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공부나 건강을 두고 또 한번 새겨 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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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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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6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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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목사님 생전, 공회 노선에서 신앙생활하던 우리 모두의 문제점입니다.
이곳 답변자도 목회를 나오지 않았다면, 그 누구보다 앞서 질문하신 분들의 고민으로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른 면은 말고, 강단의 말씀에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빈몸만 예배당에 앉혔다가 오가는 병세로만 말한다면, 목회를 나온 분들은 다행입니다.
목회를 나온 분들은 그들의 소속과 입장 때문에 이곳에서 제공하는 백목사님의 설교 재독과 그 가치성을 향해 찬성도 하고 또 반대도 하지만, 뒤로는 이곳 설교 자료들을 부지런히 배끼고 복습해서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백목사님 설교라는 출처를 거의 다 감추어 일반교인들이 보면 거의 알지 못할 만큼 변신을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국수가 미장원 갔다 온다고 해서 라면되는 것은 아니듯이 그 설교 밑바탕에 흐르는 본질은 역시 이 교훈 이 복음입니다.
어쨌든, 목회를 나온 분들은 자신들이 설교를 하기 위해 설교록을 자꾸 접하게 되니까 자기들은 틀림없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남들에게 가르치려니까 그냥 앉아서 듣는 사람보다 10배 이상 노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바로 이 전하는 자가 가지는 특혜 때문에 목회자들은 말씀의 은혜를 어지간하면 유지하게 됩니다.
2.문제는 듣는 사람들입니다.
교인 신분으로 말씀을 듣기만 하는 분들은, 전하는 분들이 전하고 있는 자기 자신들만 은혜를 받아 감격하고 있을 때 그 감격을 그 전하는 분을 통해 전달받지를 못하고 그냥 극장에 구경꾼처럼 관람만 하는 정도입니다. 남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는데 자기는 옆에서 '저 사람들 맛있게 먹네!' 하는 정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회 교인들 중에서 과거 백목사님 생전의 말씀 분위기와 당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오늘 설교 시간을 너무 안타깝게 보내고 있는 분들을 향해 이곳이 소개할 길은 2가지입니다. 첫째 길은 앞에 답변에서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이는 평범하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하고 달리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길은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할 수 없는 길인데, 그래도 다 가능한 길이므로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목회자 설교에 은혜가 되지 않으면, 그런데 말씀의 은혜 때문에 갈급을 느낀다면, 그리고 꼭 이 갈증을 해결하여야 한다면,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일반 교인으로 걸어갈 정도가 너무 따분하여 머뭇거려진다면, 특효약 또는 비상약을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회를 나가면 됩니다. 목회를 나가지 못하겠거든, 교회 내에서 교인으로서도 목회직에 해당되는 직책을 찾거나 그런 형편을 마련하시면 됩니다. 반사 구역장 중간반사 등의 직책을 가지고 교회 내에서 고정적으로 설교를 할 수 있는 직책에 서게 된다면, 말씀 은혜에 대한 문제는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양만 부리는 딸을 여인으로 만드려면 대학의 가정학과를 보내는 것보다,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을 시켜 아이를 낳게만 하면, 그다음 여인이 되는 일은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사내아이를 군대에 보내 놓으면 그만 성년 남성이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3.설교자의 입장에 실제로 서 볼 수 있다면, 설교 은혜에 대하여 모든 면이 열릴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교인이 어떤 자세와 노력을 해야 설교에 은혜를 받게 되는지, 교인들이 설교자의 어떤 면을 이해해야 바른 교인노릇도 할 수 있고 또 말씀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또 그냥 듣고만 오는 교인 입장에서 설교자의 말씀이 왜 저렇게 은혜가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그 교인의 입장에서 꼭 시정해야 할 면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 단번에 다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주일학생들이 그들에게는 설교자의 입장에 있는 나로부터 말씀의 은혜를 어떻게 받는가? 내가 설교할 때 그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는가? 이런 면을 설교하는 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설교를 은혜롭게 하여 학생들이 설교 시간에 눈망울을 초롱거리고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 배운 말씀을 실행하는 일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런 설교를 할 수 있는 반사는 장년반 예배 때 자기 목회자에게 설교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가 맡은 주일학생들에게 설교를 준비하고 그 설교 때문에 접하고 있는 말씀의 은혜 때문에 실은 장년반 설교자의 설교와 별개로 발전기를 가동시키고 있으므로 말씀의 은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만일 자기 설교를 듣는 주일학생들이 자기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몸을 비틀고 한다면, 자기 학생들을 향해서 듣는 학생으로서 가질 노력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점을 단번에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학생들이 반사선생님의 설교 말씀을 들을 때 가지고 있는 그 문제점이 바로 반사 자신이 자기 목회자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원인과 동일합니다.
