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집사 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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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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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09:24
1.공회도 남반 집사를 안수 집사와 서리 집사로 구분하나요?
2. 신앙 초기 백목사님의 집사직분은 무엇이었는지요?
2. 신앙 초기 백목사님의 집사직분은 무엇이었는지요?
1. 공회교회도 남반 집사를 안수 집사와 서리 집사로 구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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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공회는 교회 운영의 모든 면에서 내용을 전력하고, 외형과 제도는 최소화하는 원칙에 따라 교회의 직책도 최소화합니다. '집사' '목회자'만 있습니다. 목회자는 '조사' '목사'의 호칭은 외부 시선 때문에 따로 붙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타 교단은 의사와 간호사처럼, 또는 전문의와 의대생처럼 엄하게 구별하지만 저희는 집사, 조사, 목사가 자기 교회 목회자로서 직책 때문에 불편한 것은 '성찬' 하나뿐입니다.
교인의 직책으로는 교회의 살림을 맡는다는 뜻이 집사여서 공회의 교인 직책은 '집사' 하나로만 내려 왔습니다. '장로'조차 없었는데 장로교에 장로조차 없애고 백 목사 독재를 한다 해서 공회 출발 10년이 지난 뒤에 1명 세우고, 그 뒤에 1명 세우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인을 기르는 방법을 1960년대식 '철저한 원칙' 중심에서 '1970년대 주교의 성장'과 함께 장년반도 장로와 집사를 과거에 비해 좀 많이 세워서 기르는 과정에 '권사'도 1980년에 이르러서야 몇 명 세웠고,
'집사'는 돌아 가실 때까지 '안수' 집사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인천인지 어느 교회에 외부에서 오신 분이 '안수 집사'라는 표현으로 질문이 있었고 그렇게 또 하나의 단계를 넣어 그 교회가 사람을 기른다면 그럴 수 있다는 정도로 말씀을 했는데, 바로 목사님이 돌아 가셨고 목사님 사후 각 공회에는 안수 집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타 교단 방식입니다. 현재 공회는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을 빼고는 타 교단과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백 목사님의 기본 인식이 '목사'조차 2년마다 시무투표로 그 신앙과 충성의 변동을 지켜 보면서 재촉을 하는데 하물며 일반 교인에게 한 번 집사는 평생 집사라는 사고 방식 자체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자격증으로 평생을 보장하는 '공무원식' '의사 변호사 면허증식'과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매년 집사을 임명하고 탈락을 시켜야 하는데, 안수 집사는 한 번 집사로 임명하면 평생 집사가 됩니다. 그런데 안수로 평생 집사 임명하는 '안수 집사'가 아니라 매년 따로 재임명을 해야 하는 '서리 집사'조차 한 번 집사로 부르고 나면 교회가 평생 집사에서 제외를 시켜도 집사 호칭은 따라 다닙니다. 공회는 타 교단처럼 집사만 참석하는 제직회조차 없다 보니 실제 공회의 집사는 타 교단과 많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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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공회는 교회 운영의 모든 면에서 내용을 전력하고, 외형과 제도는 최소화하는 원칙에 따라 교회의 직책도 최소화합니다. '집사' '목회자'만 있습니다. 목회자는 '조사' '목사'의 호칭은 외부 시선 때문에 따로 붙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타 교단은 의사와 간호사처럼, 또는 전문의와 의대생처럼 엄하게 구별하지만 저희는 집사, 조사, 목사가 자기 교회 목회자로서 직책 때문에 불편한 것은 '성찬' 하나뿐입니다.
