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생들의 장년반 예배참석 (예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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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4.학생들의 장년반 예배참석 (예배 1) |
| 내용 |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예배~]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예배-]/[-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 1.'초대교회'의 오늘날 의미는? 초대교회에는 주일학교가 없었습니다. 청년회 전도회도 없었습니다. 모이면 함께 예배 드렸고 흩어지면 받은 말씀대로 자기 현실에서 살고 안 믿는 사람을 만나면 전도하고 믿는 형제를 만나면 더 잘 믿도록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교회론' 문제가 나오면 항상 '초대교회'를 들고 나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답변자 태도에 화가 나서 '2천 년 전 초대교회와 오늘 교회가 예배당 건축 자재도 같아야 하느냐?'고 논박을 합니다. 예수님을 닮자는 말은 2천 년 예수님 거주하던 곳으로 모여들어 그곳에서 그때처럼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고난의 원인을 알아 그 고난을 본받자는 뜻입니다. 아버지 뜻으로만 움직인 그 행동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외형 보이는 모습을 흉내내자는 말은 아닙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근거는? 성경에 나타나는 신약초기 초대교회들 중에서 이스라엘 밖에 있던 교회들을 이스라엘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던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다닌 곳에서 예수님 입은 옷을 입고 예수님과 꼭같은 흉내를 내는 것이 옳았다면 아시아에 있는 7교회나 고린도교회 로마교회 등 교회를 모두 이스라엘 안으로 불러 들였을 것입니다. 근거 성구는 많이 들 수 있지만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초대교회 예배 모습 중에, 오늘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예배 모임의 단순화입니다. 오늘 교회가 시간 중에 가장 귀한 시간이며 모든 시간들의 종자가 되는 '예배시간'을 너무도 많이 풀어헤쳐 놓았다고 하고 싶습니다. 2.예배모임은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모임의 구성원의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누구 누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것인가? 행10:24에서 베드로가 고넬료 집으로 심방예배를 왔을 때 고넬료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만 불러놓고 있었습니다. 소위 자기 측근들만 모아놓고 당대 최고 선생님을 모시고 가정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성구를 근거해서 '가정으로 찾아가는 심방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심방예배에는 그 집 식구들을 기준으로 그 집 식구들과 가까운 사람을 모아놓고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심방 예배가 있을 때는 함께 가겠다는 사람 중에서 그 집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빠져 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심방예배를 두고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뺐다고 해서 '차별대우'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빠진 사람을 위해 그 가족들을 위해 또 다시 별도 심방예배를 가면 됩니다. 문제는, 교회가 교회적 행사로 모이는 예배의 경우입니다. 교회는 그 교회 소속한 교인 전체가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 예배는 그 교회 소속 교인 전부의 출석이 원칙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참석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정해놓고 그 모든 교인들이 참석하는 예배로 진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물론 초신자들만 한 자리 앉혀놓고 특별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배를 고정적으로 정해놓고 예배의 한 종류로 만들어버린다면,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가 됩니다. 그 교회의 부흥기간에 어느 특별한 기간 잠깐 그렇게 한다면 몰라도 아예 그 교회의 고정 예배 중의 하나가 된다면 예배의 본질 문제를 놓고 고민할 사안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것은 젖먹이 초등학생 중고교생 대학생 청년 노년 할 것 없이, 교회 예배는 그 교회 소속 전 교인이 함께 한 자리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옳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교회일수록 교회의 건전성과 본질성에 충실한 것이고 교회의 역량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고넬료 가정예배에서 보듯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를 심방예배로 보고 특별한 사람들만 모아놓고 예배를 봐도 되느냐고 논란이 일어나면 구체적으로 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바울이 행20:17에서는 에베소교회 장로님들만 청하여 설교를 한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논쟁을 위해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시비를 한다면 그냥 대충 원칙으로만 듣고 실제로는 네 좋은 대로 알아서 하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만큼 공부를 해야 좋은 학생인지를 놓고 대충의 원칙은 정할 수 있지만 분단위나 초단위로 공부하는 시간과 모습을 정해놓고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핑계를 대도 공부하기 싫어서 말하는 학생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형편 가정경제 수준 자기 건강 등 여러 면을 고려해서 각자 공부시간은 알아서 정하겠지만, 공부시간이 많을수록 좋고 친구는 사귀지 않을수록 좋고 .... 