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합니다.

문의답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합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성경~주해~유다서~]

내용분류 : [-성경-주해-유다서-]/[-성경-성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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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곳 답변은 질문자를 중심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곳 방문인 전체를 고려합니다.


이곳 답변 태도와 자세에 대하여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설명을 들으시고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이곳 여러 곳에 다음 내용은 적지 않게 설명을 했지만 섭섭하신듯 하여 한번 더 양해를 구합니다.


비록 질문자는 개인 내용을 올렸지만, 답변자는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읽을 내용으로 생각하여 질문자를 중심으로 답변을 하지만 질문자만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원하는 내용은 적게 답변하고 정작 질문자는 관심도 없는 것을 집중적으로 답변할 때도 있고, 질문자는 알고 있는 것을 일반 다른 방문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설명을 붙여 정작 질문자는 짜증이 나도록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질문자께서 남들이 이곳을 비판하더라는 말을 전하는데 이곳 답변자는 마치 질문자를 토론의 상대방으로 생각하고 화를 내듯 답변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원래 질문자가 너무 당황하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답변자는 질문자만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가상의 군중을 향해 연설을 할 때도 있고 가상의 토론자와 격론한 반론을 주고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곳 질문자들께 사전에 별 양해 없이 이렇게 답변하는 이유는, 이곳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런 답변 자세는 수없이 양해를 구했고 또 여러 곳에서 밝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곳 답변자가 질문자께 실례되는 답변을 한다고 생각하여 섭섭하시면 이곳은 일단 위로와 양해를 구하지만, 사실 이곳 홈 전체의 분위기와 자세는 어느 누구도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내용에 대하여 답변을 드릴 때는, 질문하신 분을 곤란하게 만드는 표현이 있다 해도 내용 자체의 정확성을 가장 먼저 고려하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전체 답변의 표현이 다소 예절에 어긋나거나 질문자의 주관에 오해가 다소 예상되더라도 일일이 그 답변을 미리 교정보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심각하게 답변되어야 할 내용을 정확성 뿐 아니라 자구 하나까지 질문자의 주관에 맞도록 조절하는 것은 이곳 답변자의 시간과 능력 범위를 넘습니다. 여러모로 너그럽게 이해애 주셨으면 합니다.


2.성경해석법에 대하여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합니다. 실은 성경해석법의 제일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 원칙은 오늘날 성경해석학 어느 한구석에 유품처럼 전시만 되어 있을 뿐이고 실제 그 원칙으로 해석하는 주석과 성경신학 관련 서적은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 제일의 원칙에 한 마디 설명을 더한다면, 성경은 한 구절이 나머지 성경 성구 전체를 해석하고, 또한 성경 전체는 그 성구 하나를 해석합니다. 그리고 성경해석이 바로 되었는지 아는 방법은 그 성구에 대한 해석이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모든 성구와 다 맞아지고 모든 교리에도 다 맞아지며 실제 신앙생활에 적용해도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맞아져야 하며, 그 성구의 해석은 어느 사람 어느 환경에 따라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구 해석은 그 해석 속에 성령이 역사하는 감동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 감동의 역사는 그에게 어떤 인간으로부터 받게 되는 감동과 다른 차원이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원어와 성경고고학적 환경을 무시하고 성경 내용 자체에만 집중하는 이유는 성경해석법의 가장 첫걸음이면서 마지막 원칙이어야 하는 성경적해석법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께서 이곳 설교자료에서 성경해석에 대한 내용을 좀더 면밀하게 보셨더라면, 이곳에서 제공하는 성경해석은 원어와 고고학적 환경을 인용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대신 성경을 어느 한 성구만 좁게 해석하지 않고 성경 전체를 폭넓게 인용하여 전체 성경과 그 성구 자체와 또 주변 앞뒤 성구를 다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3.현재 이곳은 성경해석에 관하여는 집중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곳은 현재 시간을 쪼개가며 백영희신앙노선의 조직신학 정리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른 조직신학과 달리 백영희조직신학은 모든 성경해석의 근본 방향이 되고 또한 모든 신앙생활 현장의 행동을 안내하기 때문에 조직신학의 일차 정리는 교리정리에 그치지 않고 백영희신앙노선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에 전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신앙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이곳 성경해석이 너무 단편적이고 성경 한 두 단어의 좁은 시야만으로 무리하게 비약을 하는 것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백영희설교 자료를 면밀하게 보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공통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시간을 갖고 이곳 설교 자료를 보는 분들에게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가지는 분들에게는 이곳에서 제공하는 설교를 보다 면밀히 살펴보고 그 설교들 한편 한편이 성경전체를 어떻게 배경삼고 연결지어 나오게 되었는지를 새로 한번 살펴보시라고 요청할 뿐입니다.


조직신학 작업이 일차 끝나고 나면, 백영희신앙노선의 성경해석에 대한 면 등 다른 주제로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어느 주제라 해도 그 하나하나가 다 세계교회사에서 위치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이 이곳의 현재까지 판단입니다.


