있습니다.
6세기에서 16세기까지 약 1천년간 계속된 천주교 주도시절을 끝내고 루터와 칼빈의 수고로 오늘 우리 신앙노선이 새롭게 출발하던 때가 1500년대였습니다. 교회 개혁 초기의 불길이 조금 식어지고 이전 천주교만큼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그렇게 나갈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던 시점에 영국에서 꼭 말씀대로 살아보자는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영국은 사회적으로도 보수적이지만 신앙적으로도 기독교가 영국의 국교였기 때문에 교권으로 모든 교인들의 신앙을 마음껏 통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와 교권에 맞서서 꼭 말씀 그대로만 살겠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탄압은 실로 무서웠는데, 그들이 미국으로 신앙자유를 위해 건너가게 되고 오늘까지 미국신앙의 보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바로 그들이 전도해서 세운 교회이고, 또 이곳 신앙노선은 한국교회의 신앙전통으로 이어내려 오다가 신사참배 등을 통해 한국교회 역시 급격하게 교권화 되어 가자 원래의 깨끗한 신앙전통을 이어 그대로 교회를 지켰고 그렇게 깨끗하게 이 시대를 잘 통과하게 되자 이 시대에 필요한 깨달음을 더하여 주시므로 그 교리적 정리가 현재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체계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경건주의 운동은, 교회가 종교 개혁 이후 천주교를 일부 닮아갈 조짐을 보이면서 형식화되고 그 속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하나님 동행의 열심과 실행이 식어지자 말씀을 신학 이론 속에 고착시키지 말고 생활 속에까지 말씀이 움직이게 하자고 나온 행동주의 신앙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신앙적 갈급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주를 위해 열심히 충성할 수 있는 힘을 받았던 신앙운동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주목하는 것은 어느 신앙운동이 한번 일어났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그 이후 교회역사를 통해 계통으로 이어졌느냐는 구별입니다. 물론 단 한번 일어난 운동이라 해도 하나님의 역사요 꼭같이 소중하지만 계통을 통해 후시대로 이어지는 것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말하자면 한국교회에서 주기철목사님이나 손양원목사님의 신앙과 경건과 차원은 최고 수준에 있지만 그 뒤로 이어진 면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남선목사님은 무명의 출옥성도라 할 만큼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그분의 신앙은 고신과 백영희목사님으로 이어져 오늘 이곳 신앙노선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각각 다른 면을 달리 맡기지만 신앙의 계통으로 이어지는 인물과 운동의 의미는 그 차원이 항상 복음 운동의 최 중심에 있습니다.
3.역사적 신앙운동들을 대할 때는 오늘 바로 또 반복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셨으면
에덴동산의 상황은 그후 오늘까지 6천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름과 장소만 조금씩 다를 뿐 그 내부 성질은 동일합니다. 그때 그 귀신이 오늘 이 귀신이고 당시 애터지던 그 성령이 오늘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아담의 죄가 원죄가 되어 오늘 우리 속 옛사람으로 역사하면서 그 자기중심을 되살려 우리에게 세상 세월을 헛일 시키고 있습니다. 그때 뱀의 말이 묘하게 더하고 빼는 바람에 넘어간 것처럼 오늘도 말한마디 더하고 빼는데 교단 하나가 통째로 날라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갈림길에서도, 광야 40년에서도, 예수님 당시에도, 청교도의 고통과 그들의 훗날 큰 복도, 그리고 한국교회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뚜렷하게 알려지고 있는 세계교회사의 크나큰 복음운동인 청교도의 행적은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역사가 소중하다는 것은 사실이나 또 그 사실을 세상 역사공부하듯 접근해야 한다 해서 미국과 영국의 도서관을 뒤적이며 세월을 보내는 역사신학학도가 되거나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남는 것은 청교도의 살아있는 교훈이 아니고 청교도가 버린 허물뿐입니다. 그것으로 자꾸 줏어대면 아는 것이 많은 듯 한데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다 보지못하는 소경이 됩니다. 그냥 몇 시간 또는 며칠 정도 좀 살펴보면 알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요약서 정도를 권합니다. 그리고 성경과 오늘 나의 현실을 그곳에 대입하면 수백년 전에 사라진 과거 역사를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습니다.
청교도의 역사는 오늘도 질문자가 살고 계시는 가정과 교회와 접촉하는 주변환경에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질문자 현실에서 청교도가 되지 못하면 청교도를 박해한 교권자나 아니면 비웃던 당시 일반인들이 됩니다. 이 정도 소개를 가지고 조금씩 명상의 범위를 넓혀 이곳에서 시간 관계로 더 이상 적지 못하는 뒷부분을 스스로 많이 적어보셨으면 합니다.