정상적인 양심을 가진 반사라고 한다면, 자기가 급할 때 한번씩 주일을 빼버린다면 자기가 맡은 학생들에게 어떤 설교를 해도 늘 그런 자기 내부 문제에 가책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너도 나처럼 급할 때는 주일날 교회 나오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설교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어려워도 주님께 맡겨라..... 이런 내용이 우리가 전하는 모든 설교입니다. 자기가 급할 때 주일을 빠지게 되면서 자기 학생들이 주일날 종종 빠지는 것을 볼 때, 그 선생님은 그 학생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고치고 돌아보는 아주 큰 수입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과거 주일을 급할 때 빼봤는데 이리 저리 손해가 되더라, 그리고 돌이키고 나니까 이렇게 은혜를 주시고 좋구나, 너희들도 주일을 꼭 지켜 보거라.... 이런 설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렇게 과거를 회개한 과정을 일일이 학생들에게 소개하지는 않아도 설교자 마음 속에 이런 자신의 부족과 회개와 순종의 경험을 가진 것이 깔려 있을 때, 그때 반사다운 반사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목회를 하고 또 설교를 하는 입장에 서는 사람의 복이 적지 않습니다.
4.최소한, 가정 예배라도 성실하게 인도해 보셨으면 합니다.
목회자의 설교가 은혜롭지 못하면, 그 원인을 고치기는 고쳐야 하지만, 일단 우선 먹고 살아야 생존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교회를 성급히 옮기는 것은 춥다고 따뜻한 물을 몸에 끼얹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목회자에게 은혜롭게 설교 하라고 대드는 것도 수많은 고장을 발생시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다고 굶어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설교를 할 수 있는 구역장이나 반사가 되는 것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교회의 일정과 조직을 움직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장 좋고 안전하고 뒷탈없고 그리고 좋기만 한 방법은 가정예배입니다. 이 가정예배는 교회에 맞서는 것도 아니고, 목회자에게 데모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표시나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이 알면 목회자에게 은혜를 받고 나니까 저렇게 가정예배까지 보는 정도로 신앙이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강단에서 받지 못하는 은혜를 대신하는 노력입니다. 가정예배는 너무 만만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조심없이 하기가 쉬우나, 그것은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비록 5분, 또는 특별한 날은 10분의 예배를 위해서 설교를 준비하는 자기가 강단에서 받지 못하는 말씀의 은혜를 나와 우리 가정 식구들에게라도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자세로 노력해 보셨으면 합니다.
5.문제는, 이 모든 방법들이 그렇게 어렵고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막상 첫걸음이 어렵습니다.
대저 신앙의 모든 문제점과 그 해결, 그리고 그 나아가야 하는 길은 초등학교 수학보다 쉽고 초등학교 국어보다 쉽습니다. 문제는 그 실행이 막상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실행조차도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거나 체력이 요구되는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너무 쉬운데, 너무 간단한데 그냥 안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부나 건강을 두고, 가장 좋고 간단하고 바로 가고 뒷탈없고 만인에게 내놓아도 옳다고 인정받을 길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세월을 허송하고, 훗날 입시전날, 또는 입원하게 되는 그날에야 서두니까 과거 조금씩 해 두었더라면 좋았을 일을 아주 큰 사건을 만들어 놓았고, 그것도 해결해야 본전을 못찾거나 아니면 아예 해결불능 상태를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5분만 일기를 쓰면 되는 것을 방학 한달 미루어두었다가 마지막날 한달치 일기를 쓰는 학생과 같은 문제점입니다. 영어 단어를 하루 5개씩만 외우면 중고교 6년간 1만개 단어를 외우게 되어 영어만 만나면 재미있고 입맛이 다셔질 것인데, 오늘 5개 외우지 못한 것을 내일 한다 모레 한다 하다가 1년치를 미루어 두고 300일에 나누어서 해야 할 일을 하루만 1500개 단어를 하려니까 불가능한 태산으로 보이게 됩니다. 건강도 평소 생활 습관으로 조금씩 조심하고 움직이면 될 것을 나중에는 수술을 해서 뼈를 부속교환하듯 하고 배르 째고 별별 주사를 다 놓아도 안되는 그런 상황으로 악화를 시킵니다.
