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을 말하면서 어째서 공회는 칼빈의 절대 예정을 주장하고 있는가요?

문의답변      


건설구원을 말하면서 어째서 공회는 칼빈의 절대 예정을 주장하고 있는가요?

분류
목회자 2 0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예정이요 주권입니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예정론은 ‘천국 갈 사람으로 예정이 되었는지, 아닌지’만을 따지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면 전통의 예정론은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았는가, 아니면 각 사람이 노력해서 결정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구원 이후의 건설구원 차원에서 칼빈의 이 절대 예정론을 적용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건설구원 면에서의 예정이란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할 때 정상코스로 달려서 일등을 하면 상을 주기로 되어 있는데 자기가 노력을 해서 이 경기에서 정상코스로 달려서 일등을 한다면 그 일등상을 받는 것처럼 구원 얻은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성품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달리기에서 누구는 일등을 해서 상을 받기로 예정이 되어있고, 누구는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일등을 못하도록 예정이 되어있는 이런 칼빈의 존재 예정, 절대 예정이 아니라, 누구든지 일등을 하면 그 사람에게 상을 주기로 미리 예정을 한 것이고, 따라서 이 달리기에서 일등을 해서 상을 받은 사람은 일등을 하면 상을 주기로 하신 하나님의 예정대로 상을 받았다고 하는 하나님의 예정과 그 범위성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 역시 하나님의 예정을 넘지 않는 복선적 단선으로 봐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즉 내가 했으나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성은 항상 같이 맞아 떨어지는 구원으로 정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다른 교단도 아니라 건설구원론을 주장한 백영희 목사님의 공회라면, 건설구원을 연구할수록 자꾸 칼빈식 하나님의 절대 예정론을, 이 어린 아이 같은 낮은 차원의 존재 절대 예정론을 주장하지 말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결합된 보다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예정론을 주장해야 하지 옳지 않겠습니까?
담당 9 2020.04.19 18:40  
(최종수정 2020-04-19- 21:30)

건설구원에 대하여 대단히 큰 착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상을 타게 되면 수고하신 부모님에 대해서 세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첫째, 이 상을 타기까지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엄마는 밥만 해줬지 해준게 뭐가 있어? 이 상의 영광은 전적으로 내 것이다. 둘째, 엄마가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먹여주시고 학교 보내주신 것은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그래도 이 상을 타기 위해서 내가 공부하고 노력한 것은 내가 한 것이므로 이 상의 영광은 어머니 절반, 내 노력 절반이다. 셋째, 공부는 내가 한 것 같지만 알고보면 이 몸도 부모님이 주셨고 나를 길러주셨으니 먹여주셨는데 내가 공부를 했다고? 내 상이라고? 택도 없다. 나는 정말로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 상은 전적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것이다.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 각도 차이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칼빈의 '절대 예정론'은 참 비난을 많이 당했고,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목회적인 면에서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공회가 장로교라는 간판을 내려놓지 않고 칼빈의 절대 예정을 붙든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 은혜'라는 신앙의 생명성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기본구원보다는 건설구원의 건설이 중요하지 않은가? 사실 그렇습니다. 기본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관계 없이 하나님이 독권으로 이루어놓으셨기 떄문에, 믿는 사람은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본구원이 말 그대로 그냥 그저 기본일 뿐인가? 건설구원을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과정일 뿐인가? 건설구원은 절대 예정이 아니므로 믿는 사람의 의지와 힘을 강조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가 대속받았다는 이 사실에 눈물을 흐리고 감사 감격하는 신앙은 전부 초보적 신앙이고 도리어 그렇게 질질 짜고 눈물을 흘려대니까 건설구원의 고차원의 세계로 올라서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성장의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오해입니다.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예정을 인정하는 것이란 하나님의 전적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요. 만사를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기본 구원만 절대 예정이고 건설구원은 신인유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절대 예정이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누가 뭐래도 만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게 없고 실제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건설구원의 내용이 미개한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설정되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온전을 향하여 달려갈 택자의 힘과 능력이란 자기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절대 예정을 믿고 전적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내가 한 것 같아도 알고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므로 진심으로 낮아질 수 있고 자만하지 않을 수 있고 피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이 높아질수록 빠지기 쉬운 자기 중심의 악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적 은혜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절대예정 주권에 대한 대한 경외일 것입니다. 무한의 건설을 향해야 하는 택자의 신앙의 생명의 교리이기 때문에 공회는 건설구원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하나님의 절대 예정을 강하게 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백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것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된 모든 일은 심지어 건설구원 조차 자기가 한 것 같으나 알고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신 당신의 역사이니, 택자는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절대 예정론'이고, 그리고 실제 그렇게 믿고 신앙을 해야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도우셔야만 우리의 건설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세계를 바로 알고 이 건설구원의 길을 바로 걷는 사람은, 가면 갈수록 주님의 사활대속의 은혜가 뜨거워지고 인간의 나약함에 절실해져서 신앙이 약한 교회나 교인을 함부로 비판하면서 자기 자신과 자기 교회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도 역시 주님의 사활대속으로 중생된 같은 형제이니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성경 객관으로 살펴 그들에게도 배울 점은 배우고 틀린 점은 고치며 나를 통하여 어떻게 하면 바르게 만들어볼까 삼가 조심합니다. 결코 함부로 정죄하며 신앙의 바탕이 아예 잘못되었으니 뒤집어야 한다고 타인의 신앙 행위를 빈정거리거나 우습게 여기면서 부수는 것이 건설구원의 자세라고 오해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절대 예정을 알고 믿는 사람의 자세는 그러합니다.

