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지도할 때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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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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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00:00
1.목자가 가져야 할 양면
하나님 은혜 주시는 과정은
처음 믿을 때부터 '믿어지는' 은혜로 매사 순종 잘 하고 잘 믿고 나온 분들도 있고
앞서 인도하는 분의 오랜 수고와 지도를 받아 서서히 자라가는 신앙도 있습니다.
앞서 인도하는 분의 수고 때문에 잘 믿게 된 분들은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인도할 때 그렇게 수고를 해야만 신앙이 자란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를 주셔서 단기간에 기르는 분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고
처음 믿을 때부터 큰 은혜 받고 열심히 잘 믿게 된 분들은
자기처럼 그렇게 신앙과정을 거치지 않고
앞서 믿는 사람의 오랜 수고와 지도를 받고 자라가는 신앙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흔히
머리 좋고 모범생으로 일류학교를 나온 학생이 과외를 하게 되면
머리 나쁘고 행동이 엉망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아주 서툰 경우를 허다하게 봅니다.
한 면만 알기 때문입니다.
양 면이 다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2.신앙 지도자의 희생과 수고
마치 아버지는 큰 돈을 벌어와도 집밖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어린 자식들이 몰라주고
어머니는 하루종일 일해봐야 파출부보다 일을 덜하지만 아이의 주변에서 수고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전부 어머니 편을 드는 것처럼
신앙도
첫 신앙이 들어갈 때까지는
하나님 직접 은혜를 받아 깨치는 사람과 앞선 사람의 수고를 통해 깨치는 경우가 있으나
그 후에 정상적으로 자라 올라가는 신앙 과정에는 지도자의 수고가 큰 역할을 합니다.
이때 수고는
그 교회 목회자의 말씀 은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예배마다 전해지는 설교 말씀의 은혜가 그 사람 신앙을 기르는데 마치 아버지 역할이 되고
평소 심방이나 예배 시간 앞뒤 잠깐 만나 간단하게 대화하는 선생님과 구역장의 역할은
마치 가정으로 말하면 어머니와 같아서
어린 신앙이 완전히 성인 신앙으로 우뚝 솟구쳐 자랄 때까지는
직접 접촉하는 분들의 인도와 지도에 훨씬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3.신앙의 자녀와 육체의 자녀
육체의 자녀를 신앙의 자녀로 상대하고 기르는 것이 옳고
신앙의 자녀는 자기 육체의 자녀와 같은 차원에서 기르는 것이 바른 목자입니다.
육체의 자녀를 가족이라는 면으로만 상대하면 신앙으로는 자기와 상관 없는 사람이 되고
신앙의 자녀를 사랑하고 아끼고 살피는 일이 육체의 자녀만 못하다면
신앙의 참 부모 노릇은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느끼며 여러 모순을 보게 됩니다.
교회 내에서 신앙에 유명한 분들이 자기 자녀 신앙교육은 엉망이 되어 빛이 되지 않고
교회 내에서 아주 신앙 없는 사람이 자녀들은 훌륭하게 길러 영광이 된다는 식입니다.
한 쪽에 치우치면 죄가 되는데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이 간격을 메워주는 방법이 '충성'이니
충성이란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의 식구들을 위해 챙기고 돌보다가 자기 가정이 소홀하게 되면?
주님께 복음 위해 가정에 문제가 없도록 지켜주시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나중에 신앙의 사람들은 잘 자라고 자기 육체 자녀들이 좋지 않게 된다면?
주님께 맡겨 놓을 뿐입니다.
자기도 가족도 부모와 친척도 포기하고 희생시켜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눅14:26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라고 했습니다.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주님 위해 바칠 때는 즐거이 바쳐놓고 뒤에 본전 생각이 난 것처럼
복음 위해 가족까지 희생해도 충성을 한 분들이 나이가 들어서 자녀 교육에 후회를 하면
죽도 밥도 아닌 꼴이 됩니다.
