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모순 사이를 계속 오가다가, 정상적으로 갈 길을 찾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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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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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30 00:00
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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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으로 잘 믿고 나가시는 과정을 밟고 계십니다. 과거 답변자 자신의 혼동이 기억나서 몇 말씀드립니다. 바로 그런 과정을 지나서 오늘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1.부흥강사 화장실 가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낙망했던 분을 기억합니다.
신앙으로 아주 가까운 분 중에 목회를 생각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연유를 그 부인되는 분이 답변자에게 여러 번이나 웃으며 했는데, 그 분이 학생 때 크게 은혜를 받고 천하를 얻은 듯 기뻐하다가 그 부흥강사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을 했고 또 그 부흥강사가 설교 중에 부인과 자녀가 있다는 말을 하자 그만 낙망을 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런 천사가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면 사람으로서 안 해 본 짓이 없었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이 예화를 들은 기억은 30여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도 답변자는 아무에게나 답변자 사생활이나 개인 생활을 의도적으로 감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렇게 시험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관의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국은 하나님과 진리에만 자신의 눈을 고정하고, 자신의 신앙에 도움되는 분들에게는 자신 신앙에 도움되는 면만 볼 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비로소 그의 신앙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2.답변자는 성경의 오류 문제를 두고 심리적 공항에 빠진 경험이 있습니다.
성경은 정확무오하다는 말만 듣고 그런 줄 알았다가 번역 성경은 오류가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은 정말로 컸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원본성경은 남아 있지 않고 사본성경만 남아 있는데 그 사본성경들은 서로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잘 믿지는 못했지만, 성경이 절대 진리이므로 마음 속 한편에 믿을 수 있는 든든한 곳이 있다는 안심이 있었습니다. 또 언젠가 자신이 더 잘 믿는 사람이 된다면 그 절대 진리를 믿고 어떤 희생도 기쁨으로 당할 날을 마음속에 소망했는데, 정확한 성경이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면 절대 진리는 알지 못한다는 말이었고, 그렇다면 언젠가 자신이 잘 믿는 사람이 되어도 자신이 전적 믿고 희생하는 것이 성경을 기준으로 할 것인데 그 성경 자체가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은 자신에게 마음에 든든히 의지할 곳을 없애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심리적인 공항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성경대로 믿는 것이 옳다는 길에 서 있었기 때문에 겉 행동은 이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고 속으로는 너무 크게 기대하던 것이 무너져 마음이 공허한 상태로 지나던 시기가 상당기간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날 백목사님 설교 중에서 성경은 오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성령의 감동으로 그 오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때, 비로소 이전에 잃어버린 공허한 자신 속의 의지할 진리를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원본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타락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치된 사본이 없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초대교회 복음을 핍박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보다 더 뚜렷하게 자신들 눈앞에 보이도록까지 나타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배척하고 인간이 제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오류가 많은 우리 번역성경이라도 자기가 아는 대로만 읽고 깨닫고 실행해 나가다 보면, 잘못 깨달은 것은 성령이 고쳐 주시고, 나중에 심령이 밝아지면 잘못 번역된 것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성령의 번역 초월역사가 있을 것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주신 신앙양심과 영감의 최소역사가 있으니, 그것을 순종하면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알아지고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백목사님 설교였습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답변자는 오늘 우리에게 남겨진 성경은 존재하지 않으며 번역성경은 물론 사본성경도 오류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즐겨 인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66권을 성경으로 확정한 것도 성경 자체가 아니고 초대교회 교인들의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니 이 역시 근본적으로 잘못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내용까지를 자신있게 공개하면서도, 오늘 우리가 가진 한글성경이 오늘 우리에게는 원본성경으로 알고 읽고 외우고 그 말씀 때문에 답변자의 일생과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깨달음과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현재 번역된 내용에 현대 신학자들이 더 정확하게 번역하겠다는 시도를 사정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3.백목사님에 대한 답변자의 기대도 질문자처럼 그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장황하게 여러 설명을 드린 이유는 성경에 비할 수는 없었으나, 처음 백목사님이라는 분이 이 시대를 감당할 선지자라는 소개를 들었을 때, 그가 그런 분이라면 직접 한번 가서 배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소개하는 분의 손에 이끌려 부산을 방문했고 이후 여러 과정을 통해 그 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어린 답변자 신앙에는 백목사님이라는 존재는 교리적으로는 누구든 실수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라고 알고 있었으나 현실적 느낌으로는 그분은 모세와 같았고 사도 바울과 같았으며 그분의 행동과 표현과 결정은 잘못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분 자신이 설교 중에 자신이 과거 잘못 결정해서 번복했던 것, 실수 했던 것, 또 이전보다 더 밝게 알게 된 것을 설교해도 그냥 그런 부분은 근성으로 들었습니다. 의례 신앙높은 분의 괜히 엄살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백목사님의 결정이 실제 잘못 된 것을 볼 기회가 있었고, 너무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또 한번 큰 공항을 맞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내렸고, 그때 쇼크는 정말 큰 것이었습니다.
