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하나님의 신'은 어느 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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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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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09:32
창1:2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했는데,
설교록 '89.5.11, 목요일 새벽'에는 .... 그때에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흑암 깊은 곳 수면에 운행하셨다’ 거게 다니셨다, 창조 된 창조물 거게 하나님이 다니셨다 이렇게 했는데 그때에 다니신 하나님은 곧 영원 전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맡으신 하나님이시오, 목적 곧 택함을 맡으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곧 제이위 성자라는 하나님이 그때에 수면을 운행하셨습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어느 분이 맞는지요?
설교록 '89.5.11, 목요일 새벽'에는 .... 그때에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흑암 깊은 곳 수면에 운행하셨다’ 거게 다니셨다, 창조 된 창조물 거게 하나님이 다니셨다 이렇게 했는데 그때에 다니신 하나님은 곧 영원 전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맡으신 하나님이시오, 목적 곧 택함을 맡으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곧 제이위 성자라는 하나님이 그때에 수면을 운행하셨습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어느 분이 맞는지요?
창1:2의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하신 하나님의 신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3위 성령 하나님은 '성신'과 '성령'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창1:2에서 '하나님의 신'은 명확하게 성령이십니다.
참고로 요1:1 이하에서 '말씀'이라고 하신 것은 2위 성자 하나님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삼위일체 중 한 분만 표시 될 때는
그 하나님이 중심에 서서 역사하신다는 것이지 다른 두 분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기계적 분할적 3위1체가 아니라 떨어질 수 없는 분이십니다.
성경의 곳곳에 삼위일체 중 한 분의 이름이 앞설 때는 다른 분은 무관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백 목사님은 구약의 여호와가 나중에 사람 되어 오신 2위 하나님이라 하시지만
사64:8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라는 대목에서 분명히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거의 2위 성자 하나님. 성부 하나님으로 표현할 때가 있고
때로는 한 이름을 함께 쓸 수 있습니다.
여호의 신은 성령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자의 '창조'를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면 수면 위에 다니신
그 하나님이 바로 2위 성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관인데
알기 쉽게 또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부모는 바로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 그대로만 두고 따지면 이단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 표현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부모를 손발로 사용했다는 뜻을
강조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3위 성령 하나님은 '성신'과 '성령'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창1:2에서 '하나님의 신'은 명확하게 성령이십니다.
참고로 요1:1 이하에서 '말씀'이라고 하신 것은 2위 성자 하나님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삼위일체 중 한 분만 표시 될 때는
그 하나님이 중심에 서서 역사하신다는 것이지 다른 두 분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기계적 분할적 3위1체가 아니라 떨어질 수 없는 분이십니다.
성경의 곳곳에 삼위일체 중 한 분의 이름이 앞설 때는 다른 분은 무관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백 목사님은 구약의 여호와가 나중에 사람 되어 오신 2위 하나님이라 하시지만
사64:8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라는 대목에서 분명히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거의 2위 성자 하나님. 성부 하나님으로 표현할 때가 있고
때로는 한 이름을 함께 쓸 수 있습니다.
여호의 신은 성령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자의 '창조'를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면 수면 위에 다니신
그 하나님이 바로 2위 성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관인데
알기 쉽게 또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부모는 바로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 그대로만 두고 따지면 이단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 표현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부모를 손발로 사용했다는 뜻을
강조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