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목적과 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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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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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06:50
구원을 위해서 죄가 되지 않는한 못할것이 없다 배웠습니다.
그런데 총공회의 전도방식, 각종행사, 구제활동, 사회봉사, 시상 등을 살펴보면 다른 교회들과 다르게 최소화 하고 모든 면을 줄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 교단에서는 전도회가 따로 있고 전도회의 각종 프로그램이나 외부 행사나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전도가 되고 있고 심지어 교회에서 출석하면 돈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전도고 한번이라도 더 교회를 나오고 신앙에 유익이 있어보이는데 공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요?
남녀를 같이 앉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앉을것이고 밴드를 하면 더 많이 앉을 것이고 극장의자를 설치하면 교인들이 더 좋아하고 많이 앉을 것이고 각종 행사를 많이 하면 전도가 많이 될것이고 여행을 많이 가면 여행을 위해서라도 교회를 한번 더 나올것이고 각종 시상이나 선물을 많이주면 상을 받으려고 열심히 신앙생활할 것이고 핸드폰 컴퓨터 세탁기 등의 고가의 선물이라면 당장에 새벽예배부터 나갈 것이고 문화상품권이나 돈을 주면 그 어떤 전도보다 뛰어날 것이고 성구와 찬송을 대형 티비로 보여주면 성경과 찬송가가 없는사람도 불편이 없어지니 예배보는데 더 좋고 지루허게 딱딱하게 교리 교훈만 전하고 양심에 찔리는 말씀만 듣는것보다 코메디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율동으로 좋은 말로만 해도 한주간 찌든 피곤해 있는 심신에 부담이 없어지니 마음이 편해지니 힐링이 되니 더욱 부흥이 될 것이고 아이돌 초청하면 수십 수백만명이 줄을서서 예배당에 올 겁니다.
구원을 위해서 할수 있는것과 할수 없는 것과 그 선은 어디까지인지.. 공회 행정의 본질 방향과 근거는 또 조절하는 선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어린신앙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하는데 어린 신앙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하는것이 맞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될까요?? 공회의 경우는 어떻게 하는가요??
그런데 총공회의 전도방식, 각종행사, 구제활동, 사회봉사, 시상 등을 살펴보면 다른 교회들과 다르게 최소화 하고 모든 면을 줄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 교단에서는 전도회가 따로 있고 전도회의 각종 프로그램이나 외부 행사나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전도가 되고 있고 심지어 교회에서 출석하면 돈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전도고 한번이라도 더 교회를 나오고 신앙에 유익이 있어보이는데 공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요?
남녀를 같이 앉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앉을것이고 밴드를 하면 더 많이 앉을 것이고 극장의자를 설치하면 교인들이 더 좋아하고 많이 앉을 것이고 각종 행사를 많이 하면 전도가 많이 될것이고 여행을 많이 가면 여행을 위해서라도 교회를 한번 더 나올것이고 각종 시상이나 선물을 많이주면 상을 받으려고 열심히 신앙생활할 것이고 핸드폰 컴퓨터 세탁기 등의 고가의 선물이라면 당장에 새벽예배부터 나갈 것이고 문화상품권이나 돈을 주면 그 어떤 전도보다 뛰어날 것이고 성구와 찬송을 대형 티비로 보여주면 성경과 찬송가가 없는사람도 불편이 없어지니 예배보는데 더 좋고 지루허게 딱딱하게 교리 교훈만 전하고 양심에 찔리는 말씀만 듣는것보다 코메디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율동으로 좋은 말로만 해도 한주간 찌든 피곤해 있는 심신에 부담이 없어지니 마음이 편해지니 힐링이 되니 더욱 부흥이 될 것이고 아이돌 초청하면 수십 수백만명이 줄을서서 예배당에 올 겁니다.
구원을 위해서 할수 있는것과 할수 없는 것과 그 선은 어디까지인지.. 공회 행정의 본질 방향과 근거는 또 조절하는 선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어린신앙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하는데 어린 신앙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하는것이 맞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될까요?? 공회의 경우는 어떻게 하는가요??
1. 원칙
아무리 작고 어려도 생명은 생명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산 것이니까 생명은 반드시 자랍니다. 아무리 지금은 어리고 연약해도 세월이 지나면 산 생명이기 때문에 자랄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생명의 본질이요 가공할 능력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강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생명은 살아있기 때문에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살아남기 위하여 더욱 바짝 몸을 그 현실에 맞도록 적응 시키고 이겨내려는 특성을 가졌고, 반대로 편하면 편할수록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갈수록 나태해지고 완전히 썩어서 죽어버리는 이런 특이한 특성이 있습니다.