주님 날 위해 죽었고 나는 다른 사람 구원 위해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단 한 가지 이치로
끝까지 달려갔으면 합니다.
4.신앙 식구들을 돌볼 때
신앙 어린 가정을 위해
그 가정의 아이를 돌봐주고 청소를 해주어야 신앙이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신앙 어린 가정을 신앙으로 지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까
저절로 내 자녀처럼 생각이 되어져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 얼러키우면 호로자식이 됩니다.
세상 부모가 자녀를 엄하게 기르면 실력은 있으나 사랑이 없는 매몰찬 사람이 됩니다.
둘 중에 하나를 가지려면 엄하게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2가지를 섞어서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나 하나님 대하는 자세나 연보나 교회 충성이나 집회 참석과 같은 것은
원칙을 가지고 강하게 몰고 가는 것이 좋고
그 외에 인간적인 면으로는 따뜻한 것이 좋습니다.
2가지를 어떻게 섞어서 하는지?
주변에 신앙 지도를 잘 하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을 비교하며 살펴보면 압니다.
단기간 경우를 가지고 보지 마시고 수십 년 신앙지도를 했던 분들을 살펴보셨으면.
5.오후 예배 참석
붕어빵을 굽는 것은
열을 받은 철판에 반죽을 넣어 적당히 구워졌을 때 날쌔게 끄집어 내야 하는데
1-2분이 늦거나 빠르면 새까맣게 타거나 흰반죽 상태가 되어 먹지를 못합니다.
벼농사는 5-6개월만에 결판이 납니다.
하루 이틀 늦은 것은 그럴 수 있으나 1-2주일 이상 늦으면 소출이 줄어듭니다.
대학 입시는 12년 공부를 한 결과입니다.
1-2개월 늦어도 기다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년을 허송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특히 대입이 가까운 시기에 허송하는 것은 아주 금물입니다.
신앙으로 기르는 것은
붕어빵 굽어 내듯 1-2분 단숨에 결판내는 일이 아니고
벼농사 짓듯 1년이 안 되는 5-6개월만에 결판낼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몇 년을 보면서 때로는 10년이나 그 이상을 보면서 길러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열심과 애타는 마음은 한 순간을 기다릴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조급한 마음은 기도할 때 뜨거운 심정으로 기도하는 자세에 그쳐야 합니다.
어린 신앙을 단기간에 내 마음대로 하려 하면 부작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급한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주님 예정을 따라 언젠가 깨닫고 열심을 낼 수 있는 날을 소망해야 합니다.
6.참고로
언제 한번 소개했는지 모르겠으나
답변자는 지금까지 답변자만큼 교회를 다니면서 예배를 훼방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 때 졸든지 빠지든지 예배를 훼방하든지 어떤 가능성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나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주일학교 예배 때 전체 주일학생이 찬송을 하다가 갑자기 찬송을 함께 딱 멈추게 하고...
성탄절에 대문 앞에 서서 성탄절 새로 오는 학생을 다 돌려보내고...
이런 세월을 참으로 오래 보냈습니다.
장년반 예배를 참석해서 기도 시간에 어떻게 떠들고 장난을 쳤는지
담임목사님이 교인 아들은 때릴 수 없어 자기 아들을 대신 때려 몇 달 간 짧은 바지를 못입게 된 적도 있습니다.
만일 그때 답변자를 지도하던 분이 답변자를 1-2년 지켜보다 포기를 했더라면?
만일 그때 5-10년을 지켜보다 포기 했더라면?
예배당에서 나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한편으로 끝까지 지켜보고 소망을 가지고 있던 분들
그분들이 답변자 주변에는 아직도 많이 생존해 계십니다.