이런 원칙은 틀림없이 공부하는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3.총공회 교회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교인이 단 한번의 예배로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총공회 교회들도 주일학교는 분리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워낙 유명하고 알려진 교회이므로 자연스럽게 반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일학교 시간이 따로 있지만 한 주간에 가장 중요한 주일 오전예배를 놓고 본다면, 신앙이 없어 빠지는 아이들과 부모들이나 교회 거리 때문에 빠지는 아이들은 빠지지만 원칙적으로는 젖먹이나 초등학생 중고생 청장년 노년 어린교인 할 것 없이 전부가 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교회에서는 주일오전 대예배에 젖먹이는 어린 학생들이나 중고생이 보이면 그 가정에 일이 있어 특별히 부모를 따라 나온 것으로 생각하여 학생이나 어린아이들의 예배 참석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회 교회들은 젖먹이나 어린 학생들이 장년반 예배에 빠지면 부모가 신앙이 없거나 아니면 가정에 특별한 일이 있어 예외적으로 빠진 경우라고 보게 됩니다. 이렇게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공회 교회는 주일오전 오후 예배 뿐 아니라 밤예배까지 모든 예배에는 모든 소속 교인들이 신앙이 어려서 빠지면 빠지지 예배체제와 운영이 장년반만 모이기 때문에 그 외 교인들이 빠지는 그런 경우가 없습니다. 4.그렇다면 '주일학교'의 성격은? 교회의 예배를 둘로 나누어 장년반 예배가 따로 있고 초등학생 예배가 따로 있는 식이 아니라, 대예배는 나이 신앙에 관계없이 전부 다 함께 예배드리는 가장 중요한 예배이고, 주일학교는 안 믿는 가정의 학생들을 전도하기 위한 특수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주일학교 예배는 과도기로 운영하는 일시 기구라야 할 것인데 왜 상설기관이 되어 있는가? 일반 교단에 비하여 공회 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간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전도와 복음에 꼭 유익하면서도 동시에 죄되지 않는 범위에서 일반교회들과 너무 이색진 것을 최대한 줄여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세례를 침례로 바꾸고 싶지만 장로교에서 출발했고 세례와 침례의 차이점과 단어의 의미를 전부 파악한 상태에서 마음에는 침례를 더 선호해도 우리에게 주신 현실에서 그렇게까지 하여 또 다른 분란의 원인을 제공할 만큼 그렇게 요긴한 것이냐는 문제로 생각하여 세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또 초대교회를 닮는 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을 외형적으로 무조건 닮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복음중심을 닮는 것이므로, 각 교단들의 신앙수준에 따라 그 모습이 각각 다르겠지만 공회 교회로서는 예배 모임의 구성원 문제에 관하여는 주일학교 하나 정도는 오랜 세월 속에 지켜봐도 예배모임으로 운영하는 운영만 조심하면 필요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5.'중간반'의 경우는 주일학교에서 장년반으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신앙을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들을 바로 잡아 변화가 많은 민감한 나이의 학생들을 주일학교에서 가진 신앙 그대로 장년반에 이어지게 하고 평생 자기 신앙이 되도록 하기 위해 '중간반'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세 교회들이 한 대형교회 안에 수십개의 예배 모임을 가지는 경우가, 조금 크다 하면 10여개,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4-5개는 예사로 가지게 된 이유가 바로 공회 교회가 '주일학교'나 '중간반'의 별도 예배가 필요한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몇 개라야 하느냐는 문제는 각 교회의 내부 문제이므로 이는 개교회자유주의 원칙으로 결정할 일이지만, 만일 총공회 내 서부교회라는 초대형교회를 기준으로 실례를 든다면, 젖먹이까지 참석하는 대예배 외에 초등학생과 그 이하가 특별히 한번 더 모이는 '주일학교', 중고교생들이 중심으로 모이는 '중간반' 등 2개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50여 년 역사를 통해, 대예배 외에는 딱 2개의 예배모임이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일반 다른 교단의 경우 개척한 지 1년이 안 되고 교인의 숫자가 30명만 되어도 이 정도 예배는 드릴 정도일 것입니다. 