부산이라는 곳은 내가 살 곳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백목사님 때문에 학교도 생활도 인생도 방향을 다 바꾼 상태에서 백목사님의 실수를 봤을 때, 답변자로서는 남몰래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신비로운 세계가 깨졌고 순간, 답변자 마음은 헛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때 답변자가 결정적으로 백목사님의 실수였다고 생각한 것이 답변자의 착오였고 그 실수는 실수가 아닌 것을 답변자 수준에서 혼자 엉뚱하게 오산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몇 번 겪으면서 그때부터는 보다 차분하게 백목사님의 결정이나 처리 또는 발언이나 교훈을 새겨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정말로 백목사님이 잘못 알았는데 스스로 수정하신 것도 있고 남들이 지적을 해서 고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보면서 답변자는 신앙선배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고 상대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정상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다윗도 모세도, 그들이 실수를 하지 않아서 또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들이 된 것이 아니고 그들 역시 어린 신앙에서 자라갔고 틀린 것을 고쳐가며, 잘못 알았던 것을 더 잘 알아가며 자라갔던 분들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이라는 존재를 답변자에게 소개했던 분이 이런 모든 과정을 다 말할 수 없어 그냥 결론적으로 이 시대의 선지라고 소개를 했는데, 그 소개를 듣는 답변자는 그는 흠도 점도 없는 선지자로 알았고, 그는 처음 믿는 순간부터 한번도 실수나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을 것이라고 답변자 주관으로 미리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성자들도 그렇지 않았는데, 답변자 스스로 백목사님을 백목사님 이상의 분으로 평가해 두었다가 그다음에는 백목사님이 그런 실수도 하지 않았는데 답변자 혼자 실수했다고 생각하고 시험들었다가 그리고 다시 답변자가 잘못 생각했다고 돌이켰는데 알고 보니까 그 생각조차도 답변자의 주관으로 잘못 생각했던 것이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백목사님은 99점짜리 신앙이었다면, 답변자 혼자 그분을 100점으로 평가했다가 또 답변자 혼자 10점짜리로 알았다가 또 답변자 혼자 그분을 또 100점짜리로 알았는데, 그는 답변자가 이렇게 주관적으로 평가를 변동할 때에도 그 변동과 상관없이 늘 90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다음해에 91점으로 더 자라갔고 그 다음해는 또 92점으로 점점 더 올라갔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일반 신앙인들이 상상도 못할 고차원의 세계를 날라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4.위대한 신앙인물이라는 존재는, 어린 신앙이 마구 자라가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마음 속에 그 누구를 기대하더라도, 그 누구라는 대상이 부모든 교사든 목회자든 마음 속에 좋은 인상으로 기대하고 한껏 바라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소망에 좋고, 기분이 든든해서 좋고, 또 그런 목표점이 있으면 모든 생활과 노력에 가속이 더해지기 때문에 좋습니다. 문제는 인간을 기대하면 그 인간의 부족 때문에 그 인간을 목표해서 얻은 수입 전부를 한 순간에 다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하나님께로 나갈 때 도움되는 방향으로 '이용'만 해야 합니다. 그 인간에게 부족점이 있을 때는, 저렇게 기대한 사람도 저런 실수가 있으니 나는 얼마나 더 노력해야겠다는 것을 느끼면 되고, 또 내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음도 아시고, 또 인간은 이러니 역시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하나님 유일주의에 더욱 소망과 의지를 가지게 되면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을 하나님과 같은 차원이나 비슷한 상대로 높여 놓으면, 그런 일을 가혹하게 평한다면 우상이요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자체는 우상도 다른 신도 아니지만 그 사람을 잘못 상대하는 나의 주관 때문에 나에게는 그의 존재가 그런 우상과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신앙일 때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나 세월을 따라, 또 이런 저런 고비를 넘어가면서 조금씩 자라가야 합니다. 못되게 자라가는 사람, 건방지게 자라가는 사람, 머리가 굵어지면서 제법 나쁜 소리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가지 말고, 정상적으로 잘 자라가는 사람이라면 이런 저런 고비를 다 넘어서 마지막에 도달해야 하는 단계는 하나님과 성경만 남고, 하나님과 성경만 의지하고 인간은 그 어떤 인간이든지 사람으로만 상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되 그의 실력이 1점이면 1점 인간으로, 그의 실력이 90점이면 90점으로