자기 눈에 들든 들지 않든 남을 탓하거나 자기 중심으로 치우치는 것 없이, 모든 만사를 절대주권 전적은혜로 받아 감사함만이 차고 넘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경외함으로 순간마다 주님의 뜻만 찾아 이루려 노력하니, 진정 하나님만 남고 자신은 아예 없어지게 되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님 중심 밖에 없었던 자기 신앙을 주변 모두가 인정하게 되어야 합니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 이렇게 자타의 일치된 하나님 앞에 거룩과 진실, 그리고 경건의 신앙이 절대 예정 안에 건설구원입니다. 백 목사님 사후 더 나은 세계를 개척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내면을 엄밀히 들여다보면 공회에 대한 오해와 착각이 많은듯 합니다. 무작위적인 비판이나 자기 주장만 하지말고 객관으로 살피며 함께 나아지기를 소원합니다.
담당7 2020.04.20 10:28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예정이요 주권입니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예정론은 ‘천국 갈 사람으로 예정이 되었는지, 아닌지’만을 따지고 있지 않습니까?
☞천국 갈 사람으로 예정이 되었는지 아닌지‘만’을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전통의 예정론은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았는가, 아니면 각 사람이 노력해서 결정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구원 이후의 건설구원 차원에서 칼빈의 이 절대 예정론을 적용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건설구원 차원에서도 절대예정론이 적용됩니다.

건설구원 면에서의 예정이란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할 때 정상코스로 달려서 일등을 하면 상을 주기로 되어 있는데 자기가 노력을 해서 이 경기에서 정상코스로 달려서 일등을 한다면 그 일등상을 받는 것처럼 구원 얻은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성품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달리기에서 누구는 일등을 해서 상을 받기로 예정이 되어있고, 누구는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일등을 못하도록 예정이 되어있는 이런 칼빈의 존재 예정, 절대 예정이 아니라, 누구든지 일등을 하면 그 사람에게 상을 주기로 미리 예정을 한 것이고, 따라서 이 달리기에서 일등을 해서 상을 받은 사람은 일등을 하면 상을 주기로 하신 하나님의 예정대로 상을 받았다고 하는 하나님의 예정과 그 범위성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 역시 하나님의 예정을 넘지 않는 복선적 단선으로 봐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즉 내가 했으나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성은 항상 같이 맞아 떨어지는 구원으로 정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누구든지 일등을 하면 상을 주기로 예정이 된 것이 아닙니다. 1등 상 받을 사람이 예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의 노력의 모든 과정과 실력도 예정입니다.

