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부에서 홍포 입은 부자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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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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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4:34
중생교리는, 중생된 택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 아닙니까?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나오는 홍포 입은 부자는 음부에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이 홍포 입은 부자가 불택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4절에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25절에 "얘, 너는" 이런 대화 내용을 보니까 홍포 입은 부자는 성부 하나님이 아버지인 나사로와 같은 택자로 보입니다. 그러면 택자가 음부에 지옥에 갔다는 말인가?
건설구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주변 목사님과 교수님들께 물어봤습니다. 택자이므로 지옥이나 음부에는 결코 못 가는 것이 맞고, 홍포 입은 부자가 음부에서 외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하면 그 고통과 괴로움을 장차 현실에서 당할 것을 예수님이 실제가 아니라 비유를 하신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란다면 구원 교리가 이상해진다. 택자의 지옥갈 속성이 음부에서 외친다는게 말이 되느냐? 어떻게 사람이 아닌데 사람의 속성이 기능이 소리를 지르고 외칠 수가 있느냐? 말도 안된다. 하시는데, 분명히 '죽고나서'라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모든 성경은 실상일진대 이럴때에는 비유, 저럴때에는 실상이라는 식으로 너무 주관적 해석이라 개인적으로는 절대 받아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중생된 택자인 홍포입은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으로 외치는 뜻과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나오는 홍포 입은 부자는 음부에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이 홍포 입은 부자가 불택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4절에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25절에 "얘, 너는" 이런 대화 내용을 보니까 홍포 입은 부자는 성부 하나님이 아버지인 나사로와 같은 택자로 보입니다. 그러면 택자가 음부에 지옥에 갔다는 말인가?
건설구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주변 목사님과 교수님들께 물어봤습니다. 택자이므로 지옥이나 음부에는 결코 못 가는 것이 맞고, 홍포 입은 부자가 음부에서 외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하면 그 고통과 괴로움을 장차 현실에서 당할 것을 예수님이 실제가 아니라 비유를 하신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란다면 구원 교리가 이상해진다. 택자의 지옥갈 속성이 음부에서 외친다는게 말이 되느냐? 어떻게 사람이 아닌데 사람의 속성이 기능이 소리를 지르고 외칠 수가 있느냐? 말도 안된다. 하시는데, 분명히 '죽고나서'라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모든 성경은 실상일진대 이럴때에는 비유, 저럴때에는 실상이라는 식으로 너무 주관적 해석이라 개인적으로는 절대 받아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중생된 택자인 홍포입은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으로 외치는 뜻과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누가복음 16:27 부자가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조상님, 제발 나사로를 나의 아버지 집에 보내 주십시오.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나사로가 그들에게 엄숙히 증언하여,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신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듣게 하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 조상님, 그렇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이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은 그에게 ‘그들이 1모세와 신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비록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살아난다고 하여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신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듣게 하여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마 4:4)인 모세의 율법과 신언자들의 책들(비교 눅 16:16)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구원받느냐 멸망하느냐가 결정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구원받았고(요 5:24, 엡 1:13), 부자는 부유해서 멸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에 멸망했습니다(행 13:46).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나사로가 그들에게 엄숙히 증언하여,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신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듣게 하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 조상님, 그렇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이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아브라함은 그에게 ‘그들이 1모세와 신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비록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살아난다고 하여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신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듣게 하여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마 4:4)인 모세의 율법과 신언자들의 책들(비교 눅 16:16)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구원받느냐 멸망하느냐가 결정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구원받았고(요 5:24, 엡 1:13), 부자는 부유해서 멸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에 멸망했습니다(행 13:46).
천국에 있는 영육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심신의 기능의 고통을 그대로 느낄수 있는건가요?
눅 13:28에 근거하여, 분명히 천국에서 택자가 느끼는 고통이 있습니다.
1. 기능의 멸망과 존재의 구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불변의 대속을 입은 택자라도 그가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 피동된 부분은 전부 지옥입니다. 택자는 죽으면, 사망이 와서,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속한 것,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한 것, 대속에게 피동되지 못한 모든 요소를 즉시 가져갑니다. 그리고, 지옥불에 던져져서, 영원한 멸망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능이 멸망을 당한다하더라도, 사활대속의 절대 은혜로 인하여 그 누구도 택자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완전히 끊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물 한방울만큼의 의의 행위가 없는 홍포 입은 부자라도 영원 복락의 천국에는 도달합니다.
