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았다고 삼위일체를 부인한 증거로 본다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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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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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3 00:00
제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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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롬8: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믿는 사람이 중생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이 그 영에게 입혀졌기 때문에 죽은 영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하나는 우리 죄값을 대신 겪음으로 없애버렸고 또 하나는 우리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요구를 대신 다 행하여 우리에게 '의'를 만들어 주셨으니 우리는 의인이 아닌데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다 지킨 의인이 되어 천국을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이 아닌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말씀을 다 지켜 주셔서 우리에게 의인의 이름을 붙여 주신 것을 넓은 의미의 '칭의'라고 하며, 일반 교리에서는 이 넓은 면의 '칭의'만을 알고 있습니다. 지옥갈 우리 대신 죄값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말씀대로 행하여 우리를 의로운 의인으로 만들어 주신 이 '칭의'는 우리 영이 중생될 때 기본적으로 받아 가집니다.
안 믿던 사람이 중생되어 믿는 사람이 되는 그 첫 순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평생에 다시는 변동없이 주어지는 기본 은혜가 몇 가지 있으니 그 중에 하나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해 베푸는 칭의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영을 살릴 때 그 영을 살리기 위해서 베푸신 칭의는 그의 평생에 다시는 회수되거나 변동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중생되는 그 순간부터는 하나님 앞에서 평생토록 또 영원토록 항상 의인입니다. 이때 '의인'이라는 의미는 천국 갈 의인이라는 뜻입니다.
2.영이 살아나는 것을 '중생'이라 하고, 영이 의로워지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①일반 교리에서는 안 믿던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을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 순서는 첫째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명'이 먼저 있고, 둘째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중생'이 되고, 세째는 중생된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회심'을 갖게 되고, 넷째로 하나님께로 돌아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 되고, 다섯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시니 이를 '칭의'라 하고, 여섯째는 의롭게 된 믿는 사람들은 남은 평생 자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가니 이를 '성화'라고 합니다.
②질문하신 내용은 '영이 사는 것과 의로워진다는 의미는 같은 것인지?'입니다.
일반 교리는 영과 마음을 분리하여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영이 살아나는 것을 '중생'이라고 하는데,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죽은 영이 살아나는데 필요한 모든 기본 은혜가 주어져야 합니다. 일반 교리에서 구원론의 논리적인 전개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는 사실 단 순간에 동시에 적용되는 일입니다.
안 믿던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바뀌는 그 순간은 우리 인간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죽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죄에 관련된 모든 문제가 전부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이 죄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범죄 이전의 인간으로 복구되려면 위에서 설명한 모든 일들이 동시에 적용됩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구원의 과정을 6-7단계로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대신 2단계로만 나누고 있습니다.
③구원문제에 대한 이해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기준으로 봐야 명쾌해집니다.
안 믿던 사람이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은 죽은 영이 살아나는 중생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꼭같이 적용되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받아 가지는 구원이라 하여 '기본구원', 그리고 한번 중생된 사람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평생토록 성화시켜 나가는 것이니 이를 '건설구원'이라고만 나눕니다. 그리고 기본구원으로 받아 가지는 중생에 관련된 모든 은혜는 전부 기본구원에 포함을 시키고, 평생 늘 노력해야 하는 것은 건설구원에 포함을 시킵니다.
그렇다면, '회개'도 중생 되는 순간 하나님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는 회개를 기본회개라 하고, 그다음 평생 자기 잘못을 고쳐가는 것은 평생회개라 합니다. '믿음' 또는 '신앙'이라는 것도 중생 되는 순간 처음 받아 가진 믿음은 영이 받아 가진 중생에 관련된 믿음이니 이는 '기본믿음'이고 평생 늘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은 건설구원에 필요한 평생 믿음입니다.
3.요일3:6-9
①6절에서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하신 말씀은
기본구원을 입고 중생되는 영을 가르쳐 말합니다. 한번 중생된 사람은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은 우리가 잘 아다시피 하루에 70번씩 7번이라도 범죄하고 있습니다.
②7절에서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하신 말씀은
믿는 우리는 기본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켜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받지 않을 수도 있고, 만일 또 다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몸과 마음은 다시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중생된 우리의 평생 투쟁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영이 중생되지 않았으므로 미혹을 받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7절은 기본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평생 건설해 가야 할 자기 신앙 투쟁면을 두고 말씀한 것입니다.
③7-89절,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하신 것은
중생된 우리가 남은 평생 미혹을 이길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길을 오가며 우리 신앙은 건설로 나가다가 다시 뒷걸음질도 하게 되면서 각자의 신앙이 차이나게 됩니다.
만일 중생의 은혜를 자기 현실에 써먹어 미혹을 이기게 되면 그는 의를 행하는 자니 그의 의는 인간이 볼 때는 인간 의지로 인간 노력으로 말씀을 지킨 인간의 의로 보이지만, 실은 그가 중생의 은혜를 의지하여 주님 주신 기본구원의 의를 힘입어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인간이 미혹을 이기고 의롭게 산 행동 속에는 예수님의 의와 같은 의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건설구원의 본질은 신적요소라는 좀 어려운 대목입니다.
