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충망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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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충망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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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2020년 신년특집 A19면에서 발췌.

어느 여름밤 "바람이 들어오게 창문을 열라"는 아버지와 "모기 들어오니 창문 닫아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처지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분쟁과 화를 모면할 수 없다. 하지만 창문에 방충망을 달면 바람은 들어오고 모기를 막는 새로운 해법을 창조할 수 있다.

한쪽 편에 줄 서는 선택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품는 창조성이 외통수를 넘어서는 생존 방식이다. 이는 양자택일(either-or)을 탈피하여 양자병합(both and)으로 가는 창조적 해법으로 가는 창조적 해법을 구축하는 길이다. 한 예로 우리나라가 수십 년 공을 들여 한•중•일 세 종류의 밤 품종을 교배해 맛도 좋고, 병충해에도 강한 신품종 '대보밤'을 만들어 낸 것과 같다.


질문.
노선 분리가 맞다면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고 노선 분리가 틀렸다면 양자병합을 해야 할 것인데 아브람과 롯처럼 노선 분리될 것이 확실하다면 사람으로서 할 일은 오직 한 길의 택일이라는 선택 뿐이겠지만 노선 분리가 안될 것을 자기 중심의 악이라는 감정이 들어 교회가 나뉜다면 교인으로서 위 신문과 같은 이치로 접근하여 불목을 화목케 하려는 방충망 역할과 같은 시도는 잘못된 행동일까요?
교인 2020.01.02 21:12  
추가질문.
양자택일의 노선 분리가 아닌 양자병합이라는 후자가 맞다면
그렇다면 방충망 역할을 한다는 것은 교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교인 2020.01.04 04:12  
담당9님의 실제적인(생활적인) 답변을 기다립니다.
담당 9 2020.01.04 07:12  
1. 판단 기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6)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창 3:1)

지혜와 간교는 사실 같은 말입니다. 문제는 입장입니다. 천하 없이 좋은 두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나를 희생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게 써볼까에 이용한다면 이것은 거룩한 지혜가 되고. 반대로 이 좋은 두뇌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서 내 중심으로 내 마음, 내 뜻대로 살아볼까 교묘히 죄를 연구하고 행악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이것은 간교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간교는 말이 아니라, 진정 나의 중심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모든 것이 판가름이 나버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월 속에서 반드시 알게 하셨습니다.

2. 노선 문제

교회 안에 노선 문제가 일어났을 때, 신앙이 있는 교인일수록 고민은 깊어집니다. 나보고 어찌하라는 말씀이신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섣불리 해결을 하겠다고 자기가 나서서 목회자를 가르치려 덤빈다면 고라의 패역죄, 함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는데 비느하스의 분노함으로 창을 들어 죄악을 뚫어버리지 않는다면 온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재앙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분개로 인한 극단적 행동이나 또는 방충망 역할과 같은 절충적 시도를 하기 이전에 정말 정밀하게 계산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모든 것에 매이지 않은 나의 신앙 양심의 은밀한 소리에 온 힘을 다하여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설교의 메세지와 교회가 흘러가는 신앙의 방향을 면밀히 분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의입니다. 나는 아무리 주님을 위하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한고 심지어 위해서 죽기까지 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하나님의 뜻이 그게 아니란다면 그 잘못된 확신만큼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불의'의 원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확실할 수록 자기 생각과 주관은 빼버리고 조심 조심히 객관의 하나님의 뜻을 찾는 노력이 더 중요하고 순서적으로도 최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란 반드시 두 길이 아니라, 한 길입니다. 애매함이 아니라 확실함입니다. 만약 주님이 정녕 자신을 남겨서 교회를 지키게 하셨다면, 몸은 그곳에 있어도 두 길이 아닌 유일한 이 한 길 옳은 노선에 대한 간절과 열망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질 것이고 이런 거부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자신을 통하여 타인이 바뀌든지 아니면 본인이 쫓겨나든지 그런 양단간의 피할 수 없는 길을 주실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내가 뭘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계산을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만 하는 것 뿐입니다. 오로지 주님의 인도따라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이것이 바로 신앙이요. 공회의 길이었습니다.
교인 2020.01.04 16:29  
문답를 이어갑니다.

