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자 내면의 심리 상태까지 말씀을 드려야 할 질문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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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내면의 심리 상태까지 말씀을 드려야 할 질문같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내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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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기화면/활용자료/녹음본/'88.11.23.수새, 눅10:27-37' 내용 중 다음 부분을 참고하셨으면


.................


어쨌든지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 말하는 것은 둘이면 족하다 싶기 때문에 둘을 주는 것이고, 그러나 족할는지 모자랄는지 그것을 확실히 모른다는 것이 여게 암시돼 가지고 있고


또 이 사마리아인이 다시 오는 그 옴이 바로 이틀 되는 날 올란지 혹, 그 안에 오면 그게 남으니까 문제가 없지만 혹 이틀을 지나서 오면 부비가 모자랄 터이니까 “올 때에 내가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마리아인이 오는 그 시간도 확실히 모르는 것이 여기 암시돼 가지고 있고 또 그 부비도 둘 가지고 모자랄란지 똑똑히 모르는 것이 암시돼 가지고 있으나 이분이 둘을 주고 가는 것을 봐서 그분도 짐작하기는 둘이면 족하리라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성경 학자들이 이것을 해석하는 것이 뭐 이러쿵 저러쿵 엉뚱같은 해석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석을 보면 모든 해석들이 다 너무 국부적이고 너무도 범위가 좁습니다. 그 범위가 전체를 모르고, 자기 딴에는 범위를 크게 한다고 대국적으로 해석한다고 하지만 전체를 몰라요. 전체를 두고서 깨닫지 안하면 헛 일입니다. 성경은 그 범위를 바로 잡지 못하면 성경 깨달음이 아주 꺼꾸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래서 이것을 두고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켰다 이렇게 보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약간 있는데, 학자들은 대개 이 해석을 가지지 안합니다. 학자들은 세상 지식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그들은 과학적입니다. 그들은 과학적입니다. 과학적이요 역사적입니다. 역사든지 뭐이든지 근거할 만한 그런 이 세상 무엇이 있어야 되지 성경과 영감만 가지고는 인정하지를 않는 것이 대학자들입니다.


그 사람들보다도 더 또 현실적이고 또 이 모든 우주에 있는 것으로 증거가 되는 증거로 근거가 있어야 된다는 사람들은 바로 과학자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은 잘 모릅니다.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하나님에게만 묻고 다른 데 묻지 않고 그분에게 묻고 그분의 가르침만 옳다 바르다 인정하고 일생 동안을 따라가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당신의 그 포부와 비밀은 알려 주십니다.


이래서 여기 부비 데나리온 둘을 준 이것을 그 치료 기간 이틀로 잡고 이것을 이천 년으로 예수님께서 비유한 것으로 그렇게 깨닫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깨닫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고, 그대신 세상 과학자들은 비웃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면 재림도 비웃습니다. 또 학자들도 학으로 논리하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그렇게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이천 년이면 예수님의 재림이 되지 않나 하는 것을 예수님이 그 비유에 짐작한 것처럼, 이 사마리아인이 짐작한 것처럼 오늘도 이렇게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2.재림을 두고는 예수님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재림'의 시기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짐작이지 단정은 할 수 없습니다. 위 본문에서 '부비'를 치료기간으로 본 것은 백목사님의 설교입니다. 늘 그렇게 설교하는 부분입니다. 위의 인용 내용에서 부비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또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라 한다면 할 수 없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지식만 많이 접한 신학자들도 대개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경만 보고 기도하여 깨닫는 이들이, 남에게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말할 성질은 아니지만, 기도하여 신령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가까와진 성화된 그 영안으로 깨달을 때에 이 본문은 재림 이전 약 2천년 정도의 치료 기간을 말씀한 것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위의 내용은 백목사님의 일반 다른 설교 부분과는 달리 단정적이지 않고 추측과 짐작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록 중에 이렇게 나오는 부분들이 가끔 있는데, 이런 식 표현은 백목사님 자신의 주관 신앙, 자신의 내면 영감으로는 단정하는만, 외부 신학계와 마찰을 고려해서 표현을 약간 완화하는 경우입니다.


외부 신학계와 마찰 되는 부분을 조금 피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이유는, 백목사님 자신 때문이 아니고 첫째는 어린 교인들의 입장을 배려하고 둘째는 멋모르고 고함을 지를 반대편 신학자들에게 연구 과제로 생각해 보라는 제안입니다. 어린 교인들은 여론이나 학위 같은 외모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신학박사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대거 그 주장을 반대하면 일단 흔들리는 면이 있어 그 신앙들을 아껴서 논란의 확실한 외부 증거가 없으면 조심스럽게 표현하며, 외부 학자들에게는 그들과 너무 극단적인 논쟁을 벌여놓으면 나중에 그들이 깨닫고 돌아오고 싶어도 자신들이 뱉은 발언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음을 배려한 것입니다.