④여기서 이제 다시 6절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6절에서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하신 말씀은 영이 죽었던 불신자가 중생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이 되고 나면 그 영이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중생의 영이 된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우리가 평생 믿어 가면서 죄를 짓는 건설구원적인 죄문제에도 해당이 됩니다. 우리가 7절 말씀대로 '미혹'을 받게 되면 주님 안에 거하지 않게 되고, 미혹을 뿌리치면 주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미혹을 받고 안 받는 것과 주님 안에 거하고 거하지 않는 것은 함께 움직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여 미혹을 받지 않게 되면 죄를 이기게 되고, 만일 미혹을 받아 주님 안에 거하지 않게 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질문하신 내용 중에서 '범죄치 않고 정죄함이 없는 것은 칭의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맞습니다. 기본구원적으로 영은 한번 중생되면 다시는 죄와는 상관이 없도록 예수님께서 우리 평생의 모든 죄값을 미리 다 해결해 버렸습니다. 중생 때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입혀지는 칭의는 평생 뿐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변치않고 그대로 계속됩니다.
4.전3:21의 '인생의 혼'과 '짐승의 혼'
①전3:21의 '혼'을 우리 한글 성경 그대로 읽어버리면 무조건 삼분론이 맞습니다.
혼은 고기덩어리로 된 몸 안에 있는 것인데, 짐승에게도 사람처럼 고기덩어리 안에 혼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없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르고 만물과 다른 것은 구조적으로 '영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날든지 물속에 살든지 네발로 기든지 상관없이 그 구성 재료로 분석한다면 오로지 물질로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구성 재료가 물질과 영물 2가지로 배합이 되어 있습니다. 즉, 짐승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물질 뿐이니 '짐승의 혼'은 물질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혼도 물질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분설은 무조건 틀린 결론이 나옵니다.
반대로 사람의 재로는 영물과 물질로 배합이 되어 있는데 사람의 '혼'을 만일 영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영이라고 한다면, 이 본문은 짐승도 영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한글성경만 알고 있는 사람은 비록 원어는 알지 못해도 한글성경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성구는 명쾌한 삼분론 근거 성구입니다.
②문제는 성경 전체에 사용된 '혼'에 대한 원어가 복잡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곳 홈에도 이분설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이곳 /연구실/문의답변/이나 혹은 /연구실/발언.주제연구/에서 이분론이 옳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전3:21의 원어적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성구들에서는 그 원어의 원 의미가 어떠냐에 따라 해석으로 빠져 나가거나 또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내놓을 여지가 있는데, 이 성구는 사람과 짐승을 함께 한 자리에 비교하면서 그 '혼'이 같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성구는 이분설 학자들의 퇴로를 최후로 막고 있는 성구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씀드리면, 인간과 짐승에게는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는데, 짐승의 몸이나 사람의 몸은 아무도 이의없이 같은 물질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몸 속에 있는 '혼'과 사람의 몸 속에 있는 '혼'은 각각 그 재료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원어의 '혼'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영을 말한다면 짐승에게도 영적 요소가 있다는 말이 되고, 만일 원어의 '혼'이 물질인 마음을 말한다면 인간에게는 짐승과 다른 혼 외에 영적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③전3:21의 '혼'은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은 물질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물질 중에 저급의 물질로 된 몸이 있고 고급의 물질로 만들어진 마음이 있습니다. 짐승에게 있는 혼은 짐승의 마음입니다. 짐승에게도 기억이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고 계산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위로 올라간다는 말은, 인생은 그 평생에 마음으로 활동한 것까지 다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고 그 생각 한 것 하나까지도 보응과 보상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짐승은 영이 없고, 물질로만 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훗날의 심판이 없습니다. 짐승의 생각은 그 생각이 하나님 없이 먹을 욕심으로만 움직였다 해도 정죄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그 생각이 하나님 없이 움직인 것은 전부 위로 하나님께 올려지고 그 생각에 따라 영원한 책임과 결과가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5.백목사님의 삼분론 표현은, 달리 증명할 필요도 또 그럴 만한 자료도 없습니다.
①백목사님의 남겨진 기록에서 '삼분론이 옳다'고 단정한 곳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백목사님 평생의 설교 기록을 이곳에서는 다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녹음 시절은 1979년 - 1989년 사이의 약 10여년이고 그 이전에는 노트 필기본입니다. 노트 필기본이라는 것은 100% 증거로 제시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이 '삼분론이 옳다'고 단정한 기록을 녹음본에서 자료로 제시해야 할 것인데, 백목사님은 설교가 녹음되던 마지막 10여년 시기에는 그런 발언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의 어떤 기록에도 백목사님은 나는 기독교가 옳다고 본다고 발언한 기록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백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나는 삼위일체가 옳다고 본다 이렇게 발언한 곳도 없을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은 기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대문에 이 집은 나의 집이라고 써붙여 놓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집안에 한번도 우등상을 받아보지 못한 집은 초등학교 1학년 우등상을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 옆에 나란히 걸어놓고 있지만, 우등상을 수도 없이 받는 집에서는 그런 것을 걸어두는 일이 없습니다. 우등상이 일상생활이기 때문입니다.