그때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현재 동역자가 되었거나 심지어 후배가 된 경우도 있고
그때 장년반들 중 중요한 분들은 지금 답변자에게 자신들의 신앙과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전체 맡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
'너는 사람이 될 희망도 없다'고 말했던 선생님이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10여년간 답변자를 자기가 이 노선 제일의 지도자로 생각한다며 매사 발벗고 지원하던 모습을 볼 때, 답변자는 그때 얼마나 윗사람들 볼 때 심했던가를 생각합니다.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이진헌목사님이라는 분이
1971-72년 기간에 답변자 교회 목회자로 오셨을 때 설교 중에 했던 내용입니다.
'만일 공회가 10명 교인도 안 되는 가장 시골교회인 봉산교회로 파송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백 명 교인이 있는 예배당에 사울같이 세상으로 잘난 사람들만 있을 수도 있고 봉산교회 10명도 안 되는 교인 속에 만일 다윗 같은 교인 하나가 있을 수 있으니 어떻게 교인 숫자나 연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겠는가?'라고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답변자는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며 하나님께서 하시면 다 하시는 것이고 알아서 하는 것이니
단 한 사람을 놓고서라도 평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결심을 했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으로 지도하는 사람이
자기 밑에 사람들을 기를 때 자기가 정해놓은 일정과 성장과정에 맞추어 된다고 생각 말고
자기대로 그렇게 일정도 짜고 소망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만사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특히 사람을 길러 가는 과정은
각 사람에 따라 다 각각 다르니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하여 충성해 보는 것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만사 맡기는 분이 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 은혜 주시는 과정은
처음 믿을 때부터 '믿어지는' 은혜로 매사 순종 잘 하고 잘 믿고 나온 분들도 있고
앞서 인도하는 분의 오랜 수고와 지도를 받아 서서히 자라가는 신앙도 있습니다.
앞서 인도하는 분의 수고 때문에 잘 믿게 된 분들은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인도할 때 그렇게 수고를 해야만 신앙이 자란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를 주셔서 단기간에 기르는 분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고
처음 믿을 때부터 큰 은혜 받고 열심히 잘 믿게 된 분들은
자기처럼 그렇게 신앙과정을 거치지 않고
앞서 믿는 사람의 오랜 수고와 지도를 받고 자라가는 신앙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흔히
머리 좋고 모범생으로 일류학교를 나온 학생이 과외를 하게 되면
머리 나쁘고 행동이 엉망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아주 서툰 경우를 허다하게 봅니다.
한 면만 알기 때문입니다.
양 면이 다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2.신앙 지도자의 희생과 수고
마치 아버지는 큰 돈을 벌어와도 집밖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어린 자식들이 몰라주고
어머니는 하루종일 일해봐야 파출부보다 일을 덜하지만 아이의 주변에서 수고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전부 어머니 편을 드는 것처럼
신앙도
첫 신앙이 들어갈 때까지는
하나님 직접 은혜를 받아 깨치는 사람과 앞선 사람의 수고를 통해 깨치는 경우가 있으나
그 후에 정상적으로 자라 올라가는 신앙 과정에는 지도자의 수고가 큰 역할을 합니다.
이때 수고는
그 교회 목회자의 말씀 은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예배마다 전해지는 설교 말씀의 은혜가 그 사람 신앙을 기르는데 마치 아버지 역할이 되고
평소 심방이나 예배 시간 앞뒤 잠깐 만나 간단하게 대화하는 선생님과 구역장의 역할은
마치 가정으로 말하면 어머니와 같아서
어린 신앙이 완전히 성인 신앙으로 우뚝 솟구쳐 자랄 때까지는
직접 접촉하는 분들의 인도와 지도에 훨씬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3.신앙의 자녀와 육체의 자녀
육체의 자녀를 신앙의 자녀로 상대하고 기르는 것이 옳고
신앙의 자녀는 자기 육체의 자녀와 같은 차원에서 기르는 것이 바른 목자입니다.
