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만 4천과 셀 수 없는 큰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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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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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09:58
계7장을 연경하며 의문이 들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무리를 정확한 숫자 ‘14만4천’과 ‘셀 수 없는 큰 무리’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모순 같아 보였습니다.
인 맞은 14만 4천은 12지파 계통의 구원 받은 모든 택자, 흰 옷 입은 사람은 대속의 은혜를 입은 모든 택자라 이해가 되었습니다.
14만 4천은 기능구원 차원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기본구원 차원에서 택자 전부를 표현만 다르게 한 것일까요?
아니면 둘은 다른 것인지요?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 것인지요?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 맞은 14만 4천’ 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예정하신 택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정해 놓으신 수대로 정확하게 전부 구원받았음을 ‘인 맞은 14만 4천’이라고 기록하여 알려 주신 것이 아닐까?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란 표현은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의 광대하심과 무한하심을 구원받은 우리 입장에서는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무리를 정확한 숫자 ‘14만4천’과 ‘셀 수 없는 큰 무리’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모순 같아 보였습니다.
인 맞은 14만 4천은 12지파 계통의 구원 받은 모든 택자, 흰 옷 입은 사람은 대속의 은혜를 입은 모든 택자라 이해가 되었습니다.
14만 4천은 기능구원 차원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기본구원 차원에서 택자 전부를 표현만 다르게 한 것일까요?
아니면 둘은 다른 것인지요?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 것인지요?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 맞은 14만 4천’ 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예정하신 택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정해 놓으신 수대로 정확하게 전부 구원받았음을 ‘인 맞은 14만 4천’이라고 기록하여 알려 주신 것이 아닐까?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란 표현은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의 광대하심과 무한하심을 구원받은 우리 입장에서는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4만 4천과 셀 수 없는 무리는 늘 따로 생각했지 이렇게 나란히 놓고 그 표현이 반대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번 말씀 때문에 원래 우리가 알던 내용으로 구성해 봅니다.
(14만 4천)
산술적 수치가 아니라 신구약의 택한 백성 모두를 말합니다.
(셀 수 없는 무리)
14만 4천으로 표시한 그 백성을 실제 산술적으로 헤아려 보면 '능히 셀 수 없'습니다. 셀 수 없는 이유는
1. 택함의 숫자
택자 숫자는 하나님만 아시고 우리에게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중생조차 우리는 모르던 시절이 있습니다. 택자의 실제 숫자만은 하나님만 알고 인간에게는 알려 준 적이 없으나 다만 그 숫자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 이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저런 인간은 불택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에게 택함의 은혜를 배제하는 것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 들어 가서 회개하며 능력을 발휘하기 직전에 유대인에게 맞아 죽었다면 바울이 택자일 것으로 짐작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2. 엘리야의 경우
엘리야가 자기뿐인 줄 알 때 숨겨 둔 7천 명을 말씀했 듯이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기록의 필요가 있고 관리하며 표시를 해야 하는 계통의 수치도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광대함과 그 사명은 차원이 너무 많아서 우리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고 알려 줄 필요도 없습니다.
3. 무형의 교회
보이는 교회를 유형 교회라 합니다. 우리는 이 것을 교회로 생각하나 무형의 교회는 실제 무시하지 못할 분량입니다. 간단히, 현재 공회의 유형 교인과 무형 교인을 나눈다면 공회는 무형 교인이 많습니다. 고신도 그렇습니다.
4. 건설구원의 경우
'셀 수 없는 무리'라고 할 때 일반 신학은 무조건 '1인'을 기준으로 수 많은 '사람들'로 해석합니다. 공회는 한 사람의 내면에 수 없는 사람을 늘 따져 봅니다.
(14만 4천)
산술적 수치가 아니라 신구약의 택한 백성 모두를 말합니다.
(셀 수 없는 무리)
14만 4천으로 표시한 그 백성을 실제 산술적으로 헤아려 보면 '능히 셀 수 없'습니다. 셀 수 없는 이유는
1. 택함의 숫자
택자 숫자는 하나님만 아시고 우리에게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중생조차 우리는 모르던 시절이 있습니다. 택자의 실제 숫자만은 하나님만 알고 인간에게는 알려 준 적이 없으나 다만 그 숫자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 이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저런 인간은 불택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에게 택함의 은혜를 배제하는 것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 들어 가서 회개하며 능력을 발휘하기 직전에 유대인에게 맞아 죽었다면 바울이 택자일 것으로 짐작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2. 엘리야의 경우
엘리야가 자기뿐인 줄 알 때 숨겨 둔 7천 명을 말씀했 듯이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기록의 필요가 있고 관리하며 표시를 해야 하는 계통의 수치도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광대함과 그 사명은 차원이 너무 많아서 우리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고 알려 줄 필요도 없습니다.
3. 무형의 교회
보이는 교회를 유형 교회라 합니다. 우리는 이 것을 교회로 생각하나 무형의 교회는 실제 무시하지 못할 분량입니다. 간단히, 현재 공회의 유형 교인과 무형 교인을 나눈다면 공회는 무형 교인이 많습니다. 고신도 그렇습니다.
4. 건설구원의 경우
'셀 수 없는 무리'라고 할 때 일반 신학은 무조건 '1인'을 기준으로 수 많은 '사람들'로 해석합니다. 공회는 한 사람의 내면에 수 없는 사람을 늘 따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