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생각할 수 있는 몇까지 방향만 안내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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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생각할 수 있는 몇까지 방향만 안내해 보겠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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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생각 하나가 바뀌면 너무 쉬운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쉬운 생각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듣지 마셨으면 합니다. 서로가 어떤 면은 내가 그 쉬운 생각 하나를 깨닫지 못해서 평생 엉뚱한 짓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상대방이 그런 모습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기능구원면을 두고는 이 신앙노선의 시각이 쉬운 것을 쉽게 깨달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외에 다른 많은 면에서는 일반 교회가 그렇게 쉽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을 이 노선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여 수도없는 불미스런 행동을 했던 것이 있습니다.


2.이 문제는 이미 이곳 홈을 통해 수없이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더 이상 글을 적을 정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방향을 바꾸어보시면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이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성경 전체가 해결된다고 볼 만큼 이 깨달음은 오늘 교회에게 성경 전체를 생활 속에 실제 성경이 되도록 하는 교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혹시 이곳에서 추가 설명이 필요할 내용이나 주장이 있을 때는 일일이 설명을 하겠지만, 현재는 다른 촉급한 업무가 있어 이미 충분히 설명된 내용에 대하여는 질문자께 다시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지 못함을 일단 양해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좋기는, 질문자께서 좀 불편하시더라도, 이곳이 설명하는 기능구원론에 대하여 외부인으로 부정적 선입견을 가진 상태에서 출발하지 마시고, 그런 과거 입장을 완전히 없애고 순수하게 이쪽 입장에서 차분하게 다시 하나씩 살펴보시면 일단 이곳의 입장을 이해하시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신 다음 양쪽 의견을 함께 놓고 최종 판단하셨으면 보다 객관적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곳은 여기서 소개하는 모든 깨달음과 신앙노선을 그 반대편의 주장을 냉정하게 놓고 다시 비교해 보지 않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즉 기능구원을 두고 만일 반론을 한다면 이런 내용으로 반론하게 될 때 기능구원을 주장하는 측에서 정말 설명이 어렵겠다고 생각되는 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면을 지적하는 분들은 뵙지를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제기되는 반론은 너무 간단한 면의 오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3.질문 내용 중에서 몇 가지 설명을 드렸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옛사람으로 살면서 새사람으로 동시에 살 수 있나요?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동시에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새사람에서 옛사람으로 또 옛사람으로 살다가 새사람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우리 속에서 수없는 갈등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마치 전쟁의 최종 승리는 이쪽이 할 수도 있고 저 쪽이 할 수도 있으나 그 과정에서는 밀고 밀리는 반복이 많이 있고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 최종 승리자가 가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옛사람과 새사람의 투쟁은 성경 전체를 통해 가르치고 또 그 투쟁 속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을 가르치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 순간은 이쪽이 이기듯이 이 순간은 새사람이 되었다가 그 다음 순간은 좀 후퇴하면서 아군이 퇴각하듯이 또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반복이 많습니다. 하루에 490번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성경은 구체적으로 수치까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오늘 교회를 갈까 놀러갈까 하는 망설임을 할 때는 불과 몇 분 사이에 옛사람과 새사람이 몇 번씩 교차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교회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면 그 문제에 관하여는 최종적으로 새사람이 이겨 그가 새사람으로 그 주일을 지키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날 그렇게 되기까지는 계속해서 새사람 상태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옛사람과 새사람이라는 한몸에 두인격의 문제

>가 아니라 한 인격체 안에 있는 사람의 성품과 성향 지위에 대한 표현를 말하

>는 것이지 두 인격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말이 아닌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인격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인격의 의미를 좀더 깊이 명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명상이라는 뜻은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을 중앙에 두고 그 말씀을 여러 각도와 형편에서 둘러보고 그 말씀 주변을 맴돌며 그 말씀을 살피는 것입니다. 현재 일반 교리가 인격을 정의하거나 사랑을 정의하거나 하는 등으로 성경의 중요한 성구표현이나 교리표현을 정의할 때 세상 사전과 철학적 관념에 너무 오랜 세월 포로로 잡혀 있어 그 생각하는 바탕 자체가 너무 세상적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인격, 우리가 일반 사회에서 주고받는 그런 인격의 개념을 일단 버리시고, 성경이 말하는 사실 내용을 먼저 조용히 살핀다음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를 택할 때 그 용어가 뜻하는 범위를 성경 범위로 조절했으면 합니다.