그의 수준이 비록 흠과 점이 있다 해도 다윗 같고 모세 같으면 다윗과 모세처럼 상대하면 됩니다. 사람은 그 누구든 실수가 있다는 이 절대 진리를, 귀신이 써먹되 만일 존경할 모세나 다윗을 향해서 써먹으면서 모세와 다윗을 충실히 따르는 이들에게 모세가 하나님이냐, 다윗이 하나님이냐, 하나님만 하나님이지 라고 말해서, 모세와 다윗의 실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모세와 다윗의 신앙계통과 그들에게 그 당시 시대와 그 이후 시대까지 맡긴 하나님의 수탁 위치를 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은 모세와 다윗이 실수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는 모세와 다윗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는 모세와 다윗의 실수를 알고 지적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모세를 대적한 고라가 되고, 다윗을 대적한 압살롬이나 기타 다른 원수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5.이곳에서 백목사님의 실수나 단점을 한번씩 말하는 것은 공연한 시비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백목사님이라는 분의 입장에 대하여, 이곳에서 삼가 그분의 실수나 흠과 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홈이 불신자와 천주교인과 모든 종류의 교회들이 다 함께 지켜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백목사님과 같은 한 시대, 또는 여러 시대에 하나 나올 수 있는 인물을 이곳 답변자가 본 내심 시각을 그대로 발표하면 왜 사람을 우상으로 만드냐, 왜 신격화 하느냐는 시비 한 마디를 던질 그런 배아픈 분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의 말 한 마디가 던져지면 그때마다 그 말에 대하여 이곳이 자초지종을 성경과 교리와 실제 현장을 전부 꿰뚫어 설명해야 하는 참으로 난감한 일을 예상하게 됩니다. 그런 설명 한 번을 하려 하면 해야 할 일 수십 또는 수백 배의 시간이나 정신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명을 하더라도 원상회복은 어렵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신격화라는 표현이 해당될 경운, 일부 정신착란자들의 극단적 예외가 아니고는 신격화를 일부러 시키려고 해도 시킬 수가 없는데, 신격화라는 말만 나오던 개떼처럼 달라들 우매무지한 군중들을 만나기 전에 미리 조심하는 뜻이 많습니다. 이곳도 그 정도 교리와 상식은 알고 있으니 공연한 시비를 하지 말라는 뜻이 있고 또 질문자처럼 가끔 너무 그분에게 받는 은혜가 많아서 혹 그분을 흠없이 생각하다가 그런 마음을 남들에게 잘못 말하면 엉뚱하게 질문자와 같은 분들 때문에 이곳이 싸울 필요도 없는 싸움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공개된 홈에서 방문자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미리 이런 말을 먼저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정도로 백목사님을 두고 소개했다면 이후로 답변자가 백목사님에 대하여 어떤 발언을 해도 시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치고, 이제 질문자와 답변자가 둘만 앉아 있는 방에서 조용하게 대화하며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면, 백목사님이라는 존재는, 답변자나 질문자가 평생 우상처럼 신처럼 받들고 따라가고 그의 실언 실수까지 진짜인 줄 알고 맹종을 해도, 그런 행동 때문에 손해 볼 것이 하나라면 유익 볼 것은 그 손해 하나를 제하고도 몇 백 몇 천 몇 만이 될지 모릅니다.
따라서 뒷소리를 하지 않을 사람이나 또 외부에서 시비가 벌어지지 않을 환경이면 백목사님이라는 분의 설교와 신앙노선은 이의나 반론이나 지적이나 질문을 하는 것보다 그만 순종해놓고 보면 훗날 좋을 차원에 있습니다. 순종하다가 그분이 실수한 말 때문에 손해 볼까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고 신앙집중력에 손해를 본 분들을 백목사님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분의 실수나 실언이 있다면 얼른 해결하고,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믿고 따라보고 순종해 보면 성경시대 모세나 다윗이나 사도바울이 바로 이런 세계를 가진 분이었다고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입니다.
이곳은 신약 2천년에 어거스틴이나 칼빈 성프란시스 등 몇몇 분을 그분과 비슷한 차원에 두고 설명할 때가 있지만 그분은 그 모든 분들을 혼자 다 모아놓은 듯한 정도입니다.
6.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답변자라는 사람의 위치는, 질문자보다 몇 년 앞서 그분을 알고 그분을 다른 분들에게 소개하는 수준입니다. '훗날 질문자께서 백목사님과 그 교리나 신앙세계를 모르는 사람에게 답변자와 같이 소개할 일이 있다면, 그들이 질문자를 백목사님 바로 뒤에 놓고 존경하다가 어느날 질문자에게 실망을 한다면, 여기 있는 답변자가 할 말은 ‘착각을 많이 하셨습니다’ 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답변자가 그분을 향해서 ‘당신이 몇 일 더 배우면 그 질문자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답변자라는 사람은 백목사님을 오랜 세월 먼저 살펴봤다는 것과 그분을 먼저 살펴본 사람이 볼 여러 신앙의 혜택이 많다는 것은 분명할지라도, 현재 답변자의 신앙차원과 수준을 다른 사람과 바로 비교한다는 것은 많은 면에서 무리가 있습니다.
