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기준에서 표현한 경우 (7130번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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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준에서 표현한 경우 (7130번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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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제목분류 : [~설교록~재독~소선집~]

내용분류 : [-설교록-재독-소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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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갈 신앙'


수5:12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첫 장소였고 그곳에서 가나안 소산을 처음 먹었던 곳입니다. '가나안' 생활은 주님 안에 평안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먹이신 첫 장소가 길갈이니, 이는 믿음 생활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축복 생활을 가르치는 장소입니다.


주일을 지키면 직장이 문제가 되고 일당 버는 이들은 당장 생계가 어려워질 것 같고

학생들은 월요일 시험에 주일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낙제를 할 것 같아서 아주 고민입니다.

믿고 나면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그렇게 큰 고통입니다.

안 믿다가 처음 믿게 되면 새로 시작한 신앙생활 때문에 여러 가지 세상살이에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데도 지내놓고 돌이켜 보면 하나님 은혜로 다 그런 시절을 과거보다 오히려 복되게 살게 됩니다. 무엇이든 새로 당하는 어려움은 그렇게 큰 어려움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은 잠깐이고 알고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떻게 다 개별 은혜와 복으로 책임지셨습니다.


이런 개인 경험을 하게 되면

만유주 하나님이 나를 직접 챙기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정도 신앙을 자기로서는 아주 대단한 신앙인 줄 알고 만족하며 교만해질 수도 있으나 그 신앙 자체가 잘못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신앙수준이 신앙의 전부인 줄 알고 그곳에 머무는 것은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2. '벧엘 신앙'


벧엘은 믿음의 조상들이 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기던 곳입니다.

창12:08에서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으며

창28:19에서 야곱이 도망을 가다가 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긴 곳도 벧엘입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니 신약에는 예배생활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믿고 난 뒤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 섬기는 예배도 처음 멋모르고 다닐 때처럼 그렇게 대충 참석하거나 마저 못해서 끌려 다니는 수준에서 벗어나 이제 마음 먹고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게 됩니다.


이 정도 신앙생활을 신앙생활의 전부인 줄 아는 자리에서 머물지 말라 하신 것이

벧엘에 머물지 않고 또 다음 단계로 따라간 엘리사 신앙입니다.

'벧엘에 머물라!' 하는 엘리야의 명령은 '벧엘에서 머물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다만 신앙은 자유성을 가지고 스스로 따라 나서야 하기 때문에 벧엘에 머물라는 반대 말을 했고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엘리사가 스스로 원하여 죽어도 계속 따르겠다는 대답을 하면서 따라 오는 신앙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3. 중간에 머무는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길갈이든 벧엘이든 여리고든 각 단계에 이르런 만큼은 이미 그 정도 신앙 차원의 성화구원, 건설구원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다' 한 뜻은

신사참배로 예를 든다면, 길갈이나 벧엘이나 여리고 신앙에 그친 이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신사참배의 최종 승리는 할 수 없는 신앙들입니다. 백점 만점을 기준에서 본다면 요단강을 건너 사선을 초월하는 신앙이 아니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모든 신사참배 실패자들은 건설구원이 전부 0점이라는 말인가? 그들이 신사참배 오기 전에 어느 한 순간 그들로서는 최선을 다한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그들의 의가 되고 그들의 의의 기능이 되어 그들이 이 다음 천국에 가면 그 값을 다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사참배라는 최고 최대 최종의 환란이 신앙세계 전체로 볼 때 한국교회 초기 신앙을 최종 점검하는 시험이었는데, 시대마다 개인마다 하나님께서 작은 단계들을 먼저 주시고 그 작은 단계들이 다시 모여 시대적인 큰 사건을 준비하게 되는데, 설교록에서 '아무 소용 없다' 하는 것은 최종의 사건을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과거 고신 교단은 장로교 내에서 신사참배를 승리한 분들이 모여 만든 교단인데

