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명단 제출을 요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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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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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2 18:37
총공회는 교인 명부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감염병을 이유로 교인 전체 명단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대처하는지요?
출석교인 뿐 아니라 재적 명단까지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하면 신천지처럼 강제조사 하겠다고 협박들어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번처럼 감염병을 이유로 교인 전체 명단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대처하는지요?
출석교인 뿐 아니라 재적 명단까지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하면 신천지처럼 강제조사 하겠다고 협박들어오지 않을까요?
(협조, 비협조, 저항)
건축법 교통법 쓰레기 처리법은 교회가 세상에게 협조합니다. 실제로는 지시를 따릅니다. 교회의 형편이 좀 어려우면 마지 못해서 따르고, 교회의 사회적 지명도가 높아지면 협조를 넘어 서서 솔선수범할 수도 있습니다. 예배당에 국기를 걸어 놓고 절을 하라 하면 교회는 저항합니다. 이 때 저항이란 감옥에 가도 그렇게 못합니다. 요구하면 저항 할 문제는 아니고 그렇다고 협조할 문제도 아닙니다. 비협조 사항입니다. 비협조 사항이라는 말은 좋아서 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싸우며 감출 문제는 아닙니다.
교인 명단을 요구하는 이유가 교인을 색출하여 박해하는 목적이면? 교회는 저항하는 것이 맞습니다. 뺏기면 뺏기지 내어 줄 수는 없습니다. 시청에서 교인 명단을 확인하여 예배당 주변의 주차나 통행이나 도로 환경을 결정하겠다는 경우라면? 적극 협조가 맞습니다. 겉으로는 협조 할 사항처럼 말해도 내용적으로는 애매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비협조가 맞습니다.
(신천지의 경우)
이들은 예배와 교인의 상황과 그들의 안팎 모든 것을 공개하면 존립이 어렵습니다. 우선 다른 교회 교인들을 빼 와야 하기 때문에 친근히 대화를 해야 하고, 그들의 최종 목표 144,000명이 되면 세상이 끝나야 하고 또 그들 스스로 더 이상 전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이 회원 20만 명을 공개했다는데 실제 명단이라면 그들은 그들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인한 것입니다.
(일반 교회의 경우)
현재 전염병 확산 때문에 명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주차장이나 도로 교통이나 쓰레기의 분리 처리보다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칫 건축법을 무시하다 삼풍백화점처럼 붕괴 위험을 부를 수 있는 경우입니다. 그냥 지나갈 우스운 일로 끝날 수도 있고, 애매한 교인과 주민이 장례를 치를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험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이 맞습니다. 만일 시청이나 경찰에서 명단을 요구하면 '협조' 사항으로 대처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번 대구 사태 이전만을 두고 본다면, 1개 지자체에 1명 발생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명단을 다 보고 대처를 하겠다면 '비협조'가 아닐까? 대구 사태로 이렇게 급격하게 확산이 된다면 '협조'가 맞지 않을까? 아직도 정부는 부탁만 하고 있습니다. 정말 급하면 국가에서 '지시'를 할 것인데 부탁 정도에 그치고 있다면 대구 지역 외의 일반 지역에서는 교인의 명단 제출이란 '비협조'가 맞습니다. 문제는 겉으로 부탁이라고 말을 해도 사회 전체 분위기와 그 주변 전체가 모든 종류의 단체 회원 명단을 전부 공개하면서 실제 방역을 위해 사용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협조'가 맞을 듯합니다.
(명단의 공개 원칙)
교회의 신앙 박해가 아니라, 교회가 예배당 건물과 예배 출입의 차량과 예배 인원의 건강이나 화재처럼 생존의 문제 때문에 명단을 요구한다면 협조가 맞습니다. 교인에게 피해를 주고 교회의 신앙을 박해하기 위해 명단을 요구한다면, 뺏길 수는 있어도 내어 주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건축법 교통법 쓰레기 처리법은 교회가 세상에게 협조합니다. 실제로는 지시를 따릅니다. 교회의 형편이 좀 어려우면 마지 못해서 따르고, 교회의 사회적 지명도가 높아지면 협조를 넘어 서서 솔선수범할 수도 있습니다. 예배당에 국기를 걸어 놓고 절을 하라 하면 교회는 저항합니다. 이 때 저항이란 감옥에 가도 그렇게 못합니다. 요구하면 저항 할 문제는 아니고 그렇다고 협조할 문제도 아닙니다. 비협조 사항입니다. 비협조 사항이라는 말은 좋아서 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싸우며 감출 문제는 아닙니다.
교인 명단을 요구하는 이유가 교인을 색출하여 박해하는 목적이면? 교회는 저항하는 것이 맞습니다. 뺏기면 뺏기지 내어 줄 수는 없습니다. 시청에서 교인 명단을 확인하여 예배당 주변의 주차나 통행이나 도로 환경을 결정하겠다는 경우라면? 적극 협조가 맞습니다. 겉으로는 협조 할 사항처럼 말해도 내용적으로는 애매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비협조가 맞습니다.