엘리야를 이은 엘리사나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의 위치를 가지고 굳이 비교하자면, 과거 홍순철목사님이나 서영준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백영희신앙노선에 있었는데 그분이라면 그렇게 놓아도 될 정도로 충성과 진실과 십자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답변자라는 사람은 이 복음 먼저 받은 사람들이 아무도 이 일을 돌보지 않고 다 던져버렸기 때문에 경쟁자가 없고 비교할 대상이 없어 혼자 1등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계 각국 대표가 다 모여서 달리기를 해서 1등한 사람의 가치나 실력은, 이곳처럼 혼자 달리기를 해서 1등 하는 사람과 다를 것입니다. 이곳이 백영희신앙노선 관련 연구에서 현재까지 1등을 하고 있는 것은, 세계 대회라고 간판은 써 붙였는데 참가자가 답변자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것이야 말할 것도 없이 답변자 혼자 1등입니다. 그러나 이 1등의 실력이 마라톤 40여키로를 1시간에 주파했는지 아니면 2시간에 주파했는지 아니면 3시간에 주파했는지 아니면 한 달만에 주파했는지가 중요하지 혼자 달려 1등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백영희신앙노선을 두고는 아다시피 연구하는 곳이 없고 교회가 없고 사람이 없다보니까 이곳은 굼뱅이 기어가도 1등입니다.
지금 부산공회(2)에 있는 김목사님, 서목사님, 송목사님 이런 분들이 답변자가 노력한 10분의 1만 노력했다면 답변자가 운영하는 홈은 스스로 폐쇄를 했을 것입니다. 더 나은 곳이 있는데 공연히 답변자 이름 하나 올려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성경을 모르는 정신이상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그런 분들 신발 벗어놓은 데도 가지 못합니다. 그분들이 가진 모든 연구 실력과 과거 경력이 이곳과는 학교 공부로 말하면 1등과 20등 혹은 1등과 30등 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전부 굳이 이 길을 외면하니까 이곳이 혼자 달려서 1등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이 홈과 자료에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곳 답변자는 내심으로 이곳 홈에서 제공하는 자료가, 질문자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들, 특히 교계의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할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홈의 자료 가치에 비해서 이곳을 찾는 분들의 숫자는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질문자께서 마치 이 홈의 방문인 중에 가장 열심있고 은혜를 받은 추종자처럼 되어 있는데 이것도 슬픈 일입니다. 이곳에서 소개한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나 교훈 또는 시무투표 등과 같은 이런 사안들은 한국교회를 강타하여 교회와 교단들이 혁명적 상황을 맞아야 할 정도의 내용들이므로 교계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앞다투어 이곳에서 토론을 하고 질문을 하게 된다면 이번 질문자와 같은 분들은 여기 글 올릴 틈도 없어야 정상일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께서는 이곳을 좋게 보시고 그동안 방문하셨지만, 한국교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이 있는지 관심도 없을 것이고, 만일 이곳을 우연히 들러본 분이 있다면 별 미친 곳도 다 있다 하고 귀를 씻고 눈을 씻고 얼른 나갈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성경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았다고 탄식했는데, 그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이 말세에 누가 바른 말씀과 바른 소식을 듣고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다 자기 귀를 즐겁게 할 곳을 찾을 것이므로 이런 시대를 가르쳐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 않는 강퍅해진 말세라 했습니다.
그러나 답변자는 처음부터 알아줄 사람이 몇 명이냐는 것과 인정해 줄 외부 교회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원래 이 신앙노선의 체질이 그러 합니다. 그러나 이런 면도 따로 탄식을 하려면 참으로 크게 탄식할 일입니다.
드릴 말씀이 많지만, 결국 이치는 하나입니다. 현재 질문자께서 진행하는 여러 면들이 과거 답변자를 보는 듯 합니다. 현재 흔들린다고 해도 답변자는 질문자를 별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의 진수를 알았다면 백목사님이 머리를 깎고 마지막에 중이 되었다 해도 답변자는 그 소식 때문에 이 복음과 이 설교와 이 노선에 더욱 큰 기대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요없이 높아진 부분은 깎아 내시고, 필요없이 깎아낸 부분은 채우시고,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려고 주신 이 시대의 선지자를 이 시대의 선지자, 꼭 그 위치에 놓고 정평정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어도 답변자에게는 죽는 날까지 온갖 힘을 다 해도 그분의 100분의 1, 1000분의 1도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실수는 두고 그분의 장점 하나만 놓고 봐도 죽는 날까지 그 장점을 본받고 나가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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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으로 잘 믿고 나가시는 과정을 밟고 계십니다. 과거 답변자 자신의 혼동이 기억나서 몇 말씀드립니다. 바로 그런 과정을 지나서 오늘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1.부흥강사 화장실 가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낙망했던 분을 기억합니다.