노선분리가 확실하다면 교인으로서는 너무나 쉽습니다. 옳은 한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면 되니까요. 문제는 노선분리가 아닌데 노선분리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 교인의 입장과 처신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방충망을 절충적 시도라 말씀하셨는데 노선분리일 때는 방충망이 불필요하게 그럴 수 있겠으나 노선분리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그러나 그 시기는 현재로서는 무한정 기약이 없다면 교인으로서는 임시 방편적으로 홍해 바다가 갈라지기 전까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방충망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담당 9 2020.01.04 21:40  
(수정 2020-01-05 5:30)

네. 확실히 노선 분리가 문제가 아니고 양자병합인데 시일이 오래 걸린다면,

본인이 해당 교회의 제 2의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신앙이 어린 교인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이 앞선 본인은 전후상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담당 목회자가 잘못된 길로 인도하거나 틀린 설교를 하면 흘려 들을 수도 있고 때로는 슬쩍 빠지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겠으나, 순종 밖에 모르는 어린 교인들은 잘못된 인도에 따라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만 도피해서 살아있고 주님의 대속으로 피 흘려 구원하신 어린 양들은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이 상황을 지켜볼 적마다 너무나도 부끄럽고 원통하여 하늘을 우러러 가슴이 메여 곡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담당 목회자를 강권을 써서라도 돌려 세우고 싶은데 하나님의 법이 막고 있고 주신 현실이 기다리라 하시니 어쩔 수 없이 기다리기는 기다리지만, 그러는 사이에 주의 피로 대속하신 주님의 자녀들 나의 형제들의 구원이 시시각각으로 죽어나가고 있는데 나는 중간에서 수수방관 밖에 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주님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운지, 이렇게까지 가슴 아픈 현실과 비참한 내 모습에 애 간장이 녹아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어린 교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인도받는 교인도 못 알아 챌 정도로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인도해야 합니다. 반드시 담당 목회자의 인도하는 방향과 충돌이 일어날만한 내용은 피해야하고 누구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가장 기본적 가장 기초적인 신앙의 개념부터 차례대로 옳은 길로 인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담당 목회자는 계속 목회를 하지만 교회의 내면은 완전히 바뀌어지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절대로 어느 누구와도 충돌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대단히 예민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살펴서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양쪽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도 어느 쪽도 나의 은밀한 내면을 알면 일이 성사가 안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를 수 밖에 없는 이 쓸쓸하고 고독한 길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한걸음씩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니까, 나로 인해 교회를 살려내야 하니까 내 안에 숨어 있던 더 깊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욱 몸부림을 쳐야 하고, 교회를 향한 더 깊으신 뜻을 알아내기 위하여 있는 식음을 전폐하기까지 전력을 다해야 하며, 이 모든 일을 바쁜 현실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가운데 이뤄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끝도 보이지 않는 이 길을 어떤 낙망이나 원망함 없이 주님 동행으로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니, 실제 대단히 힘들고 괴롭습니다. 자기를 완전히 부인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넘어진다 해도 계속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는데까지는 계속 해야 합니다. 담당 목회자가 본래 흘려야 했던 눈물을 주님 앞에 내가 대신 흘려야 하고, 담당 목회자가 짊어져야 했던 고통과 괴로움을 내가 짊어져야 합니다.

분명히 주님이 도우시면 안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단 시간이 아니라 장기간의 싸움입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을 실패한 것은 아합이 강해서가 아니라 여호사밧의 초심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각오와 결단도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직시하면서 이것이 과연 나의 사명인가? 내 사명이란다면 얼마정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자기 신앙의 분량을 철저히 계산하여 만사를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 대단히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이 과정을 제대로 통과하고 실제 해낼 수만 있다면, 시대를 감당할 귀하고 복된 주님의 종으로 은혜를 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교인 2020.01.05 06:22  
답변 감사합니다.
아래 부분이 와 닿습니다.

인도받는 교인도 못 알아 챌 정도로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금방이라도 담당 목회자의 인도하는 방향과 충돌이 일어날만한 내용은 잠시 피하고, 누구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차례대로 은밀히 인도를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절대로 그 누구와도 충돌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대단히 예민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살펴서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양쪽의 모든 죄를 내가 짊어지고도 어느 쪽도 나의 은밀한 이 내면을 알면 일이 성사가 안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를 수 밖에 없는 이 쓸쓸하고 고독한 길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한걸음씩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위 문장을 '방충망'으로 요약해 봤습니다 비록 아버님이 100% 옳고 어머님이 100% 틀렸는데 어머님이 먼저 이혼하자고 해도 이혼이 결정되기 전까지 자식된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아버님도 설득하고 어머님도 설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식의 중심은 어떻게든 이혼만은 막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혼이라면 그래서 양쪽 다 합의하에 이혼(분리) 도장을 찍으면 그 때부터는 이야기(중심)가 달라지겠지만 이혼전까지는 회개라는 여지가 있지는 않나 하고 자식(교인)은 항상 여지(꺼져가는 심지에 대한 일말의 소망)를 염두해 둡니다.

