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볼 만한 곳입니다. 못 하나도 그냥 박아본 적이 없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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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볼 만한 곳입니다. 못 하나도 그냥 박아본 적이 없던 곳입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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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보지 않은 세월이 벌써 10년이 훨씬 넘습니다.


그래도 늘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백목사님 당시 모습이 큰 틀로 유지되고 있을 것이고, 다만 이곳 저곳 손을 보고 바꾼 곳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 홈의 /연구실/자료/사진/에 올려놓은 모습을 가지고 참고한다면 바뀐 부분은 그런 줄 알고, 또 원래 모습은 그 모습대로 그려보는데 별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은 유명한 건축가입니다. 그 예배당 건물을 지을 때 모래와 시멘트와 자갈과 물을 섞으면서 10번 이하로 섞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대개 건설현장에서는 3-4번이고 많으면 5번 정도입니다. 시멘과 모래와 물이 단 한 점도 섞이지 않은 것이 없도록 완전하게 비벼서 콘크리이트를 했기 때문에 그 강도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 콘크리이트 내부에 들어간 철근의 굵기와 간격 등 철근설계도 직접 했던 분입니다. 단언코 그 건물 건축 당시 콘크리이트 구조물로는 국내 최강일 것입니다. 지하철공사 때문에 건축전문가들이 안전진단차 왔다가 혀를 내두르고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큰 예배당 건축에 들어간 세멘트가 몇 부대이며 자갈이 몇 차분량이며 문고리가 몇 개라고 단 머리속에 넣고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집을 짓기 전에 마음 속에서 100번도 더 집을 건축했다가 설계변경했다가 다시 건축해본 분입니다.


이것이 백목사님의 건축공사의 내면인데, 그 예배당 건물의 이런 내부가 바로 그분이 평생 걸어간 자기의 신앙내면이고 그분이 목회한 목회 내면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실리 실무 내실 내면적입니다. 계산적이며 정밀하며 빈틈이 없으며, 가치의 우선순위가 확실했던 분입니다. 그 예배당의 의자도 백목사님의 작품입니다. 강단 모습도 지금은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말씀 하나로 이 시대 이 광야를 외치던 선지자의 모습이었습니다.


2.가 보신 그 예배당은 백목사님 마지막 가실 때까지 냉난방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 하나 없이 히타 하나 없이 온 교인들이 발밑이 얼어붙는데도 말씀에 붙들려 눈과 가슴은 뜨거워 불타올랐고 발끝은 최전방 근무서는 군인의 발끝처럼 얼어붙어 마치 한 사람의 인체가 둘로 나뉘어 있는 듯 했습니다. 남반은 8명, 여반은 9명씩 앉던 의자에 단 1명도 빈틈없이 꽉꽉 차서 앉으면 한여름에는 어깨와 어깨를 마주하며 서로의 땀이 양쪽에서 쏟아져 내리고 뜨거운 김이 쉰냄새를 뿜어내고 있어도 부채 붙이는 사람 하나없이 숨을 죽이고 강단에서 쏟아지는 말씀을 하나라도 놓칠까 하여 전부 필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분에 넘치도록 많이 낳도록 가르쳐 사방에서 아이들은 울어대고 칭얼거려도 그 소리는 그 소리대로 다른 차원으로 돌아다녔고 귀를 통해 쏟아지는 말씀에 팔려 모든 교인들은 숨소리를 죽여가며 말씀을 따라 한 시간 내내 이 세상이 모르는 전혀 다른 세계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6.25전쟁의 순교현장에서 자신들이 말씀으로 죽어야 하는 순간을 맞기도 했고, 때로는 신사참배 당시로 돌아가서 옥고 속에 인내로 버티기도 했으며, 광야 40년 한복판에 있기도 했고, 다니엘과 함께 사자굴에도 들어갔었습니다. 5천여 명 전교인을 데리고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성령에 붙들려 그분은 양무리를 빈틈없이 먹이고 기르고 가르쳤습니다. 그곳이 바로 가보신 그곳입니다.


그분 말씀 중에서 기념관에 관련된 주의 말씀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분이 가신던 1989년 당시, 그 예배당을 그대로 고정시켜놓고 신앙박물관으로 용도변경을 했을 것입니다.


3.건물은 건물일 뿐입니다.