신앙으로 아주 가까운 분 중에 목회를 생각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연유를 그 부인되는 분이 답변자에게 여러 번이나 웃으며 했는데, 그 분이 학생 때 크게 은혜를 받고 천하를 얻은 듯 기뻐하다가 그 부흥강사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을 했고 또 그 부흥강사가 설교 중에 부인과 자녀가 있다는 말을 하자 그만 낙망을 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런 천사가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면 사람으로서 안 해 본 짓이 없었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이 예화를 들은 기억은 30여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도 답변자는 아무에게나 답변자 사생활이나 개인 생활을 의도적으로 감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렇게 시험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관의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국은 하나님과 진리에만 자신의 눈을 고정하고, 자신의 신앙에 도움되는 분들에게는 자신 신앙에 도움되는 면만 볼 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비로소 그의 신앙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2.답변자는 성경의 오류 문제를 두고 심리적 공항에 빠진 경험이 있습니다.
성경은 정확무오하다는 말만 듣고 그런 줄 알았다가 번역 성경은 오류가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은 정말로 컸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원본성경은 남아 있지 않고 사본성경만 남아 있는데 그 사본성경들은 서로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잘 믿지는 못했지만, 성경이 절대 진리이므로 마음 속 한편에 믿을 수 있는 든든한 곳이 있다는 안심이 있었습니다. 또 언젠가 자신이 더 잘 믿는 사람이 된다면 그 절대 진리를 믿고 어떤 희생도 기쁨으로 당할 날을 마음속에 소망했는데, 정확한 성경이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면 절대 진리는 알지 못한다는 말이었고, 그렇다면 언젠가 자신이 잘 믿는 사람이 되어도 자신이 전적 믿고 희생하는 것이 성경을 기준으로 할 것인데 그 성경 자체가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은 자신에게 마음에 든든히 의지할 곳을 없애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심리적인 공항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성경대로 믿는 것이 옳다는 길에 서 있었기 때문에 겉 행동은 이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고 속으로는 너무 크게 기대하던 것이 무너져 마음이 공허한 상태로 지나던 시기가 상당기간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느날 백목사님 설교 중에서 성경은 오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성령의 감동으로 그 오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때, 비로소 이전에 잃어버린 공허한 자신 속의 의지할 진리를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원본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타락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치된 사본이 없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초대교회 복음을 핍박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보다 더 뚜렷하게 자신들 눈앞에 보이도록까지 나타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배척하고 인간이 제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오류가 많은 우리 번역성경이라도 자기가 아는 대로만 읽고 깨닫고 실행해 나가다 보면, 잘못 깨달은 것은 성령이 고쳐 주시고, 나중에 심령이 밝아지면 잘못 번역된 것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성령의 번역 초월역사가 있을 것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주신 신앙양심과 영감의 최소역사가 있으니, 그것을 순종하면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알아지고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백목사님 설교였습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답변자는 오늘 우리에게 남겨진 성경은 존재하지 않으며 번역성경은 물론 사본성경도 오류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즐겨 인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66권을 성경으로 확정한 것도 성경 자체가 아니고 초대교회 교인들의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니 이 역시 근본적으로 잘못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내용까지를 자신있게 공개하면서도, 오늘 우리가 가진 한글성경이 오늘 우리에게는 원본성경으로 알고 읽고 외우고 그 말씀 때문에 답변자의 일생과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깨달음과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현재 번역된 내용에 현대 신학자들이 더 정확하게 번역하겠다는 시도를 사정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3.백목사님에 대한 답변자의 기대도 질문자처럼 그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장황하게 여러 설명을 드린 이유는 성경에 비할 수는 없었으나, 처음 백목사님이라는 분이 이 시대를 감당할 선지자라는 소개를 들었을 때, 그가 그런 분이라면 직접 한번 가서 배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소개하는 분의 손에 이끌려 부산을 방문했고 이후 여러 과정을 통해 그 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어린 답변자 신앙에는 백목사님이라는 존재는 교리적으로는 누구든 실수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라고 알고 있었으나 현실적 느낌으로는 그분은 모세와 같았고 사도 바울과 같았으며 그분의 행동과 표현과 결정은 잘못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분 자신이 설교 중에 자신이 과거 잘못 결정해서 번복했던 것, 실수 했던 것, 또 이전보다 더 밝게 알게 된 것을 설교해도 그냥 그런 부분은 근성으로 들었습니다. 의례 신앙높은 분의 괜히 엄살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백목사님의 결정이 실제 잘못 된 것을 볼 기회가 있었고, 너무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또 한번 큰 공항을 맞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내렸고, 그때 쇼크는 정말 큰 것이었습니다.