이런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을 놓고 우리는 이번 문답을 통해 신앙생활에서 말씀의 은혜가 흐미해진 교인들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하여 마지막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비록 목회자가 실제로 말씀은혜를 끼치지 못해서 온 교인들이 다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해도, 위에서 말씀드린 여러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멀리 있는 방법이 아니지만 막상 시작을 하려니까 지금껏 눌러앉은 생활방식과 행동체계에 변화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차이피일 미루다가 결국 내가 조금 움직여서 최소한 해결법은 찾을 수 있는 것을 후일에는 아무도 해결못할 정도로 악화를 시켜놓고, 그 모든 책임은 목회자에게 돌리게 됩니다. 자기 목회자를 향해 무능하다고 큰소리를 치면 교인 중에서도 아주 유력한 교인이 되는 것같고 또 목회자급에 이른 신앙수준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교인들은 두말할 것 없이 목회를 나가야 할 교인들입니다. 아니면 주일학교나 중간반에서 설교를 맡아서 설교 세계를 한번 체험해 봐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어려우면 가정예배를 통해 내 가정만은 내가 지킨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봐야 합니다. 해보면 당장에 설교자를 이해하고 그리고 자기가 교인으로서 듣는 입장을 새로 가다듬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설교를 해보고도 과거 같은 자세나 발언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매를 가지고나 고칠 사람입니다.
평소 이곳은 목회자를 교인들보다 비교못할 정도로 많이 비판해왔기 때문에 교인으로서 최소한의 이런 노력과 자세를 가져보시라고 권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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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목사님 생전, 공회 노선에서 신앙생활하던 우리 모두의 문제점입니다.
이곳 답변자도 목회를 나오지 않았다면, 그 누구보다 앞서 질문하신 분들의 고민으로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른 면은 말고, 강단의 말씀에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빈몸만 예배당에 앉혔다가 오가는 병세로만 말한다면, 목회를 나온 분들은 다행입니다.
목회를 나온 분들은 그들의 소속과 입장 때문에 이곳에서 제공하는 백목사님의 설교 재독과 그 가치성을 향해 찬성도 하고 또 반대도 하지만, 뒤로는 이곳 설교 자료들을 부지런히 배끼고 복습해서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백목사님 설교라는 출처를 거의 다 감추어 일반교인들이 보면 거의 알지 못할 만큼 변신을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국수가 미장원 갔다 온다고 해서 라면되는 것은 아니듯이 그 설교 밑바탕에 흐르는 본질은 역시 이 교훈 이 복음입니다.
어쨌든, 목회를 나온 분들은 자신들이 설교를 하기 위해 설교록을 자꾸 접하게 되니까 자기들은 틀림없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남들에게 가르치려니까 그냥 앉아서 듣는 사람보다 10배 이상 노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바로 이 전하는 자가 가지는 특혜 때문에 목회자들은 말씀의 은혜를 어지간하면 유지하게 됩니다.
2.문제는 듣는 사람들입니다.
