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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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 11:47
통일찬송가 316장에 해당 되는 공회 찬송가 76장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의 곡을 예전에는 45장의 '성경목록가' 곡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T. Moore (1816) 작시와 S. WEBBE (1792) 작곡의 원곡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45장의 성경목록가는 우리나라의 선교 초기였고 우리 사회의 근대화 초기의 풍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식민지 시절의 일본 군가라는 이유로 좌파 쪽에서 비판을 제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공회는 그런 비판에 상관하지 않는데 왜 부공3의 연구소 측 교회들은 76장을 예전처럼 45장 곡으로 부르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45장 곡은 쉽고 은혜가 되는 것이 확실하고 76장의 원곡은 어렵습니다.
45장의 성경목록가는 우리나라의 선교 초기였고 우리 사회의 근대화 초기의 풍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식민지 시절의 일본 군가라는 이유로 좌파 쪽에서 비판을 제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공회는 그런 비판에 상관하지 않는데 왜 부공3의 연구소 측 교회들은 76장을 예전처럼 45장 곡으로 부르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45장 곡은 쉽고 은혜가 되는 것이 확실하고 76장의 원곡은 어렵습니다.
찬송가 가사는 신앙 깨달음이며 경험이며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곡보다는 가사가 중요합니다. ‘감정 기분에서 떠나 말씀에다 굳게 세워’라는 찬송 가사가 있습니다. 곡은 감정이고 가사는 말씀입니다. 곡은 방편이고 가사는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곡보다는 가사가 훨씬 중요하지만 곡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입니다. 은혜로운 가사에 알맞게 곡을 붙이면 참 좋은 찬송가가 됩니다. 그냥 가사를 읽어도 좋지만 곡을 잘 붙여놓으면 사람의 마음을 더 강하게 움직여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게 합니다. 우리 공회 찬송가는 거의 대부분 이런 찬송으로 선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76장 원곡은 찬송가 곡 중에서도 어려운 곡입니다. 45장곡은 비교적 쉽습니다. 곡이 어려운데 어려운 그 곡을 맞추다 보면 자연히 가사에 집중하기 어렵고 그만큼 가사로 받는 은혜는 덜할 것이고, 곡이 쉬우면 가사에 집중하기도 쉬워 그만큼 가사 내용의 은혜를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공회는 전체적으로 음악에 대한 감각이나 이해도나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곡에 맞추려고 하다가 은혜를 손해 보기보다는 쉬운 곡으로 가사의 은혜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76장의 원곡보다 좀 쉬운 45장곡으로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나라 전체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공회도 어느 정도는 같이 올라가 있기 때문에 원곡으로 불러도 은혜 면에 크게 손해 볼 일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76장 원곡은 찬송가 곡 중에서도 어려운 곡입니다. 45장곡은 비교적 쉽습니다. 곡이 어려운데 어려운 그 곡을 맞추다 보면 자연히 가사에 집중하기 어렵고 그만큼 가사로 받는 은혜는 덜할 것이고, 곡이 쉬우면 가사에 집중하기도 쉬워 그만큼 가사 내용의 은혜를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공회는 전체적으로 음악에 대한 감각이나 이해도나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곡에 맞추려고 하다가 은혜를 손해 보기보다는 쉬운 곡으로 가사의 은혜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76장의 원곡보다 좀 쉬운 45장곡으로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나라 전체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공회도 어느 정도는 같이 올라가 있기 때문에 원곡으로 불러도 은혜 면에 크게 손해 볼 일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곡은 곡의 음악적 수준이 높고 45장곡은 동요 차원입니다. 수준 높은 원곡과 쉽고 간단한 동요 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음악적 기준으로 수준이 높으면 내면의 감사도 다양하게 세밀하게 표시를 하는 것이 장점이나 예배의 전반적 분위기로 볼 때 음악적 발달은 비록 발달을 시킬 수 있다 해도 어느 선에서 묶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과 신앙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릇에 그쳐야 하지 곡이 곡 자체로 더 이상 설치면 연주가 은혜를 억누를 수 있습니다. 단순한 45장의 곡은 비록 유치하여 우리의 감사를 다양하게 세밀하게 표시하는 것은 미흡하나 하나님 앞에 우리의 어린 마음이 단순하게 그리고 뜨겁게 표시하게 하니 유리합니다. 말하자면 45장곡은 주일학교용으로, 76장의 원곡은 장년반용으로 보시면 됩니다.