신앙이란 생명입니다. 생명이기에 신앙은 본래 강합니다. 그런데 이 생명은 내 힘으로 얻거나 혈육으로 받은 생명이 아니고 예수님의 사활대속으로 받은 생명이기에 영계와 물질계에서 하나님 외에 이 신앙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약하고 어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이 영생의 생명, 전능의 생명을 갖고 중생되었는데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에서 조금만 더 흔들림 없이 버티기만 하면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참으면 이제 이 생명이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자라고 환경을 이길 것인데 이 잠시를 이 조금을 못 참아서 교회가 어린 신앙을 위한다고 세상을 통채로 가져왔으니 범람하는 세상 물결 가운데 이 생명이 자랄 새가 없어 결국 자멸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니, 신앙은 본래 강하다는 것, 아무리 어려도 신앙은 신앙이라는 것, 신앙은 항상 신앙답게 상대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늘 잊지 말아야 할 원칙입니다.
2. 적용
원칙대로 인도하고 원칙대로 따라오기만 한다면 가장 최상이나, 현실 적용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입니다. 그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게는 젖을 주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고 생 떼를 쓰는 그런 갓난쟁이의 신앙을 상대해야 한다면? 그럴찌라도 신앙은 강한 것이니까 나는 단단한 식물만 주겠다 먹을라면 먹고 안 먹을라면 말아라 죽든지 말든지 나는 기도만 할란다 하면서 그 사람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던져 놓는 것만이 과연 합당한가?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기준은 무엇인가?
현실 적용에서는 철저한 손익 계산과 세월 속의 결과로 최종 판단합니다. 젖을 달라는 갓난쟁이에게는 젖을 주면 이에 따른 이익과 손해란 무엇인가? 무엇에 이익이요 무엇에 손해인가? 그리고, 이익이 큰가? 손해가 큰가? 이 손익 계산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아무리 달라고 해도 죄 짓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것이 신앙의 손해를 적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무작정이나 강압이 아니라 각 사람에 맞게 상황와 형편에 따라 계산을 철저히 하여 면밀히 줄 것은 주기도 하고 끊어버릴 것은 완전히 끊어버릴줄도 알아야 합니다.
공회의 모든 행정이 그렇습니다. 단순히 숨 막히게 하거나 과거의 것을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이해득실을 면밀히 계산을 해보니 바꾸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오늘날 신앙에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고, 바꾸는 것도 바꾸는 것이 오늘날 신앙에 확실히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럴 때에 바꾸는 것입니다. 설교도, 남녀 분리 좌석도, 교회의 잡다한 행사가 없는 것도 죽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펄펄 살아있는 뜨거운 신앙이기 때문에 더욱 계산을 면밀히 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월이 지나가면서 다 드러났습니다. 남녀 분리 좌석을 없애니 교회 안에 이성문제가 없는 교회가 없고, 세상 행사를 한번 들여오니 이게 교회인지 세상인지 구별이 불가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공회는 오해도 많고 비판도 많이 들었으나 세월을 통하여 이 모든 세속에서 깨끗함이 증명되었으니 이 계산과 판단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고로,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실질적인 면에서 초6-중1 사이의 어느 공회 두 남학생은 부모님이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주지 않아서 게임에 극히 굶주려 있습니다. 하도 굶겨놓아서, 게임을 시켜주겠다고 하면 뭐든지 합니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시대가 그렇습니다. 건전한 대화도 없고 아이를 안 낳아서 또래가 없어 함께 놀 건전한 신체 활동도 없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배워야 할 진득한 인내도 이미 상실된지 오래입니다. 게임을 딱 끊어버리면 집에 들어가서 하염없이 티비만 보고 벽만 그리고 앉아서 시간만 축내고 앉아 있을 이 아이들을 그냥 공부해라 성경 읽어라 하면서 명령만하고 가만히 뒤에서 지켜만 보며 기도만 해야 할까? 그러나 그렇다고 게임은 중독성의 마약과 같아서 극약 중의 극약인데 이것을 허용해야 할까? 허용하려면 얼마나 허용해야할까? 게임은 분명히 안 좋은 것인데 이것 없이도 이 학생들의 평소 시간을 신앙이나 학업으로 인도할 수 있는 다른 더 좋은 매개물은 없을까? 이렇게 손해 이해득실의 계산을 면밀히 하면서 가장 좋은 대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게임이라는 극약을 조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용하되 평소 약간 과분할만큼의 신앙과 학업 분량을 제공하고 약속을 지키면 남는 시간에 게임을 허용했었는데 타이핑 속도도 드리고, 인내심 있게 뭘 한다는 것을 해본 일이 없는 아이들이라 구슬리면서 하기 어려웠고 게임을 시키면 정신도 없이 또 여기에만 빠져들고 잘 진행이 되지 않아서, 이제는 토요일 하루만 허용하고자 합니다. 평일은 아예 신앙과 공부만 시키고 그렇다고 휴식이 없을 수는 없으므로 토요일만 그리하려 하는데, 만약 학생이 싫다고 하면 앞으로 집에 가서 티비를 보며 시간을 낭비하든지 말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은 강한 것이니까요.