(신천지의 경우)
이들은 예배와 교인의 상황과 그들의 안팎 모든 것을 공개하면 존립이 어렵습니다. 우선 다른 교회 교인들을 빼 와야 하기 때문에 친근히 대화를 해야 하고, 그들의 최종 목표 144,000명이 되면 세상이 끝나야 하고 또 그들 스스로 더 이상 전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이 회원 20만 명을 공개했다는데 실제 명단이라면 그들은 그들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인한 것입니다.
(일반 교회의 경우)
현재 전염병 확산 때문에 명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주차장이나 도로 교통이나 쓰레기의 분리 처리보다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칫 건축법을 무시하다 삼풍백화점처럼 붕괴 위험을 부를 수 있는 경우입니다. 그냥 지나갈 우스운 일로 끝날 수도 있고, 애매한 교인과 주민이 장례를 치를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험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이 맞습니다. 만일 시청이나 경찰에서 명단을 요구하면 '협조' 사항으로 대처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번 대구 사태 이전만을 두고 본다면, 1개 지자체에 1명 발생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명단을 다 보고 대처를 하겠다면 '비협조'가 아닐까? 대구 사태로 이렇게 급격하게 확산이 된다면 '협조'가 맞지 않을까? 아직도 정부는 부탁만 하고 있습니다. 정말 급하면 국가에서 '지시'를 할 것인데 부탁 정도에 그치고 있다면 대구 지역 외의 일반 지역에서는 교인의 명단 제출이란 '비협조'가 맞습니다. 문제는 겉으로 부탁이라고 말을 해도 사회 전체 분위기와 그 주변 전체가 모든 종류의 단체 회원 명단을 전부 공개하면서 실제 방역을 위해 사용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협조'가 맞을 듯합니다.
(명단의 공개 원칙)
교회의 신앙 박해가 아니라, 교회가 예배당 건물과 예배 출입의 차량과 예배 인원의 건강이나 화재처럼 생존의 문제 때문에 명단을 요구한다면 협조가 맞습니다. 교인에게 피해를 주고 교회의 신앙을 박해하기 위해 명단을 요구한다면, 뺏길 수는 있어도 내어 주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참고로,
(교회의 교인 명부)
일제와 6.25 점령기를 겪어 본 공회는 교인 명단을 만들지 않습니다. 신앙 없는 사람이 박해를 원치 않을 때 공연히 박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대신 평소 어린 학생이나 일반 교인을 지도하기 위해 교회는 출석부를 만듭니다. 출석부에는 출결이 있어 자연스럽게 교인 명부가 됩니다. 주교와 장년반 구역의 출석은 공회도 예전부터 해 왔습니다. 이 것은 실질적으로 교인 명부가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인 명부에 대해 공회가 그토록 예민한 이유는, 역사적으로 장로교는 교인의 명부가 마치 국가의 호적제도처럼 엄했고 그로 인해 환란 때 피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환란이야 70년이 지나도록 일어 나고 있지 않은데 '교인 명부'가 정식으로 존재하게 되면 빼야 할 명단과 넣어야 할 명단을 위해 '교인 자격'을 정해야 합니다. 교인 자격을 정하려고 시작하면 이미 교회는 교회 되기 어렵습니다. 공회는 불문법으로 운영한다는 말은 일반 운영도 그렇지만 그 중에 명단 문제를 두고도 아무리 생각해 봤으나 교인 명부라는 정식 '교회 호적 명부'는 없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마치 국기배례를 공회가 그토록 투쟁한 것은 미신과 우상 문제가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국기 문제는 정권이 태극기 자체를 없애려고 광분을 하는 정도입니다. 세월이 지나 일제 때처럼 또는 해방 초기처럼 국기에 무슨 귀신적인 문제를 두고 절을 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의 국기 경례는 각자 알아서 대처하고 있으며 교회적으로 목숨 걸고 투쟁할 대상이 아닌 것처럼,
이미 교인의 명부란 교회 주변의 CCTV를 통해, 또는 평소 교회의 여러 행정 문건이나 전화 등의 연락처를 통해 실제로는 파악이 가능합니다. 일제 때와 6.25처럼 신앙을 박해하려 들면 교인 명부를 제출해 봐야 박해 할 쪽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파악하려 들 것입니다. 따라서 박해 때문에 명부 작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사적 상식으로 알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고민은 '교회의 교인'을 어떻게 기준할 것인가? 그냥 구역장이나 선생님들이 알아서 파악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세상과 교회의 기본 관계)
참고로,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배와 물의 관계입니다. 떠날 수는 없고, 물이 배 안에 들어 와서는 안 됩니다. 결론은 표면의 접촉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됩니다. 배 안에 상황은 세상이 교회가 되기 전까지는 설명을 해도 모르고 설명을 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은 교회의 전도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물을 접하는 배의 상황은 세상에게 설명도 해야 하고 세상에게 보호도 받아야 하고 세상에게 간섭도 받아야 합니다.
