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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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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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권'되여 있는데 '편'으로 봉독 하는지요? 구역에 '편'으로 되여 있습니까 어떻게 봉독하는 것이 바로된 것입니까

누가복음 5:8 나는죄인이로소이다" 깊은 은헤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아리아리 하여 말씀을 주시면 합니다

담당 4 2025.09.02 16:00  
1. 시편의 ‘편’과 ‘권’

성경은 정확무오입니다. 물론 원본 성경을 말합니다. 지금 원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셨다고 봅니다. 성경 내용 자체는 영감으로 기록되어 정확 무오하지만, 성경의 장 절을 나누고, 시편을 장이 아닌 편으로 기록하고, 권별을 나눈 것까지 성경 기록과 같은 영감으로 했다고 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성경을 각 성경으로 구분하고, 순서를 정하고, 성경의 장과 절을 나누고 배치할 때는 많은 기도와 생각과 연구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성경 기록과 같은 정도는 아닐지라도 성령의 감동 역사가 함께했고, 그 결과 지금의 성경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는 내용뿐 아니고 장과 절, 시편의 편까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읽는 것이 여러 면으로 가장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경을 그대로 읽지 않고 이런저런 잣대를 만들고 이유를 대면서 달리 읽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성경 자체도 바꾸게 됩니다. 지금 대부분 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 개정 같은 성경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이런 면은 심화되면서 성경 자체가 점점 변질되어 갈 것입니다.


다른 성경과 달리 시편은 한 성경을 5권으로 나눴는데, 짧은 시 형태로 기록되었고, 그 편수가 많아서 그렇게 분류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참고로, 백 목사님은 시편을 봉독하실 때 ‘편’으로 하셨고, 1편 설교를 많이 하셨는데, 봉독하실 때 제일 앞에 있는 ‘제1권’이라는 것은 한 번도 읽지 않았습니다. 전체 분류 목적이라 설교 시간에 굳이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성경의 각 장에 ‘장’이라는 표시가 없고 숫자만 기록했는데, 구역에는 성경의 각 장마다 ‘장’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고, 시편에는 ‘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누가복음 5장 8절,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5장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낙심하여 옛날 어부 생활로 돌아간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심방하신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탕 친 그 아침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셨고, 배에 올라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부들의 말에 의하면, 고기는 밤에, 얕은 데서 잡아야 고기가 그물 내려오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잡힌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그 형제들은 대대로 어부이니 고기잡이 전문가들입니다. 예수님은 직업도 목수이셨으니 고기잡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의 당연한 선입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낙심하여 돌아간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다시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영접했고 말씀을 듣기는 들었지만, 낙심하고 돌아간 상태에서 말씀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고, 말씀을 마친 후에는 고기 잡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고기 잡는 것이야 자기들이 전문이지 예수님은 알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하시는 말씀까지도 자기들이 아는 고기 잡는 이치와는 정반대이니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여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에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해석하자면, ‘고기는 밤에, 얕은 곳에서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아침인 데다 깊은 데로 가면 그물 내려가는 동안 고기는 다 도망가 버리는데,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선생님이 하라고 하시니 해 보겠지만, 안 되는 것입니다.’라는 뜻으로 반박을 하고 그물을 내렸는데, 결과적으로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았고 두 배에 가득 차게 잡혔습니다.


이것을 본 베드로가 질문하신 내용으로 예수님께 고백한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했는데, 그 뒤에 기록되기를 ‘이는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시몬의 동업자인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도, 함께 있는 사람들도, 야고보와 요한도 모두 어부였습니다. 대대로 고기만 잡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고기 잡는 이치로도, 역사 통계로도, 상식으로도 도무지 맞지 않는 말씀이었는데, 그 말씀대로 되니,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배웠던 하나님께 대한 말씀, 천국에 대한 말씀, 구원에 대한 수많은 말씀들이 전부 가감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배웠지만, 귀 넘어 들었고, 믿지도 않았고, 들은 말씀도 별로 실행하지 않았고, 이제는 지쳐서 낙심까지 하고 돌아갔는데, 만약 그동안에 주님께 배운 말씀을 다 믿었더라면, 실행했더라면, 낙심하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더 잘 배웠더라면 얼마나 천국의 구원을 이루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세월이 아까웠고, 자신이 한심했고 미웠고 통탄스러웠고, 주님 앞에는 죄송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이 말씀 속에는, 영원에 대한 베드로의 한없는 후회와 탄식과 통탄과 자책과 주님을 향한 죄송스러움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였지만, 십자가 앞에서 다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후회하여 심히 통곡했고, 그랬지만 주님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는 또 고기 잡으러 갔다가 주님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야 비로소 평생을 주와 복음 위해 바치고, 마지막에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담당 2025.09.03 12:07  
(추가 답변)
'담당4'께서 공회의 일반적 입장을 먼저 적어 주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성경 본문만 가지고 성경을 읽고 살피기 때문에 상기 답변이 가장 공회적입니다. 그런데 공회가 출발하기 전 호주 선교부와 고신 시절을 조금 거치며 그 시절을 통해 역사적이고도 정통의 일반 신학 중에 우리 공회 입장에서도 참고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성경의 형성 과정의 최소한 상식입니다.

