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고려할 내용 몇 가지를 추가해 보았습니다.
|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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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2003.11.29 00:00
제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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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질문 내용 중에서 앞서 오간 문답과 관련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①영의 존재, 영에 대한 실감에 관련된 참관 자료
23번, 영의 실감 ■00/01/17
24번, 영의 실감에 대한 답변 ■00/01/18
②구약성도들의 중생과 구원시점
281번, 구약성도의 중생 (개인메일 질문) ■00/12/18
282번, 약간의 시간을 주셨으면 ■00/12/20
283번, 답변에 우선 고려할 몇 가지 ■00/12/220
2.구약 성도의 중생 문제
①앞에서 3년 전 질문을 받고 답변을 유보했는데, 다시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시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질문은 이곳 답변자도 사실 잘 모르는 내용입니다. 2000.12.18. 이곳 홈 개설 아주 초기에 '구약 성도의 중생 시점'에 대하여 질문이 있었고 당시 이 문제는 답변자가 백영희신앙노선에서 가장 자신 없는 교리 부분이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시간을 갖고 연구할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인데, 당시 질문이 계셨기 때문에 훗날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3.11.29. 현재까지도, 이 문제는 늘 답변자에게 연구 과제입니다. 이 문제의 양쪽 논점은 파악을 하고 있으나, 답변자가 아직 이 문제에 관하여는 명확하게 안내할 깨달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더 질문하셨으므로, 이번에는 이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도록 몇 가지 참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②구약성도의 중생 문제를 두고 생각할 몇 가지
■구약성도의 중생은 십자가 대속 때까지 유보되었다고 볼 수 있는 점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된 후에야 '중생'이 가능한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고 부활하여 대속을 완성한 후라야 중생이 가능
예수님 십자가 사망 순간 무덤에서 일어난 구약성도의 의미는 구약 중생 예표
▪구약과 신약의 성령 역사는 뚜렷하게 차이
예수님께서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을 보낸다고 하신 점
성령의 성화역사는 예수님의 대속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생가
구약에서 성령의 역사가 임했던 분들은 아주 예외적이었으나, 신약은 전면적
■구약성도의 중생도 십자가 대속 완성 이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점
▪질문자 말씀처럼, 건설구원에서 영의 위치와 역할
자기의 심신을 성화시키는 일은 영의 실력이며 그 차이가 건설구원의 차이
비록 하나님이시라도 자유성을 주셔서 영을 통해 심신을 성화시키는 점
성령이 대신 심신을 성화시켰다면, 영의 실력이 아니고 성령의 실력
▪눅16:19 이하의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영과 마음은 대속 이전
예수님 대속 완성 이전에 낙원을 간 성도들의 영은 중생이 된 상태라는 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한 자리에 앉은 것은 그들의 영과 마음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라 했으니, 아브라함의 상태도 영이 중생된 상태
▪원죄와 대속의 적용은 시간을 초월
구약 제사가 예수님 대속을 '예표'하였고, 그 효력을 구약에 미리 받았던 점
아담의 범죄가 장차 출생할 우리를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범죄자로 만든 점
예수님 대속이 중생된 성도의 중생 이전 죄뿐 아니라 미래 죄까지 해결한 점
③이 문제는, 아직 답변자가 배워가야 할 앞날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답변 3번에서 백목사님 설교 세계에 대한 은혜를 잠깐 소개했습니다. 내용 중에서 그 설교를 들으며 가졌던 의문점도 함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초기에는 의문이 많았으나 설교를 들으며 또 신앙이 자라며 수많은 의문들은 저절로 해결이 되었고, 꼭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목사님께 직접 질문을 드려서 해결을 했습니다.