②1960 - 1970년대에는 삼분론 설명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삼분론을 처음 세워 나가던 1960년대 초기의 백목사님 설교는 삼분론과 건설구원론 그리고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세계 교리의 당시 흐름이 이런 교리가 발을 디딜 틈도 없었기 때문에 조목조목 비교해서 가르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 교회의 이단 정죄 발언이 줄을 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을 지나게 되면서, 백목사님의 모든 교리들은 일반 교리와 비교해 볼 필요도 없을 만큼 너무 크게 수준 차이가 난다는 것이 확정되고 있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백목사님은 극도로 말을 아끼기 시작합니다. 일반 신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너무 강하게 백목사님이 발언하면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자기 배운 것으로 너무 세게 반론하고 나올 것인데 조금만 비교해 보면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런데 그런 조짐을 알아채리게 되면 이미 자기가 발언해 놓은 것이 있어 체면이나 권위 때문에 자기 했던 발언을 합리화 하기 위해 수도 없이 죄를 지어야 하게 됩니다.
철없고 어린 당대 신학자들과 교계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뒤 그 무덤까지 지키게 하고 부활 뒤에는 시체를 훔쳐갔다고 사후 수습을 하게 되는 그런 죄를 지을까 하여 조용하게 이치만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1980년대 설교에서는 삼분론도 맞고 이분설도 맞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렇게 발언을 하게 된 것은 애들 달래듯 일반 신학을 달래가며 삼분론에 대하여 섣불리 정죄하지 말고 먼저 삼분론에 대한 차분한 연구를 할 기회를 주느라고 그렇게 발언한 것입니다.
따라서 삼분론이 옳다고만 딱 부지러지게 발언하는 대신, 사람은 영물로 된 영과 물질로 된 육으로 나눌 수 있고, 육은 다시 몸과 마음으로 나눌 수 있으니 그 재료를 기준으로는 둘로 나눌 때 이분설이 맞고, 육을 다시 몸과 마음으로 나눈다면 삼분설도 맞다는 보충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언은 일반 교계의 교리서에서 삼분론이라고 하고, 그들이 말하는 이분설은 사람의 몸 안에는 마음과 영이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마음이 영이고 영이 마음이라 이름만 다르지 실은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 신학을 좋아하면서도 그 소속은 총공회에 두고 있는 분들이 백목사님의 발언 중에서 어느 한 대목이라도 일반 신학과 일반 장로교 체제와 비슷하게 생긴 것만 있으면 백목사님도 일반 신학과 일반 장로교 체제를 사실 주장했던 분이라고 마구 소설을 적어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③백목사님은 '백영희 삼분론'의 원조 신학자입니다.
교회사에 삼분론 학자들은 시대마다 이어져 오고 있었으나 백영희목사님의 삼분론은 백영희삼분론으로 명명해야 할 특별한 교리입니다. 기존 삼분론과는 그 출발이나 기본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이해의 차원과 그 활용의 차원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과거 삼분론은 이분설과 어느 교리가 맞는지 백중세의 이론 대결을 했고 또 과거 삼분론은 삼분론이 맞다고 해도 왜 삼분론을 주장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명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에서는 이분설과 삼분론의 논쟁은 그냥 이론을 위한 이론 정도로 취급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나 다른 교리 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백영희삼분론은 교리체계 전체를 새로 적어야 할 정도이며 교리체계 전체의 중심에 놓아야 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깊이도 그 신앙 현장에 사용되는 실용적인 면도 특별합니다. 일반 교리의 이분설과는 그 차원이 마치 100년 전 의사가 눈과 손으로 병을 짐작하는 수준과 오늘 의사가 MRI나 CT로 환자의 속을 꿰뚫고 혈액검사 등을 통해 바이러스의 숫자와 그 활동상황을 눈금보듯 보면서 분석하는 것의 차이 정도입니다. 따라서 굳이 비교해서 논쟁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정도이고, 다만 달래서 이 교리를 뒤따라 오도록 잘 인도하면 되기 때문에 자존심과 학문적 권위 하나에 평생을 걸고 있는 신학자를 향해 자신의 삼분론을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백목사님에게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딱 부러지게 발언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나, 삼분론을 믿는다고 딱 부러지게 발언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동일한 성격의 질문입니다. 그분의 평생이 삼위일체를 가르쳤듯이, 그분의 1960년대 이후 평생이 그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녹음 시대 음성 자료로 직접 제시하는 것은, 자료가 있어도 찾아볼 시간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고 딱 부러지게 그렇게 발언할 내용이 아니므로 찾아봐도 없을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④질문의 말미에 백목사님은 이분설인데, 그 제자들이 삼분론으로 발전시킨다는 지적에 대하여
백목사님의 인성 구조에 대한 설교를 읽어본 분이 만일 백목사님의 이분설 발언을 근거로 백목사님도 이분설 주장자로 파악하신다면, 일반 신학교의 조직신학 과목을 60점 이상으로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백목사님이 이분설도 맞다고 발언한 내용을 가지고 백목사님을 이분설 주장자로 분류하려면, 그대신 모든 조직신학 교과서의 '이분론'은 '일분론'으로 표기를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영 - 마음 - 몸' 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한 백목사님이 그 3가지를 재분류하면서 '영'을 하나로 묶고, 그다음 '마음 - 몸'을 하나로 묶으면 이분설이 된다 이렇게 발언을 했는데, 일반 신학의 이분설은 사람에게는 '마음 - 몸' 만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신학의 이분설은 백영희목사님이 표현하는 이분론의 한쪽만 있다고 하는 학설이 됩니다.