따라서 다른 교단도 아니라 건설구원론을 주장한 백영희 목사님의 공회라면, 건설구원을 연구할수록 자꾸 칼빈식 하나님의 절대 예정론을, 이 어린 아이 같은 낮은 차원의 존재 절대 예정론을 주장하지 말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결합된 보다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예정론을 주장해야 하지 옳지 않겠습니까?
☞백목사님의 절대예정론은 칼빈의 예정설보다 더 발전된 교리인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공회의 절대예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예정과 상충되지 않습니다.

1. 칼빈주의

'절대 하나님' : 어떤 인간도 무시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절대 예정' : 천국과 지옥은 오직 하나님이 미리 정해 놓은 대로 만 가는 것이고
'절대 은혜' : 알고 보면 모든 것은 전적 하나님 은혜로만 되는 것이며
'절대 성경' : 모든 기준은 오직 성경이고 우리는 말씀만 믿고 따라야 한다는 이런 신앙입니다.

2. 예정설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았다는 것을 예정설이라고 합니다.

3. 질문하신 분께서는 결과는 예정되어 있지만 과정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부분예정설을 주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으니 첫째 전지자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 둘째 전능자십니다.
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셋째 완전자시니 무엇이든 실수나 착오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기 전에 세상의 영원 미래까지 알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 만든 세상을 직접 빈틈없이 운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예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넷째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를 복되게 만들어 주시되 우리를 최고로 복된 존재를 만들게 되었으니
피조물인 우리가 제일 복되게 만들어지려면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져야 하고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지려면 '자유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절대 예정과 인간의 자유성이 함께 가도록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이시며 전지이므로, 필연적으로 예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완전자며 전지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분은 인격에도 흠이 없지만 그분이 하는 일도 흠과 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는 일은 우연히 하거나 운 좋게 하는 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완전하게 예정해 놓고 그대로 이루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하시는 일에는 착오가 없고 차질이 없습니다. 그분은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장악하여 흠없이 끝을 맺기 때문에 완전자요 전지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불완전자며 무지자이므로,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아무리 준비를 잘 해놓아도 어떤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일이 닥치게 되면 그때서야 호들갑을 떨지만 수도 없이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하는 일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정반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완전이며 전지라는 면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예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잇습니다. 예정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정을 하셨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는, 개미 한 마리의 움직임도 미리 예정해 놓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일부 예정이나 부분 예정이 아니라 완전 예정이요 절대 예정으로 예정을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정해 놓은 것을 아는 방법으로는 성경과 영감이라고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예정은 어떤 방향으로 되어 있는지 윤곽으로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세밀하고 자세한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자연만물을 보아서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너무 흐려서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예정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과 영감으로 하나님의 예정을 미리 알 수 있게 되어 있으니 우리는 하나님 한 분에게 순종하고 따르고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로지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고 따르고 그 뜻을 찾는 것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예정을 하신 또 하나의 뜻입니다.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열람중
    목회자
    2020.04.19일
  • 13108
    일반
    2020.04.18토
  • 13107
    질문자
    2020.04.15수
  • 13106
    일반
    2020.04.15수
  • 13105
    신학생
    2020.04.14화
  • 13104
    회원
    2020.04.18토
  • 13103
    반사11
    2020.04.10금
  • 13102
    청년
    2020.04.05일
  • 13101
    연경6
    2020.03.31화
  • 13100
    교인
    2020.03.25수
  • 13099
    회원
    2020.03.22일
  • 13098
    반사
    2020.03.20금
  • 13097
    ..
    2020.03.18수
  • 13096
    반사
    2020.03.16월
  • 13095
    반사
    2020.03.16월
  • 13094
    교인
    2020.03.15일
  • 13093
    교인
    2020.03.17화
  • 13092
    교인
    2020.03.13금
  • 13091
    반사
    2020.03.13금
  • 13090
    교인
    2020.03.04수
  • 13089
    공회인
    2020.03.02월
  • 13088
    교인
    2020.03.01일
  • 13087
    교인
    2020.02.29토
  • 13086
    (고신)
    2020.02.28금
  • 13085
    ..
    2020.02.28금
State
  • 현재 접속자 184(1) 명
  • 오늘 방문자 6,588 명
  • 어제 방문자 6,972 명
  • 최대 방문자 7,646 명
  • 전체 방문자 3,254,270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