육체의 자녀를 가족이라는 면으로만 상대하면 신앙으로는 자기와 상관 없는 사람이 되고
신앙의 자녀를 사랑하고 아끼고 살피는 일이 육체의 자녀만 못하다면
신앙의 참 부모 노릇은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느끼며 여러 모순을 보게 됩니다.
교회 내에서 신앙에 유명한 분들이 자기 자녀 신앙교육은 엉망이 되어 빛이 되지 않고
교회 내에서 아주 신앙 없는 사람이 자녀들은 훌륭하게 길러 영광이 된다는 식입니다.
한 쪽에 치우치면 죄가 되는데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이 간격을 메워주는 방법이 '충성'이니
충성이란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의 식구들을 위해 챙기고 돌보다가 자기 가정이 소홀하게 되면?
주님께 복음 위해 가정에 문제가 없도록 지켜주시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나중에 신앙의 사람들은 잘 자라고 자기 육체 자녀들이 좋지 않게 된다면?
주님께 맡겨 놓을 뿐입니다.
자기도 가족도 부모와 친척도 포기하고 희생시켜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눅14:26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라고 했습니다.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주님 위해 바칠 때는 즐거이 바쳐놓고 뒤에 본전 생각이 난 것처럼
복음 위해 가족까지 희생해도 충성을 한 분들이 나이가 들어서 자녀 교육에 후회를 하면
죽도 밥도 아닌 꼴이 됩니다.
주님 날 위해 죽었고 나는 다른 사람 구원 위해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단 한 가지 이치로
끝까지 달려갔으면 합니다.
4.신앙 식구들을 돌볼 때
신앙 어린 가정을 위해
그 가정의 아이를 돌봐주고 청소를 해주어야 신앙이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신앙 어린 가정을 신앙으로 지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까
저절로 내 자녀처럼 생각이 되어져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 얼러키우면 호로자식이 됩니다.
세상 부모가 자녀를 엄하게 기르면 실력은 있으나 사랑이 없는 매몰찬 사람이 됩니다.
둘 중에 하나를 가지려면 엄하게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2가지를 섞어서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나 하나님 대하는 자세나 연보나 교회 충성이나 집회 참석과 같은 것은
원칙을 가지고 강하게 몰고 가는 것이 좋고
그 외에 인간적인 면으로는 따뜻한 것이 좋습니다.
2가지를 어떻게 섞어서 하는지?
주변에 신앙 지도를 잘 하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을 비교하며 살펴보면 압니다.
단기간 경우를 가지고 보지 마시고 수십 년 신앙지도를 했던 분들을 살펴보셨으면.
5.오후 예배 참석
붕어빵을 굽는 것은
열을 받은 철판에 반죽을 넣어 적당히 구워졌을 때 날쌔게 끄집어 내야 하는데
1-2분이 늦거나 빠르면 새까맣게 타거나 흰반죽 상태가 되어 먹지를 못합니다.
벼농사는 5-6개월만에 결판이 납니다.
하루 이틀 늦은 것은 그럴 수 있으나 1-2주일 이상 늦으면 소출이 줄어듭니다.
대학 입시는 12년 공부를 한 결과입니다.
1-2개월 늦어도 기다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년을 허송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특히 대입이 가까운 시기에 허송하는 것은 아주 금물입니다.
신앙으로 기르는 것은
붕어빵 굽어 내듯 1-2분 단숨에 결판내는 일이 아니고
벼농사 짓듯 1년이 안 되는 5-6개월만에 결판낼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몇 년을 보면서 때로는 10년이나 그 이상을 보면서 길러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열심과 애타는 마음은 한 순간을 기다릴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조급한 마음은 기도할 때 뜨거운 심정으로 기도하는 자세에 그쳐야 합니다.
어린 신앙을 단기간에 내 마음대로 하려 하면 부작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급한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주님 예정을 따라 언젠가 깨닫고 열심을 낼 수 있는 날을 소망해야 합니다.