참고로, 이곳은 백영희목사님의 과거 자료 전부를 완전 공개해 놓고 있습니다. 만일 백목사님의 원래 진의가 이분론인데 이곳이 삼분론으로 변조를 하고 싶다면 백목사님의 원래 자료는 선별적으로 공개하거나 아니면 백목사님의 교훈을 이곳이 앞서 비판을 했을 것입니다.
이곳은 백영희신앙노선의 과거를 일단 있는 그대로 그 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자료 중에는 현재 이곳을 운영하는 답변자에게 치명적인 질책도 한 두곳이 아닙니다. 그다음 그 자료에 대한 객관적 연구 분석을 하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 중에서 잘못된 곳이 있거나 수정해야 할 곳이 있다면 이곳은 서슴치 않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가 세계 교회사를 개혁할 교리와 교훈을 담고 있다면 이곳은 사실이 그렇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곳이 그 자료를 가지고 고의로 변조할 정도의 의도가 있었다면 이곳에 앉아 있아 글을 적는 것보다는 백영희신앙계열의 전국교회와 공회들을 상대로 손을 대는 수술실의 외과 집도의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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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롬8: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믿는 사람이 중생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이 그 영에게 입혀졌기 때문에 죽은 영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하나는 우리 죄값을 대신 겪음으로 없애버렸고 또 하나는 우리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요구를 대신 다 행하여 우리에게 '의'를 만들어 주셨으니 우리는 의인이 아닌데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다 지킨 의인이 되어 천국을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이 아닌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말씀을 다 지켜 주셔서 우리에게 의인의 이름을 붙여 주신 것을 넓은 의미의 '칭의'라고 하며, 일반 교리에서는 이 넓은 면의 '칭의'만을 알고 있습니다. 지옥갈 우리 대신 죄값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말씀대로 행하여 우리를 의로운 의인으로 만들어 주신 이 '칭의'는 우리 영이 중생될 때 기본적으로 받아 가집니다.
안 믿던 사람이 중생되어 믿는 사람이 되는 그 첫 순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평생에 다시는 변동없이 주어지는 기본 은혜가 몇 가지 있으니 그 중에 하나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해 베푸는 칭의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영을 살릴 때 그 영을 살리기 위해서 베푸신 칭의는 그의 평생에 다시는 회수되거나 변동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중생되는 그 순간부터는 하나님 앞에서 평생토록 또 영원토록 항상 의인입니다. 이때 '의인'이라는 의미는 천국 갈 의인이라는 뜻입니다.
2.영이 살아나는 것을 '중생'이라 하고, 영이 의로워지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①일반 교리에서는 안 믿던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을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 순서는 첫째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명'이 먼저 있고, 둘째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중생'이 되고, 세째는 중생된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회심'을 갖게 되고, 넷째로 하나님께로 돌아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 되고, 다섯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시니 이를 '칭의'라 하고, 여섯째는 의롭게 된 믿는 사람들은 남은 평생 자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가니 이를 '성화'라고 합니다.
②질문하신 내용은 '영이 사는 것과 의로워진다는 의미는 같은 것인지?'입니다.
일반 교리는 영과 마음을 분리하여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영이 살아나는 것을 '중생'이라고 하는데,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죽은 영이 살아나는데 필요한 모든 기본 은혜가 주어져야 합니다. 일반 교리에서 구원론의 논리적인 전개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는 사실 단 순간에 동시에 적용되는 일입니다.
안 믿던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바뀌는 그 순간은 우리 인간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죽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죄에 관련된 모든 문제가 전부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이 죄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범죄 이전의 인간으로 복구되려면 위에서 설명한 모든 일들이 동시에 적용됩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구원의 과정을 6-7단계로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대신 2단계로만 나누고 있습니다.
③구원문제에 대한 이해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기준으로 봐야 명쾌해집니다.
안 믿던 사람이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은 죽은 영이 살아나는 중생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꼭같이 적용되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받아 가지는 구원이라 하여 '기본구원', 그리고 한번 중생된 사람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평생토록 성화시켜 나가는 것이니 이를 '건설구원'이라고만 나눕니다. 그리고 기본구원으로 받아 가지는 중생에 관련된 모든 은혜는 전부 기본구원에 포함을 시키고, 평생 늘 노력해야 하는 것은 건설구원에 포함을 시킵니다.