학생들의 하루 할당량은 이렇습니다.
(1) 성경 타이핑 (kcm, ctm) 하루 2-3장
(2) 연구소 과거 문의답변 2만개 정리 분류 작업
(3) 신풍 주전, 주후, 수밤, 금밤 중 타이핑 15분
(4) 영어 수학 문제집 개별 진행
부족하지만 성경을 꾸준히 읽으면서 계속 쓰고 있고, 문의답변 작업도 느리지만 계속 진행 중이며, 놀라운 것은 어제 오늘 그 어려운 설교 타이핑 1시간 분량을 한 학생이 해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해 낼줄은 몰랐습니다. 학생들에게 물론 게임도 중요했겠지만, 사실은 옆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계속 가져주고 포기하려고 할 때에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붙들어 주는 누군가가 사실 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이 모든 계산이 바로 되었는지 나타날 것입니다. 비록 방편은 게임이었으나 과연 내용과 알맹이는 진정 신앙이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 나타날 것 같습니다. 큰 문제가 없다면 이렇게라도 조금씩 자랄 것으로 보이고 가장 중요한 신앙과 신앙을 위한 세상 생활에 필요한 학업을 어느 정도 맞춰서 이렇게 계속 자라간다면 절반의 성공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완전 성공은 아니기 때문에 이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수단까지 거룩하게 완벽하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언제든 예상과 다르게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날마다 고민하여,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 신앙을 인도할 때에는 절대 원칙을 앞에 두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현실 적용의 답답함과 안타까움. 그러나 장차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을 장성한 신앙으로 만들고야 말리라 하는 유일 소망의 흔들림 없는 각오와 죄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심과 끊어버릴 결단으로 그 해악과 앞으로 얻을 이익까지 더욱 철저히 계산을 하며, 한걸음씩 실행하며 부딫히고 깨지고 경험하며 함께 온전으로 자라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작고 어려도 생명은 생명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산 것이니까 생명은 반드시 자랍니다. 아무리 지금은 어리고 연약해도 세월이 지나면 산 생명이기 때문에 자랄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생명의 본질이요 가공할 능력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강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생명은 살아있기 때문에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살아남기 위하여 더욱 바짝 몸을 그 현실에 맞도록 적응 시키고 이겨내려는 특성을 가졌고, 반대로 편하면 편할수록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갈수록 나태해지고 완전히 썩어서 죽어버리는 이런 특이한 특성이 있습니다.
신앙이란 생명입니다. 생명이기에 신앙은 본래 강합니다. 그런데 이 생명은 내 힘으로 얻거나 혈육으로 받은 생명이 아니고 예수님의 사활대속으로 받은 생명이기에 영계와 물질계에서 하나님 외에 이 신앙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약하고 어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이 영생의 생명, 전능의 생명을 갖고 중생되었는데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에서 조금만 더 흔들림 없이 버티기만 하면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참으면 이제 이 생명이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자라고 환경을 이길 것인데 이 잠시를 이 조금을 못 참아서 교회가 어린 신앙을 위한다고 세상을 통채로 가져왔으니 범람하는 세상 물결 가운데 이 생명이 자랄 새가 없어 결국 자멸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니, 신앙은 본래 강하다는 것, 아무리 어려도 신앙은 신앙이라는 것, 신앙은 항상 신앙답게 상대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늘 잊지 말아야 할 원칙입니다.
2. 적용
원칙대로 인도하고 원칙대로 따라오기만 한다면 가장 최상이나, 현실 적용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입니다. 그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게는 젖을 주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고 생 떼를 쓰는 그런 갓난쟁이의 신앙을 상대해야 한다면? 그럴찌라도 신앙은 강한 것이니까 나는 단단한 식물만 주겠다 먹을라면 먹고 안 먹을라면 말아라 죽든지 말든지 나는 기도만 할란다 하면서 그 사람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던져 놓는 것만이 과연 합당한가?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기준은 무엇인가?