부산이라는 곳은 내가 살 곳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백목사님 때문에 학교도 생활도 인생도 방향을 다 바꾼 상태에서 백목사님의 실수를 봤을 때, 답변자로서는 남몰래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신비로운 세계가 깨졌고 순간, 답변자 마음은 헛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때 답변자가 결정적으로 백목사님의 실수였다고 생각한 것이 답변자의 착오였고 그 실수는 실수가 아닌 것을 답변자 수준에서 혼자 엉뚱하게 오산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몇 번 겪으면서 그때부터는 보다 차분하게 백목사님의 결정이나 처리 또는 발언이나 교훈을 새겨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정말로 백목사님이 잘못 알았는데 스스로 수정하신 것도 있고 남들이 지적을 해서 고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보면서 답변자는 신앙선배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고 상대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정상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다윗도 모세도, 그들이 실수를 하지 않아서 또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들이 된 것이 아니고 그들 역시 어린 신앙에서 자라갔고 틀린 것을 고쳐가며, 잘못 알았던 것을 더 잘 알아가며 자라갔던 분들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이라는 존재를 답변자에게 소개했던 분이 이런 모든 과정을 다 말할 수 없어 그냥 결론적으로 이 시대의 선지라고 소개를 했는데, 그 소개를 듣는 답변자는 그는 흠도 점도 없는 선지자로 알았고, 그는 처음 믿는 순간부터 한번도 실수나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을 것이라고 답변자 주관으로 미리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성자들도 그렇지 않았는데, 답변자 스스로 백목사님을 백목사님 이상의 분으로 평가해 두었다가 그다음에는 백목사님이 그런 실수도 하지 않았는데 답변자 혼자 실수했다고 생각하고 시험들었다가 그리고 다시 답변자가 잘못 생각했다고 돌이켰는데 알고 보니까 그 생각조차도 답변자의 주관으로 잘못 생각했던 것이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백목사님은 99점짜리 신앙이었다면, 답변자 혼자 그분을 100점으로 평가했다가 또 답변자 혼자 10점짜리로 알았다가 또 답변자 혼자 그분을 또 100점짜리로 알았는데, 그는 답변자가 이렇게 주관적으로 평가를 변동할 때에도 그 변동과 상관없이 늘 90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다음해에 91점으로 더 자라갔고 그 다음해는 또 92점으로 점점 더 올라갔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일반 신앙인들이 상상도 못할 고차원의 세계를 날라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4.위대한 신앙인물이라는 존재는, 어린 신앙이 마구 자라가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마음 속에 그 누구를 기대하더라도, 그 누구라는 대상이 부모든 교사든 목회자든 마음 속에 좋은 인상으로 기대하고 한껏 바라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소망에 좋고, 기분이 든든해서 좋고, 또 그런 목표점이 있으면 모든 생활과 노력에 가속이 더해지기 때문에 좋습니다. 문제는 인간을 기대하면 그 인간의 부족 때문에 그 인간을 목표해서 얻은 수입 전부를 한 순간에 다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하나님께로 나갈 때 도움되는 방향으로 '이용'만 해야 합니다. 그 인간에게 부족점이 있을 때는, 저렇게 기대한 사람도 저런 실수가 있으니 나는 얼마나 더 노력해야겠다는 것을 느끼면 되고, 또 내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음도 아시고, 또 인간은 이러니 역시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하나님 유일주의에 더욱 소망과 의지를 가지게 되면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을 하나님과 같은 차원이나 비슷한 상대로 높여 놓으면, 그런 일을 가혹하게 평한다면 우상이요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자체는 우상도 다른 신도 아니지만 그 사람을 잘못 상대하는 나의 주관 때문에 나에게는 그의 존재가 그런 우상과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신앙일 때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나 세월을 따라, 또 이런 저런 고비를 넘어가면서 조금씩 자라가야 합니다. 못되게 자라가는 사람, 건방지게 자라가는 사람, 머리가 굵어지면서 제법 나쁜 소리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가지 말고, 정상적으로 잘 자라가는 사람이라면 이런 저런 고비를 다 넘어서 마지막에 도달해야 하는 단계는 하나님과 성경만 남고, 하나님과 성경만 의지하고 인간은 그 어떤 인간이든지 사람으로만 상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되 그의 실력이 1점이면 1점 인간으로, 그의 실력이 90점이면 90점으로