어떤 내용들은 백목사님 생전에 '이론적'으로는 이해를 했으나, 실감을 하지 못한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미처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 사후 15년을 지나는 현재까지 이런 부분들은 꾸준히 해결이 되어, 현재 답변자가 아는 범위로는 '백영희신앙노선'에 관한 교 리나 문제점에 관한 한 의문이 되거나 또는 해결하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질문하신 '구약성도의 중생 문제'는, 교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답변자는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체계로 설명은 할 수 있지만, 답변자 자신이 명쾌하게 단정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삼위일체나 영의 존재 등의 교리는 성경 기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그 교리체계의 사실성은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감이 어려운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이 어려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고 또 실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처럼 '구약성도의 중생' 문제는 일단 교리의 가장 기본 체계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느껴져 답변자는, 백목사님의 입장으로 소개만 하고 있을 뿐이지 답변자가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져서 답변자 자신의 교리체계로 확정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④답변자는 이 문제가 비록 중요하지만, 사실 성급하게 살펴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무엇이든 단 하나의 의문점이라도 있으면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지난날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하신 이 문제는 목사님 생전부터 사후, 지금까지 답변자가 늘 마음 속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리 문제와 달리 이 문제는 하나의 해결할 과제로만 늘 마음 속에 생각을 하면서도 집중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던 것은, 역시 질문자께서 초두에 말씀하신 대로, 우리 신앙 현장에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이유를 더 말씀드린다면,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와 교훈체계의 '안정성'과 '충분성'을 좀 지나치게 자신한 면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성경과 신앙실제를 놓고 볼 때, 백영희조직신학 체계에서 단정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그 내용은 거의 완벽하게 체계화 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로 체계가 완벽하게 잡히면, 혹 몇 가지 의문점이나 난해점 또는 모순점이 있다 해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이 교리 체계 전체면이 자꾸 더 밝아지면 결국 구약성도의 중생시점과 같은 문제점은 언젠가 자동적으로 해결될 시점이 올 것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 교리 자체를 깨닫는 '확신'이라야 진짜 '확신'인데, 그 교리 자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곧 해결 될 문제로 '확신'하는 것은 물론 대단히 위험한 발상인 줄 압니다. 그러나 백영희조직신학의 안정성과 충분성은 적어도 이 구약성도의 중생시점 문제 정도는 그렇게 안심을 하고 대해도 된다는 것이 답변자의 현 마음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깨달아질 때가 곧 올 것이라는 점이 느껴지기 때문에 무리하게 한 쪽으로 단정하여 한 걸음 더 내딛다가 서툰 사람이 실수를 하는 것보다, 알려주시는 대로 알아 나가겠다는 것이 질문하신 '구약성도 중생의 시점'입니다.
보통 다른 사안에 대하여는, 답변자 체질과 성향은 이렇게 느긋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몇 가지 교리, 몇 가지 현실 교회 정치에 관련된 처신, 앞날에 대한 준비 등에 있어서는 한 걸음 먼저 나가는 것보다, 당신이 알려주실 때 따라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답변자의 수준입니다. 시대를 감당하던 종을 잃은 시대의 불행이면서 곧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곳에 홈을 통해 전면적으로 이 노선에 관한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제공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곳의 문제점이나 이곳이 깨닫는데 필요한 지적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3.질문자께서 이 신앙노선에서 가지는 고충을 질문 내용 뒷부분에서 읽었습니다.
질문자 외에도 같은 심정과 같은 입장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오늘 혼동의 시대 중에서, 과거 받은 은혜를 간직하는 분들이 곳곳에 계신다는 것이 아직도 이 시대가 희망이 있다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같은 심정일 것으로 생각하고 몇 말씀드립니다.
①백목사님의 설교 세계
이곳에서 제공하는 설교 자료들을, 어떤 분들은 백목사님 생전에 그의 육성으로 접했던 분들도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그분 사후 이곳에서 접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 해도, 이곳에서 제공하는 설교자료에서 신앙세계의 깊은 내면을 보신 분들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답변자가 처음 백목사님 설교를 접했을 때, 감동적인 면으로는 너무 기뻤고 감격했으나, 이론적으로는 온통 의문 투성이뿐이었습니다. 그후 접해갈수록 말씀의 은혜의 감동은 더욱 크게 받게 되었으나 그 형태는 조금 달랐습니다. 냄비 끓는 즉각적 뜨거움에서 시작해서 그 감동의 느낌이 점점 깊어지며 두터워져 마치 가마솥 곰국 끓듯했습니다. 그리고 세월 속에, 초기 의문 투성이었던 성경 해석, 교리, 신앙노선에 대한 모든 문제가 풀려서 지금은 이곳에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설교 말씀을 집중으로 들은 지 30년이 가까오고 있는데, 갈수록 그 감동의 깊이는 점점 더해가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이 신앙노선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 중에 가장 큰 근거가 바로 이 면입니다. 성경대로 바로 증거된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아니지만 마치 성경처럼 읽을수록 들을수록 점점 그 은혜가 더 크지고 더 깊어진다는 점입니다.
