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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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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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21:35
성경에 보면 '없음'으로 아에 절이 없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른곳에는 '셀라'라 되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없음과 셀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없음과 셀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1. 셀라
셀라는 찬양에 사용되는 신호, 할렐루야는 승리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시편은
시의 형태로 기록한 성경인데
시에 음을 붙여 찬송 연주나 낭송 등의 형태로 사용된 말씀입니다.
시의 뜻은 다른 성경처럼 꼭 같은 하나님 말씀이지만 기록된 외형이 특별합니다.
셀라는
그 단어의 뜻만 가지고 말한다면 '들어올리다' '쉬다'라는 뜻입니다만
현재 당시 연주나 낭송의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짐작으로만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찬송이나 낭송으로 사용될 때 필요한 '진행음' 정도로만 아셨으면 합니다.
노래나 낭송을 할 때 장단을 맞추어 함께 소리를 낸다든지 또는 연주에 필요한 음표 역할을 하는 정도로 안다면 실수가 없고, 더 확실하게 알 수 없다면 우선 시편을 읽을 때 '셀라'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셀라'는 '셀라'라는 그 소리 그대로 읽으며 느낌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2. 성경에 절이 없는 경우
성경에 절이 없는 경우는, 성경 사본들의 차이 때문입니다.
3. 참고로, 성경의 원본과 사본에 대해 설명을 덧붙입니다.
구약을 기준으로 본다면 성경보다 구약 교회에 더 중하게 모셔 진 것은 법궤입니다. 성경의 경우는 시편이 150 편으로 모아졌는데 어떤 것은 저자를 모르는 것도 있고 그 150 편이 제각각 따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무엇이 성경인지 아닌지도 이스라엘 범위 안에서 논란이 있고 저자를 모르는 경우는 더욱 많습니다. 그러나 법궤만은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밖에 없고 제일 중심에 둔 성물이었습니다. 이 법궤까지도 신앙이 흐려지고 상황이 급하다 보면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의 손에 넘어 가서 이방 마을을 전전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과 함께 신약의 경우 박해 받는 중에 기록한 성경의 원본은 요즘 중앙은행의 지폐 제조 원판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 되고 보관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박해의 대상이어서 숨겨 다녀야 하던 시기가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본이 기록 되고 관리 되며 필사가 되다 보면 원본을 기록하는 원판이나 먹물이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 최저의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본 관리 역사를 보면 원본이라는 것은 그 원본의 가치성은 절대지만 그 원본의 원상 보관을 두고는 하나님께서 감출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교회에게 원본을 그대로 주시지 않기로 했고, 원본 성경이 적히던 시기에는 적지 않은 경우가 이스라엘의 혼란기나 박해기였고 그 신앙을 그대로 이어 가는 교회는 박해를 더욱 심하게 받아 왔습니다. 비록 필사를 할 때는 있는 정성을 다했다 해도 기록한 재질과 필기 먹물은 최상이 될 수가 없고 그 과정에서 착오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원본을 필사한 사본들이 많아지며 전달되는 과정에 신앙 없는 이들이나 요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같은 이들이 개입하면 마음 먹고 몇 자를 고쳐 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입니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고, 정확무오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성령에 감화와 감동을 받은 사람이 정말 성령에게 붙들렸는데 사본성경의 틀린 점을 알지 못한다면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거나 성령의 정확무오나 전지전능을 제감하는 이단입니다.
