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가 죽음을 두려워 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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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06:49
예레미야 37:20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백영희 설교록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생사를 초월한 선지자로 활동했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합니다. 그런데 죽기를 두려워 한 것은 분명했다고 보입니다.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백영희 설교록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생사를 초월한 선지자로 활동했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합니다. 그런데 죽기를 두려워 한 것은 분명했다고 보입니다.
본문 말씀은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다급해진 시드기야 왕이 갇혀 있던 예레미야를 몰래 왕궁으로 불렀을 때의 대화입니다. 예레미야38:26에도 “그들에게 대답하되 내가 왕의 앞에 간구하기를 나를 요나단의 집으로 도로 보내지 말아서 거기서 죽지 말게 하옵소서 하였다 하라 하니라”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서기관인 요나단의 집에 감옥이 있어서 예레미야가 체포되었을 때 이곳에 갇혔습니다. (예레미야37:15)
예레미야는 구약 이스라엘의 왕정 말기를 살았고 바벨론의 거듭된 침공 때문에 전국이 참혹하게 되던 시기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말씀을 벗어나서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성도를 말씀과 영감과 현실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호소하였습니다.
백목사님 말씀대로 예레미야는 생사를 초월한 선지자였습니다. 인용하신 말씀은 예레미야가 죽음이 두려워 한 말이 아닙니다. 죽어야 할 때가 있고, 죽지 않아도 될 때가 있고, 죽어서는 아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순교의 때가 아닌데 죽임을 당하면 의미 없는 죽음이 됩니다. 아직은 죽지 않아야 할 때이기 때문에, 갇혀서 죽으면 헛된 죽음이 되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에게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입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주님 인도 따라 말씀 전하다 죽겠다는 선택이 참 순교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교회가 간섭하다 죽으면 헛된 죽음이 되며, 설교 시간에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다가 진보파 교인에게 설교 강단에서 죽임을 당한다 해도 세상은 순교라 하겠으나 이곳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으며, 심지어 귀한 복음 사역에서 남몰래 속으로 눈 한번 옆으로 잘못 돌리면 개죽음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조심했으면 합니다.
(핵심 내용)
보통 말씀으로 살다가 죽어야 하는데도 피하는 것이 순교냐 실패냐 문제입니다. 냉정하게 살피면 죽어야 할 때가 있고, 죽어서는 아니 될 때가 있습니다. 죽어야 할 때를 피하면 십자가를 배신한 것이 되고, 죽지 말아야 할 때 죽으면 자기 생명을 죽인 살인죄가 됩니다.
연보를 할 때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는데, 연보를 하지 않아야 할 때에 연보를 하지 않는 결정은 거의 모든 우리가 다 잘 합니다. 문제는, 연보를 꼭 해야 할 때 물질 욕심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 우리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연보를 두고 연보를 하라고 가르치며 물질 욕심을 버리라는 설교가 대세입니다. 그런데 가끔 오판을 하거나 물질에 대한 중요성을 몰라서 허비 허송 낭비 하는 수가 많습니다.
요8: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두려워 피한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숨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줄을 타고 도망 간 것도 그렇습니다.
예레미야는 구약 이스라엘의 왕정 말기를 살았고 바벨론의 거듭된 침공 때문에 전국이 참혹하게 되던 시기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말씀을 벗어나서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성도를 말씀과 영감과 현실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호소하였습니다.
백목사님 말씀대로 예레미야는 생사를 초월한 선지자였습니다. 인용하신 말씀은 예레미야가 죽음이 두려워 한 말이 아닙니다. 죽어야 할 때가 있고, 죽지 않아도 될 때가 있고, 죽어서는 아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순교의 때가 아닌데 죽임을 당하면 의미 없는 죽음이 됩니다. 아직은 죽지 않아야 할 때이기 때문에, 갇혀서 죽으면 헛된 죽음이 되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에게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입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주님 인도 따라 말씀 전하다 죽겠다는 선택이 참 순교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교회가 간섭하다 죽으면 헛된 죽음이 되며, 설교 시간에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다가 진보파 교인에게 설교 강단에서 죽임을 당한다 해도 세상은 순교라 하겠으나 이곳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으며, 심지어 귀한 복음 사역에서 남몰래 속으로 눈 한번 옆으로 잘못 돌리면 개죽음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조심했으면 합니다.
(핵심 내용)
보통 말씀으로 살다가 죽어야 하는데도 피하는 것이 순교냐 실패냐 문제입니다. 냉정하게 살피면 죽어야 할 때가 있고, 죽어서는 아니 될 때가 있습니다. 죽어야 할 때를 피하면 십자가를 배신한 것이 되고, 죽지 말아야 할 때 죽으면 자기 생명을 죽인 살인죄가 됩니다.
연보를 할 때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는데, 연보를 하지 않아야 할 때에 연보를 하지 않는 결정은 거의 모든 우리가 다 잘 합니다. 문제는, 연보를 꼭 해야 할 때 물질 욕심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 우리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연보를 두고 연보를 하라고 가르치며 물질 욕심을 버리라는 설교가 대세입니다. 그런데 가끔 오판을 하거나 물질에 대한 중요성을 몰라서 허비 허송 낭비 하는 수가 많습니다.
요8: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두려워 피한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숨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줄을 타고 도망 간 것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