②들을수록 더 깊어지는 설교 세계
유명한 설교록이 많아서 모두들 부지런히 인용을 하고 있지만, 한 설교록을 가지고 한 목회자가 반복해서 몇십 번 몇백 번을 계속 읽는 설교록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읽을수록 더 은혜롭고 성경을 더 깊이 깨닫도록 해 준다는 경험담을 전하는 설교록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현재 답변자는 목회하는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면 교인들 중 조용히 기도하고 준비할 수 있는 분들에게 남녀를 불문하고 설교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시간에는 이곳 설교록을 몇 페이지 정도 조용히 읽거나 아니면 그 내용을 외우다시피 해서 차분하게 전해 보시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설교 말씀의 은혜 면으로 말한다면 담임목회자인 답변자 설교 때보다 교인들이 더 은혜를 받는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답변자는 이곳의 작업 등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씩 설교를 맡고 있는 교인들은 짧은 시간이라도 분명히 담임목회자 이상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설 것입니다. 설교에 들어간 준비와 집중이 목사보다 월등할 것이고, 그 설교 내용의 정확성은 설교록 이상의 설교가 없으므로, 말씀 은혜가 더 클 것은 분명한 이치입니다.
③오늘 혼동의 시대를 이 설교 은혜로 감당하셨으면
오늘 혼동의 시대를 맞은, 이 신앙노선의 모든 분들에게 참고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 교회나 한 공회가 전체적으로 바른 길을 갈 때는, 멋모르고 따라가도 훗날 생각해보면 자기 신앙발전에 주변 사람들 때문에 큰 도움을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스스로 눈을 부릅뜨고 조심하지 않으면 주변 때문에 집단 최면에 걸릴 시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옳고 그른 것을 바로 아는 일입니다. 알아도 이런 저런 인정과 사정과 이권 때문에 아는 것을 지킬 수가 없는데, 만일 알지도 못한다면, 전혀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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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질문 내용 중에서 앞서 오간 문답과 관련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①영의 존재, 영에 대한 실감에 관련된 참관 자료
23번, 영의 실감 ■00/01/17
24번, 영의 실감에 대한 답변 ■00/01/18
②구약성도들의 중생과 구원시점
281번, 구약성도의 중생 (개인메일 질문) ■00/12/18
282번, 약간의 시간을 주셨으면 ■00/12/20
283번, 답변에 우선 고려할 몇 가지 ■00/12/220
2.구약 성도의 중생 문제
①앞에서 3년 전 질문을 받고 답변을 유보했는데, 다시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시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질문은 이곳 답변자도 사실 잘 모르는 내용입니다. 2000.12.18. 이곳 홈 개설 아주 초기에 '구약 성도의 중생 시점'에 대하여 질문이 있었고 당시 이 문제는 답변자가 백영희신앙노선에서 가장 자신 없는 교리 부분이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시간을 갖고 연구할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인데, 당시 질문이 계셨기 때문에 훗날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3.11.29. 현재까지도, 이 문제는 늘 답변자에게 연구 과제입니다. 이 문제의 양쪽 논점은 파악을 하고 있으나, 답변자가 아직 이 문제에 관하여는 명확하게 안내할 깨달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더 질문하셨으므로, 이번에는 이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도록 몇 가지 참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②구약성도의 중생 문제를 두고 생각할 몇 가지
■구약성도의 중생은 십자가 대속 때까지 유보되었다고 볼 수 있는 점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된 후에야 '중생'이 가능한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고 부활하여 대속을 완성한 후라야 중생이 가능
예수님 십자가 사망 순간 무덤에서 일어난 구약성도의 의미는 구약 중생 예표
▪구약과 신약의 성령 역사는 뚜렷하게 차이
예수님께서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을 보낸다고 하신 점
성령의 성화역사는 예수님의 대속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생가
구약에서 성령의 역사가 임했던 분들은 아주 예외적이었으나, 신약은 전면적
■구약성도의 중생도 십자가 대속 완성 이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점
▪질문자 말씀처럼, 건설구원에서 영의 위치와 역할
자기의 심신을 성화시키는 일은 영의 실력이며 그 차이가 건설구원의 차이
비록 하나님이시라도 자유성을 주셔서 영을 통해 심신을 성화시키는 점
성령이 대신 심신을 성화시켰다면, 영의 실력이 아니고 성령의 실력
▪눅16:19 이하의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영과 마음은 대속 이전