어쨌든, 일찍부터 이런 작업에 매진하여 현재 질문자와 같은 분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성경해석까지도 일목요연하게 살펴보고 백영희설교자료의 성경차원이 어느 지경에 이르고 있는지를 마음껏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이곳 답변자가 지난 세월 허송한 시기가 있었고 또 지금도 있는 힘을 다 기우리지 않는 여러 단점이 있어 자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번 더 요청하고 싶은 것은, 현재 이곳 문답방에 올려진 답변은 질문자들께 질문 내용 자체에 대한 답변도 적었지만 이번 질문자께서 특별히 관심이 많은 분야까지도 여러번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 문답방 게시판의 아래 윗쪽에 있는 검색창들을 이용하셔서 '성경해석' '원어' '신학' 등의 단어로 검색해보신다면 이미 이번 질문에 대한 답변은 충분히 제공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곳 문답방 자료가 /문의답변/과 /쉬운문답/ 등으로 나뉘어 수 천개인데 검색어에 찾아지는 목록 중 다른 내용도 많고 또 해당되는 내용이 있다 해도 다른 내용으로 보이는 답변 중에 섞여 있는 것이 많아서 활용하는 분의 불편이 많을 듯 합니다.


이 문답방에 올려진 자료도 조직신학 작업이 끝나고 나면 전체적으로 한번 정리를 하여 답변 내용을 주제별로 나누어 검색이 편리하게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주해] 믿음의 도?
제목분류 : [~성경~주해~유다서~]

내용분류 : [-성경-주해-유다서-]/[-성경-성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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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1:3절의 믿음의 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영어성경을 보면 믿음의 도를 faith로 표가하고 있습니다.

다른 주석을 찾아보면 믿음의 도를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때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과 영생을 얻는다는 진리를 가리킴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자체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믿음의 도 앞에 단번에 라는 말과 결합하여 그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혹시 이 홈페이지에서 말한 단번구원 완전구원과 관련이 있는건가요?


다른주석의 내용입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 "성도"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음을 전달받은 사도를 기리킨다고 주장하나 교회를 설립한 사도들에게서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의 그리스도인을 기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행 9:13,32,41 ; 롬 12:13 ; 히 6:10).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서 "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도데이세"는 "받는다"라는 의미를 지닌 "파라람바네인"과 한상을 이루어 사도가 주고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고전 11:2,23 ; 15:3 ; 갈 1:9 ; 빌4:9 ; 골2:6 ; 살전2:13 ; 살후2:15; 3:6). 한편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에서 "믿음의 도"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진 복음, 즉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내용을 의미한다(행 2:42). 이러나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도들에게 전해지고 사도에 의해서 교회의 전해진 기독교 구원의 중심 메시지는 단번에 전해진 것으로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유다는 복음의 불변성(不變性)을 강조함으로 거짓 교사들이 변질되고 왜곡된 거짓 진리를 전하는 것에 대해 암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참고로 질문하는 것인데 여기 백영희신앙연구 홈페이지와 지금 교계의 다른 주석과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차이점이 많은것 같습니다.

다른 주석들을 보면 그때의 시대적 환경을 그 서신이 쓰여진 배경을,그리고 원어 중심으로 많이 하지만, 여기 이 홈페이지는 그렇지 않은것 같습니다.

또한,이 홈페이지에서 성경을 해석할때 어느 한구절만 가지고 와서 갖다 붙이는것 같습니다. 전체맥락에서 해석하지 않고 어느 한구절말 가지고 와서 필요한데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일5:18절을 여기 홈페이지에서는 삼분론의 증명으로 삼았지만

다른 주석서를 보면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게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앞절과 관련시켜서 믿는 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2)혹자는 '범죄치 아니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하마르타네이'가 현재에도 계속되는 동작을 나타내는 현재시상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믿는 자는 계속 반복되는범죄나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우리가 아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다멘'은 18-20절에 걸쳐 세 번 사용되고 있다. 이 '오이다멘'은 지식으리 활동 상황을 나타내는 '기노스코'('알다')와 달리 주로 지식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절에서 영적 지식의 확실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본절의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호겐네데이스 에크 투 데우)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1)상반절의 '난자'(게겐네메노스)는 완료 분사형인 반면에 본문의 '나신 자'(겐네데이스)는 부정 과거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기 때문이며, (2)'나신 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만 문맥상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개념은 신약성경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요17:12; 벧전1:5; 유1:24). 요한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악과 사단의 영향력에서 보전하실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요17:12,15).


이와같이 일반 교계의 성격해석과는 판이한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부분이 많은것 같습니다. 둘중에 하나라 생각합니다. 일반교계가 거꾸로

가고 있거나, 여기 이 홈페이지가 거꾸로 가고 있거나 겠죠.

기분이 안좋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답변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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