그렇다면, '회개'도 중생 되는 순간 하나님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는 회개를 기본회개라 하고, 그다음 평생 자기 잘못을 고쳐가는 것은 평생회개라 합니다. '믿음' 또는 '신앙'이라는 것도 중생 되는 순간 처음 받아 가진 믿음은 영이 받아 가진 중생에 관련된 믿음이니 이는 '기본믿음'이고 평생 늘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은 건설구원에 필요한 평생 믿음입니다.
3.요일3:6-9
①6절에서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하신 말씀은
기본구원을 입고 중생되는 영을 가르쳐 말합니다. 한번 중생된 사람은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은 우리가 잘 아다시피 하루에 70번씩 7번이라도 범죄하고 있습니다.
②7절에서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하신 말씀은
믿는 우리는 기본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켜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받지 않을 수도 있고, 만일 또 다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몸과 마음은 다시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중생된 우리의 평생 투쟁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영이 중생되지 않았으므로 미혹을 받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7절은 기본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평생 건설해 가야 할 자기 신앙 투쟁면을 두고 말씀한 것입니다.
③7-89절,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하신 것은
중생된 우리가 남은 평생 미혹을 이길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길을 오가며 우리 신앙은 건설로 나가다가 다시 뒷걸음질도 하게 되면서 각자의 신앙이 차이나게 됩니다.
만일 중생의 은혜를 자기 현실에 써먹어 미혹을 이기게 되면 그는 의를 행하는 자니 그의 의는 인간이 볼 때는 인간 의지로 인간 노력으로 말씀을 지킨 인간의 의로 보이지만, 실은 그가 중생의 은혜를 의지하여 주님 주신 기본구원의 의를 힘입어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인간이 미혹을 이기고 의롭게 산 행동 속에는 예수님의 의와 같은 의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건설구원의 본질은 신적요소라는 좀 어려운 대목입니다.
④여기서 이제 다시 6절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6절에서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하신 말씀은 영이 죽었던 불신자가 중생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이 되고 나면 그 영이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중생의 영이 된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우리가 평생 믿어 가면서 죄를 짓는 건설구원적인 죄문제에도 해당이 됩니다. 우리가 7절 말씀대로 '미혹'을 받게 되면 주님 안에 거하지 않게 되고, 미혹을 뿌리치면 주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미혹을 받고 안 받는 것과 주님 안에 거하고 거하지 않는 것은 함께 움직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여 미혹을 받지 않게 되면 죄를 이기게 되고, 만일 미혹을 받아 주님 안에 거하지 않게 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질문하신 내용 중에서 '범죄치 않고 정죄함이 없는 것은 칭의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맞습니다. 기본구원적으로 영은 한번 중생되면 다시는 죄와는 상관이 없도록 예수님께서 우리 평생의 모든 죄값을 미리 다 해결해 버렸습니다. 중생 때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입혀지는 칭의는 평생 뿐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변치않고 그대로 계속됩니다.
4.전3:21의 '인생의 혼'과 '짐승의 혼'
①전3:21의 '혼'을 우리 한글 성경 그대로 읽어버리면 무조건 삼분론이 맞습니다.
혼은 고기덩어리로 된 몸 안에 있는 것인데, 짐승에게도 사람처럼 고기덩어리 안에 혼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없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르고 만물과 다른 것은 구조적으로 '영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날든지 물속에 살든지 네발로 기든지 상관없이 그 구성 재료로 분석한다면 오로지 물질로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구성 재료가 물질과 영물 2가지로 배합이 되어 있습니다. 즉, 짐승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물질 뿐이니 '짐승의 혼'은 물질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혼도 물질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분설은 무조건 틀린 결론이 나옵니다.
반대로 사람의 재로는 영물과 물질로 배합이 되어 있는데 사람의 '혼'을 만일 영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영이라고 한다면, 이 본문은 짐승도 영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한글성경만 알고 있는 사람은 비록 원어는 알지 못해도 한글성경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성구는 명쾌한 삼분론 근거 성구입니다.