그의 수준이 비록 흠과 점이 있다 해도 다윗 같고 모세 같으면 다윗과 모세처럼 상대하면 됩니다. 사람은 그 누구든 실수가 있다는 이 절대 진리를, 귀신이 써먹되 만일 존경할 모세나 다윗을 향해서 써먹으면서 모세와 다윗을 충실히 따르는 이들에게 모세가 하나님이냐, 다윗이 하나님이냐, 하나님만 하나님이지 라고 말해서, 모세와 다윗의 실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모세와 다윗의 신앙계통과 그들에게 그 당시 시대와 그 이후 시대까지 맡긴 하나님의 수탁 위치를 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은 모세와 다윗이 실수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는 모세와 다윗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는 모세와 다윗의 실수를 알고 지적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모세를 대적한 고라가 되고, 다윗을 대적한 압살롬이나 기타 다른 원수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5.이곳에서 백목사님의 실수나 단점을 한번씩 말하는 것은 공연한 시비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백목사님이라는 분의 입장에 대하여, 이곳에서 삼가 그분의 실수나 흠과 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홈이 불신자와 천주교인과 모든 종류의 교회들이 다 함께 지켜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백목사님과 같은 한 시대, 또는 여러 시대에 하나 나올 수 있는 인물을 이곳 답변자가 본 내심 시각을 그대로 발표하면 왜 사람을 우상으로 만드냐, 왜 신격화 하느냐는 시비 한 마디를 던질 그런 배아픈 분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의 말 한 마디가 던져지면 그때마다 그 말에 대하여 이곳이 자초지종을 성경과 교리와 실제 현장을 전부 꿰뚫어 설명해야 하는 참으로 난감한 일을 예상하게 됩니다. 그런 설명 한 번을 하려 하면 해야 할 일 수십 또는 수백 배의 시간이나 정신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명을 하더라도 원상회복은 어렵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신격화라는 표현이 해당될 경운, 일부 정신착란자들의 극단적 예외가 아니고는 신격화를 일부러 시키려고 해도 시킬 수가 없는데, 신격화라는 말만 나오던 개떼처럼 달라들 우매무지한 군중들을 만나기 전에 미리 조심하는 뜻이 많습니다. 이곳도 그 정도 교리와 상식은 알고 있으니 공연한 시비를 하지 말라는 뜻이 있고 또 질문자처럼 가끔 너무 그분에게 받는 은혜가 많아서 혹 그분을 흠없이 생각하다가 그런 마음을 남들에게 잘못 말하면 엉뚱하게 질문자와 같은 분들 때문에 이곳이 싸울 필요도 없는 싸움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공개된 홈에서 방문자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미리 이런 말을 먼저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정도로 백목사님을 두고 소개했다면 이후로 답변자가 백목사님에 대하여 어떤 발언을 해도 시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치고, 이제 질문자와 답변자가 둘만 앉아 있는 방에서 조용하게 대화하며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면, 백목사님이라는 존재는, 답변자나 질문자가 평생 우상처럼 신처럼 받들고 따라가고 그의 실언 실수까지 진짜인 줄 알고 맹종을 해도, 그런 행동 때문에 손해 볼 것이 하나라면 유익 볼 것은 그 손해 하나를 제하고도 몇 백 몇 천 몇 만이 될지 모릅니다.
따라서 뒷소리를 하지 않을 사람이나 또 외부에서 시비가 벌어지지 않을 환경이면 백목사님이라는 분의 설교와 신앙노선은 이의나 반론이나 지적이나 질문을 하는 것보다 그만 순종해놓고 보면 훗날 좋을 차원에 있습니다. 순종하다가 그분이 실수한 말 때문에 손해 볼까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고 신앙집중력에 손해를 본 분들을 백목사님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분의 실수나 실언이 있다면 얼른 해결하고,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믿고 따라보고 순종해 보면 성경시대 모세나 다윗이나 사도바울이 바로 이런 세계를 가진 분이었다고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입니다.
이곳은 신약 2천년에 어거스틴이나 칼빈 성프란시스 등 몇몇 분을 그분과 비슷한 차원에 두고 설명할 때가 있지만 그분은 그 모든 분들을 혼자 다 모아놓은 듯한 정도입니다.
6.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답변자라는 사람의 위치는, 질문자보다 몇 년 앞서 그분을 알고 그분을 다른 분들에게 소개하는 수준입니다. '훗날 질문자께서 백목사님과 그 교리나 신앙세계를 모르는 사람에게 답변자와 같이 소개할 일이 있다면, 그들이 질문자를 백목사님 바로 뒤에 놓고 존경하다가 어느날 질문자에게 실망을 한다면, 여기 있는 답변자가 할 말은 ‘착각을 많이 하셨습니다’ 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답변자가 그분을 향해서 ‘당신이 몇 일 더 배우면 그 질문자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답변자라는 사람은 백목사님을 오랜 세월 먼저 살펴봤다는 것과 그분을 먼저 살펴본 사람이 볼 여러 신앙의 혜택이 많다는 것은 분명할지라도, 현재 답변자의 신앙차원과 수준을 다른 사람과 바로 비교한다는 것은 많은 면에서 무리가 있습니다.