한 사람 안에 인격이 둘이라고 한다면 누가 들어도 미쳤거나 아니면 돌연변이가 되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경은 중생 된 우리 속에는 옛사람과 새사람의 자기 내부 투쟁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그 자기 내부 투쟁의 두 존재를 이곳에서는 각각 인격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 두 사람을 통틀어서 인격이라고 표현하는 분이 있다면, 이곳의 주장 자체를 틀렸다고 할 것이 아니고 이곳이 사용하는 단어와 반론하시는 분이 사용하는 단어가 서로 다른 단어라고 생각하시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마치 일본의 '총리'와 우리나라의 '총리'는 단어는 꼭같지만 전혀 다른 단어인 것과 같습니다.


>그 심신이 지옥에서 형벌받는중에 이 불꽃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하는 말을 하

>는 주체는 심신일텐데 중생한 영은 아브라함품에서 쉼을 누리고 아무런 기능

>구원공로없는 심신은 형벌을 받으면서 호소하고 있는데 그러면 부자라는 한

>사람이 두 인격으로 나누워지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드렸더니 심신도 말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바람에게도 명하매 잠잠해졌다고 예를 드시면

>서 마치 바람에게도 인격이 있는것처럼 답변해주셨습니다.


대화가 진행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일단 상대방이 발언한 내용 자체를 바로 파악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곳 신앙노선을 이단으로 비판했던 분들이 다 한국교계 이단 전문가로 첫 손을 꼽던 분들인데 그분들이 다른 이단들을 대할 때는 대부분 바로 상대해서 크게 이름을 얻었으나 백영희신앙노선을 상대할 때는 표현 자체조차 바로 파악하지 못해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크게 실수를 하고 사과를 하고 취소를 하여 왔습니다.


바람에게 인격이 있는 것처럼 답변했다고 하는 질문자의 파악은, 죄송한 표현이지만, 크게 오해하셨습니다. 이곳 답변자의 설명 자체를 바로 읽는 것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첫째 원인은 이곳 답변자의 설명이 어려워서 읽는 사람들이 난해하다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교리 문제이므로 비록 답변자 발언이 어렵게 표현되었다 해도 질문자께서는 잘 읽어보셨어야 했고 또 난해하거나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재질문을 통해 우선 확실히 해두셨어야 했습니다.


천국에 간 성도들이 자기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심신의 죄의 기능을 지옥에 버렸다면, 그 죄짓던 심신의 기능이 호소하는 문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인가? 인격이 없으면 호소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인가? 돌들도 발언권이 주어지고 만물이 호소하고 품꾼의 삯이 소리지른다고 한 것이 성경인데 이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는가 라고 설명을 했을 것입니다.


검색을 통해 과거 오간 문답을 찾아볼 수도 있지만 일부로 찾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어떤 분이 어떻게 말씀하셔도 이곳이 발언하는 각도가 일관되고 그 발언에 대한 성경 전체적 뒷받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돌이 소리를 내고, 나귀가 소리를 낸다는 것과 인격은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를 인격이라고 한다면 사람만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물에게는 인격이라는 것이 해당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인격을 가진 존재만 발언권을 가졌느냐고 반문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새나 짐승이 자기 의사 표현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인격을 가졌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인격도 없는 동물이 어떻게 자기 주장을 하느냐고 말한다면 이는 이곳에서 대화할 문제가 아니고 먼저 우리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신 자연세계를 조용히 한번 관찰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6장 29절과 31절 본문에도 분명히 주님께서 저희에게 모세

>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듣

>지 아니하면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도 권함을 받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분명 부자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 곧 외면적 유대인이

>요 육신의 이스라엘사람이지 결코 참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아니요 남은 자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다고 봅니다.