그들은 고신에만 구원이 있다는 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때 그분들의 교리 차원에서는 기본구원 하나만 알았기 때문에 비록 오늘 기준의 교리 표현에서는 틀린 말을 한 것이지만 당시 그들로서는 양심껏 했던 표현입니다. 오늘 우리가 알게 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기준으로 다시 그들을 안내한다면, 신사참배를 했던 하지 않았던 그들이 정말 믿는 사람이었다면 다 천국에 갈 기본구원은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만 신사참배라는 한국교회사 전반부 총결산 시험에서 신사참배 승리자는 합격을 했고 실패자는 낙제를 했으므로 건설구원 면에서는 천지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자들이라고 해서 천국만 가는 것이지 그들의 건설구원은 어떤 면으로든 단 한 가지 기능도 성화도 없느냐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신앙의 총점을 매길 수 있는 신사참배라는 사건을 두고는 합격과 불합격의 차이가 있지만, 신사참배 승리자도 자기 부모에게 공연히 불효한 단점은 있을 수 있고 또 실패자도 신사참배와 전혀 상관없는 사안에서 진정 복받을 충성과 순종을 한 의는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학 년까지 16년을 공부해도 취직하지 못하면 그동안 공부한 것은 전부 헛일이라고 우리가 표현하는데 취직하지 않았다고 해서 16년 공부하며 배운 것을 평생 세상 살면서 단 하나도 써먹지 못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16년 공부의 향방이 또 최대 관심사가 취직이며 또 그 취직이라는 단어는 일반 사안과 달라 그것이 바로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미치는 남은 평생의 길이 다르고 취직은 하지 못하고 노가다만 하는 사람으로 살게 될 때 총평을 한다면 16년 공부는 완전히 허사가 된다는 표현입니다.


백목사님은 '목회설교록'이라는 이름의 '목회'를 그렇게 강조하고 평생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 분입니다. '목회'적 표현입니다.
[설교록] 설교록 질문입니다.
제목분류 : [~설교록~재독~소선집~]

내용분류 : [-설교록-재독-소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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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에 구한 영감이라는 소선집을 읽고 있습니다.

다른 말씀은 이해가 가는데 아래의 내용은 조금 어렵습니다.

아래의 내용을 가르쳐 주십시요

요즘 백영희 목사님 말씀에 푹 빠졌습니다.

방학이라 열심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인간을 주장하는 두 영


그러면 이 계약의 말씀을 오늘 다시 봉독하고 증거하여야 할 필요를 느낀 것은 이것입니다.

에덴 동산 인류 시조 때에 사탄이 뱀의 형체를 입고 와서 인류 조상 하와와 아담을 꾀워 가지고 그때부터 사망과 죄악이 들어와서 인간은 사망하게 되었고, 이 악령은 인간의 왕이 되어서 오늘까지 계속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에덴동산에 뱀의 형체로 나타난 이 사탄은 전인류의 왕이 되어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그가 주장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이 오겠다” 하신 그 임금은 에덴동산에서 인류 시조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 인류 시조를 정복하고 이긴 악령을 가리키는데, 이 악령이 완전히 인간을 점령해서 재림 때까지 인간은 악령의 것이 되었고, 영원무궁토록 유황불 구렁텅이에 있는 인간들도 악령의 것이 되었고, 악령의 나라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베소 2장 1절 이하에 보면─이렇게 악령이 죄와 허물을 가지고 인류를 죽였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의 공로로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푸시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칭의를 주셔서 우리를 구속했습니다. 구속하시고 우리의 죽은 영을 성령과 진리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래서, 에베소 2장 1절로 5절까지 보면 우리는 법적으로 악령에게서 해방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고 있고, 안 믿는 사람들 중에 택한 자라도 아직 그리스도의 구속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악령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말씀하시기를 아직도 예수 믿지 아니하거나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도 하나님에게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은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이 그 사람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악령이 우리를 주장도 하고, 성령이 우리를 주장도 하고, 이 두 영이 우리를 이렇게, 하나는 멸망시킬려고 하나는 구원시킬려고 하는 이 다툼이 예수님 재림 때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마귀를 지으셨는데 마귀만큼 능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신인계약의 자유를 주었는데, 인간을 이긴 악령이되었기 때문에 진 인간은 악령의 종이 되고 그의 백성이 된 것이 하나님의 지공법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구속받아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사람이지만,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나 마음과 고기덩어리로 된 이 육은 우리 심신이 하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고, 악령을 영접하면 악령에게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안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크나 작으나 공중의 권세 잡은 악령이 주관을 합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가 성령에게 주관을 받을려고 성령을 영접하면 성령이 주관하실 수가 있고, 또 자기가 성령을 배척하고 악령을 영접하면 악령이 주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악령의 감화, 성령의 감화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속에 악령이 우리를 주관할 수도 있고 성령이 주관할 수도 있는데, 악령이 주관하면 우리의 생각도 다 악령적이요, 지식도 악령적이요, 비판과 평가도 악령적이요, 소원과 욕심도 악령적이요, 행동도 악령적입니다.