2. 천국의 실감
그러나 천국은 영계보다 더 크신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물을 통치하며, 주님과 하나된 영원무궁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주님의 대속으로만 단일이고, 하나님 사랑으로만 단일이 된 세계입니다. 단일이기 때문에 천국에 도달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통합니다. 죄와 마귀의 창조, 택자에게 원죄를 짓게 만드신 것과 같이 우리가 그동안 결코 하나님 사랑으로 보이지 않아서 원망했고 착각했고 오해했던 모든 것이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고 실감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극한, 은혜의 극한을 받은 것이 바로 나요. 이렇게까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그 실상을 접하고는 완전히 놀라고 까무라치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무궁토록 성삼위 하나님만을 눈물로 찬양하고 경배하는 세계입니다.
3. 천국의 고통
이처럼 천국은 하나님 사랑으로 단일이요. 그 사랑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영원무궁의 세계입니다. 이 완전 사랑 안에 있으니, 어떤 모습의 택자라도 영원무궁토록 감격이며,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그러나 또한 역설적으로 완전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랑 앞에서 택자는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은 어떤 부분적으로라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심신의 기능은 지옥불에 다 태워졌고, 이 사랑을 받고도, 이루지 못한 자신의 빈털터리 모습, 그 아쉬움과 죄송함이, 하나님 사랑이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까지 뜨거웠다는 것을 알수록 실감할수록 이 사랑이 불처럼 택자의 양심을 태워 버립니다. 사랑이 극한일수록 그 사랑 받고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하여 괴롭고, 너무나도 그 대속이 위대하기에 끝없이 감사하며, 감사할수록 끝없이 계속 괴롭고, 그런 차원이 높은 고통으로, 영원 무궁토록 주님을 뵐 적마다 이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천국에서 느끼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홍포 입은 부자의 음부에서의 고통은, 기능구원을 크게 망친 택자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위대한 대속의 사랑이기에 모든 택자는 천국에서 이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고통을 실감하고,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이 대속의 사랑에만 감동되어 있는 힘을 다하여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건설구원입니다.
1. 기능의 멸망과 존재의 구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불변의 대속을 입은 택자라도 그가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 피동된 부분은 전부 지옥입니다. 택자는 죽으면, 사망이 와서,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속한 것,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한 것, 대속에게 피동되지 못한 모든 요소를 즉시 가져갑니다. 그리고, 지옥불에 던져져서, 영원한 멸망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능이 멸망을 당한다하더라도, 사활대속의 절대 은혜로 인하여 그 누구도 택자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완전히 끊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물 한방울만큼의 의의 행위가 없는 홍포 입은 부자라도 영원 복락의 천국에는 도달합니다.
2. 천국의 실감
그러나 천국은 영계보다 더 크신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물을 통치하며, 주님과 하나된 영원무궁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주님의 대속으로만 단일이고, 하나님 사랑으로만 단일이 된 세계입니다. 단일이기 때문에 천국에 도달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통합니다. 죄와 마귀의 창조, 택자에게 원죄를 짓게 만드신 것과 같이 우리가 그동안 결코 하나님 사랑으로 보이지 않아서 원망했고 착각했고 오해했던 모든 것이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고 실감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극한, 은혜의 극한을 받은 것이 바로 나요. 이렇게까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그 실상을 접하고는 완전히 놀라고 까무라치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무궁토록 성삼위 하나님만을 눈물로 찬양하고 경배하는 세계입니다.
3. 천국의 고통
이처럼 천국은 하나님 사랑으로 단일이요. 그 사랑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영원무궁의 세계입니다. 이 완전 사랑 안에 있으니, 어떤 모습의 택자라도 영원무궁토록 감격이며,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그러나 또한 역설적으로 완전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랑 앞에서 택자는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은 어떤 부분적으로라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심신의 기능은 지옥불에 다 태워졌고, 이 사랑을 받고도, 이루지 못한 자신의 빈털터리 모습, 그 아쉬움과 죄송함이, 하나님 사랑이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까지 뜨거웠다는 것을 알수록 실감할수록 이 사랑이 불처럼 택자의 양심을 태워 버립니다. 사랑이 극한일수록 그 사랑 받고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하여 괴롭고, 너무나도 그 대속이 위대하기에 끝없이 감사하며, 감사할수록 끝없이 계속 괴롭고, 그런 차원이 높은 고통으로, 영원 무궁토록 주님을 뵐 적마다 이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천국에서 느끼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홍포 입은 부자의 음부에서의 고통은, 기능구원을 크게 망친 택자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위대한 대속의 사랑이기에 모든 택자는 천국에서 이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고통을 실감하고,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이 대속의 사랑에만 감동되어 있는 힘을 다하여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건설구원입니다.