②문제는 성경 전체에 사용된 '혼'에 대한 원어가 복잡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곳 홈에도 이분설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이곳 /연구실/문의답변/이나 혹은 /연구실/발언.주제연구/에서 이분론이 옳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전3:21의 원어적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성구들에서는 그 원어의 원 의미가 어떠냐에 따라 해석으로 빠져 나가거나 또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내놓을 여지가 있는데, 이 성구는 사람과 짐승을 함께 한 자리에 비교하면서 그 '혼'이 같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성구는 이분설 학자들의 퇴로를 최후로 막고 있는 성구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씀드리면, 인간과 짐승에게는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는데, 짐승의 몸이나 사람의 몸은 아무도 이의없이 같은 물질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몸 속에 있는 '혼'과 사람의 몸 속에 있는 '혼'은 각각 그 재료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원어의 '혼'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영을 말한다면 짐승에게도 영적 요소가 있다는 말이 되고, 만일 원어의 '혼'이 물질인 마음을 말한다면 인간에게는 짐승과 다른 혼 외에 영적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③전3:21의 '혼'은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은 물질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물질 중에 저급의 물질로 된 몸이 있고 고급의 물질로 만들어진 마음이 있습니다. 짐승에게 있는 혼은 짐승의 마음입니다. 짐승에게도 기억이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고 계산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위로 올라간다는 말은, 인생은 그 평생에 마음으로 활동한 것까지 다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고 그 생각 한 것 하나까지도 보응과 보상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짐승은 영이 없고, 물질로만 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훗날의 심판이 없습니다. 짐승의 생각은 그 생각이 하나님 없이 먹을 욕심으로만 움직였다 해도 정죄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그 생각이 하나님 없이 움직인 것은 전부 위로 하나님께 올려지고 그 생각에 따라 영원한 책임과 결과가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5.백목사님의 삼분론 표현은, 달리 증명할 필요도 또 그럴 만한 자료도 없습니다.
①백목사님의 남겨진 기록에서 '삼분론이 옳다'고 단정한 곳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백목사님 평생의 설교 기록을 이곳에서는 다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녹음 시절은 1979년 - 1989년 사이의 약 10여년이고 그 이전에는 노트 필기본입니다. 노트 필기본이라는 것은 100% 증거로 제시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이 '삼분론이 옳다'고 단정한 기록을 녹음본에서 자료로 제시해야 할 것인데, 백목사님은 설교가 녹음되던 마지막 10여년 시기에는 그런 발언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의 어떤 기록에도 백목사님은 나는 기독교가 옳다고 본다고 발언한 기록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백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나는 삼위일체가 옳다고 본다 이렇게 발언한 곳도 없을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은 기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대문에 이 집은 나의 집이라고 써붙여 놓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집안에 한번도 우등상을 받아보지 못한 집은 초등학교 1학년 우등상을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 옆에 나란히 걸어놓고 있지만, 우등상을 수도 없이 받는 집에서는 그런 것을 걸어두는 일이 없습니다. 우등상이 일상생활이기 때문입니다.
②1960 - 1970년대에는 삼분론 설명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삼분론을 처음 세워 나가던 1960년대 초기의 백목사님 설교는 삼분론과 건설구원론 그리고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세계 교리의 당시 흐름이 이런 교리가 발을 디딜 틈도 없었기 때문에 조목조목 비교해서 가르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 교회의 이단 정죄 발언이 줄을 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을 지나게 되면서, 백목사님의 모든 교리들은 일반 교리와 비교해 볼 필요도 없을 만큼 너무 크게 수준 차이가 난다는 것이 확정되고 있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백목사님은 극도로 말을 아끼기 시작합니다. 일반 신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너무 강하게 백목사님이 발언하면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자기 배운 것으로 너무 세게 반론하고 나올 것인데 조금만 비교해 보면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런데 그런 조짐을 알아채리게 되면 이미 자기가 발언해 놓은 것이 있어 체면이나 권위 때문에 자기 했던 발언을 합리화 하기 위해 수도 없이 죄를 지어야 하게 됩니다.
철없고 어린 당대 신학자들과 교계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뒤 그 무덤까지 지키게 하고 부활 뒤에는 시체를 훔쳐갔다고 사후 수습을 하게 되는 그런 죄를 지을까 하여 조용하게 이치만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1980년대 설교에서는 삼분론도 맞고 이분설도 맞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렇게 발언을 하게 된 것은 애들 달래듯 일반 신학을 달래가며 삼분론에 대하여 섣불리 정죄하지 말고 먼저 삼분론에 대한 차분한 연구를 할 기회를 주느라고 그렇게 발언한 것입니다.
따라서 삼분론이 옳다고만 딱 부지러지게 발언하는 대신, 사람은 영물로 된 영과 물질로 된 육으로 나눌 수 있고, 육은 다시 몸과 마음으로 나눌 수 있으니 그 재료를 기준으로는 둘로 나눌 때 이분설이 맞고, 육을 다시 몸과 마음으로 나눈다면 삼분설도 맞다는 보충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언은 일반 교계의 교리서에서 삼분론이라고 하고, 그들이 말하는 이분설은 사람의 몸 안에는 마음과 영이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마음이 영이고 영이 마음이라 이름만 다르지 실은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 신학을 좋아하면서도 그 소속은 총공회에 두고 있는 분들이 백목사님의 발언 중에서 어느 한 대목이라도 일반 신학과 일반 장로교 체제와 비슷하게 생긴 것만 있으면 백목사님도 일반 신학과 일반 장로교 체제를 사실 주장했던 분이라고 마구 소설을 적어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③백목사님은 '백영희 삼분론'의 원조 신학자입니다.