이러기에 악령이 와서 우리를 주관하면 생각으로부터 소원, 행동 전체가 악령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과 소원과 성질과 사상과 모든 취미와 모든 평가는 다 악령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악령적으로 된 망할 취미, 망할 소원, 망할 생각, 망할 자랑, 망할 부러운 것, 망할 열심, 망할 담력, 망할 말, 망할 행동, 이것을 누가 여기에서 돌아서게 하며, 누가 망할 생각을 영생할 생각으로 바꾸며, 누가 썩고 망할 그 취미를 참으로 영생하는 취미로 바꿀 수가 있으며, 썩을 그 자타를 망치는 썩은 더러운 욕심을 누가 영생하는 욕심으로 바꾸어 줄 자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이 일은 이루어야 된다. 죽어도 이 소원만은 이루어야 된다. 죽어도 나는 이것을 취하지 않고는 못 살겠다. 죽어도 나는 이 일은 해 보겠다.’ 이렇게 생명보다 필요로, 생명보다 보배로, 생명보다 좋게 소원하는 것을 거머쥐고 이것을 하나님에게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으나, 기도하는 가운데에 성신의 감화가 와서 그 마음이 성신의 감동으로 바로 됐을 때에 대성통곡을 하게 됩니다.

‘주여, 내가 이것을 할려고 할 때에 주님이 이루어지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참 이렇게 망하고, 이렇게 죽고, 이렇게 자타가 절단나는 이 썩은 것을 욕심내고 소원했으니, 내가 만일 이대로 소원할 때에 이 일이 이루어졌으면 내가 평생 그 가운데 빠져 가지고 헤어나지 못할 터인데 나를 여게서 건져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 제목으로 가져갔던 것을 회개하고, 성신의 감화가 오니까 그렇게 욕심나던 것이 사약보다 독약보다 더 자기 죽이는 원수라는 것이 발견이 되고 이래서, 그것이 소원(疏遠)될 뿐만 아니라, 원수가 되어서 천리 만리 멀어지고 가장 원수스러운 것, 이것으로써 자기가 바꾸어지고 자기 마음이 감동되어 변화됩니다.

그렇게 ‘이 권세 이것만은, 이 돈 이것만은, 이 사건만은, 이 사람만은, 이것만은, 이것만은 안 취하고 안 되겠다.’ 이렇게 자기 마음도 그렇고, 정신도 그렇고, 뜻도 그렇고, 지식도 그렇고, 생각도 그러니까 이 변동할 수가 없는 안팎에 가득차 있는 이 마음을, 멸망으로 가득 되어 있는 마음을-베쪼가리를 검은 물로 들이는 거와 같이 자기의 전인격의 심신이라 하는 그 인간성을 완전히 멸망으로 물들여 놓은 이것을 누가 탈색을 시키겠느냐?

누가 이것을 변화시켜서 이렇게 중심의 마음에 싫고, 원통하고, 그걸 했던 것이 너무도 원통하고, 후회스럽고, 그게 그렇게 원수스럽고, 보기 싫고, 더럽고, 악독과 해독이 가득 찼다는 것을, 이것을 자기가 깨달아 자기 마음이 백팔십도로 정반대로 변화되어 전환하는 이 일을 누가 해 줄 건가!

아무도 해 줄 이가 없습니다. 아무도 해 줄 이가 없어요.

오늘도 우리는 두 사람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그것을 다 분토같이 버리고,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못 걸었던 것이 원통하고, 걷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을 볼 때에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않고 마귀 감화를 받은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요, 미친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으로 봅니다.

모세가 세계에 제일 강대국 애굽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그 자리를 버리고 하나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 받도록 미디안 광야로 도망친 그 걸음이 미치괭이 걸음이지만, 성신의 감화가 오니까 그 길만이 참이고, 애굽에 있는 것은 멸망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길에는 죽어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떠났던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악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들은, 참, 전인류가 그 길 가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는 다 후회하고, 눈물 흘리고, 가슴치고 헛되다 헛되다 원통하다 원통하다 하고 가는 것이 전인류건만, 전기독자이건만 이렇게 간증해도 악령의 감화가 왔을 때에는 ‘원 저거는 죽을 때가 되니까 저렇다. 그래도 취해야 된다’ 하여서 악령의 감화, 꼭 생각은 망할 생각, 소원은 꼭 망할 소원, 취미는 꼭 망할 취미, 재미는 꼭 망할 재미, 열심은 꼭 망할 열심, 행동은 꼭 망할 행동, 금생과 내세를 전멸하고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것을 전멸하고, 전부 멸망 가운데 빠뜨리고 화약으로 자기를 태우고 모든 똥물 속에 파묻는 것 같은 이렇게 모든 면으로 해가 되는 그것만을 소원합니다. 모든 인간들이 떠날 때는 간증하고 떠났지만 ….