큰 형은 말하기를 왜 아버님을 선택하지 않느냐 이건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느냐 자기 입장을 대중 앞에 밝혀라 자기 소신을 숨기는 것은 명백한 위선이요 자기에게 자기가 속는 것이다. 밑에 동생은 어머님이 옳다 아버님이 너무 강하셔서 어머님이 지금 그러시는 것이다 형은 왜 중간에서 기웃기웃 거리고 있느냐 어느 한 쪽을 택하라 형의 신중한 태도에 이제는 화가 치민다

주변 형제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은 두 분이 갈라서는 것보다는 어느 한 쪽이 회개할 수 있는 길이 혹시나 있지는 않나? 아직 확신이 없어 믿음이 없어 그럽니다 변명하지만 내심 속마음은 너무나도 쉽게 아버님(어머님)을 선택하고 어머님(아버님)이 틀리셨다 아버님(어머님) 앞에 가서 무릎 꿇어 사죄하시라 어머님(아버님)께 눈물로 호소한다고 그게 될 것 같으면 그리 하겠지만 노선에 대한 자기 확신은 그 누구도 꺽을 수 없고 다만 하나님과 자기가 대면하여 단판을 지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양심 선택이라는 노선의 특수성인 것 같습니다

세월 속에 이혼은 없던 일로 하고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재결합한다면 천만다행! 이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지만 10,000:1(만:일) 이혼도장을 찍고 갈라서고 난 다음에는 자식으로서 어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자식은 담당9님이 말씀하신대로 아버님(어머님)의 타산지석과 어머님(아버님)의 반면교사를 교훈삼아 과거 우리가 걸었던 걸음처럼 제 3의 독립을 해야겠지요?

이 나라 이혼율이 50,60프로를 넘고 있는 이 때에 믿음 없는 자식들은 방황하다 죄악 세상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신앙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자연계시는 아닌가? 자라 온 과거 우리네 가정환경의 자화상이 아닌가? 그토록 뼈저리게 느꼈고 자기중심의 악. 이혼 직전의 비극을 몸소 겪었건만(이 때를 위함인가?) 망각성으로 인해 가정(교회) 역사의 왜곡은 재현되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 펼치는 작전이 적진에 깊숙히 침투하는 간첩침투 작전인데 지금 이 나라 모습이 수십년 계획된 이 은밀한 작전으로 말미암아 침몰 직전이고 서부교회 4층의 몰락도 이렇게 무너졌는데

하늘 영광 하나님 자리 다 내놓고 친히 사람으로 오신 구주 예수님처럼...

지금 직분을 다 내려 놓으시고 최근 신혼부부처럼
틀린 상대방 진영에 은밀하게 침투하셔서 눈물의 십자가를 함께 지실 의향은 혹 없으십니까?
명쾌한 답변으로 해법을 제시하신 담당9님께 조심스럽게 여쭙습니다. 답변 기다립니다.

한편 이 특수임무에 동참하실 함께 지원하실 자원자를 우리 주 하나님이 찾고 계십니다. (야고보서3:17-18)
외부든 내부든 어디든 좋습니다. 주님. 추수할 일군들을, 숨은 7,000인을 보내어 주시옵소서.

빛은 결국 어두움을 이깁니다.
두꺼비에게 잡아 먹힌 뱀이 두꺼비 뱃 속에서 알을 까고 새끼로 나와 나중에는 두꺼비를 잡아 먹는다.
고문하고 회유하고 죽일수록 신앙의 불길은 더욱 강하게 타 오를 것이다.
오라. 너 무저갱에 들어갈 불쌍하고 가련한 멸망의 자식이여.
공산주의 북한이 신앙주의 남한을 삼켜도 결국에는 남한이 북한을 점령해 버린다.
북한도 이 사실을 알기에 과거에는 무력으로 지금은 문화라는 사상 개조로 군중심리의 선동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생명은 사망을 이긴다. 진실한 자들은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다.
담당 9 2020.01.05 22:10  
가장 마지막 시험