교인의 직책으로는 교회의 살림을 맡는다는 뜻이 집사여서 공회의 교인 직책은 '집사' 하나로만 내려 왔습니다. '장로'조차 없었는데 장로교에 장로조차 없애고 백 목사 독재를 한다 해서 공회 출발 10년이 지난 뒤에 1명 세우고, 그 뒤에 1명 세우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인을 기르는 방법을 1960년대식 '철저한 원칙' 중심에서 '1970년대 주교의 성장'과 함께 장년반도 장로와 집사를 과거에 비해 좀 많이 세워서 기르는 과정에 '권사'도 1980년에 이르러서야 몇 명 세웠고,
'집사'는 돌아 가실 때까지 '안수' 집사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인천인지 어느 교회에 외부에서 오신 분이 '안수 집사'라는 표현으로 질문이 있었고 그렇게 또 하나의 단계를 넣어 그 교회가 사람을 기른다면 그럴 수 있다는 정도로 말씀을 했는데, 바로 목사님이 돌아 가셨고 목사님 사후 각 공회에는 안수 집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타 교단 방식입니다. 현재 공회는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을 빼고는 타 교단과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백 목사님의 기본 인식이 '목사'조차 2년마다 시무투표로 그 신앙과 충성의 변동을 지켜 보면서 재촉을 하는데 하물며 일반 교인에게 한 번 집사는 평생 집사라는 사고 방식 자체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자격증으로 평생을 보장하는 '공무원식' '의사 변호사 면허증식'과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매년 집사을 임명하고 탈락을 시켜야 하는데, 안수 집사는 한 번 집사로 임명하면 평생 집사가 됩니다. 그런데 안수로 평생 집사 임명하는 '안수 집사'가 아니라 매년 따로 재임명을 해야 하는 '서리 집사'조차 한 번 집사로 부르고 나면 교회가 평생 집사에서 제외를 시켜도 집사 호칭은 따라 다닙니다. 공회는 타 교단처럼 집사만 참석하는 제직회조차 없다 보니 실제 공회의 집사는 타 교단과 많이 다릅니다.
2. 신앙 초기 백목사님의 집사직분은 무엇이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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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이 믿으시고 집사 된 그 집사, 한국교회가 역사적으로 말하는 '집사'는 전통적으로 모두 '서리' 집사입니다.
* 장로
교회의 지도부를 '장로'라 합니다. 설교를 맡고 교회의 대표를 맡는 이가 '목사(장로)'이고, 목사를 견제하며 의회 역할을 하는 것이 '장로(장로)'입니다. 목사와 장로를 함께 '장로'라 하며 이들의 모임을 당회라 합니다. 따라서 원래 목사와 장로는 동급이며, 따라서 신학적으로도 비록 목사는 학위 코스를 정식으로 밟고 장로는 그렇지 않으나 미국 장로교의 장로는 장로가 되기 위해 치는 시험과 교육은 목사급입니다.
서양의 '장교'는 대학을 나와야 하고, '하사관'은 전문학교를 나와야 하는 것처럼, 미국의 '목사'는 초중고 대학과 대학원을 다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선교 초기에 한국 사람은 서당을 다녔거나 그마저도 다니지 않았던 세상 학문 배경 때문에 선교사들은 고교 대학을 정식으로 나온 사람을 목사로 만든다고 생각했고 각 교회에는 무식한 여자와 머슴 수준만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그 머슴이나 무식이 백영희나 순교자 변판원이라 해도 목사로 기를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는 정통 귀족 양성 과정을 거치는 정규 지성인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교를 해보니 무식한 여자와 머슴들에게 선교사가 놀랄 신앙과 복음 역사가 나타나자, 미국 선교사 기준으로 집사나 목사나 장로를 세우기에는 기본 자격조차 없으니 편법으로 '서리집사'와 '조사'를 낸 것입니다. 실제 목사나 목사 이상인데 세상 공부가 모자란 사람에게 목사를 따라 다니며 돕는 '조사'라는 이름을 준 것입니다. 이 조사가 손양원 조사 백영희 조사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6.25 전쟁 이전까지 3개 시군에 목사가 1명 있는 정도였던 이유는 교회나 교인이 적어 그런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의 미국 교육과 수준을 기준으로 목사를 세울 사람이 없어 그랬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나 6.25 전쟁 때 목사급 순교자나 승리자가 희귀한 이유는 정규 공부를 한 엘리트가 목사였고 선교사들 눈에는 아주 그럴 듯해 보였으나 실제 신앙 전쟁에서는 모두 패전했고, 무식한 집사 조사들이 대거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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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이 믿으시고 집사 된 그 집사, 한국교회가 역사적으로 말하는 '집사'는 전통적으로 모두 '서리' 집사입니다.