3.'부비가 더 들면'이라는 말씀이 재림이 혹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은 백목사님의 설명이지만


그 기간이 구체적으로 한 200여년 되지 않겠나 하는 표현은 답변자가 간접으로 들은 말입니다. 1976년 1년간 서울 사직동교회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교회 목사님의 큰 아들이 친구였고 그 친구가 백목사님께서 '부비가 더 들면'이라는 부분을 약 200여년 정도 재림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으로 말씀하더라는 것을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답변자가 백목사님 밑에서 배우기 전이었고, 집회 때 몇 번 설교를 들은 것 외에는 간접적으로 백목사님의 이름을 들었고 또 다른 목회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백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백목사님 설교를 직접 접하지 않던 시절이어서 오히려 백목사님이 이렇게 말하시더라는 말을 듣게 되면 기억을 잘 할 수 있는 때여서 특별하게 부비에 대한 부분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직동교회 목사님은 1979년에 총공회를 탈퇴하고 고신으로 들어갔고 그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현재 고신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공회를 탈퇴하고 평생 백목사님을 욕하고 살지만 공회 내에 있을 때, 실력으로는 공회 내에서 단연 백목사님 바로 다음 가는 위치였고 답변자는 그분이 속으로 공회와 등을 지는 중임을 모르고 그분에게 은혜를 대단히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답변자가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당시 부비에 대한 설명 중 200여년의 재림 기간이 혹 더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나가며 한번 생각해 본 정도의 표현이었고 그런 표현을 전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기도생활과 영감의 정확성은 답변자로서 많은 세월 속에서 너무 권위있게 늘 확인한 바가 있기 때문에 아주 잠깐 스쳐 가는 표현이라도 존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백목사님의 발언 중에 틀린 것도 몇 가지 알고 있으나 그것은 그 틀린 대로 또 다른 교훈이 되고 있어 아직 그분의 표현 중에는 버릴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답변자가 오랜 세월, 부비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200여년의 추가 기간이 있을지 모른다는 표현은 습관처럼 하고 있는데 이 표현을 할 때마다 그때 그 말을 들은 것이 답변자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어서 한편으로 늘 아쉽고 찜찜한 면이 있으나, 그 말의 전달 자체는 그 당시 상황으로 다른 첨삭이 없었겠다고 생각하고 또 이후 백목사님 밑에서 직접 배울 때 그분의 가르침 전체와 비교해 볼 때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겠다는 면이 있어, 백목사님의 직접 표현으로 생각하고 이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4.답변자의 표현에서 단정과 짐작은 백목사님의 것과 다릅니다.


답변자는 백목사님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답변자가 확실하게 생각하는 것은 서슴없이 단정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짐작 정도로 표현한 것도 답변자가 백목사님의 중심이 단정이었으나 다른 사람을 고려해서 짐작으로 표현한 것은 답변자가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정할 때는, 백목사님의 표현에 관한 한 답변자로서 그렇게 단정할 이유과 근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짐작 중에 그 짐작이 정말 짐작 정도로만 들어야 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하여는 답변자도 짐작 정도로만 표현하여 소개하든지 아니면 아예 소개 자체를 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비에 대한 표현은 비록 간접으로 전해 들은 짐작이지만, 그래도 짐작 그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답변자는 백목사님께서 이 부분에 대하여는 자신도 스스로 짐작 정도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답변자 내심으로 약 6-70% 정도는 실제로 그렇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정말 더 중요한 것은


사실 이 표현을 듣기 전까지, 재림이 언제 될지 모른다는 말씀에 속마음으로 늘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현 우리 사회가 암으로 죽는 사람이 너무 많고 또 원인과 치료를 아직도 더듬고 있으며 더구나 언론 등을 통해 너무 위협을 많이 해놓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가면 모두들 표현은 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겁을 먹고 있다고 봅니다. 이와 같이 재림이 언제 될지 모른다는 말씀은 마음 속에 늘 큰 위협이었고, 특히 백목사님의 설교는 언제인지 모른다는 정도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자세는 바로 이 순간이 재림이라는 시간관을 가지고 매사를 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재촉하기 때문에 재림에 대한 압박감은 더욱 심한 편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한번 들었던 그 부비에 대한 간접 소식은, 당시로서는 어린 마음에 백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더라면서 전해 들은 것이므로 신기하고 또 묘하게 그냥 기억했고, 이후 재림에 대하여 점점 알게 되면서 마음 속에 가중되는 압박감이 답변자 자신의 신앙정도에서는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는 두려움이 더 많았는데, 이런 두려움을 일부 완화시키고 숨을 쉴 수 있는 틈을 준 것이 바로 '부비'에 대하여 전해 들은 말이었습니다. 200년 정도라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 200여년이라는 것이 백목사님의 다른 성경 해석 방향을 보면 정말로 지나가면서 아무 의미없이 한번 해본 말일 수 있는 표현인데, 재림에 대하여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으로서는 그 말이 이 시대를 감당하는 선지자의 입에서 나왔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 200여년은 분명히 사실일 것이라고 마구 그 정확성을 높혀서 스스로 자신에게 진통제를 놓는 심리라고 보셨으면 합니다.