엘리야를 이은 엘리사나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의 위치를 가지고 굳이 비교하자면, 과거 홍순철목사님이나 서영준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백영희신앙노선에 있었는데 그분이라면 그렇게 놓아도 될 정도로 충성과 진실과 십자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답변자라는 사람은 이 복음 먼저 받은 사람들이 아무도 이 일을 돌보지 않고 다 던져버렸기 때문에 경쟁자가 없고 비교할 대상이 없어 혼자 1등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계 각국 대표가 다 모여서 달리기를 해서 1등한 사람의 가치나 실력은, 이곳처럼 혼자 달리기를 해서 1등 하는 사람과 다를 것입니다. 이곳이 백영희신앙노선 관련 연구에서 현재까지 1등을 하고 있는 것은, 세계 대회라고 간판은 써 붙였는데 참가자가 답변자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것이야 말할 것도 없이 답변자 혼자 1등입니다. 그러나 이 1등의 실력이 마라톤 40여키로를 1시간에 주파했는지 아니면 2시간에 주파했는지 아니면 3시간에 주파했는지 아니면 한 달만에 주파했는지가 중요하지 혼자 달려 1등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백영희신앙노선을 두고는 아다시피 연구하는 곳이 없고 교회가 없고 사람이 없다보니까 이곳은 굼뱅이 기어가도 1등입니다.
지금 부산공회(2)에 있는 김목사님, 서목사님, 송목사님 이런 분들이 답변자가 노력한 10분의 1만 노력했다면 답변자가 운영하는 홈은 스스로 폐쇄를 했을 것입니다. 더 나은 곳이 있는데 공연히 답변자 이름 하나 올려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성경을 모르는 정신이상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그런 분들 신발 벗어놓은 데도 가지 못합니다. 그분들이 가진 모든 연구 실력과 과거 경력이 이곳과는 학교 공부로 말하면 1등과 20등 혹은 1등과 30등 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전부 굳이 이 길을 외면하니까 이곳이 혼자 달려서 1등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이 홈과 자료에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곳 답변자는 내심으로 이곳 홈에서 제공하는 자료가, 질문자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들, 특히 교계의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할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홈의 자료 가치에 비해서 이곳을 찾는 분들의 숫자는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질문자께서 마치 이 홈의 방문인 중에 가장 열심있고 은혜를 받은 추종자처럼 되어 있는데 이것도 슬픈 일입니다. 이곳에서 소개한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나 교훈 또는 시무투표 등과 같은 이런 사안들은 한국교회를 강타하여 교회와 교단들이 혁명적 상황을 맞아야 할 정도의 내용들이므로 교계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앞다투어 이곳에서 토론을 하고 질문을 하게 된다면 이번 질문자와 같은 분들은 여기 글 올릴 틈도 없어야 정상일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께서는 이곳을 좋게 보시고 그동안 방문하셨지만, 한국교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이 있는지 관심도 없을 것이고, 만일 이곳을 우연히 들러본 분이 있다면 별 미친 곳도 다 있다 하고 귀를 씻고 눈을 씻고 얼른 나갈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성경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았다고 탄식했는데, 그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이 말세에 누가 바른 말씀과 바른 소식을 듣고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다 자기 귀를 즐겁게 할 곳을 찾을 것이므로 이런 시대를 가르쳐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 않는 강퍅해진 말세라 했습니다.
그러나 답변자는 처음부터 알아줄 사람이 몇 명이냐는 것과 인정해 줄 외부 교회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원래 이 신앙노선의 체질이 그러 합니다. 그러나 이런 면도 따로 탄식을 하려면 참으로 크게 탄식할 일입니다.
드릴 말씀이 많지만, 결국 이치는 하나입니다. 현재 질문자께서 진행하는 여러 면들이 과거 답변자를 보는 듯 합니다. 현재 흔들린다고 해도 답변자는 질문자를 별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의 진수를 알았다면 백목사님이 머리를 깎고 마지막에 중이 되었다 해도 답변자는 그 소식 때문에 이 복음과 이 설교와 이 노선에 더욱 큰 기대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요없이 높아진 부분은 깎아 내시고, 필요없이 깎아낸 부분은 채우시고,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려고 주신 이 시대의 선지자를 이 시대의 선지자, 꼭 그 위치에 놓고 정평정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어도 답변자에게는 죽는 날까지 온갖 힘을 다 해도 그분의 100분의 1, 1000분의 1도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실수는 두고 그분의 장점 하나만 놓고 봐도 죽는 날까지 그 장점을 본받고 나가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주해] 말세시점
제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내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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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눅10:30~37절말씀이 왜 말세시점을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많이 되었습니다.그런데 한가지 그 예화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도 말세 시점에 대한 비유로 들어가는 것입니까?아니면 그들은 말세비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것입니까?
그 예화가 말세시점을 이야기하는 비유가 될수 있다면 그들도 어떤 예표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아신다면 이야기 해주시고, 한번 그 예화를 말세시점과 관련하여 전체적으로 이야기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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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내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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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눅10:30~37절말씀이 왜 말세시점을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많이 되었습니다.그런데 한가지 그 예화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도 말세 시점에 대한 비유로 들어가는 것입니까?아니면 그들은 말세비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것입니까?
그 예화가 말세시점을 이야기하는 비유가 될수 있다면 그들도 어떤 예표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아신다면 이야기 해주시고, 한번 그 예화를 말세시점과 관련하여 전체적으로 이야기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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