교인 신분으로 말씀을 듣기만 하는 분들은, 전하는 분들이 전하고 있는 자기 자신들만 은혜를 받아 감격하고 있을 때 그 감격을 그 전하는 분을 통해 전달받지를 못하고 그냥 극장에 구경꾼처럼 관람만 하는 정도입니다. 남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는데 자기는 옆에서 '저 사람들 맛있게 먹네!' 하는 정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회 교인들 중에서 과거 백목사님 생전의 말씀 분위기와 당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오늘 설교 시간을 너무 안타깝게 보내고 있는 분들을 향해 이곳이 소개할 길은 2가지입니다. 첫째 길은 앞에 답변에서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이는 평범하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하고 달리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길은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할 수 없는 길인데, 그래도 다 가능한 길이므로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목회자 설교에 은혜가 되지 않으면, 그런데 말씀의 은혜 때문에 갈급을 느낀다면, 그리고 꼭 이 갈증을 해결하여야 한다면,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일반 교인으로 걸어갈 정도가 너무 따분하여 머뭇거려진다면, 특효약 또는 비상약을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회를 나가면 됩니다. 목회를 나가지 못하겠거든, 교회 내에서 교인으로서도 목회직에 해당되는 직책을 찾거나 그런 형편을 마련하시면 됩니다. 반사 구역장 중간반사 등의 직책을 가지고 교회 내에서 고정적으로 설교를 할 수 있는 직책에 서게 된다면, 말씀 은혜에 대한 문제는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양만 부리는 딸을 여인으로 만드려면 대학의 가정학과를 보내는 것보다,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을 시켜 아이를 낳게만 하면, 그다음 여인이 되는 일은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사내아이를 군대에 보내 놓으면 그만 성년 남성이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3.설교자의 입장에 실제로 서 볼 수 있다면, 설교 은혜에 대하여 모든 면이 열릴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교인이 어떤 자세와 노력을 해야 설교에 은혜를 받게 되는지, 교인들이 설교자의 어떤 면을 이해해야 바른 교인노릇도 할 수 있고 또 말씀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또 그냥 듣고만 오는 교인 입장에서 설교자의 말씀이 왜 저렇게 은혜가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그 교인의 입장에서 꼭 시정해야 할 면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 단번에 다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주일학생들이 그들에게는 설교자의 입장에 있는 나로부터 말씀의 은혜를 어떻게 받는가? 내가 설교할 때 그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는가? 이런 면을 설교하는 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설교를 은혜롭게 하여 학생들이 설교 시간에 눈망울을 초롱거리고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 배운 말씀을 실행하는 일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런 설교를 할 수 있는 반사는 장년반 예배 때 자기 목회자에게 설교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가 맡은 주일학생들에게 설교를 준비하고 그 설교 때문에 접하고 있는 말씀의 은혜 때문에 실은 장년반 설교자의 설교와 별개로 발전기를 가동시키고 있으므로 말씀의 은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만일 자기 설교를 듣는 주일학생들이 자기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몸을 비틀고 한다면, 자기 학생들을 향해서 듣는 학생으로서 가질 노력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점을 단번에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학생들이 반사선생님의 설교 말씀을 들을 때 가지고 있는 그 문제점이 바로 반사 자신이 자기 목회자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원인과 동일합니다.
정상적인 양심을 가진 반사라고 한다면, 자기가 급할 때 한번씩 주일을 빼버린다면 자기가 맡은 학생들에게 어떤 설교를 해도 늘 그런 자기 내부 문제에 가책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너도 나처럼 급할 때는 주일날 교회 나오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설교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어려워도 주님께 맡겨라..... 이런 내용이 우리가 전하는 모든 설교입니다. 자기가 급할 때 주일을 빠지게 되면서 자기 학생들이 주일날 종종 빠지는 것을 볼 때, 그 선생님은 그 학생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고치고 돌아보는 아주 큰 수입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과거 주일을 급할 때 빼봤는데 이리 저리 손해가 되더라, 그리고 돌이키고 나니까 이렇게 은혜를 주시고 좋구나, 너희들도 주일을 꼭 지켜 보거라.... 이런 설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렇게 과거를 회개한 과정을 일일이 학생들에게 소개하지는 않아도 설교자 마음 속에 이런 자신의 부족과 회개와 순종의 경험을 가진 것이 깔려 있을 때, 그때 반사다운 반사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목회를 하고 또 설교를 하는 입장에 서는 사람의 복이 적지 않습니다.
4.최소한, 가정 예배라도 성실하게 인도해 보셨으면 합니다.
목회자의 설교가 은혜롭지 못하면, 그 원인을 고치기는 고쳐야 하지만, 일단 우선 먹고 살아야 생존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교회를 성급히 옮기는 것은 춥다고 따뜻한 물을 몸에 끼얹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목회자에게 은혜롭게 설교 하라고 대드는 것도 수많은 고장을 발생시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다고 굶어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설교를 할 수 있는 구역장이나 반사가 되는 것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교회의 일정과 조직을 움직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장 좋고 안전하고 뒷탈없고 그리고 좋기만 한 방법은 가정예배입니다. 이 가정예배는 교회에 맞서는 것도 아니고, 목회자에게 데모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표시나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이 알면 목회자에게 은혜를 받고 나니까 저렇게 가정예배까지 보는 정도로 신앙이 발전해 나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강단에서 받지 못하는 은혜를 대신하는 노력입니다. 가정예배는 너무 만만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조심없이 하기가 쉬우나, 그것은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비록 5분, 또는 특별한 날은 10분의 예배를 위해서 설교를 준비하는 자기가 강단에서 받지 못하는 말씀의 은혜를 나와 우리 가정 식구들에게라도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자세로 노력해 보셨으면 합니다.
