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와 새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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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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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9 02:11
새벽예배를 안드리는 교회들이 종종 보입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는 이유와 새벽예배는 안드리고 일어난대로 교회에서나 집에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의 차이를 알고싶습니다.
1. 교회의 흥망 징표
의사는 혈압, 당뇨, 체중, 나이 등을 보면서 건강의 전체 흐름을 읽습니다. 수치가 전부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건강한지 아니면 쇠약해 지는지, 교회가 죽어 가는지 살아 나고 있는지? 가장 쉽게 표시 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새벽예배입니다. 넓게 보면 한 주간의 예배 전체를 보면 압니다. 가장 극단적으로 살필 수 있는 것은 주일 오전과 새벽예배입니다. 주일 오전 예배는 예배의 시작이고 새벽예배는 예배의 끝 모습입니다.
범위를 넓히면 그 교회의 예배 시간의 모습니다. 뛰고 놀고 웃게 하니까 재미가 있어 교회를 나오게 되는 예배와 출석은 일단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살아 나고 있는 징표로 볼 수 없습니다. 또 이왕이면 교회를 통해 사교나 사회 생활에 필요한 정보나 사람을 알려는 것도 배제할 일입니다.
2. 주일과 새벽 예배
새벽 예배가 살아 있으면 이 교회는 심장이 건강하게 뛰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마음 먹으면 일어 섭니다. 주일 오전 예배가 살아 있으면 이 교회는 펄펄 뛰는 교회입니다. 새벽이 없고 주일 오전만 왕성하면 심장이 약하니 펄펄 뛰어 봐야 속으로는 비어 있습니다. 새벽이 강하나 주일 오전이 쇠퇴하면 심장은 좋으나 스러지고 있는 중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는 주일 오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 ~ 25% 교인이 새벽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순복음교회와 세계 손꼽는 어느 교회라도 감히 넘어 볼 수 없는 수치입니다. 목사 장로 몇 사람의 가족 중심 교회라면 몰라도 100명이 넘는 교회라면 이런 수치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가 넘치면 불신자를 전도하고 신앙 어린 사람을 길러 간다는 표시입니다.
새벽 예배가 넘치면 그 교회의 심장과 핵심이 힘을 가지고 살아 있다는 표시입니다.
3. 교회가 쇠퇴해 갈 때
새벽 예배가 먼저 후퇴를 합니다. 모이는 숫자가 적으면 개인 기도회로 돌리거나, 부목을 시킵니다. 이미 새벽 예배를 포기한 셈입니다. 그 다음 밤예배가 그 뒤를 따릅니다. 그리고 주일의 다른 예배들이 그렇게 됩니다.
4. 새벽에 자기 집에서
굳이 교회로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각자 새벽에 기도를 한다면?
이 논리는 주일 예배도 각자 집에서 드리는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필연적입니다.
이 2가지의 장단점과 효력은 실제 시행을 해 보면 압니다. 교회로 가는 주일 예배와 집에서 방송으로 보는 경우, 새벽에 교회로 가서 드리는 기도와 집에서 드리는 기도. 주님이 매양 새벽에 막11:19에서 산으로 기도를 가신 이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만유주 하나님이시라도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형식, 외형, 절차, 모습... 등을 불편해 하지만 그 것에 매여 내용을 손해 볼 때 그 형식이 외식입니다.
형식, 외형, 절차, 모습이라는 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 만들 때는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자라 가도록 돕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반대로 사용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의사는 혈압, 당뇨, 체중, 나이 등을 보면서 건강의 전체 흐름을 읽습니다. 수치가 전부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건강한지 아니면 쇠약해 지는지, 교회가 죽어 가는지 살아 나고 있는지? 가장 쉽게 표시 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새벽예배입니다. 넓게 보면 한 주간의 예배 전체를 보면 압니다. 가장 극단적으로 살필 수 있는 것은 주일 오전과 새벽예배입니다. 주일 오전 예배는 예배의 시작이고 새벽예배는 예배의 끝 모습입니다.
범위를 넓히면 그 교회의 예배 시간의 모습니다. 뛰고 놀고 웃게 하니까 재미가 있어 교회를 나오게 되는 예배와 출석은 일단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살아 나고 있는 징표로 볼 수 없습니다. 또 이왕이면 교회를 통해 사교나 사회 생활에 필요한 정보나 사람을 알려는 것도 배제할 일입니다.
2. 주일과 새벽 예배
새벽 예배가 살아 있으면 이 교회는 심장이 건강하게 뛰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마음 먹으면 일어 섭니다. 주일 오전 예배가 살아 있으면 이 교회는 펄펄 뛰는 교회입니다. 새벽이 없고 주일 오전만 왕성하면 심장이 약하니 펄펄 뛰어 봐야 속으로는 비어 있습니다. 새벽이 강하나 주일 오전이 쇠퇴하면 심장은 좋으나 스러지고 있는 중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는 주일 오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 ~ 25% 교인이 새벽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순복음교회와 세계 손꼽는 어느 교회라도 감히 넘어 볼 수 없는 수치입니다. 목사 장로 몇 사람의 가족 중심 교회라면 몰라도 100명이 넘는 교회라면 이런 수치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가 넘치면 불신자를 전도하고 신앙 어린 사람을 길러 간다는 표시입니다.
새벽 예배가 넘치면 그 교회의 심장과 핵심이 힘을 가지고 살아 있다는 표시입니다.
3. 교회가 쇠퇴해 갈 때
새벽 예배가 먼저 후퇴를 합니다. 모이는 숫자가 적으면 개인 기도회로 돌리거나, 부목을 시킵니다. 이미 새벽 예배를 포기한 셈입니다. 그 다음 밤예배가 그 뒤를 따릅니다. 그리고 주일의 다른 예배들이 그렇게 됩니다.
4. 새벽에 자기 집에서
굳이 교회로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각자 새벽에 기도를 한다면?
이 논리는 주일 예배도 각자 집에서 드리는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필연적입니다.
이 2가지의 장단점과 효력은 실제 시행을 해 보면 압니다. 교회로 가는 주일 예배와 집에서 방송으로 보는 경우, 새벽에 교회로 가서 드리는 기도와 집에서 드리는 기도. 주님이 매양 새벽에 막11:19에서 산으로 기도를 가신 이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만유주 하나님이시라도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형식, 외형, 절차, 모습... 등을 불편해 하지만 그 것에 매여 내용을 손해 볼 때 그 형식이 외식입니다.
형식, 외형, 절차, 모습이라는 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 만들 때는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자라 가도록 돕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반대로 사용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개신교계에서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전통이나 전승을 의도적으로 거부함을 감안하면, 적어도 한국 개신교계의 대대적인 새벽기도는 그리스도교 전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된 시간경은 새벽만이 아니라 정오, 일몰 때 등 하루 중 여러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라고 강조하므로, 한국 개신교의 새벽기도와 차이가 있다. 예수의 새벽기도도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쁜 일정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서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 아버지와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걸 최우선순위로 삼았다는 게 강조점이지 반드시 새벽에 드리는가는 쟁점이 아니었으며, 이는 오히려 기도 ‘모임’ 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안 띄고 1:1로 하는 비밀기도였음이 핵심이라 오히려 마태오의 복음서 6장 5~6절[6]의 가르침에 더 가깝다. 새벽기도 자주 참석하는 것 자체를 자기 신앙의 자랑거리로 삼기 위해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성경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최악의 궁합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