교회사에 삼분론 학자들은 시대마다 이어져 오고 있었으나 백영희목사님의 삼분론은 백영희삼분론으로 명명해야 할 특별한 교리입니다. 기존 삼분론과는 그 출발이나 기본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이해의 차원과 그 활용의 차원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과거 삼분론은 이분설과 어느 교리가 맞는지 백중세의 이론 대결을 했고 또 과거 삼분론은 삼분론이 맞다고 해도 왜 삼분론을 주장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명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에서는 이분설과 삼분론의 논쟁은 그냥 이론을 위한 이론 정도로 취급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나 다른 교리 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백영희삼분론은 교리체계 전체를 새로 적어야 할 정도이며 교리체계 전체의 중심에 놓아야 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깊이도 그 신앙 현장에 사용되는 실용적인 면도 특별합니다. 일반 교리의 이분설과는 그 차원이 마치 100년 전 의사가 눈과 손으로 병을 짐작하는 수준과 오늘 의사가 MRI나 CT로 환자의 속을 꿰뚫고 혈액검사 등을 통해 바이러스의 숫자와 그 활동상황을 눈금보듯 보면서 분석하는 것의 차이 정도입니다. 따라서 굳이 비교해서 논쟁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정도이고, 다만 달래서 이 교리를 뒤따라 오도록 잘 인도하면 되기 때문에 자존심과 학문적 권위 하나에 평생을 걸고 있는 신학자를 향해 자신의 삼분론을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백목사님에게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딱 부러지게 발언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나, 삼분론을 믿는다고 딱 부러지게 발언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동일한 성격의 질문입니다. 그분의 평생이 삼위일체를 가르쳤듯이, 그분의 1960년대 이후 평생이 그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녹음 시대 음성 자료로 직접 제시하는 것은, 자료가 있어도 찾아볼 시간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고 딱 부러지게 그렇게 발언할 내용이 아니므로 찾아봐도 없을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④질문의 말미에 백목사님은 이분설인데, 그 제자들이 삼분론으로 발전시킨다는 지적에 대하여
백목사님의 인성 구조에 대한 설교를 읽어본 분이 만일 백목사님의 이분설 발언을 근거로 백목사님도 이분설 주장자로 파악하신다면, 일반 신학교의 조직신학 과목을 60점 이상으로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백목사님이 이분설도 맞다고 발언한 내용을 가지고 백목사님을 이분설 주장자로 분류하려면, 그대신 모든 조직신학 교과서의 '이분론'은 '일분론'으로 표기를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영 - 마음 - 몸' 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한 백목사님이 그 3가지를 재분류하면서 '영'을 하나로 묶고, 그다음 '마음 - 몸'을 하나로 묶으면 이분설이 된다 이렇게 발언을 했는데, 일반 신학의 이분설은 사람에게는 '마음 - 몸' 만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신학의 이분설은 백영희목사님이 표현하는 이분론의 한쪽만 있다고 하는 학설이 됩니다.
참고로, 이곳은 백영희목사님의 과거 자료 전부를 완전 공개해 놓고 있습니다. 만일 백목사님의 원래 진의가 이분론인데 이곳이 삼분론으로 변조를 하고 싶다면 백목사님의 원래 자료는 선별적으로 공개하거나 아니면 백목사님의 교훈을 이곳이 앞서 비판을 했을 것입니다.
이곳은 백영희신앙노선의 과거를 일단 있는 그대로 그 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자료 중에는 현재 이곳을 운영하는 답변자에게 치명적인 질책도 한 두곳이 아닙니다. 그다음 그 자료에 대한 객관적 연구 분석을 하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 중에서 잘못된 곳이 있거나 수정해야 할 곳이 있다면 이곳은 서슴치 않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가 세계 교회사를 개혁할 교리와 교훈을 담고 있다면 이곳은 사실이 그렇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곳이 그 자료를 가지고 고의로 변조할 정도의 의도가 있었다면 이곳에 앉아 있아 글을 적는 것보다는 백영희신앙계열의 전국교회와 공회들을 상대로 손을 대는 수술실의 외과 집도의가 되었을 것입니다.
[삼분론] 중생=칭의
제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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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1절 말씀을 보고 (정죄함이 없나니) 이 부분을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되면 의로워 져서 칭의를 얻어..이 칭의가 더이상 없어지지 않는다고 해석을 들었습니다. 이 해석이 맞는지요?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의로워진다 하였습니다.영이사는것과 의로워진다는 의미가 혹시 같지는 않은지요? 영이살면 천국에 가는 것이니 천국에 간다면 결국 의로워졌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요한일서3장6~9절말씀중 7절을 보면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요한일서3:6~9절을 영의 중생으로 보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를 해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로워진다 하였는데 영의중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해석부탁합니다. 어쩌면 영이사는것이 아니라 글 서두에 말했듯이 범죄지않고 정죄함이 없는것은 칭의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닌지요?
그리고 전도서3장21절말씀 인생의혼과 짐승의혼을 설명해주십시오.두가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주세요.이분론자들이 이부분을 가지고 이분론이 맞다고 주장을 많이 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지요요?