(무형교회 유형교회)
조직신학에 교회론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주님만 머리 되고 교인이 한 몸 된 '내면'을 무형의 교회라 합니다. 이 것은 세상에게 설명할 수가 없고 보여 주지 못하는 신령한 세계입니다. 유형의 교회란 주님은 간 곳 없고 한 사람이 머리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이 무리가 되어 쫓아 다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유형의 교회는 세상을 떠날 수 없고 세상에게 설명을 해야 하고 세상에게 보호도 받고 세상과 싸움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교인 명단을 요구하면)
적군의 점령 치하에 예배당의 출입 통제, 아군의 작전이나 치료를 위해 예배당을 징발하는 문제, 목사의 세금이나 교인의 세금 환급 문제, 유행병 때문에 교회의 출입과 명단을 요구하는 문제처럼 세상이 교회에게 요구하는 문제를 대처할 때는 항상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로 나누어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교인들의 보이는 교회를 만들고 활동하는 이유는 볼 수 없는 신앙 건설입니다.
(교회의 교인 명부)
일제와 6.25 점령기를 겪어 본 공회는 교인 명단을 만들지 않습니다. 신앙 없는 사람이 박해를 원치 않을 때 공연히 박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대신 평소 어린 학생이나 일반 교인을 지도하기 위해 교회는 출석부를 만듭니다. 출석부에는 출결이 있어 자연스럽게 교인 명부가 됩니다. 주교와 장년반 구역의 출석은 공회도 예전부터 해 왔습니다. 이 것은 실질적으로 교인 명부가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인 명부에 대해 공회가 그토록 예민한 이유는, 역사적으로 장로교는 교인의 명부가 마치 국가의 호적제도처럼 엄했고 그로 인해 환란 때 피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환란이야 70년이 지나도록 일어 나고 있지 않은데 '교인 명부'가 정식으로 존재하게 되면 빼야 할 명단과 넣어야 할 명단을 위해 '교인 자격'을 정해야 합니다. 교인 자격을 정하려고 시작하면 이미 교회는 교회 되기 어렵습니다. 공회는 불문법으로 운영한다는 말은 일반 운영도 그렇지만 그 중에 명단 문제를 두고도 아무리 생각해 봤으나 교인 명부라는 정식 '교회 호적 명부'는 없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마치 국기배례를 공회가 그토록 투쟁한 것은 미신과 우상 문제가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국기 문제는 정권이 태극기 자체를 없애려고 광분을 하는 정도입니다. 세월이 지나 일제 때처럼 또는 해방 초기처럼 국기에 무슨 귀신적인 문제를 두고 절을 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의 국기 경례는 각자 알아서 대처하고 있으며 교회적으로 목숨 걸고 투쟁할 대상이 아닌 것처럼,
이미 교인의 명부란 교회 주변의 CCTV를 통해, 또는 평소 교회의 여러 행정 문건이나 전화 등의 연락처를 통해 실제로는 파악이 가능합니다. 일제 때와 6.25처럼 신앙을 박해하려 들면 교인 명부를 제출해 봐야 박해 할 쪽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파악하려 들 것입니다. 따라서 박해 때문에 명부 작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사적 상식으로 알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고민은 '교회의 교인'을 어떻게 기준할 것인가? 그냥 구역장이나 선생님들이 알아서 파악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세상과 교회의 기본 관계)
참고로,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배와 물의 관계입니다. 떠날 수는 없고, 물이 배 안에 들어 와서는 안 됩니다. 결론은 표면의 접촉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됩니다. 배 안에 상황은 세상이 교회가 되기 전까지는 설명을 해도 모르고 설명을 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은 교회의 전도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물을 접하는 배의 상황은 세상에게 설명도 해야 하고 세상에게 보호도 받아야 하고 세상에게 간섭도 받아야 합니다.
(무형교회 유형교회)
조직신학에 교회론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주님만 머리 되고 교인이 한 몸 된 '내면'을 무형의 교회라 합니다. 이 것은 세상에게 설명할 수가 없고 보여 주지 못하는 신령한 세계입니다. 유형의 교회란 주님은 간 곳 없고 한 사람이 머리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이 무리가 되어 쫓아 다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유형의 교회는 세상을 떠날 수 없고 세상에게 설명을 해야 하고 세상에게 보호도 받고 세상과 싸움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교인 명단을 요구하면)
적군의 점령 치하에 예배당의 출입 통제, 아군의 작전이나 치료를 위해 예배당을 징발하는 문제, 목사의 세금이나 교인의 세금 환급 문제, 유행병 때문에 교회의 출입과 명단을 요구하는 문제처럼 세상이 교회에게 요구하는 문제를 대처할 때는 항상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로 나누어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교인들의 보이는 교회를 만들고 활동하는 이유는 볼 수 없는 신앙 건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