* 장로
교회의 지도부를 '장로'라 합니다. 설교를 맡고 교회의 대표를 맡는 이가 '목사(장로)'이고, 목사를 견제하며 의회 역할을 하는 것이 '장로(장로)'입니다. 목사와 장로를 함께 '장로'라 하며 이들의 모임을 당회라 합니다. 따라서 원래 목사와 장로는 동급이며, 따라서 신학적으로도 비록 목사는 학위 코스를 정식으로 밟고 장로는 그렇지 않으나 미국 장로교의 장로는 장로가 되기 위해 치는 시험과 교육은 목사급입니다.
서양의 '장교'는 대학을 나와야 하고, '하사관'은 전문학교를 나와야 하는 것처럼, 미국의 '목사'는 초중고 대학과 대학원을 다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선교 초기에 한국 사람은 서당을 다녔거나 그마저도 다니지 않았던 세상 학문 배경 때문에 선교사들은 고교 대학을 정식으로 나온 사람을 목사로 만든다고 생각했고 각 교회에는 무식한 여자와 머슴 수준만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그 머슴이나 무식이 백영희나 순교자 변판원이라 해도 목사로 기를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는 정통 귀족 양성 과정을 거치는 정규 지성인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교를 해보니 무식한 여자와 머슴들에게 선교사가 놀랄 신앙과 복음 역사가 나타나자, 미국 선교사 기준으로 집사나 목사나 장로를 세우기에는 기본 자격조차 없으니 편법으로 '서리집사'와 '조사'를 낸 것입니다. 실제 목사나 목사 이상인데 세상 공부가 모자란 사람에게 목사를 따라 다니며 돕는 '조사'라는 이름을 준 것입니다. 이 조사가 손양원 조사 백영희 조사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6.25 전쟁 이전까지 3개 시군에 목사가 1명 있는 정도였던 이유는 교회나 교인이 적어 그런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의 미국 교육과 수준을 기준으로 목사를 세울 사람이 없어 그랬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나 6.25 전쟁 때 목사급 순교자나 승리자가 희귀한 이유는 정규 공부를 한 엘리트가 목사였고 선교사들 눈에는 아주 그럴 듯해 보였으나 실제 신앙 전쟁에서는 모두 패전했고, 무식한 집사 조사들이 대거 승리하게 됩니다.
정리를 하자면..
* 집사
목사가 대통령 위치에서 가르치고 지도할 때 장로가 의회 의원이 되어 견제하고 돕는데, 이 것을 지도부라 하고 장로교는 바로 이런 체계인데, 이 지도부를 일반 교인으로서 뒷받침하는 실제 업무를 맡을 때 집사라 합니다. 집사라는 것은 조선 시대 때 부자집에 살림을 도맡은 총무를 말합니다. 교회의 총무. 따라서 이 총무도 신앙의 기본이 있어야 하고 모든 면이 반듯해야 합니다.
문제는 선교 초기에 전국 교회의 불 같이 일어 나는 '공회의 최상급 교인'인 정갑용 같은 신앙가들은 선교사들 눈에 집사로 세울 외부 모습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외부 모습을 갖춘 교인은 아예 없고. 집사 자체가 없을 수 없으니 '집사'가 될 수 없는데 집사 노릇은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선교사의 미국식'으로 볼 때 집사는 주지 않고, 한국 교회의 현장에서는 실제 집사 노릇을 하니 그렇게 표시하는 편법으로 '서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국회의 청문회를 통과해야 장관이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장관으로 '지명'을 하고, 그리고 의회가 통과를 해 주면 정식으로 장관이 됩니다. 정식 임명이 되기 전에 '지명' 시절을 '서리'라고 합니다. 이 서리라는 표현, 세상식 표현을 가지고 집사가 될 수 없으나 집사의 노릇을 하라고, 또 하고 있으니 대거 붙여 버렸습니다.