이것이 그렇게 보여지지 않고 죽는 날까지 그것이 좋아서 그 재미가 좋고, 그 취미가 좋고, 그 가치가 좋고, 그 놀음이 좋고, 그 권세가 좋고, 그 자리가 좋고, 그 행동이 좋고 그 밥이 좋고, 그 옷이 좋고, 그 거처가 좋고, 좋아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떠나지 못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이 멸망을 보고 못 견디는 마음, 확 변해서 ‘아! 이런 인간이다.’ 멸망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서 이게 멸망이라, 멸망 그것을 좋아하던 거와 정반대로 싫어하고, 미워하고, 무서워하고, 이제 싫어하던 성신의 감화대로 금생과 내세에 영원 무궁한 참된 것 옳은 것에 몸과 생명을 다 들여도 ‘이 길을 걸어가겠다, 이거 소원한다.’ 밤낮으로 원할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우리 마음이 변화돼야 됩니다.

우리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지식 가지고 변화될 줄 압니까? 지식 가지고 안 됩니다. 지식으로 아무리 이렇다 저렇다 논리로 백번 천번 말하고 다른 사람한테 간증해도 안 됩니다. 성신의 감화가 와야 됩니다. 성신의 감화! 엘리사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성신의 감동이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야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은 지극히 크고, 영광스럽고, 권위 있고, 인간이 거기에 속해서 사는 이것만 참되고 영원하지 거기를 떠나서 천지를 얻으면 뭣할 겁니까! 천하를 얻어봤자,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참사람을 잊어버리고 참사람의 요소가 될 것을 빼앗겼으면 너는 다 실패했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뇨?”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구한 엘리사


이렇게 우리 마음이 발라지는 것, 우리 마음이 바른 마음을, 바른 비판을, 바른 가치를, 바른 소원을, 바른 취미를, 바른 정신을 가진다는 것은 성신의 감화가 아니고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와 자기 일생이 벌써 거의가 다 망쳐진 것을 알면서도 취미 하나 바꾸지 못합니다. 이거는 분명이 이 취미로 망친 줄 알고 망할 줄 알면서도 취미 하나 바꾸지 못합니다. 재미 하나 바꾸지 못해요! 욕심 하나 바꾸지 못해요! 성질 하나 바꾸지 못해요! 자기의 평강 하나 바꾸지 못합니다! 바꾸지 못합니다!! 이것을 바꾸는 것은 성신의 감화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안 믿는 이방의 모든 권세를 다 취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권세를 취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권세를 취하는 것보다, 길갈에 있는 것도 좋지만, 벧엘에 있는 것도 좋지만 ….

벧엘은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생활, 하나님 앞에 참 성심성의를 기울여서 깨끗한 신앙생활 하는 것, 길갈은 벌써 하나님의 능력을 축복을 영육에 받아서 사는 것, 여리고는 기적과 이사를 행할 수 있는 권능을 받은 것,

이것이 다 좋지만, 모든 사람은 거기서 만족하고 거기서 머물지만 엘리사는 아무래도 엘리야의 이 걸음을 걷게 한! 이 영감.

엘리야의 이 마음을 이렇게 변화시켜서 이 마음, 영원히 부끄럽지 않을 참된 이 마음을 가지게 한 이 영감이 내게 필요하지 온 천하가 내게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다 떠나서 요단강을 건널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없이 단 둘이 가면 그런 이적으로 건너리라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갈려 하면 요단 강물에 헤엄쳐서 못 건너갑니다. 다 거기 빠져 죽는다. 죽으면 죽고 사는 건 사는 것이오. 이렇지만 죽는 것이 상관 없어. 사선을 초월해서 아무래도 내가 엘리야와 동행해서 엘리야 가는 그 걸음 가겠다고 해서 요단강 건너고 난 다음에 비로소 ‘네가 내게 구할 것이 무엇이냐’ 물었고 구할 때에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추가

1.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구한 엘리사의 신앙도 말씀해주시고요,

2.영감이 무엇인지 성령에 감화 감동입니까?

3.4단계 신앙을 다시 한번 정리해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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