조금 전문 입장으로 들어 가면 성경을 인간이 마음대로 기록했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문제로 신약 2천년은 세월을 보냈고, 하나님이 직접 기록했다는 것을 눈에 보이는 증거로 입증한 것이 정통의 역사 신학이고, 공회는 그냥 그 분들에게 맡기고 그 문제는 재론하지 않습니다. 자기 엄마인지 아닌지, 자기 자녀인지 아닌지 혈액 검사나 DNA로 밝히겠다면 그냥 두는 그런 식입니다.

(시편의 형성)
- 성경의 장절
66권은 원래 처음 적을 때 장절 없이 그냥 통으로 적었습니다. 성경의 위치를 찾고 인용하기 위해 교회사가 흘러 가면서 현재처럼 장과 절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정확무오하지만 성경의 장절이나 문단을 표시하는 o 표시는 편의를 위해 표기했다고만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공회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다 보면 곳곳에 불편은 많지만 세계 교회의 역사적 입장을 존중하는 정도에서 그냥 사용합니다.

- 시편의 형성
시편은 원래 한 장씩 따로 떨어 져 존재했습니다. 시편 150장 전체를 한꺼번에 기록했다면 장절로 나누겠지만 원래 원본이 한 편씩 따로 있었습니다. 공회 찬송가는 현재 201곡인데 여기 저기 있던 것을 '공회찬송가' 이름으로 201편을 모아 둔 것과 같습니다. 우연히 1장 찬송과 2장 찬송이 공회 찬송에서 붙어 있을 뿐이고 1장을 만든 작사 작곡가와 2장을 만든 작사 작곡가는 모두가 다릅니다. 114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와 115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이 두 찬송은 저자가 동일인인데 이 두 찬송이 공회 찬송가에서 나란히 붙은 것은 우연입니다.

시편은 1장을 1편이라 합니다. 창세기처럼 하나의 성경을 내용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원래 다른 가사입니다. 시편은 모두가 찬송가 가사입니다. 곡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 시편 전체를 1~41편을 1권으로,  42~72편을 2권으로 된 것은 책으로 따로 전해 내려 왔기 때문에 제책 단위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공회의 신앙 입장은 이 정도까지만 알고 마칩니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들어 가려면 끝이 없는 신학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찾아 보는 세상이 되었지만 혼란스럽기만 하면서도 성경으로 딱 부러지게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부분은 타고난 재능과 여유의 시간을 충분히 받아 가진 학자, 또는 교계에 맡기고 공회 신앙은 이제 설명한 정도로 요약하면 좋겠습니다. 질문자뿐 아니라 어린 교인이나 학생도 오시는 곳이어서 답변의 어투나 기준은 항상 감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담당4의 안내는 '설교록적인' 답변입니다.
담당의 안내는 '공회의 신학 상식' 수준에서 안내를 덧붙였습니다.
성도A 2025.09.04 10:07  
그러면 사회자가 1편1졀에서 6절까지  봉독 하겠읍니다 하고 봉독 하여야 합니가  ?  '100장를  봉독 할여며 100장 이라 하지 아니 하고 100편10절 까지 봉독 하껬습니다 하는것이 공회적입니가?
담당 4 2025.09.04 21:16  
‘공회적’이라고까지 하기에는 좀 조심스럽지만,

성경을 대할 때 최대한 조심하여 성경에 표기된 그대로 읽는 것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처음의 것을 바꾸지 않는 면으로 본다면 시편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장'이 아닌 '편'으로 봉독하는 것이 공회적인 모습에 조금은 가깝다 할 수 있겠습니다.

1차 답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백 목사님도 시편을 봉독하실 때는 ‘장’이 아닌 ‘편’으로, ‘하나님의 말씀 시편 1편, 시편 23편, 시편 73편… ’ 이렇게 봉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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