4.백목사님의 평가
교회사에서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붙들고 역사했던 신앙운동과 종들에 대하여 백목사님은 그 설교록에서 대단히 그리고 자주 인용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총공회 신앙노선 외의 교회와 신앙운동에 대하여 그 비판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설교 전체적인 분포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원인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입니다. 이 역사에 대하여는 서슴치 않고 비판하여 나팔을 주신 주님 앞에 자신의 소명을 다하여 오늘 역사가 덜 속화되고 더 발전되어 다음 시대로 넘어가도록 충성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알고보면 미움과 저주가 아니고 애착과 축복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게 이곳 답변자가 단정하는 이유는 지나간 과거 역사를 두고 백목사님은 펠라기우스나 알미니우스와 같은 몇몇 이단자들 외에는 교회사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귀한 복음을 전해준 귀한 분들만 거의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물 순교자들 성자들 그리고 귀한 신앙운동들만을 인용하는 것은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 어디에 연결이 되어 있으며 그의 오늘 임무가 무엇임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실입니다.
내용분류 : [-교회사-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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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귀한 종들을 일으켜서 그 시대를 밝혔습니다.
다윗 시대처럼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통해 복음운동이 가장 강성할 때도 있었고
예수님 초림 직전 400여년 처럼 선지자가 없어 흑암의 시절을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그 흑암의 400년이라 해서 완전히 빛이 끄진 것은 아니었고 또 귀한 종들이 그 시대를 감당하던 때라고 해서 그 비추는 불빛이 동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맡긴 사역의 종류가 조금씩 달랐고 또 복음운동의 밝기도 조금씩 다 달랐습니다. 구약 4천년이 그렇게 흘러왔듯이 신약 2천년도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이곳 신앙노선은 비록 이 시대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홀로 불을 켜고 있는 듯 하지만 그 과거를 살펴보면 과거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크게 붙들고 역사하시던 신앙의 인물들 또 복음운동들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없는 가운데에서 한번 창조한 이후, 하나님께서 그 다음 역사세계의 전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운동이나 그런 인물을 만들지 않으시고, 앞서 세운 종들을 통해 면면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2.청교도 운동은 중세 천주교로부터 탈출한 기독교 운동을 잇고 있습니다.
6세기에서 16세기까지 약 1천년간 계속된 천주교 주도시절을 끝내고 루터와 칼빈의 수고로 오늘 우리 신앙노선이 새롭게 출발하던 때가 1500년대였습니다. 교회 개혁 초기의 불길이 조금 식어지고 이전 천주교만큼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그렇게 나갈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던 시점에 영국에서 꼭 말씀대로 살아보자는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영국은 사회적으로도 보수적이지만 신앙적으로도 기독교가 영국의 국교였기 때문에 교권으로 모든 교인들의 신앙을 마음껏 통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와 교권에 맞서서 꼭 말씀 그대로만 살겠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탄압은 실로 무서웠는데, 그들이 미국으로 신앙자유를 위해 건너가게 되고 오늘까지 미국신앙의 보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바로 그들이 전도해서 세운 교회이고, 또 이곳 신앙노선은 한국교회의 신앙전통으로 이어내려 오다가 신사참배 등을 통해 한국교회 역시 급격하게 교권화 되어 가자 원래의 깨끗한 신앙전통을 이어 그대로 교회를 지켰고 그렇게 깨끗하게 이 시대를 잘 통과하게 되자 이 시대에 필요한 깨달음을 더하여 주시므로 그 교리적 정리가 현재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체계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경건주의 운동은, 교회가 종교 개혁 이후 천주교를 일부 닮아갈 조짐을 보이면서 형식화되고 그 속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하나님 동행의 열심과 실행이 식어지자 말씀을 신학 이론 속에 고착시키지 말고 생활 속에까지 말씀이 움직이게 하자고 나온 행동주의 신앙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신앙적 갈급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주를 위해 열심히 충성할 수 있는 힘을 받았던 신앙운동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주목하는 것은 어느 신앙운동이 한번 일어났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그 이후 교회역사를 통해 계통으로 이어졌느냐는 구별입니다. 물론 단 한번 일어난 운동이라 해도 하나님의 역사요 꼭같이 소중하지만 계통을 통해 후시대로 이어지는 것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말하자면 한국교회에서 주기철목사님이나 손양원목사님의 신앙과 경건과 차원은 최고 수준에 있지만 그 뒤로 이어진 면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남선목사님은 무명의 출옥성도라 할 만큼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그분의 신앙은 고신과 백영희목사님으로 이어져 오늘 이곳 신앙노선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각각 다른 면을 달리 맡기지만 신앙의 계통으로 이어지는 인물과 운동의 의미는 그 차원이 항상 복음 운동의 최 중심에 있습니다.