음악 수준만으로 본다면 공회는 타 교단에 비해 주일학교 수준으로 유치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회의 장년반 예배에서도 45장곡이라야 될 정도입니다. 공회의 목회자와 교인의 전반적 수준도 음악적으로 낮지만 또 공회의 신앙 자체가 음악의 수준 차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자연스럽게 45장곡으로 나왔습니다. 70년대까지도 공회의 일반 예배 시간에 찬송 곡은 음표와 상관없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허다했고 80년대 들어오면서 확실히 좀 나아 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공회 교인들도 나아 졌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왜 찬송의 악보와 실제가 다르냐는 질문이 자꾸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는데 악보를 굳이 바꾸려면 아예 45장곡으로 76장을 교체하면 되는데 공회가 1988년에 공회 찬송가를 출판하면서 곡을 그대로 둔 것은 언젠가 공회의 음악 실력이 원곡을 사용해도 될 때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했다는 뜻입니다. 결혼식 때 주로 사용하는 194장도 5장곡으로 부르는데 이 때는 사회가 '5장곡으로 부른다'고 안내까지 합니다. 외부 참석자들의 음악 수준이 높아서 손님들은 194장 원곡으로 소리를 내고 공회 교인들은 5장곡으로 소리를 내면 자칫 결혼식을 어지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공회의 실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으로 안내를 드리는 동시에 이렇게 처음부터 바뀔 수 있는 것도 있으나 어떤 것은 아무리 세월이 간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음을 미리 구별하지 않으면 찬송의 곡 선택을 바꾼 것을 근거로 하나님과 부처를 바꾸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부공3은 원곡을 부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식의 5장곡은 아직도 결혼식이라는 특별한 의미 때문에 5장곡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일제 때, 우리나라의 초기 기독교 사회의 당시 수준과 분위기 때문에 이런 일은 허다했습니다.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우하사'가 들어 간 것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종교 편파로 큰 일이 나겠지만, 당시 구한말에 왕과 국가와 사회가 전부 주저앉을 때 조금이라도 움직인 사람은 국가적으로 요즘 독립운동가라고 하나 개인적으로 보면 선교사에게 영향을 받은 교인들입니다. 그들이 애국자 전부다 보니 그들이 만든 애국가와 찬송가는 사실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의 첫 건국으로 이어 지면서 자유당 정권은 사실상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국기에 대한 '배례'가 '주목'으로 바뀐 것은 요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제 때 일본군가가 찬송가로 사용된 것도,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꼭 같이 서양에게 근대화가 되면서 '선교 = 근대화 노래 = 찬송'이 되면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일본의 근대 노래는 일본 분위기가 들어갔지만 기본적으로 국악 중심의 고대 동양권 음악과 아예 다릅니다.