신약은 성전의 개념이 하나님 함께 하시는 바로 그 순간 그 성도가 성전이며 예배당은 성전이 되기 위해 모인 성도들에게 성전이 되도록 말씀을 가르치는 장소적 의미가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던 때를 조금이라도 그리워하고 그때를 사모하며 그때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서부교인들의 노력이 과거 예배당의 변경을 최소화하는 노력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문제지 건물이 문제냐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지워가다 보면, 보이는 것만 변경되는 것이 아니고 바꾸면 안 될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함께 쓸려나기는 묘한 문제가 있습니다. 한 시대를 하나님께 책임맡고 성실하게 충성했던 종이, 건물의 구석 하나, 문고리 하나, 심지어 못 하나를 박아도 많은 면을 고려했던 그 건물입니다. 스피커를 달기 좋은 위치가 있어 생각없이 망치를 들고 있는 기사에게 아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좀더 생각해 보자고 미루어 두고, 예배당 안에 못 박는 문제 하나로 기도하고 연구하는 그 모습에서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임을 크게 배웠던 그런 기억들이 수도 없습니다.


세상이 과거지우기에 정신이 없고, 젊은 사람이나 후임이나 잘난 사람들은 먼저 걸어갔던 자기 과거와 자기 오늘을 있게 한 인물들을 향해 이를 갈아대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어서 잘 모르겠으나, 설마 현재 서부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분들이 복이라는 것을 아실 것이니 모든 면에서 두려움과 조심을 가지고 못 하나도 살펴보고 문고리 하나 교체에도 수없는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4.서부교회 건물 때문에 얽힌 이야기는 질문자처럼 모두들 그렇게 많습니다.


서부교회 담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서부교회가 어디냐고 묻기를 5번 했다는 사람도 있고 10번 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배당과 골목 하나 2층집 하나 사이에 있는 연구소 건물을 찾는데 20분 걸렸다는 말이, 서부교회를 방문해 봤던 분들은 다 자기들 기억일 것입니다.


목회자 양성원에 걸려있는 현수막 내용이 벌써 5년 정도째 계속 그렇게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치울 때가 되었는데, 마구 웅크리고 있어야 그 건물을 노리는 건너편 반대측이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 그렇게 하겠지만, 남을 치기 위해 인상을 웅크리고 있으면 자기 뱃속에 장기들이 전부 절단나는 이치는 모르는 듯 합니다.


현재 차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웅크리고 경계를 하라고 골목 건너편에서는 한번씩 그 건물 앞에 가서 집단 기도를 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연구를 하니까 장군멍군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떠나고 인간의 깡다귀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빼고난 유대인은 유대교가 되었듯이 백목사님의 교훈이 없어진 양성원건물에는 경고용 플래카드가 있었다고 짐작됩니다.


5.건물과 관련해서 얽힌 많은 일화들을 신앙참고를 위해 적고 싶으나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인물] 한달여 전과 이틀전 '서부교회'를 다녀왔습니다.
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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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설레이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보았습니다.

몇 백억원을 들여 최신의 현대적인 감성으로 지어놓은 화려한 교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볼품없었지만 마치 한그루 노송과 같은 모습으로 가리워져있는 세상에 한 줄기 빛과 같이 지그시 비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선 백영희 목사님께서 성령의 영감을 통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시던 강단을 보고 싶어 2층 본당에 올랐습니다. 예배당 전면에 1.5미터 높이로 우뚝 솟아있는 강단을 위시하여 목조의자가 빈틈없는 칼줄을 자랑하듯이 일렬로 서있었고 의자와 의자의 사이는 무척이나 좁았습니다. 강단을 감히 오르지 못하고 강단 바로 아래에 있는 의자에서 잠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2층, 3층, 4층까지 천천히 올라보았습니다. 특이한 점은 옛날 봉창문이 그대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4층은 문이 잠겨있어 오르지 못했습니다. 길을 잘못 든 것인지 각층의 입구가 무척이나 좁아보였습니다.

1층에는 연경실, 서기부등이 있었고, 다른 건물 2층에 교회사무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남자용 소변기가 없어 나와보았더니 여자용 화장실이었고, 바로 앞에 수위실에서 관리하시는 분께서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어찌나 무안하던지, 아직도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백영희목회연구소는 찾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20분이상을 묻고 찾아다니다가 겨우 발견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록을 비롯해 소책자등을 몇권 구입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매진된 설교록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목회자 양성원은 폐쇠가 되어있었습니다. 문은 철망으로 봉인되었고, 현수막이 하나 있었는데, 백영희 목사님의 생전 목회자 양성원의 노선에 대해 염려하시는 글이었습니다.


짧은 시간 둔필로 생각없이 써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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