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 창세기 31~33절에 나타난 야곱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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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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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5 00:00
제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내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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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답변을 해주셔도 감사합니다.
(1)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2)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위골)
(3)창 33:16-17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회정하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질문]
1. 야곱은 창세기 31장 3절에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라반에게서 떠납니다. 그가 라반에게서 떠날 때 작별을 고하지 않고 도망치듯 떠납니다. 그리고 라반에게 죽을 뻔하다가 하나님 은혜로 살아납니다. 여기서 야곱의 도망치듯 떠난 행동은 잘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입니까? 도망치듯 떠난 것이 의로운 행동이었는데 라반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책하신 것인지, 도망치듯 떠난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야곱이 도망치듯 떠난 행동은 회개해야 할 행동이었는지 교인이 그 현실에서 마땅히 행해야할 순종이었는지 궁금합니다.
2. 얍복나루에서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됩니다. 이에 관해서 백목사님 설교를 참고했고 이해했습니다. 환도뼈를 예수님의 대속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지 궁금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대항했으니 죽어야 했음에도 환도뼈 위골로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죽어야할 야곱이 살았다고 볼 수 있는지요?
3.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이겼다’에서 ‘사람’은 누구를 의미하는가요? 에서, 라반 같은 세상에서 싸워 이겨야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인가요?
혹시 ‘하나님과 사람’을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볼 수 있는가요? 처음에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나님이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을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생각해 보니까 왠지 이단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
4. 창 33:16~17절에 에서는 세일로, 야곱은 숙곳으로 갑니다. 혹자들은 벧엘로 가야 할 야곱이 형에 대한 두려움을 아직도 느껴서 형 에서를 피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숙곳에 갔다가 디나가 강간당하는 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지요? 야곱은 이미 환도뼈가 위골되어 회개했고 브니엘이라는 뜻을 봐서도 완전히 회개한듯 싶고 백목사님 설교에서도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된 후 다시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고 실수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숙곳으로 간 이유가 궁금하고 숙곳으로 간 것이 죄를 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 죄가 아니라면 디나가 강간당하는 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5. 주로 감리교에서 야곱의 씨름은 간절한 기도였고 ‘하나님에 대한 강청’의 의로움이라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야곱이 정말 무엇을 씨름했는지 ‘시간이 되신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설교록은 인용해 놓겠습니다. ‘환도뼈’로 검색해 보면 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851008교역
27절에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부를 것이 하니" 다시는 네가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취하니까 됐다. 또 밧단 아람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죽자껏 힘을 쓰니까 마누라도 둘 다 욕심대로 다 취했다. 또 이래 하니까 양떼들도 많이 됐다.
이것이 버르장이가 돼 가지고 자꾸, 그때 어릴 때는 어릴 때 마지막에 얍복 강에 가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이제 가라' 간다 해 가지고 출발하기는 출발했지만 에서가 죽일라 하니까 죽어도 순종해야 되니까, 죽으나 사나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가야 될 터인데 '못 갑니다. 안 됩니다.' 요걸 세운 것이 그것이 야곱의 마지막의 씨름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이제 회개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예, 제가 가겠습니다.' 가면서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이래서 이제 그 다음에는 네가 무엇이든지 네 주관 '내가 하면 된다. 하면 되지 안 될 게 뭐 있느냐? 내가 믿고 하면 된다. 내가 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그 주장의 그런 버릇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계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약속했기 때문에 '하면 된다' 하는 그런 버릇을 이제는 하지 말고, 다시는 하지 말고 *이제는* 네가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하나님이 명령하는 데에 복종하는 네가 되어지고 네 주관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꺾어서 정복을 당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시고, 그때부터 하나님은 가라 했는데 그 말대로 순종해서 얍복강을 건너서 갔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세워대다가 갔습니다. 그래 이제 한 대 맞고 난 다음에 가니까 그만 어찌 됐습니까? 한 대 맞고 가니까 자기라는 사람이 완전히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꿔졌습니다. 하나님 대항하면 죽는다. 그분이 이렇다 하면 이렇고 저렇다 하면 저렇지 그분에게 대항해서 '아이고 그래도 안 됩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이렇게 대항하면 자멸하는 행위라 하는 것을 굳게 잡고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에게 꼬박꼬박 '예'로 했지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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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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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답변을 해주셔도 감사합니다.