장로교에서는 여자는 어떤 직책도 가질 수 없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했기 때문에. 그런데 선교 초기에 남자는 교회에 없고, 여자들 뿐이고 이 여자들이 전도 봉사 충성 연보 살림 전부를 다 맡고 있으니 여자를 집사 노릇은 하되 집사는 아니라, 그 뜻으로 '서리 집사'를 시켰고, 서리 집사는 교회마다 많고 미국식 장로교 사고방식의 '집사'는 남자 중에 교회 총무를 맡을 정도라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없으니 '서리 집사'와 '안수 집사'가 섞여 있지 않고 거의 모든 집사는 서리 집사였습니다. 그래서 '서리 집사'라고 이름을 굳이 부르지 않고 '집사'라고 불렀습니다.
한국교회의 발전 과정에, 교회들이 자리를 잡고 교인이 많아 지고 또 사회적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또 여반의 노력으로 이제 멀쩡한 남편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니까 미국식 선교사들의 수준에서 볼 때도 정식 '집사'가 될 남자들이 보이니 서리 집사로 가득찬 여자들 교회에 남자 정식 집사를 서둘러 한둘씩 세웁니다. 원래 집사는 안수를 하여 평생 집사직으로 선출하는 남자를 말하는데, 평생 가도 집사가 될 수 없는 여자들만 집사로 세우고 '서리' 집사라고 분류를 하다 보니까. 이제 '서리 집사'는 아예 집사라 하고, 정말 집사는 '안수 집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뒤집어 진 것입니다.
서리란, 곧 정식으로 임명 될 것이라는 전제인데
여자에게 서리 집사란 죽는 날까지 정식 집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편법으로 붙인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를 다니면 아무나 조건 없이 그냥 '집사'라 합니다. 교회 총무, 교회 살림을 맡는 것도 아닌데 계급 양반 직책에 목을 매다는 한국 사람들에게 무슨 신분증처럼 '이제 교회를 잘 다닌다'라는 뜻으로 집사를 아무에게나 던집니다. 정식 집사가 아니니 속으로는 '서리'여서 아무나 이름을 붙여 주고, 그다음 안수 집사란 장로가 될 사람이 장로 되기 전의 단계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엉망진창 뒤죽박죽인데, 우리가 서툴고 우리가 부족하다 보니 급성장 과정에 생긴 부작용인데
여기서 특기할 것은
한국 사람에게 '간판'이란 아직도 목숨처럼 소중한가 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이고 그야말로 합법 적법 모범적인 영락교회 사랑의교회 소망교회 등도 서리집사와 안수집사의 개념이 여전히 그대로 적용되고 여자가 서리집사를 거쳐 정식 집사 장로로 가지 못하니 '권사'를 만들었는데 이 것은 칼빈 이후 500년 정통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에서 보면 과거 천주교 폐습입니다. 내면적으로 보면 자존심, 체면, 자기 중심적 자기 위치... 공회는 출발부터 이런 것을 초월했다고 했지만 목사님 생전에는 기르는 방법으로 좀 사용한 것을 목사님 가시고 나니 전부 꼭 같아 져 버렸습니다.
* 집사
목사가 대통령 위치에서 가르치고 지도할 때 장로가 의회 의원이 되어 견제하고 돕는데, 이 것을 지도부라 하고 장로교는 바로 이런 체계인데, 이 지도부를 일반 교인으로서 뒷받침하는 실제 업무를 맡을 때 집사라 합니다. 집사라는 것은 조선 시대 때 부자집에 살림을 도맡은 총무를 말합니다. 교회의 총무. 따라서 이 총무도 신앙의 기본이 있어야 하고 모든 면이 반듯해야 합니다.