현실 적용에서는 철저한 손익 계산과 세월 속의 결과로 최종 판단합니다. 젖을 달라는 갓난쟁이에게는 젖을 주면 이에 따른 이익과 손해란 무엇인가? 무엇에 이익이요 무엇에 손해인가? 그리고, 이익이 큰가? 손해가 큰가? 이 손익 계산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아무리 달라고 해도 죄 짓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것이 신앙의 손해를 적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무작정이나 강압이 아니라 각 사람에 맞게 상황와 형편에 따라 계산을 철저히 하여 면밀히 줄 것은 주기도 하고 끊어버릴 것은 완전히 끊어버릴줄도 알아야 합니다.
공회의 모든 행정이 그렇습니다. 단순히 숨 막히게 하거나 과거의 것을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이해득실을 면밀히 계산을 해보니 바꾸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오늘날 신앙에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고, 바꾸는 것도 바꾸는 것이 오늘날 신앙에 확실히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럴 때에 바꾸는 것입니다. 설교도, 남녀 분리 좌석도, 교회의 잡다한 행사가 없는 것도 죽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펄펄 살아있는 뜨거운 신앙이기 때문에 더욱 계산을 면밀히 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월이 지나가면서 다 드러났습니다. 남녀 분리 좌석을 없애니 교회 안에 이성문제가 없는 교회가 없고, 세상 행사를 한번 들여오니 이게 교회인지 세상인지 구별이 불가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공회는 오해도 많고 비판도 많이 들었으나 세월을 통하여 이 모든 세속에서 깨끗함이 증명되었으니 이 계산과 판단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고로,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실질적인 면에서 초6-중1 사이의 어느 공회 두 남학생은 부모님이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주지 않아서 게임에 극히 굶주려 있습니다. 하도 굶겨놓아서, 게임을 시켜주겠다고 하면 뭐든지 합니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시대가 그렇습니다. 건전한 대화도 없고 아이를 안 낳아서 또래가 없어 함께 놀 건전한 신체 활동도 없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배워야 할 진득한 인내도 이미 상실된지 오래입니다. 게임을 딱 끊어버리면 집에 들어가서 하염없이 티비만 보고 벽만 그리고 앉아서 시간만 축내고 앉아 있을 이 아이들을 그냥 공부해라 성경 읽어라 하면서 명령만하고 가만히 뒤에서 지켜만 보며 기도만 해야 할까? 그러나 그렇다고 게임은 중독성의 마약과 같아서 극약 중의 극약인데 이것을 허용해야 할까? 허용하려면 얼마나 허용해야할까? 게임은 분명히 안 좋은 것인데 이것 없이도 이 학생들의 평소 시간을 신앙이나 학업으로 인도할 수 있는 다른 더 좋은 매개물은 없을까? 이렇게 손해 이해득실의 계산을 면밀히 하면서 가장 좋은 대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게임이라는 극약을 조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용하되 평소 약간 과분할만큼의 신앙과 학업 분량을 제공하고 약속을 지키면 남는 시간에 게임을 허용했었는데 타이핑 속도도 드리고, 인내심 있게 뭘 한다는 것을 해본 일이 없는 아이들이라 구슬리면서 하기 어려웠고 게임을 시키면 정신도 없이 또 여기에만 빠져들고 잘 진행이 되지 않아서, 이제는 토요일 하루만 허용하고자 합니다. 평일은 아예 신앙과 공부만 시키고 그렇다고 휴식이 없을 수는 없으므로 토요일만 그리하려 하는데, 만약 학생이 싫다고 하면 앞으로 집에 가서 티비를 보며 시간을 낭비하든지 말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은 강한 것이니까요.
학생들의 하루 할당량은 이렇습니다.