예수님 대속 완성 이전에 낙원을 간 성도들의 영은 중생이 된 상태라는 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한 자리에 앉은 것은 그들의 영과 마음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라 했으니, 아브라함의 상태도 영이 중생된 상태
▪원죄와 대속의 적용은 시간을 초월
구약 제사가 예수님 대속을 '예표'하였고, 그 효력을 구약에 미리 받았던 점
아담의 범죄가 장차 출생할 우리를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범죄자로 만든 점
예수님 대속이 중생된 성도의 중생 이전 죄뿐 아니라 미래 죄까지 해결한 점
③이 문제는, 아직 답변자가 배워가야 할 앞날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답변 3번에서 백목사님 설교 세계에 대한 은혜를 잠깐 소개했습니다. 내용 중에서 그 설교를 들으며 가졌던 의문점도 함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초기에는 의문이 많았으나 설교를 들으며 또 신앙이 자라며 수많은 의문들은 저절로 해결이 되었고, 꼭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목사님께 직접 질문을 드려서 해결을 했습니다.
어떤 내용들은 백목사님 생전에 '이론적'으로는 이해를 했으나, 실감을 하지 못한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미처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 사후 15년을 지나는 현재까지 이런 부분들은 꾸준히 해결이 되어, 현재 답변자가 아는 범위로는 '백영희신앙노선'에 관한 교 리나 문제점에 관한 한 의문이 되거나 또는 해결하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질문하신 '구약성도의 중생 문제'는, 교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답변자는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체계로 설명은 할 수 있지만, 답변자 자신이 명쾌하게 단정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삼위일체나 영의 존재 등의 교리는 성경 기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그 교리체계의 사실성은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감이 어려운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이 어려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고 또 실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처럼 '구약성도의 중생' 문제는 일단 교리의 가장 기본 체계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느껴져 답변자는, 백목사님의 입장으로 소개만 하고 있을 뿐이지 답변자가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져서 답변자 자신의 교리체계로 확정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④답변자는 이 문제가 비록 중요하지만, 사실 성급하게 살펴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무엇이든 단 하나의 의문점이라도 있으면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지난날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하신 이 문제는 목사님 생전부터 사후, 지금까지 답변자가 늘 마음 속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리 문제와 달리 이 문제는 하나의 해결할 과제로만 늘 마음 속에 생각을 하면서도 집중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던 것은, 역시 질문자께서 초두에 말씀하신 대로, 우리 신앙 현장에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이유를 더 말씀드린다면,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와 교훈체계의 '안정성'과 '충분성'을 좀 지나치게 자신한 면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성경과 신앙실제를 놓고 볼 때, 백영희조직신학 체계에서 단정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그 내용은 거의 완벽하게 체계화 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로 체계가 완벽하게 잡히면, 혹 몇 가지 의문점이나 난해점 또는 모순점이 있다 해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이 교리 체계 전체면이 자꾸 더 밝아지면 결국 구약성도의 중생시점과 같은 문제점은 언젠가 자동적으로 해결될 시점이 올 것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 교리 자체를 깨닫는 '확신'이라야 진짜 '확신'인데, 그 교리 자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곧 해결 될 문제로 '확신'하는 것은 물론 대단히 위험한 발상인 줄 압니다. 그러나 백영희조직신학의 안정성과 충분성은 적어도 이 구약성도의 중생시점 문제 정도는 그렇게 안심을 하고 대해도 된다는 것이 답변자의 현 마음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깨달아질 때가 곧 올 것이라는 점이 느껴지기 때문에 무리하게 한 쪽으로 단정하여 한 걸음 더 내딛다가 서툰 사람이 실수를 하는 것보다, 알려주시는 대로 알아 나가겠다는 것이 질문하신 '구약성도 중생의 시점'입니다.