1. 만약에 ‘홍포 입은 부자’가 불택자라면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거지 나사로는 고난을 받아서 낙원(천국 대기소)에 갔고, 홍포 입은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해서 음부(지옥 대기소)에 갔습니다. 낙원과 음부에 간 기준이 그들의 믿음이 아닌 행위입니다. 행위로 낙원과 음부가 결정된다면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으니 믿는 사람들 가운데 낙원에 갈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만약에 홍포 입은 부자가 그 ‘행위’ 때문에 음부에 간 ‘불택자’라면 믿는 사람들 전부도 그 행위 때문에 음부에 갈 불택자들입니다.
2. 기본구원과 행위구원(기능구원)
홍포 입은 부자가 불택자라는 것은 구원의 혼동에서 오는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2가지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택자로서 불신자로 살다가 때가 되어 예수님을 믿어 영이 중생되어 영육이 천국에 가는 것이 영원히 확정되는 불변의 기본구원이 있습니다. 기본구원은 인간의 행위는 단 하나도 없이 오직 전적 하나님의 은혜인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예수님을 믿었으면 영육이 천국에 가는 것은 영원히 불변인데 이것이 기본구원입니다.
둘째는 육인 심신이 중생된 영에게 순종하여 의를 행하면 그 심신의 행위(기능)가 천국에 가게 되고, 심신이 악령에게 순종하여 죄를 행하면 그 심신의 행위(기능)가 지옥을 가게 됩니다. 이처럼 심신의 행위에 따라 그 행위(기능)의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을 행위구원(기능구원)이라 합니다.
3. ‘홍포 입은 부자’는 택자
누가복음 16장에 홍포 입은 부자가 불택자라 예수님을 안 믿어 음부에 간 것이라면 그 행위를 따질 필요가 없는데, 음부에 간 여부에 그 행위를 따진 것을 보니 홍포 입은 부자는 기본구원을 받은 택자입니다. 기본구원이 없는 불택자는 행위구원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4. 음부에 간 것은 홍포 입은 부자의 행위(기능)
누가복음 16장에 행위에 따라 음부에 간 홍포 입은 부자는 홍포 입은 부자의 영육이 아닌 홍포 입은 부자의 심신의 행위(기능)입니다.
하나님보다 자녀를 사랑한 사랑, 하나님을 원망한 원망, 사람을 미워한 미움 등 마음의 죄 지은 행위와 거짓말을 한 입, 도적질을 한 손, 사람을 죽인 손 등 몸의 죄 지은 행위를 그대로 천국에 가지고 간다면 천국은 다시 지옥이 됩니다. 그래서 죄 지은 심신의 행위(기능)는 분리해서 지옥에 보냅니다.
5. 기능(행위)은 대화할 수 있는가?
음부에 간 것이 홍포 입은 부자의 기능이라면 기능이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과학이 미개할 때는 사람만이 대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오늘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인 원숭이도 원숭이의 언어로 원숭이끼리 대화하며, 곤충인 벌도 벌의 언어로 벌끼리 대화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물도 마음이 있어 사람의 사랑과 미움에 반응하여 성장이 달라진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현재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가지고 기능이 대화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성경적으로는,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사람과 뱀이 서로 대화했고, 예수님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40) 말씀하셨습니다. 돌조차 말을 한다면 기능은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6. 지옥 간 기능의 역할
택자는 예수님을 믿어 영이 중생되어 영육이 천국에 가는데 육인 심신의 기능 중 죄 지은 기능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데 고통 받는 이 기능을 보며 천국에 있는 영육이 죄를 대속해 천국에 살게 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대해 영원히 감사하게 하며 또한 영원한 고통을 받는 죄 지은 기능을 보며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 주님의 사랑을 헛되게 만든 것에 대해 영원히 죄송함을 가지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거지 나사로는 고난을 받아서 낙원(천국 대기소)에 갔고, 홍포 입은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해서 음부(지옥 대기소)에 갔습니다. 낙원과 음부에 간 기준이 그들의 믿음이 아닌 행위입니다. 행위로 낙원과 음부가 결정된다면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으니 믿는 사람들 가운데 낙원에 갈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만약에 홍포 입은 부자가 그 ‘행위’ 때문에 음부에 간 ‘불택자’라면 믿는 사람들 전부도 그 행위 때문에 음부에 갈 불택자들입니다.