(1) 성경 타이핑 (kcm, ctm) 하루 2-3장
(2) 연구소 과거 문의답변 2만개 정리 분류 작업
(3) 신풍 주전, 주후, 수밤, 금밤 중 타이핑 15분
(4) 영어 수학 문제집 개별 진행
부족하지만 성경을 꾸준히 읽으면서 계속 쓰고 있고, 문의답변 작업도 느리지만 계속 진행 중이며, 놀라운 것은 어제 오늘 그 어려운 설교 타이핑 1시간 분량을 한 학생이 해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해 낼줄은 몰랐습니다. 학생들에게 물론 게임도 중요했겠지만, 사실은 옆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계속 가져주고 포기하려고 할 때에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붙들어 주는 누군가가 사실 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이 모든 계산이 바로 되었는지 나타날 것입니다. 비록 방편은 게임이었으나 과연 내용과 알맹이는 진정 신앙이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 나타날 것 같습니다. 큰 문제가 없다면 이렇게라도 조금씩 자랄 것으로 보이고 가장 중요한 신앙과 신앙을 위한 세상 생활에 필요한 학업을 어느 정도 맞춰서 이렇게 계속 자라간다면 절반의 성공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완전 성공은 아니기 때문에 이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수단까지 거룩하게 완벽하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언제든 예상과 다르게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날마다 고민하여,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 신앙을 인도할 때에는 절대 원칙을 앞에 두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현실 적용의 답답함과 안타까움. 그러나 장차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을 장성한 신앙으로 만들고야 말리라 하는 유일 소망의 흔들림 없는 각오와 죄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심과 끊어버릴 결단으로 그 해악과 앞으로 얻을 이익까지 더욱 철저히 계산을 하며, 한걸음씩 실행하며 부딫히고 깨지고 경험하며 함께 온전으로 자라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보충)
공회는 '구원에 필요'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손해 되는 것을 살핍니다.
교계가 말하는 거의 모든 전도 방법은, 그 전도의 뜻과 열정은 좋으나 그 방법이 구원에 손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에 유익하고 부흥에 도움 된다는 방법이 끝까지 도움이 되는가? 공산주의가 생활에 도움이 될 줄 알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는데 뒤에 보니 모두가 죽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짧게 보지 말고 넓게 신중히 조심하자는 것이고 그렇게 따진 끝에 공회의 역사는 공회가 선택한 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생명이 중요하니 하나님 앞에 사람을 끌어다 붙여야 하고, 사람을 끌기 위해 하나님과 멀어 지면 사망 운동이며
생명을 제대로 잘 길러 세월 속에 자라 가는 것이 진정한 부흥이며 성장이며 구원을 위한 길이므로 만사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교계의 부흥 전도법은 오늘의 교회를 무교회로 만들었고 빈교회로 만들었으며 비교회로 만들었다는 것이 공회 입장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은 진리의 말씀이 기준이고, 각자 속에 성령의 인도를 순종함으로 자기를 꺾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이렇게 깨닫고 이런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 어린 신앙을 우선 기다려 주는 것, 그 자체를 비판하거나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을 허락한 것이 공회의 모습입니다. 이 것이 공회 행정의 모든 본질이며 방향입니다.
어린 사람과 얼굴을 터기 위해 놀아 줄 수도 있고, 우선 굶어 죽는 사람이 있으면 며칠을 먹여 놓는 봉사도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그런 일을 다 하기 때문에 교회가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바른 말씀, 바른 방향, 바른 인도만 주력할 뿐입니다. 혹시, 공회가 허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직접 적으면 해당 내용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공회는 '구원에 필요'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손해 되는 것을 살핍니다.
교계가 말하는 거의 모든 전도 방법은, 그 전도의 뜻과 열정은 좋으나 그 방법이 구원에 손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에 유익하고 부흥에 도움 된다는 방법이 끝까지 도움이 되는가? 공산주의가 생활에 도움이 될 줄 알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는데 뒤에 보니 모두가 죽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짧게 보지 말고 넓게 신중히 조심하자는 것이고 그렇게 따진 끝에 공회의 역사는 공회가 선택한 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생명이 중요하니 하나님 앞에 사람을 끌어다 붙여야 하고, 사람을 끌기 위해 하나님과 멀어 지면 사망 운동이며
생명을 제대로 잘 길러 세월 속에 자라 가는 것이 진정한 부흥이며 성장이며 구원을 위한 길이므로 만사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교계의 부흥 전도법은 오늘의 교회를 무교회로 만들었고 빈교회로 만들었으며 비교회로 만들었다는 것이 공회 입장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은 진리의 말씀이 기준이고, 각자 속에 성령의 인도를 순종함으로 자기를 꺾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이렇게 깨닫고 이런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 어린 신앙을 우선 기다려 주는 것, 그 자체를 비판하거나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을 허락한 것이 공회의 모습입니다. 이 것이 공회 행정의 모든 본질이며 방향입니다.
어린 사람과 얼굴을 터기 위해 놀아 줄 수도 있고, 우선 굶어 죽는 사람이 있으면 며칠을 먹여 놓는 봉사도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그런 일을 다 하기 때문에 교회가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바른 말씀, 바른 방향, 바른 인도만 주력할 뿐입니다. 혹시, 공회가 허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직접 적으면 해당 내용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