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8, 갈3:6 기본구원에 대한 말씀인지?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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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16:32
| 기본구원에 대한 말씀인지?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인지? |
|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 엡2:8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기본구원인가요? 건설구원 인가요?
갈라디아서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2.갈3:6의 `의` 는 기본구원의 의 인가요? 건설구원의 의 인가요?
1.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주어진 구원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택함, 대속, 중생, 부르심, 생명의 부활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은 먼지만한 것 하나도 들어가서도 안 되고 들어갈 수도 없는 구원입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객관 역사이며 전적 은혜입니다.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인간의 자유의지로 노력해서 이루는 구원입니다. 물론 그 궁극으로 들어가면 건설구원 역시 전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부 하나님의 절대 예정과 개별 주권 섭리의 범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예정과 개별 주권 섭리는 하나님의 범위이기 때문에 인간이 핑계 댈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주어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가 건설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의사에 의한 것이고 그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며 상벌의 보응 역시 자기가 받으니 이것이 건설구원입니다.
2. 질문하신 성구에 대해서
에베소서 2장 8절은 ‘기본구원’으로 생각합니다.
엡2: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위의 성구에서 보듯이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씀하신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기본구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과 2장은 대부분 기본구원에 관한 기록이라는 점 역시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이고, 인간의 행위의 모든 것은 건설구원에 속한 것이지만 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출발시키는 믿음의 출발 즉 중생과 부르심은 기본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야 대속을 입고, 대속 입은 사람이라야 중생이 되고, 중생이 된 사람이 부르심을 받아 믿게 되는 것이니, ‘믿음의 출발’ 즉 믿음이 생겨지는 ‘믿음의 생명’은 기본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종자적인 믿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위의 성구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신 말씀은 믿음을 잉태하는 믿음의 출발점, 즉 종자적인 믿음을 말씀하신 것이며,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이 믿음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건설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태어날 때 생명의 잉태는 기본구원으로, 잉태된 생명이 자라가는 것은 건설구원으로 비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위의 성구에서 말씀하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는 이 구원은 기본구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6절은 ‘건설구원의 의’라고 생각합니다.
갈3:6에서 인용된 말씀은 창15:6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성구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람의 믿음은 자의적인 믿음입니다. 아브람의 마음의 작용이며 이는 곧 마음의 행위입니다. 아브람의 자의적인, 마음의 작용 마음의 행위인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으니 이는 건설구원의 의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하신 갈3:6에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하셨으니 이 성구만 보면 창15:6과 같은 아브람의 자의적, 주관적 믿음의 행위로 건설구원의 의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갈3:5에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는 말씀으로 ‘행위와 믿음’을 대비시켜 놓고 6절에서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정하셨다 말씀하셨고,
롬4:1-3에서도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여기서도 아브라함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것으로 말씀하셨으니, 이 성구들을 보면 아브람의 믿음의 의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된 의 즉 기본구원의 의로 볼 여지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성구를 비교해서 살펴보면
갈3:5에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하셨고, 롬3:28-31은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시고 4:1-로 이어집니다.
위의 두 성구에서 공통적으로 대비해서 하신 말씀이 ‘율법의 행위와 믿음’입니다. 율법은 예수님 대속 이전 구약에 속한 것이고, 믿음은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갈3:5의 ‘율법의 행위와 듣고 믿음…’과 롬4:1-3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라고 하신 말씀들은 그 행위를 율법과 대비시킴으로 인간의 의가 ‘율법을 지킨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대속’은 근거해야 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한 믿음이라야 된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아브람의 믿음은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한 구약의 제사 생활을 근거한 것이니, 율법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인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한 아브람의 마음의 자의적 행위인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아브람의 믿음의 의는 건설구원의 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의 믿음과 함께 행위가 따라가야 온전한 믿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야고보서 2장 말씀으로도 위의 설명을 뒷받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약2:21-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주어진 구원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택함, 대속, 중생, 부르심, 생명의 부활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은 먼지만한 것 하나도 들어가서도 안 되고 들어갈 수도 없는 구원입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객관 역사이며 전적 은혜입니다.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인간의 자유의지로 노력해서 이루는 구원입니다. 물론 그 궁극으로 들어가면 건설구원 역시 전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부 하나님의 절대 예정과 개별 주권 섭리의 범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예정과 개별 주권 섭리는 하나님의 범위이기 때문에 인간이 핑계 댈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주어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가 건설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의사에 의한 것이고 그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며 상벌의 보응 역시 자기가 받으니 이것이 건설구원입니다.
2. 질문하신 성구에 대해서
에베소서 2장 8절은 ‘기본구원’으로 생각합니다.
엡2: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위의 성구에서 보듯이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씀하신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기본구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과 2장은 대부분 기본구원에 관한 기록이라는 점 역시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이고, 인간의 행위의 모든 것은 건설구원에 속한 것이지만 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출발시키는 믿음의 출발 즉 중생과 부르심은 기본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야 대속을 입고, 대속 입은 사람이라야 중생이 되고, 중생이 된 사람이 부르심을 받아 믿게 되는 것이니, ‘믿음의 출발’ 즉 믿음이 생겨지는 ‘믿음의 생명’은 기본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종자적인 믿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위의 성구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신 말씀은 믿음을 잉태하는 믿음의 출발점, 즉 종자적인 믿음을 말씀하신 것이며,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이 믿음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건설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태어날 때 생명의 잉태는 기본구원으로, 잉태된 생명이 자라가는 것은 건설구원으로 비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위의 성구에서 말씀하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는 이 구원은 기본구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6절은 ‘건설구원의 의’라고 생각합니다.
갈3:6에서 인용된 말씀은 창15:6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성구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람의 믿음은 자의적인 믿음입니다. 아브람의 마음의 작용이며 이는 곧 마음의 행위입니다. 아브람의 자의적인, 마음의 작용 마음의 행위인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으니 이는 건설구원의 의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하신 갈3:6에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하셨으니 이 성구만 보면 창15:6과 같은 아브람의 자의적, 주관적 믿음의 행위로 건설구원의 의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갈3:5에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는 말씀으로 ‘행위와 믿음’을 대비시켜 놓고 6절에서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정하셨다 말씀하셨고,
롬4:1-3에서도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여기서도 아브라함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것으로 말씀하셨으니, 이 성구들을 보면 아브람의 믿음의 의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된 의 즉 기본구원의 의로 볼 여지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성구를 비교해서 살펴보면
갈3:5에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하셨고, 롬3:28-31은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시고 4:1-로 이어집니다.
위의 두 성구에서 공통적으로 대비해서 하신 말씀이 ‘율법의 행위와 믿음’입니다. 율법은 예수님 대속 이전 구약에 속한 것이고, 믿음은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갈3:5의 ‘율법의 행위와 듣고 믿음…’과 롬4:1-3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라고 하신 말씀들은 그 행위를 율법과 대비시킴으로 인간의 의가 ‘율법을 지킨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대속’은 근거해야 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한 믿음이라야 된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아브람의 믿음은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한 구약의 제사 생활을 근거한 것이니, 율법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인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한 아브람의 마음의 자의적 행위인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아브람의 믿음의 의는 건설구원의 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의 믿음과 함께 행위가 따라가야 온전한 믿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야고보서 2장 말씀으로도 위의 설명을 뒷받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약2:21-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