교인님은 신앙이 뜨거운데다가 양심까지 깨끗하시니 이 시대에 대단히 희귀하고 복된 분임은 분명합니다. 진심으로 주님의 교회를 위한 그 간절한 마음에 동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은 교인님 평생의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사실 우리의 깨끗한 양심, 뜨거운 신앙생활이라도 그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관건은 하나님이 나와 동행을 하시느냐 안하시느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동행을 위해 계명을 깨끗히 지키는 것이고, 인간 자기 중심이 버티고 있으면 절대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말씀으로 자기를 꺽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뿐입니다. 대부분 믿는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평생을 소진하게 되는데, 교인님처럼 큰 은혜를 받은 분들은 실제 하나님과의 동행을 목전에 둔 단계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단계의 마지막 요구사항은 그 어떤 의로운 행위도 아니요, 전적으로 자기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계명을 다 지킨 부자 청년에게 마지막 남은 한가지는 전 재산을 다 팔아서 나눠주고 나를 쫓으라 하신 것처럼 교인님께는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남은 것 같습니다. 뒷날이 어떻게 될까? 생활은? 교회는? 염려 걱정하지 말고 주님과 복음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전능을 믿고 이제는 주님이 시키는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계명의 모든 목적은 계명 자체가 아니요, 목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기 때문에 말씀은 어떻게든지 나를 꺽고 부수고 갈아서 주님이 동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고치고 만들어지기 위한 것입니다. 갈수록 세상과 나는 간 곳 없어지고 구속하신 주님만 보이니 어떤 거부감 없이 원하고 원함으로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주님은 함께 계심으로 완전한 의사적 인격적 성품적 결합이 되는 이것이 바로 구원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 최종 관문이 바로 자기 부정입니다. 완전히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린 송아지가 울어대도 법궤를 멘 어미 소는 끝까지 뒤를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고 벧세메스까지 가서 죽음으로 제물이 되었습니다. 주님만을 위한 희생의 길, 주님이 어느 길로 가라 하신다 하여도 뒷날은 주님께만 맡겨놓고 오로지 앞만 보고 가는 길. 그렇게 가족에게 다정했던 손양원 목사님이 가족을 두고 홀로 떠나신 순교의 길이 그러했고, 피와 눈물로 세운 서부교회가 속화될줄 알면서도 그냥 두고 떠나신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이 그러했고 모든 신앙의 의 인물들의 평생이 그러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나와 주님만 아는 그 길. 아무도 몰라줘도 주님은 아시니, 주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그 길.

교인님에게는 이 한 단계가 남은 것 같습니다. 아무에게나 주시는 은혜는 분명히 아닌 듯 합니다. 대단히 큰 은혜를 받으셨으니 이제부터 깊은 기도로 내면의 정리를 시작하셔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구원이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지고 믿음은 순종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참 종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1)
교인 2020.01.06 05:57  
제 질문에 시간내어 친절하게 답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문답과 토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자기진리의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어 더욱 감사가 됩니다.

요한복음16: 12-13, 20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자녀로서 아버님과 어머님께 드릴 말씀이 참 많으나 한편으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했던 엘리사처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다락방에서 전혀 기도함으로 성령으로 세례 받기를 간절히 기다렸던 120명의 제자들처럼 진정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팔적인 역사성령이 와야만 이 모든 난제가 해결이 되겠나이까?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야만 끝이 나겠나이까? 그럼 악독으로 가득차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저부터 초달로 다스려 주셔서 지금 닥친 현실을 감당케 하옵소서. 주님이 그 모든 비밀을 제게 다 말씀하셔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사도행전 2:1-4의 은혜를 우리 각 개인에게 부어 주옵소서. 지금의 애통이 훗날에는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담당 9 2020.01.06 06:08  
신앙의 길을 제대로 가려는 자에게 피할 수 없는 시험이오나,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아멘. 아멘. 아멘.
능히 감당케 하옵소서.
담당 9 2020.01.06 20:24  
※ 교인님께 추가 말씀 올립니다.

저를 지목하셨고 제 개인적 경험이 있어서 답변은 했사오나, 제가 조심성이나 두려움으로 안내하기 보다는 너무 단정적이고 다 아는듯이 표현을 한 것 같아서 대단히 양심이 찔립니다.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하나님의 인도 역시 인간은 모르는데 제가 너무 단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역시 배우는 입장인데 조심성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이 문제는 평소 저의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부디 저의 답변 속에 조심성 없이 표현한 모든 것은 구별해서 참고해주시고, 어떤 환경에서도 낙심치 마시길 바랍니다. 한 쪽이 강하면 다른 쪽은 반드시 약하게 되어 있으니 이는 모두 각 사람의 분량일찐대 한 사람의 평생의 신앙을 두고 이리저리 큰 소리치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란 부모님이나 담당 목회자 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제 답변을 구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저 주시는 은혜를 따라서, 우리 함께 소망 가운데 한걸음씩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교인 2020.01.07 04:34  
소인의 우문에 지극정성으로 현답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담당9님의 답변이 지금 제 현실에 다 필요하고 요긴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어 더욱 감사가 됩니다.

다만 마음은 원이로되 상대적으로 둔한 몸이 따라가지 못해 고통이요 오호라! 곤고가 밀려옵니다.
지인을 통해 이제 그만하라 하시니 문답도 자제하겠습니다.
연구소 일로 바쁘신데 시간을 뺏어 죄송합니다.
또한 감사했습니다.
담당 9 2020.01.07 22:09  
서로의 신앙의 대화를 통하여 이렇게 배우기도 하고 고쳐가기도 하오니, 문답이라는 좋은 기회를 부디 멈추지 마시고 함께 계속 이어나가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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