문제는 선교 초기에 전국 교회의 불 같이 일어 나는 '공회의 최상급 교인'인 정갑용 같은 신앙가들은 선교사들 눈에 집사로 세울 외부 모습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외부 모습을 갖춘 교인은 아예 없고. 집사 자체가 없을 수 없으니 '집사'가 될 수 없는데 집사 노릇은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선교사의 미국식'으로 볼 때 집사는 주지 않고, 한국 교회의 현장에서는 실제 집사 노릇을 하니 그렇게 표시하는 편법으로 '서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국회의 청문회를 통과해야 장관이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장관으로 '지명'을 하고, 그리고 의회가 통과를 해 주면 정식으로 장관이 됩니다. 정식 임명이 되기 전에 '지명' 시절을 '서리'라고 합니다. 이 서리라는 표현, 세상식 표현을 가지고 집사가 될 수 없으나 집사의 노릇을 하라고, 또 하고 있으니 대거 붙여 버렸습니다.
장로교에서는 여자는 어떤 직책도 가질 수 없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했기 때문에. 그런데 선교 초기에 남자는 교회에 없고, 여자들 뿐이고 이 여자들이 전도 봉사 충성 연보 살림 전부를 다 맡고 있으니 여자를 집사 노릇은 하되 집사는 아니라, 그 뜻으로 '서리 집사'를 시켰고, 서리 집사는 교회마다 많고 미국식 장로교 사고방식의 '집사'는 남자 중에 교회 총무를 맡을 정도라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없으니 '서리 집사'와 '안수 집사'가 섞여 있지 않고 거의 모든 집사는 서리 집사였습니다. 그래서 '서리 집사'라고 이름을 굳이 부르지 않고 '집사'라고 불렀습니다.
한국교회의 발전 과정에, 교회들이 자리를 잡고 교인이 많아 지고 또 사회적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또 여반의 노력으로 이제 멀쩡한 남편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니까 미국식 선교사들의 수준에서 볼 때도 정식 '집사'가 될 남자들이 보이니 서리 집사로 가득찬 여자들 교회에 남자 정식 집사를 서둘러 한둘씩 세웁니다. 원래 집사는 안수를 하여 평생 집사직으로 선출하는 남자를 말하는데, 평생 가도 집사가 될 수 없는 여자들만 집사로 세우고 '서리' 집사라고 분류를 하다 보니까. 이제 '서리 집사'는 아예 집사라 하고, 정말 집사는 '안수 집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뒤집어 진 것입니다.
서리란, 곧 정식으로 임명 될 것이라는 전제인데
여자에게 서리 집사란 죽는 날까지 정식 집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편법으로 붙인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를 다니면 아무나 조건 없이 그냥 '집사'라 합니다. 교회 총무, 교회 살림을 맡는 것도 아닌데 계급 양반 직책에 목을 매다는 한국 사람들에게 무슨 신분증처럼 '이제 교회를 잘 다닌다'라는 뜻으로 집사를 아무에게나 던집니다. 정식 집사가 아니니 속으로는 '서리'여서 아무나 이름을 붙여 주고, 그다음 안수 집사란 장로가 될 사람이 장로 되기 전의 단계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엉망진창 뒤죽박죽인데, 우리가 서툴고 우리가 부족하다 보니 급성장 과정에 생긴 부작용인데
여기서 특기할 것은
한국 사람에게 '간판'이란 아직도 목숨처럼 소중한가 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이고 그야말로 합법 적법 모범적인 영락교회 사랑의교회 소망교회 등도 서리집사와 안수집사의 개념이 여전히 그대로 적용되고 여자가 서리집사를 거쳐 정식 집사 장로로 가지 못하니 '권사'를 만들었는데 이 것은 칼빈 이후 500년 정통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에서 보면 과거 천주교 폐습입니다. 내면적으로 보면 자존심, 체면, 자기 중심적 자기 위치... 공회는 출발부터 이런 것을 초월했다고 했지만 목사님 생전에는 기르는 방법으로 좀 사용한 것을 목사님 가시고 나니 전부 꼭 같아 져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