현재 부산공회(3)과 같은 경우는 중간반 예배의 필요성이 이미 그 중간반 제도를 세울 때의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대부분 따로 예배보지 않고 주일학교 예배만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좋다 나쁘다고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부산공회(3)교회들의 규모나 현재 교인 구성이 중간반 예배를 따로 드리는 것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현재 공회 교회들 대부분도 실제로는 이렇게 되어야 할 현실적 상황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교회들이 있다면, 그 원인은 대개 교회의 예배 모임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고 혹시 안다 해도 현실적 손익계산 때문에 부득이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단기간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듯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교회가 속화되지 않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아직도 생명이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방향으로 버티고 있느냐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내면 요인이 됩니다. 6.한 때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고급 식당 어른들 모인 자리에 애들은 집에 두는 식. 어른들이 세미나를 가든지 공회당에 모여 마을 회의를 하든지 오페라를 보러 가든지 아니면 학부형 협의회를 하든지 또는 고급 식당에 파티가 있든지... 이런 경우가 되면 애들은 번잡스런 존재요 분위기를 흐리는 방해물로 인식이 됩니다. 이런 경우 아이들을 맡기고 부부가 점잖게 옷을 입고 참석하면 교양과 예절을 갖춘 지성인이 되고 이런 모임에 애들을 데려와서 분위기를 흐려버리면 미개인 야만인이 됩니다. 교회가 초기 생사를 걸고 믿고 나갈 때는 젖먹이 하나까지 둘러업고 와서 교인 숫자에 포함을 시키며 사람처럼 생긴 것은 무엇이든지 천하보다 보배롭게 보여 거지든지 원수든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데려다 놓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때가 하나님께서 기쁘하실 때이고 그런 초기를 보고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교파에 상관없이 모든 교회들의 초창기 설립 기록들을 보면 이런 분위기와 실제 상황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기준으로 소위 발전을 거듭하고 자리를 잡게 되면 그 마을 그 도시 제일 중심에 손꼽는 건물을 보유하게 되고 그때쯤이면 교회 내부의 조직과 운영이 세상에 거창한 기관들처럼 그렇게 멋지게 정비가 됩니다. 이런 단계가 되면 권위있는 설교가를 초빙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모임에는 수준급 교인들이 자기 취향과 정도에 맡도록 배정이 됩니다. 서양교회들은 오랜 옛날에 있었던 일이고 우리나라 교회들은 불과 수십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그렇게 되는 경우들이 많고 더러 그 이상의 역사도 가진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 예배 모임을 점잖은 어른들의 모임으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모인 자리를 두려워 한다는 자세에서 비롯되었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두려운 하나님 앞에 어른들이 찍 소리도 하지 않고 떨고 있는 것만 하나님께서 기쁘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는 모든 죄인들이 다 함께 나와서 함께 벌을 받아야 하고 책망을 들어야 하고 은혜를 받아야 할 바로 그 시간입니다. 아이들을 세상 어른들 모임에 빼놓듯이 예배를 그렇게 생각했다면, 이는 그 예배에 하나님의 안면과 취향은 배제해버리고 마치 천주교가 장엄하게 폼만 잡다가 예배를 미사라는 제사로 바꾼 것처럼 그런 죽은 예배가 되어버립니다. 7.결론적으로 말하면 예배는 최대한 그 교회 소속한 생명은 소속과 입장과 연령과 신앙수준 어떤 것에도 차별없이 꼭같이 하나님 앞에 한 생명을 가진 같은 하나님 자녀 자격으로 나와서 함께 앉아야 합니다. 혹 전도나 기타 교육 목적에서 따로 나누는 경우도 있겠지만, 공회 신앙수준의 경험과 판단으로는 주일학교나 중간반 정도를 분리해서 운영하는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경우라 해도 주일학교나 중간반에 참석한 것은 과외교습을 한번 더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교회 교인이면 젖먹이라도 원칙적으로는 모든 교인이 예배드리는 '대예배'에 함께 참석하는 것이 옳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공회 교회들이 아직도 젖먹이까지 중고등학생까지 일반 예배에 당연하게 참석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교회들은 여전히 초대교회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교회들입니다. 혹시 집회처럼 어른들도 힘든 정도의 오랜 예배시간에도 그렇게 된다면 더욱 신앙이 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총공회 교회는 한번 예배에 설교만 2-4시간, 하루 3번 예배로 진행되는 11번 집회기간에 젖먹이부터 모든 학생과 어른들이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가능했고, 그것이 교회 복음운동에 크게 도움이 되었고, 그런 현상은 초대교회에 일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늘 21세기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재림때까지 가야 할 신약교회의 자연스런 모습이며 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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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