'성경'이라고 할 때는 '원본'만 성경입니다. 사본들이 일치 될 때는 원본 그대로라고 '짐작'을 하지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사본들이 일치 되지 않은 경우는 알파벳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때는 어느 사본이 원본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지금 신학교의 수많은 성경 신학서들이나 주석들이 사본들의 차이를 예시한 다음 어느 사본이 원본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본들끼리 일치 되는 경우라 해도 그 사본들의 내용에 원본이 아니라 사본 기록자들이 공통적으로 어느 과정에서 원본을 잘못 배껴 적었다고 짐작 되는 부분들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모든 사본들의 내용이 일치 됨에도 불구하고 그 사본들의 내용만을 가지고도 원래 원본은 이렇지 않고 저러했다고 설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형태로 여러 근거로 여러 비교를 통해 사본성경의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는 성경 신학 세계에서는 흔하고 목격 되는데 그들의 지적은 그들이 성령이 아니라 자기 인간의 연구와 인간적 노력의 결과라 하지 않고 자기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조명 역사에 붙들려 특별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원본을 감추시고 사본만 전해 주신 하나님의 성경 보존 역사는, 원본 보존 역사가 아니라 원본 성경을 성령으로 깨달아 알 수 있는데 필요한 정도의 사본 보존 역사입니다. 원본 자체가 있었더라면 천주교의 우상 놀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기독교조차 우상 놀음에서 벗어 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본 성경은 그 성경 자체가 오류 없고 착오 없는 하나님의 신성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상의 대상이 될 위험성을 없애고, 그리고 원본 성경 그 성경 자체만 가지고 신앙의 전부로 삼는 오류도 없애고, 그 대신 성령에 붙들려 사는 모든 성도들이 그 성경을 기록한 성령에 붙들리면 사본을 가지고도 사본 속에 들어 있는 원본을 직접 깨달아 알도록 하고 사본에 의하여 감추어 진 부분이나 왜곡 된 부분이나 가감 된 부분이나 기록 착오 된 부분들에 막히지 않도록 하여 성령에 사람들로 살도록 하신 것이 원본 자체를 없애고 사본만 남긴 뜻입니다. 사본만 남았으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원본을 그대로 가졌을 때보다 더욱 원본적이고 원본 기록의 성령적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도록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원본 보존을 못해서 실패하고 사본만 보존한 것이 아니라 원본을 더욱 원본 되게 하시는 역사의 일환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천국만 만들었다면 에덴동산의 탈선과 인간의 멸망과 예수님의 사활의 수고가 필요 없었을 것이나, 세상까지 만드심은 탈선과 대속의 수고를 하심으로 우리에게 천국만 주심보다 천국을 더욱 천국 만들어 주시는 고의적 역사입니다. 타락은 하나님께서 지키지 못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고 대속은 그 수습이 아니고, 타락과 대속은 창조 전에 목적 단계에서부터 없어서 안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셀라는 찬양에 사용되는 신호, 할렐루야는 승리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시편은
시의 형태로 기록한 성경인데
시에 음을 붙여 찬송 연주나 낭송 등의 형태로 사용된 말씀입니다.
시의 뜻은 다른 성경처럼 꼭 같은 하나님 말씀이지만 기록된 외형이 특별합니다.
셀라는
그 단어의 뜻만 가지고 말한다면 '들어올리다' '쉬다'라는 뜻입니다만
현재 당시 연주나 낭송의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짐작으로만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찬송이나 낭송으로 사용될 때 필요한 '진행음' 정도로만 아셨으면 합니다.
노래나 낭송을 할 때 장단을 맞추어 함께 소리를 낸다든지 또는 연주에 필요한 음표 역할을 하는 정도로 안다면 실수가 없고, 더 확실하게 알 수 없다면 우선 시편을 읽을 때 '셀라'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셀라'는 '셀라'라는 그 소리 그대로 읽으며 느낌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2. 성경에 절이 없는 경우
성경에 절이 없는 경우는, 성경 사본들의 차이 때문입니다.
3. 참고로, 성경의 원본과 사본에 대해 설명을 덧붙입니다.