보통 다른 사안에 대하여는, 답변자 체질과 성향은 이렇게 느긋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몇 가지 교리, 몇 가지 현실 교회 정치에 관련된 처신, 앞날에 대한 준비 등에 있어서는 한 걸음 먼저 나가는 것보다, 당신이 알려주실 때 따라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답변자의 수준입니다. 시대를 감당하던 종을 잃은 시대의 불행이면서 곧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곳에 홈을 통해 전면적으로 이 노선에 관한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제공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곳의 문제점이나 이곳이 깨닫는데 필요한 지적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3.질문자께서 이 신앙노선에서 가지는 고충을 질문 내용 뒷부분에서 읽었습니다.
질문자 외에도 같은 심정과 같은 입장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오늘 혼동의 시대 중에서, 과거 받은 은혜를 간직하는 분들이 곳곳에 계신다는 것이 아직도 이 시대가 희망이 있다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같은 심정일 것으로 생각하고 몇 말씀드립니다.
①백목사님의 설교 세계
이곳에서 제공하는 설교 자료들을, 어떤 분들은 백목사님 생전에 그의 육성으로 접했던 분들도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그분 사후 이곳에서 접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 해도, 이곳에서 제공하는 설교자료에서 신앙세계의 깊은 내면을 보신 분들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답변자가 처음 백목사님 설교를 접했을 때, 감동적인 면으로는 너무 기뻤고 감격했으나, 이론적으로는 온통 의문 투성이뿐이었습니다. 그후 접해갈수록 말씀의 은혜의 감동은 더욱 크게 받게 되었으나 그 형태는 조금 달랐습니다. 냄비 끓는 즉각적 뜨거움에서 시작해서 그 감동의 느낌이 점점 깊어지며 두터워져 마치 가마솥 곰국 끓듯했습니다. 그리고 세월 속에, 초기 의문 투성이었던 성경 해석, 교리, 신앙노선에 대한 모든 문제가 풀려서 지금은 이곳에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설교 말씀을 집중으로 들은 지 30년이 가까오고 있는데, 갈수록 그 감동의 깊이는 점점 더해가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이 신앙노선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 중에 가장 큰 근거가 바로 이 면입니다. 성경대로 바로 증거된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아니지만 마치 성경처럼 읽을수록 들을수록 점점 그 은혜가 더 크지고 더 깊어진다는 점입니다.
②들을수록 더 깊어지는 설교 세계
유명한 설교록이 많아서 모두들 부지런히 인용을 하고 있지만, 한 설교록을 가지고 한 목회자가 반복해서 몇십 번 몇백 번을 계속 읽는 설교록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읽을수록 더 은혜롭고 성경을 더 깊이 깨닫도록 해 준다는 경험담을 전하는 설교록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현재 답변자는 목회하는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면 교인들 중 조용히 기도하고 준비할 수 있는 분들에게 남녀를 불문하고 설교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시간에는 이곳 설교록을 몇 페이지 정도 조용히 읽거나 아니면 그 내용을 외우다시피 해서 차분하게 전해 보시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설교 말씀의 은혜 면으로 말한다면 담임목회자인 답변자 설교 때보다 교인들이 더 은혜를 받는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답변자는 이곳의 작업 등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씩 설교를 맡고 있는 교인들은 짧은 시간이라도 분명히 담임목회자 이상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설 것입니다. 설교에 들어간 준비와 집중이 목사보다 월등할 것이고, 그 설교 내용의 정확성은 설교록 이상의 설교가 없으므로, 말씀 은혜가 더 클 것은 분명한 이치입니다.