5.문제는, 이 모든 방법들이 그렇게 어렵고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막상 첫걸음이 어렵습니다.
대저 신앙의 모든 문제점과 그 해결, 그리고 그 나아가야 하는 길은 초등학교 수학보다 쉽고 초등학교 국어보다 쉽습니다. 문제는 그 실행이 막상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실행조차도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거나 체력이 요구되는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너무 쉬운데, 너무 간단한데 그냥 안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부나 건강을 두고, 가장 좋고 간단하고 바로 가고 뒷탈없고 만인에게 내놓아도 옳다고 인정받을 길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세월을 허송하고, 훗날 입시전날, 또는 입원하게 되는 그날에야 서두니까 과거 조금씩 해 두었더라면 좋았을 일을 아주 큰 사건을 만들어 놓았고, 그것도 해결해야 본전을 못찾거나 아니면 아예 해결불능 상태를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5분만 일기를 쓰면 되는 것을 방학 한달 미루어두었다가 마지막날 한달치 일기를 쓰는 학생과 같은 문제점입니다. 영어 단어를 하루 5개씩만 외우면 중고교 6년간 1만개 단어를 외우게 되어 영어만 만나면 재미있고 입맛이 다셔질 것인데, 오늘 5개 외우지 못한 것을 내일 한다 모레 한다 하다가 1년치를 미루어 두고 300일에 나누어서 해야 할 일을 하루만 1500개 단어를 하려니까 불가능한 태산으로 보이게 됩니다. 건강도 평소 생활 습관으로 조금씩 조심하고 움직이면 될 것을 나중에는 수술을 해서 뼈를 부속교환하듯 하고 배르 째고 별별 주사를 다 놓아도 안되는 그런 상황으로 악화를 시킵니다.
이런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을 놓고 우리는 이번 문답을 통해 신앙생활에서 말씀의 은혜가 흐미해진 교인들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하여 마지막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비록 목회자가 실제로 말씀은혜를 끼치지 못해서 온 교인들이 다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해도, 위에서 말씀드린 여러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멀리 있는 방법이 아니지만 막상 시작을 하려니까 지금껏 눌러앉은 생활방식과 행동체계에 변화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차이피일 미루다가 결국 내가 조금 움직여서 최소한 해결법은 찾을 수 있는 것을 후일에는 아무도 해결못할 정도로 악화를 시켜놓고, 그 모든 책임은 목회자에게 돌리게 됩니다. 자기 목회자를 향해 무능하다고 큰소리를 치면 교인 중에서도 아주 유력한 교인이 되는 것같고 또 목회자급에 이른 신앙수준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교인들은 두말할 것 없이 목회를 나가야 할 교인들입니다. 아니면 주일학교나 중간반에서 설교를 맡아서 설교 세계를 한번 체험해 봐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어려우면 가정예배를 통해 내 가정만은 내가 지킨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봐야 합니다. 해보면 당장에 설교자를 이해하고 그리고 자기가 교인으로서 듣는 입장을 새로 가다듬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설교를 해보고도 과거 같은 자세나 발언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매를 가지고나 고칠 사람입니다.
평소 이곳은 목회자를 교인들보다 비교못할 정도로 많이 비판해왔기 때문에 교인으로서 최소한의 이런 노력과 자세를 가져보시라고 권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설교] 제가 다니는....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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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회 교인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저는 존경합니다...
또 저는 그분이 귀한 하나님의 종 임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분에 설교를 들으면 은혜가 되질않습니다..
다른분들은 은혜를 받는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저는
예배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은혜가 되질 않습니다...
이럴땐 어떻게 하여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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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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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회 교인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저는 존경합니다...
또 저는 그분이 귀한 하나님의 종 임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분에 설교를 들으면 은혜가 되질않습니다..
다른분들은 은혜를 받는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저는
예배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은혜가 되질 않습니다...
이럴땐 어떻게 하여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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