(1)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2)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위골)
(3)창 33:16-17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회정하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질문]
1. 야곱은 창세기 31장 3절에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라반에게서 떠납니다. 그가 라반에게서 떠날 때 작별을 고하지 않고 도망치듯 떠납니다. 그리고 라반에게 죽을 뻔하다가 하나님 은혜로 살아납니다. 여기서 야곱의 도망치듯 떠난 행동은 잘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입니까? 도망치듯 떠난 것이 의로운 행동이었는데 라반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책하신 것인지, 도망치듯 떠난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야곱이 도망치듯 떠난 행동은 회개해야 할 행동이었는지 교인이 그 현실에서 마땅히 행해야할 순종이었는지 궁금합니다.
2. 얍복나루에서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됩니다. 이에 관해서 백목사님 설교를 참고했고 이해했습니다. 환도뼈를 예수님의 대속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지 궁금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대항했으니 죽어야 했음에도 환도뼈 위골로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죽어야할 야곱이 살았다고 볼 수 있는지요?
3.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이겼다’에서 ‘사람’은 누구를 의미하는가요? 에서, 라반 같은 세상에서 싸워 이겨야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인가요?
혹시 ‘하나님과 사람’을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볼 수 있는가요? 처음에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나님이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을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생각해 보니까 왠지 이단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
4. 창 33:16~17절에 에서는 세일로, 야곱은 숙곳으로 갑니다. 혹자들은 벧엘로 가야 할 야곱이 형에 대한 두려움을 아직도 느껴서 형 에서를 피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숙곳에 갔다가 디나가 강간당하는 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지요? 야곱은 이미 환도뼈가 위골되어 회개했고 브니엘이라는 뜻을 봐서도 완전히 회개한듯 싶고 백목사님 설교에서도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된 후 다시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고 실수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숙곳으로 간 이유가 궁금하고 숙곳으로 간 것이 죄를 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 죄가 아니라면 디나가 강간당하는 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5. 주로 감리교에서 야곱의 씨름은 간절한 기도였고 ‘하나님에 대한 강청’의 의로움이라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야곱이 정말 무엇을 씨름했는지 ‘시간이 되신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설교록은 인용해 놓겠습니다. ‘환도뼈’로 검색해 보면 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851008교역
27절에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부를 것이 하니" 다시는 네가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취하니까 됐다. 또 밧단 아람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죽자껏 힘을 쓰니까 마누라도 둘 다 욕심대로 다 취했다. 또 이래 하니까 양떼들도 많이 됐다.
이것이 버르장이가 돼 가지고 자꾸, 그때 어릴 때는 어릴 때 마지막에 얍복 강에 가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이제 가라' 간다 해 가지고 출발하기는 출발했지만 에서가 죽일라 하니까 죽어도 순종해야 되니까, 죽으나 사나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가야 될 터인데 '못 갑니다. 안 됩니다.' 요걸 세운 것이 그것이 야곱의 마지막의 씨름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이제 회개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예, 제가 가겠습니다.' 가면서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이래서 이제 그 다음에는 네가 무엇이든지 네 주관 '내가 하면 된다. 하면 되지 안 될 게 뭐 있느냐? 내가 믿고 하면 된다. 내가 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그 주장의 그런 버릇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계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약속했기 때문에 '하면 된다' 하는 그런 버릇을 이제는 하지 말고, 다시는 하지 말고 *이제는* 네가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하나님이 명령하는 데에 복종하는 네가 되어지고 네 주관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꺾어서 정복을 당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시고, 그때부터 하나님은 가라 했는데 그 말대로 순종해서 얍복강을 건너서 갔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세워대다가 갔습니다. 그래 이제 한 대 맞고 난 다음에 가니까 그만 어찌 됐습니까? 한 대 맞고 가니까 자기라는 사람이 완전히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꿔졌습니다. 하나님 대항하면 죽는다. 그분이 이렇다 하면 이렇고 저렇다 하면 저렇지 그분에게 대항해서 '아이고 그래도 안 됩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이렇게 대항하면 자멸하는 행위라 하는 것을 굳게 잡고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에게 꼬박꼬박 '예'로 했지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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