구약을 기준으로 본다면 성경보다 구약 교회에 더 중하게 모셔 진 것은 법궤입니다. 성경의 경우는 시편이 150 편으로 모아졌는데 어떤 것은 저자를 모르는 것도 있고 그 150 편이 제각각 따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무엇이 성경인지 아닌지도 이스라엘 범위 안에서 논란이 있고 저자를 모르는 경우는 더욱 많습니다. 그러나 법궤만은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밖에 없고 제일 중심에 둔 성물이었습니다. 이 법궤까지도 신앙이 흐려지고 상황이 급하다 보면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의 손에 넘어 가서 이방 마을을 전전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과 함께 신약의 경우 박해 받는 중에 기록한 성경의 원본은 요즘 중앙은행의 지폐 제조 원판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 되고 보관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박해의 대상이어서 숨겨 다녀야 하던 시기가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본이 기록 되고 관리 되며 필사가 되다 보면 원본을 기록하는 원판이나 먹물이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 최저의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본 관리 역사를 보면 원본이라는 것은 그 원본의 가치성은 절대지만 그 원본의 원상 보관을 두고는 하나님께서 감출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교회에게 원본을 그대로 주시지 않기로 했고, 원본 성경이 적히던 시기에는 적지 않은 경우가 이스라엘의 혼란기나 박해기였고 그 신앙을 그대로 이어 가는 교회는 박해를 더욱 심하게 받아 왔습니다. 비록 필사를 할 때는 있는 정성을 다했다 해도 기록한 재질과 필기 먹물은 최상이 될 수가 없고 그 과정에서 착오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원본을 필사한 사본들이 많아지며 전달되는 과정에 신앙 없는 이들이나 요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같은 이들이 개입하면 마음 먹고 몇 자를 고쳐 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입니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고, 정확무오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성령에 감화와 감동을 받은 사람이 정말 성령에게 붙들렸는데 사본성경의 틀린 점을 알지 못한다면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거나 성령의 정확무오나 전지전능을 제감하는 이단입니다.
'성경'이라고 할 때는 '원본'만 성경입니다. 사본들이 일치 될 때는 원본 그대로라고 '짐작'을 하지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사본들이 일치 되지 않은 경우는 알파벳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때는 어느 사본이 원본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지금 신학교의 수많은 성경 신학서들이나 주석들이 사본들의 차이를 예시한 다음 어느 사본이 원본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본들끼리 일치 되는 경우라 해도 그 사본들의 내용에 원본이 아니라 사본 기록자들이 공통적으로 어느 과정에서 원본을 잘못 배껴 적었다고 짐작 되는 부분들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모든 사본들의 내용이 일치 됨에도 불구하고 그 사본들의 내용만을 가지고도 원래 원본은 이렇지 않고 저러했다고 설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형태로 여러 근거로 여러 비교를 통해 사본성경의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는 성경 신학 세계에서는 흔하고 목격 되는데 그들의 지적은 그들이 성령이 아니라 자기 인간의 연구와 인간적 노력의 결과라 하지 않고 자기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조명 역사에 붙들려 특별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원본을 감추시고 사본만 전해 주신 하나님의 성경 보존 역사는, 원본 보존 역사가 아니라 원본 성경을 성령으로 깨달아 알 수 있는데 필요한 정도의 사본 보존 역사입니다. 원본 자체가 있었더라면 천주교의 우상 놀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기독교조차 우상 놀음에서 벗어 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본 성경은 그 성경 자체가 오류 없고 착오 없는 하나님의 신성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상의 대상이 될 위험성을 없애고, 그리고 원본 성경 그 성경 자체만 가지고 신앙의 전부로 삼는 오류도 없애고, 그 대신 성령에 붙들려 사는 모든 성도들이 그 성경을 기록한 성령에 붙들리면 사본을 가지고도 사본 속에 들어 있는 원본을 직접 깨달아 알도록 하고 사본에 의하여 감추어 진 부분이나 왜곡 된 부분이나 가감 된 부분이나 기록 착오 된 부분들에 막히지 않도록 하여 성령에 사람들로 살도록 하신 것이 원본 자체를 없애고 사본만 남긴 뜻입니다. 사본만 남았으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원본을 그대로 가졌을 때보다 더욱 원본적이고 원본 기록의 성령적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도록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원본 보존을 못해서 실패하고 사본만 보존한 것이 아니라 원본을 더욱 원본 되게 하시는 역사의 일환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천국만 만들었다면 에덴동산의 탈선과 인간의 멸망과 예수님의 사활의 수고가 필요 없었을 것이나, 세상까지 만드심은 탈선과 대속의 수고를 하심으로 우리에게 천국만 주심보다 천국을 더욱 천국 만들어 주시는 고의적 역사입니다. 타락은 하나님께서 지키지 못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고 대속은 그 수습이 아니고, 타락과 대속은 창조 전에 목적 단계에서부터 없어서 안 되는 내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