윗글은 질문자께서 일반 신학의 시각이 아직까지 더 잘 와닿는다는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소개하신 내용은, 죽은 자가 살아나가서 말을 하면 현재 세상에 유력한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믿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이고, 거기 대해서 성경은 죽은 자가 살아 나가서 실제 자기가 겪은 지옥 이야기를 다 해주어도 믿지 않을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자에게 믿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와 그런 차원의 말씀은 그 사람에게 맞게끔 하나님께서 오늘도 다 각각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천지를 지은 하나님 당신이 직접 오셔서 내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해도 오히려 십자가에 죽여버렸습니다. 모세 뿐이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직접 증거해도 믿지 않는 것이 불신자들이고, 또한 오늘 믿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우리 거의 전부 목회자들이 현저하게 저질의 죄를 짓고 있는데 이런 우리들에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와서 지옥체험담을 말한다고 해도 듣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들을 사람은 현재 각자에게 보내놓은 어떤 종류의 말씀 전하는 사람을 통해서라도 성령은 역사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어쨌든, 일반 신학이 영과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또 믿은 이후에 건설되는 구원과 믿는 순간 공통으로 주어진 기본구원을 이해하지 못하며 믿은 사람이 평생 믿어가면서 자기 속에 쌓아놓은 죄의 기능과 그 죄의 기능의 영원 후가 어찌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현재 일반 신학 체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려운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이곳의 시각입니다. 질문자께 요청드리고 싶은 것은, 이곳에서 설명하는 내용들은 일반 신학서적을 아무리 살펴도 너무 신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이곳 주장에 대하여 반론할 자료조차 거의 없습니다. 그냥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선입관념과 너무 다른 주장이 나오니까 대부분 일단 반대발언을 먼저하는 경향을 다른 분들에게서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성장해 나간 이후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기능구원]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재질문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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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으로 살면서 새사람으로 동시에 살 수 있나요?


결국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요?

옛사람으로 일초를 사는 그 순간은 결코 새사람으로는 그 일초를 동시에 살수 없는 것이 성경법이라고 봅니다.


아무도 옛사람으로 살면서 동시에 새사람으로는 단 일초도 살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옛사람과 새사람이라는 한몸에 두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격체 안에 있는 사람의 성품과 성향 지위에 대한 표현를 말하는 것이지 두 인격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말이 아닌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내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지체속에서 한 다른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운다고 했는데 ... 그래서 나는 곤고한 자라고 했는데 여기서 내 속사람은 나와 동일인을 가리키는 것이고 내지체속에서 한 다른법은 죄의 영향을 받는 악성악령악습을 포함하는 옛사람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지 한 인격안에 있는 또다른 인격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지난번 누가복음에서 부자가 아브라함을 아버지여 했음으로 부자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심신이 지옥에서 형벌받는중에 이 불꽃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하는 말을 하는 주체는 심신일텐데 중생한 영은 아브라함품에서 쉼을 누리고 아무런 기능구원공로없는 심신은 형벌을 받으면서 호소하고 있는데 그러면 부자라는 한 사람이 두 인격으로 나누워지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드렸더니 심신도 말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바람에게도 명하매 잠잠해졌다고 예를 드시면서 마치 바람에게도 인격이 있는것처럼 답변해주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한 바람이나 물질계에 어떤 인격성이 있어서 그리하신 것이 아니고 물질계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이의 권능에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바람이 들을만한 인격성이 있다는식으로 붙이면 않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6장 29절과 31절 본문에도 분명히 주님께서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도 권함을 받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분명 부자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 곧 외면적 유대인이요 육신의 이스라엘사람이지 결코 참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아니요 남은 자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다고 봅니다.


아버지여 하고 부자가 말한 것은 아브라함이 육신의 조상인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니 그면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빌립보서에서도 믿지 않는자들도 예수를 주라 시인한다고 했습니다. 믿는자들이 시인하는 주님이나 불신자들이 시인할 주님이나 같은 분이 아닙니까?

다만 믿고 안믿고 문제에 달려있어서 심판주냐 구원주냐는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다시말하면 고백의 내용은 정반대이지만 주라 시인하는 것은 모두 고백하는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자도 지옥에서 아브라함이 육신의 조상인것은 부인할수 없으니 구원받아서 아버지여 한것이 아니고 육신의 조상관계로 아버지여 불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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