3.역사적 신앙운동들을 대할 때는 오늘 바로 또 반복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셨으면
에덴동산의 상황은 그후 오늘까지 6천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름과 장소만 조금씩 다를 뿐 그 내부 성질은 동일합니다. 그때 그 귀신이 오늘 이 귀신이고 당시 애터지던 그 성령이 오늘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아담의 죄가 원죄가 되어 오늘 우리 속 옛사람으로 역사하면서 그 자기중심을 되살려 우리에게 세상 세월을 헛일 시키고 있습니다. 그때 뱀의 말이 묘하게 더하고 빼는 바람에 넘어간 것처럼 오늘도 말한마디 더하고 빼는데 교단 하나가 통째로 날라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갈림길에서도, 광야 40년에서도, 예수님 당시에도, 청교도의 고통과 그들의 훗날 큰 복도, 그리고 한국교회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뚜렷하게 알려지고 있는 세계교회사의 크나큰 복음운동인 청교도의 행적은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역사가 소중하다는 것은 사실이나 또 그 사실을 세상 역사공부하듯 접근해야 한다 해서 미국과 영국의 도서관을 뒤적이며 세월을 보내는 역사신학학도가 되거나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남는 것은 청교도의 살아있는 교훈이 아니고 청교도가 버린 허물뿐입니다. 그것으로 자꾸 줏어대면 아는 것이 많은 듯 한데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다 보지못하는 소경이 됩니다. 그냥 몇 시간 또는 며칠 정도 좀 살펴보면 알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요약서 정도를 권합니다. 그리고 성경과 오늘 나의 현실을 그곳에 대입하면 수백년 전에 사라진 과거 역사를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습니다.
청교도의 역사는 오늘도 질문자가 살고 계시는 가정과 교회와 접촉하는 주변환경에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질문자 현실에서 청교도가 되지 못하면 청교도를 박해한 교권자나 아니면 비웃던 당시 일반인들이 됩니다. 이 정도 소개를 가지고 조금씩 명상의 범위를 넓혀 이곳에서 시간 관계로 더 이상 적지 못하는 뒷부분을 스스로 많이 적어보셨으면 합니다.
4.백목사님의 평가
교회사에서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붙들고 역사했던 신앙운동과 종들에 대하여 백목사님은 그 설교록에서 대단히 그리고 자주 인용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총공회 신앙노선 외의 교회와 신앙운동에 대하여 그 비판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설교 전체적인 분포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원인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입니다. 이 역사에 대하여는 서슴치 않고 비판하여 나팔을 주신 주님 앞에 자신의 소명을 다하여 오늘 역사가 덜 속화되고 더 발전되어 다음 시대로 넘어가도록 충성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알고보면 미움과 저주가 아니고 애착과 축복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게 이곳 답변자가 단정하는 이유는 지나간 과거 역사를 두고 백목사님은 펠라기우스나 알미니우스와 같은 몇몇 이단자들 외에는 교회사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귀한 복음을 전해준 귀한 분들만 거의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물 순교자들 성자들 그리고 귀한 신앙운동들만을 인용하는 것은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 어디에 연결이 되어 있으며 그의 오늘 임무가 무엇임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실입니다.
[교회사] 청교도나 경건주의 운동에 대한 바른 시각은 (제목 - 관)
제목분류 : [~교회사~청교도~]
내용분류 : [-교회사-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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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궁금한 것이 있어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청교도 신앙 운동이나 경건주의 운동에 성격을 총공회 교인으로서
어떻게 이해아여야 합니까?
그리고 이러한 운동을 오늘 우리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겠는지요?
백 목사님은 이러한 운동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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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회사~청교도~]
내용분류 : [-교회사-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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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궁금한 것이 있어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청교도 신앙 운동이나 경건주의 운동에 성격을 총공회 교인으로서
어떻게 이해아여야 합니까?
그리고 이러한 운동을 오늘 우리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겠는지요?
백 목사님은 이러한 운동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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