③오늘 혼동의 시대를 이 설교 은혜로 감당하셨으면
오늘 혼동의 시대를 맞은, 이 신앙노선의 모든 분들에게 참고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 교회나 한 공회가 전체적으로 바른 길을 갈 때는, 멋모르고 따라가도 훗날 생각해보면 자기 신앙발전에 주변 사람들 때문에 큰 도움을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스스로 눈을 부릅뜨고 조심하지 않으면 주변 때문에 집단 최면에 걸릴 시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옳고 그른 것을 바로 아는 일입니다. 알아도 이런 저런 인정과 사정과 이권 때문에 아는 것을 지킬 수가 없는데, 만일 알지도 못한다면, 전혀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삼분론] 영의 실체에 대해 여쭙습니다
제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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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일에 수고하시는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가운데 늘 제 마음에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오늘 이렇게 적어봅니다.
영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예약적 중생이라고 하고,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실상적인 중생이 이루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상 내게 필요한 것은 실상적으로 살아난 내 영만 잘 알고 있으면 되겠으나,논리라는 것이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타고 의심이 들어오기에 확실히 짚어두고 싶어서 그러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예약적 중생이기에 실질적으로는 영이 살아있지 않았다고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외부에서 마음에 직접 오가면서 있었고 우리는 영이 살아있기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영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영이 주인 또는 주권적인 위치이기에 영을 두고 성령이 직접 마음에 감동을 주어 움직인다고 하면 월권이라는 생각이 들고,
2.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라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이라 하신다는 것을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 영이 죽어 있었다면 실상 죽은자가 아닌지요?
그러나 예약적 중생이라는 의미가 실질적,실상적으로 영이 중생된 것이라면 위의 1,2 문제가 다 해결이 되겠고,다만 성령의 감화감동 역사가 신약의 성도들과 달라서 외부에서 역사하셨다라는 의미로 이해를 하고 있으면 됩니까?
아니면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배운교훈대로 사는데(우리가 신약성도중의 한사람이니까.)는 아직은 그다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영향이 적다는 뜻으로), 앞으로 제 머리에 면류관(흰머리)들이 점점 늘어가게되면 자연히 후배들에 대한 교훈,지도적인 위치가 되어질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이 교훈(총공회..)에 대한 외부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나름대로는 해주어야 할 것 같아 감히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현실적으로는 다들 외부 장로교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고, 또 이 교훈에 대한 이해정도는 도무지 안되어 있어 수집사님의 입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신앙으로 테레사수녀를 추천하고 있는 현실에서 제게도 그런 날이 있을지는 장담 못하나 적어도 광야를 거쳐온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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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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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일에 수고하시는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가운데 늘 제 마음에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오늘 이렇게 적어봅니다.
영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예약적 중생이라고 하고,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실상적인 중생이 이루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상 내게 필요한 것은 실상적으로 살아난 내 영만 잘 알고 있으면 되겠으나,논리라는 것이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타고 의심이 들어오기에 확실히 짚어두고 싶어서 그러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예약적 중생이기에 실질적으로는 영이 살아있지 않았다고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외부에서 마음에 직접 오가면서 있었고 우리는 영이 살아있기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영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영이 주인 또는 주권적인 위치이기에 영을 두고 성령이 직접 마음에 감동을 주어 움직인다고 하면 월권이라는 생각이 들고,
2.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라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 이라 하신다는 것을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 영이 죽어 있었다면 실상 죽은자가 아닌지요?
그러나 예약적 중생이라는 의미가 실질적,실상적으로 영이 중생된 것이라면 위의 1,2 문제가 다 해결이 되겠고,다만 성령의 감화감동 역사가 신약의 성도들과 달라서 외부에서 역사하셨다라는 의미로 이해를 하고 있으면 됩니까?
아니면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배운교훈대로 사는데(우리가 신약성도중의 한사람이니까.)는 아직은 그다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영향이 적다는 뜻으로), 앞으로 제 머리에 면류관(흰머리)들이 점점 늘어가게되면 자연히 후배들에 대한 교훈,지도적인 위치가 되어질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이 교훈(총공회..)에 대한 외부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나름대로는 해주어야 할 것 같아 감히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현실적으로는 다들 외부 장로교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고, 또 이 교훈에 대한 이해정도는 도무지 안되어 있어 수집사님의 입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신앙으로 테레사수녀를 추천하고 있는 현실에서 제게도 그런 날이 있을지는 장담 못하나 적어도 광야를 거쳐온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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