2. 기본구원과 행위구원(기능구원)
홍포 입은 부자가 불택자라는 것은 구원의 혼동에서 오는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2가지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택자로서 불신자로 살다가 때가 되어 예수님을 믿어 영이 중생되어 영육이 천국에 가는 것이 영원히 확정되는 불변의 기본구원이 있습니다. 기본구원은 인간의 행위는 단 하나도 없이 오직 전적 하나님의 은혜인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예수님을 믿었으면 영육이 천국에 가는 것은 영원히 불변인데 이것이 기본구원입니다.
둘째는 육인 심신이 중생된 영에게 순종하여 의를 행하면 그 심신의 행위(기능)가 천국에 가게 되고, 심신이 악령에게 순종하여 죄를 행하면 그 심신의 행위(기능)가 지옥을 가게 됩니다. 이처럼 심신의 행위에 따라 그 행위(기능)의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을 행위구원(기능구원)이라 합니다.
3. ‘홍포 입은 부자’는 택자
누가복음 16장에 홍포 입은 부자가 불택자라 예수님을 안 믿어 음부에 간 것이라면 그 행위를 따질 필요가 없는데, 음부에 간 여부에 그 행위를 따진 것을 보니 홍포 입은 부자는 기본구원을 받은 택자입니다. 기본구원이 없는 불택자는 행위구원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4. 음부에 간 것은 홍포 입은 부자의 행위(기능)
누가복음 16장에 행위에 따라 음부에 간 홍포 입은 부자는 홍포 입은 부자의 영육이 아닌 홍포 입은 부자의 심신의 행위(기능)입니다.
하나님보다 자녀를 사랑한 사랑, 하나님을 원망한 원망, 사람을 미워한 미움 등 마음의 죄 지은 행위와 거짓말을 한 입, 도적질을 한 손, 사람을 죽인 손 등 몸의 죄 지은 행위를 그대로 천국에 가지고 간다면 천국은 다시 지옥이 됩니다. 그래서 죄 지은 심신의 행위(기능)는 분리해서 지옥에 보냅니다.
5. 기능(행위)은 대화할 수 있는가?
음부에 간 것이 홍포 입은 부자의 기능이라면 기능이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과학이 미개할 때는 사람만이 대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오늘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인 원숭이도 원숭이의 언어로 원숭이끼리 대화하며, 곤충인 벌도 벌의 언어로 벌끼리 대화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물도 마음이 있어 사람의 사랑과 미움에 반응하여 성장이 달라진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현재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가지고 기능이 대화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성경적으로는,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사람과 뱀이 서로 대화했고, 예수님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40) 말씀하셨습니다. 돌조차 말을 한다면 기능은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6. 지옥 간 기능의 역할
택자는 예수님을 믿어 영이 중생되어 영육이 천국에 가는데 육인 심신의 기능 중 죄 지은 기능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데 고통 받는 이 기능을 보며 천국에 있는 영육이 죄를 대속해 천국에 살게 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대해 영원히 감사하게 하며 또한 영원한 고통을 받는 죄 지은 기능을 보며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 주님의 사랑을 헛되게 만든 것에 대해 영원히 죄송함을 가지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경대로 봐야 합니다. 너무 신학적으로 돌려서 보면 안됩니다. '홍포입은 부자'가 택자 또는 불택자라는 얘기는 여기선 불필요한 논쟁으로 보고, 만일 그 부자가 택자였다면 참된 믿음의 소유자로서 집앞의 거지 나사로를 불쌍히 여기며 선행에 힘썼을 것입니다. 고로 그 부자는 참된 소유자가 아닌 불택자란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 양과 염소 심판에서 지옥갈 염소는 가난한 자들 즉, 지극히 작은자하나에게 하지 않은 죄를 지적하시면서 형벌심판을 내리시는내용이 나옵니다. 이렇듯, 그 부자는 아무리 아브라함을 알고 있고 기독교나 그당시 유대종교에 대해 익숙해있고 그안에서 종교생활을 했다했을지라도 외식하는자로서 소위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옥심판을 받는거라 생각합니다. 마태복음7장에도 주여주여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내용 나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지만 참된 신자는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선행이 뒤따르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 회개하면서요.
열매로 그들을 압니다.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좋은 나무에서 나쁜열매를 맺을수 없는 이치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지만 참된 신자는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선행이 뒤따르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 회개하면서요.
열매로 그들을 압니다.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좋은 나무에서 나쁜열매를 맺을수 없는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