과거 공회도 함께 사용하던 새찬송가에도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이 있었는데 이 것은 애국가지 찬송가가 되기에 곤란했으나, 애국, 계몽, 선교, 교회, 찬송… 이 전부가 어울리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찬송 중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이런 경우는 신불신 나이와 상관없이 감성적으로 바로 들어가지만 76장 찬송은 선교사들에게는 평범했으나 한글조차 어려웠던 시골 연세 많은 여반들에게는 곡으로서는 부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초기 한국교회 교인 대다수였습니다. 그래서 근대화 과정의 동요식 창가식 노래를 방법론으로 사용했는데, 찬송가에 다른 곡을 붙이기 어렵고 곡이 기술적으로 어려우면 그 부분만 완전히 악보를 바꾼 것처럼 사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회에서 오랫동안 그렇게 한 부분 중에 '속죄함 속죄함 주예수 내죄를 속했네' 이런 부분은 그 부분만 곡의 높낮이를 변형시켰습니다. 세월 속에 하나씩 저절로 본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음악 수준만으로 본다면 공회는 타 교단에 비해 주일학교 수준으로 유치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회의 장년반 예배에서도 45장곡이라야 될 정도입니다. 공회의 목회자와 교인의 전반적 수준도 음악적으로 낮지만 또 공회의 신앙 자체가 음악의 수준 차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자연스럽게 45장곡으로 나왔습니다. 70년대까지도 공회의 일반 예배 시간에 찬송 곡은 음표와 상관없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허다했고 80년대 들어오면서 확실히 좀 나아 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공회 교인들도 나아 졌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왜 찬송의 악보와 실제가 다르냐는 질문이 자꾸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는데 악보를 굳이 바꾸려면 아예 45장곡으로 76장을 교체하면 되는데 공회가 1988년에 공회 찬송가를 출판하면서 곡을 그대로 둔 것은 언젠가 공회의 음악 실력이 원곡을 사용해도 될 때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했다는 뜻입니다. 결혼식 때 주로 사용하는 194장도 5장곡으로 부르는데 이 때는 사회가 '5장곡으로 부른다'고 안내까지 합니다. 외부 참석자들의 음악 수준이 높아서 손님들은 194장 원곡으로 소리를 내고 공회 교인들은 5장곡으로 소리를 내면 자칫 결혼식을 어지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공회의 실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으로 안내를 드리는 동시에 이렇게 처음부터 바뀔 수 있는 것도 있으나 어떤 것은 아무리 세월이 간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음을 미리 구별하지 않으면 찬송의 곡 선택을 바꾼 것을 근거로 하나님과 부처를 바꾸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부공3은 원곡을 부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식의 5장곡은 아직도 결혼식이라는 특별한 의미 때문에 5장곡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일제 때, 우리나라의 초기 기독교 사회의 당시 수준과 분위기 때문에 이런 일은 허다했습니다.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우하사'가 들어 간 것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종교 편파로 큰 일이 나겠지만, 당시 구한말에 왕과 국가와 사회가 전부 주저앉을 때 조금이라도 움직인 사람은 국가적으로 요즘 독립운동가라고 하나 개인적으로 보면 선교사에게 영향을 받은 교인들입니다. 그들이 애국자 전부다 보니 그들이 만든 애국가와 찬송가는 사실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의 첫 건국으로 이어 지면서 자유당 정권은 사실상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국기에 대한 '배례'가 '주목'으로 바뀐 것은 요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제 때 일본군가가 찬송가로 사용된 것도,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꼭 같이 서양에게 근대화가 되면서 '선교 = 근대화 노래 = 찬송'이 되면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일본의 근대 노래는 일본 분위기가 들어갔지만 기본적으로 국악 중심의 고대 동양권 음악과 아예 다릅니다.
과거 공회도 함께 사용하던 새찬송가에도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이 있었는데 이 것은 애국가지 찬송가가 되기에 곤란했으나, 애국, 계몽, 선교, 교회, 찬송… 이 전부가 어울리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찬송 중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이런 경우는 신불신 나이와 상관없이 감성적으로 바로 들어가지만 76장 찬송은 선교사들에게는 평범했으나 한글조차 어려웠던 시골 연세 많은 여반들에게는 곡으로서는 부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초기 한국교회 교인 대다수였습니다. 그래서 근대화 과정의 동요식 창가식 노래를 방법론으로 사용했는데, 찬송가에 다른 곡을 붙이기 어렵고 곡이 기술적으로 어려우면 그 부분만 완전히 악보를 바꾼 것처럼 사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회에서 오랫동안 그렇게 한 부분 중에 '속죄함 속죄함 주예수 내죄를 속했네' 이런 부분은 그 부분만 곡의 높낮이를 변형시켰습니다. 세월 속에 하나씩 저절로 본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