이 부비에 대한 해석을 들은 그 다음 해 1977년부터 답변자는 백목사님 밑에서 교인으로 직접 배우게 되었고 그후부터는 아무리 작은 의문이라도 의문이 생기면 꼭 백목사님을 직접 뵙고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질문할 일이 없으면 그분 얼굴이라도 가까이 가서 한번 더 보고 싶어서 일부러 무슨 보고거리를 만들어서라도 갔었습니다. 교회 직원도 아니고 평범한 반사 중에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고거리가 있을 수 없지만 심지어 고향 한번 다녀 오는 일이 있어도 집에 한번 다녀오게 되었다고 일부러 인사를 하고 다녀왔고 또 방학이 되면 방학이 되었다고 또 끝나면 끝났다고 스스로 보고를 드리며 그분을 뵙게 되면 무슨 격려 한 마디라도 또 그분이 생각나는 말씀 한번이라도 해 주시는데 그런 말씀 하나에서도 설교 때 이상으로 큰 교훈을 얻은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부비에 대한 내용은 재확인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 짐작 정도로 답변자 마음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림에 대하여 중압감을 벗기 어려울 때마다 이 말씀으로 자가 진통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분에게 이 질문을 드려서 그분이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면, 답변자의 어린 신앙으로서는 이제 말세의 중압감이 느껴질 때 어디 도망가서 쉴 틈도 없을까 해서 선생님 몰래 숨겨놓은 시험문제 해답지처럼 사용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결론적으로, 아주 실낱같은 정도의 가능성으로만 한번 들어두고 그냥 지나가셨으면 합니다. 이 홈 어디엔가 200여년이라는 표현을 올릴 때는 지나가는 바람 소리처럼 듣고 흘리기를 원했는데, 질문자 때문에 마치 이 문제가 이 홈의 주요 논점같이 된 듯하여 답변자가 아는 관련 모든 안팎의 문제를 다 공개했습니다. 이번 부비 문제는, 더 이상의 추가 질문이나 보충 질문을 피해주시기를 아울러 부탁하겠습니다.


재림을 두고는 그 누구도 재림의 임박함을 강조하고 재론해야 합니다. 재림을 두고 그 날짜가 늦어질 수 있다는 교훈이나 소개나 가능성을 띄우는 것은 자칫 엄청난 책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속을 해도 남녀가 뒤엉켜 일을 내는 세상인데 남녀 자유교제가 좋다고 학교나 언론이 떠들어대면 이 나라가 짐승우리가 될 것입니다. 꼭 이론을 위한 이론 차원에서 남녀 교제라는 것은 절제와 지성을 통해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표현은 극히 예외적으로, 극히 폐쇄된 공간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겪는 사람에게 잠깐 귀뜸하고 말일입니다. 그런 문제를 가지고 만일 언론에 나와서 일반인에게 필요한 상식처럼 떠들어대면 현재 우리 사회의 폐습과 같은 결과를 맺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이미 질문자 때문에 이 부비 문제는 답변자가 원하는 정도로 이 홈 어디엔가 숨겨져 있는 가능성으로 남지 않고 이제 어느 정도 알려질 내용이 되었습니다. 이 점 때문에 답변자의 책임과 두려움은 질문자가 생각하실 수 없는 정도로 크고 무거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곳에 그 내용을 살짝 올릴 때도 언제가 이렇게 되는 날이 오면 이렇게 설명을 하리라고 생각을 하고 올렸습니다. 마음으로는 그냥 모두들 그런 가능성도 있는갑다 하고 넘어가기를 원했습니다. 어쨌든, 백목사님께 이 내용은 간접으로 전해들었으나, 이 답변 초두에 소개한 설교 자료에서 보듯이 재림의 시기는 더 당겨질 수도 있고 더 늦추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단독 결정입니다. 우리가 가질 마음 자세는 오늘 이 순간이 재림일 수 있다는 그 절박감의 강도만큼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오는 재림이 200년 뒤가 될지라도, 더 중요한 것은 나라는 개인이 오늘 죽으면, 나 개인에게는 오늘이 재림이 됩니다.


안 믿는 사람 중에는 택자도 있고 불택자도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누군인지 모르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택자와 불택자가 섞여 있다는 지식은 지식으로만 머리 한 쪽 귀퉁이에 보관하고 그대신 우리의 활성화된 인식은 우리가 대하는 모든 안 믿는 사람이 전부 택자일 것으로 단정을 하고 전도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일 전도를 하면서 전도하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택자와 불택자가 섞여 있다더라는 지식을 떠올린다면 이는 전도자의 근본 자세와 시각을 벗어난 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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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도중에 정리되지 않고 그냥 질문자와 마주 앉아 답변자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편하게 대화를 한 듯 하게 되어 이곳에 글로 읽게 되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오늘도 일정이 많아서 전체 정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남기게 되어 죄송합니다.
[주해] 말세시점
제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내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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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눅10:30~37절말씀이 왜 말세시점을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많이 되었습니다.그런데 한가지 그 예화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도 말세 시점에 대한 비유로 들어가는 것입니까?아니면 그들은 말세비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것입니까?

그 예화가 말세시점을 이야기하는 비유가 될수 있다면 그들도 어떤 예표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아신다면 이야기 해주시고, 한번 그 예화를 말세시점과 관련하여 전체적으로 이야기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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