백목사님의 초기 집회부터 거의 집회에 참석했으나 서글픈 사람이라서 이 질문을 합니다. 기록이 다 없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백목사님께서 어느 설교에서 "나는 삼분설을 주장한다. 믿는다"라고 한 곳이 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들은 기억으로는 "정통 신학자들이 혹은 이분설, 혹은 삼분설을 주장하며 서로 이단시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분설을 주장한다" 라는 설교를 들은 것 같고 한 번도 "삼분설을 주장한다"는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신앙 사상 속에 이분설 교리가 뼈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삼분설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목사님의 설교시에 영 마음 몸으로 나누어 구원도리를 많이 설교하셨지마는 혼과 마음을 몸에 속한 것으로 보고 이분설 학설로 주장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생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삼분설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백목사님과 총공회가 삼분설을 맏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너무도 잘못된 제자들의 착각입니다. 백목사님의 학설을 신중하게 연구 검토하지도 않고 삼분설이 총공회와 백목사님의 교리인 양 크게 주장하고 책까지 만들어 세상에 반포하고 이제야 토론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시행착오이며 총공회 모든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제 토론하여 삼분설 주장을 이분설로 바꿀 용의가 있습니까? 설득해서 이분설을 묵살하려고 시도하는 자신만만한 자세이겠지요.
좀더 신중하여 부끄러움 없는 제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일방적으로 강변한다고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진리인 것입니다.
이분설 삼분설로 교리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이것을 총공회 교리라고 내세울만한 것도 없습니다. 이분설 삼분설 이런 주장이나 하는 교단이 총공회입니까?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나도 이 논쟁에 말려들 필요도 없는 것인데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삼분설을 주장한다.믿는다" 한 설교를 언제 하셨는지만 기억력 좋으신 분들의 답을 바랄 뿐입니다.그러면 나도 삼분설로 따르겠습니다. 없으면 삼분설을 열 올려 주장하는 것을 총공회와 백목사님과 제자된 여러분을 위해서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구태여 이런 주장이나 하려는 공회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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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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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1절 말씀을 보고 (정죄함이 없나니) 이 부분을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되면 의로워 져서 칭의를 얻어..이 칭의가 더이상 없어지지 않는다고 해석을 들었습니다. 이 해석이 맞는지요?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의로워진다 하였습니다.영이사는것과 의로워진다는 의미가 혹시 같지는 않은지요? 영이살면 천국에 가는 것이니 천국에 간다면 결국 의로워졌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요한일서3장6~9절말씀중 7절을 보면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요한일서3:6~9절을 영의 중생으로 보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를 해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로워진다 하였는데 영의중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해석부탁합니다. 어쩌면 영이사는것이 아니라 글 서두에 말했듯이 범죄지않고 정죄함이 없는것은 칭의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닌지요?
그리고 전도서3장21절말씀 인생의혼과 짐승의혼을 설명해주십시오.두가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주세요.이분론자들이 이부분을 가지고 이분론이 맞다고 주장을 많이 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지요요?
백목사님의 초기 집회부터 거의 집회에 참석했으나 서글픈 사람이라서 이 질문을 합니다. 기록이 다 없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백목사님께서 어느 설교에서 "나는 삼분설을 주장한다. 믿는다"라고 한 곳이 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들은 기억으로는 "정통 신학자들이 혹은 이분설, 혹은 삼분설을 주장하며 서로 이단시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분설을 주장한다" 라는 설교를 들은 것 같고 한 번도 "삼분설을 주장한다"는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신앙 사상 속에 이분설 교리가 뼈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삼분설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목사님의 설교시에 영 마음 몸으로 나누어 구원도리를 많이 설교하셨지마는 혼과 마음을 몸에 속한 것으로 보고 이분설 학설로 주장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생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삼분설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백목사님과 총공회가 삼분설을 맏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너무도 잘못된 제자들의 착각입니다. 백목사님의 학설을 신중하게 연구 검토하지도 않고 삼분설이 총공회와 백목사님의 교리인 양 크게 주장하고 책까지 만들어 세상에 반포하고 이제야 토론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시행착오이며 총공회 모든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제 토론하여 삼분설 주장을 이분설로 바꿀 용의가 있습니까? 설득해서 이분설을 묵살하려고 시도하는 자신만만한 자세이겠지요.
좀더 신중하여 부끄러움 없는 제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일방적으로 강변한다고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진리인 것입니다.
이분설 삼분설로 교리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이것을 총공회 교리라고 내세울만한 것도 없습니다. 이분설 삼분설 이런 주장이나 하는 교단이 총공회입니까?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나도 이 논쟁에 말려들 필요도 없는 것인데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삼분설을 주장한다.믿는다" 한 설교를 언제 하셨는지만 기억력 좋으신 분들의 답을 바랄 뿐입니다.그러면 나도 삼분설로 따르겠습니다. 없으면 삼분설을 열 올려 주장하는 것을 총공회와 백목사님과 제자된 여러분을 위해서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구태여 이런 주장이나 하려는 공회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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