6.참고로
언제 한번 소개했는지 모르겠으나
답변자는 지금까지 답변자만큼 교회를 다니면서 예배를 훼방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 때 졸든지 빠지든지 예배를 훼방하든지 어떤 가능성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나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주일학교 예배 때 전체 주일학생이 찬송을 하다가 갑자기 찬송을 함께 딱 멈추게 하고...
성탄절에 대문 앞에 서서 성탄절 새로 오는 학생을 다 돌려보내고...
이런 세월을 참으로 오래 보냈습니다.
장년반 예배를 참석해서 기도 시간에 어떻게 떠들고 장난을 쳤는지
담임목사님이 교인 아들은 때릴 수 없어 자기 아들을 대신 때려 몇 달 간 짧은 바지를 못입게 된 적도 있습니다.
만일 그때 답변자를 지도하던 분이 답변자를 1-2년 지켜보다 포기를 했더라면?
만일 그때 5-10년을 지켜보다 포기 했더라면?
예배당에서 나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한편으로 끝까지 지켜보고 소망을 가지고 있던 분들
그분들이 답변자 주변에는 아직도 많이 생존해 계십니다.
그때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현재 동역자가 되었거나 심지어 후배가 된 경우도 있고
그때 장년반들 중 중요한 분들은 지금 답변자에게 자신들의 신앙과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전체 맡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
'너는 사람이 될 희망도 없다'고 말했던 선생님이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10여년간 답변자를 자기가 이 노선 제일의 지도자로 생각한다며 매사 발벗고 지원하던 모습을 볼 때, 답변자는 그때 얼마나 윗사람들 볼 때 심했던가를 생각합니다.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이진헌목사님이라는 분이
1971-72년 기간에 답변자 교회 목회자로 오셨을 때 설교 중에 했던 내용입니다.
'만일 공회가 10명 교인도 안 되는 가장 시골교회인 봉산교회로 파송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백 명 교인이 있는 예배당에 사울같이 세상으로 잘난 사람들만 있을 수도 있고 봉산교회 10명도 안 되는 교인 속에 만일 다윗 같은 교인 하나가 있을 수 있으니 어떻게 교인 숫자나 연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겠는가?'라고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답변자는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며 하나님께서 하시면 다 하시는 것이고 알아서 하는 것이니
단 한 사람을 놓고서라도 평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결심을 했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으로 지도하는 사람이
자기 밑에 사람들을 기를 때 자기가 정해놓은 일정과 성장과정에 맞추어 된다고 생각 말고
자기대로 그렇게 일정도 짜고 소망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만사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특히 사람을 길러 가는 과정은
각 사람에 따라 다 각각 다르니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하여 충성해 보는 것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만사 맡기는 분이 되셨으면 합니다.
말씀 감사드리며 다시 질문합니다
목사님의 세밀한 답변을 위해 더 자세히 상황을 전합니다. 저는 첫신앙이 들어 참으로 예
배시간이 기다려지고 주일오전에서 오후,삼일,새벽예배를 그리고 연보에 이르기까지 누가 하자고 해서 하지않고 스스로 했었습니다.교회의 봉사도 말입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저를 전도하신 집사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의 구역식구들은 말을 해야만 되는데 그러다보니 지혜도 필요하고 경제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엄청난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말씀의 은혜, 이 귀한 직분의 사명, 또 이로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제 손이 많이 가야하는 어린애를 제쳐두고 제 딴에는 고민이 많습니다. 그것을 어찌 이 미약한 인간이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이왕이면 많이 끌어다 쓰고 싶습니다. 이 귀한 일에 쓰임을 받은 제가 여태껏 나태하고 소홀히 여긴 불충을 회개합니다. 그래서 맡은 직분 감당하려다 보니 유한한 인간이지라,틈나면 심방하고 (마음심방이든 찾는 심방포함)품다보니까 제 가정에는 표날만큼 소홀해집니다. 제 식구도 돌보아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신 부모처럼 지도하는 목자도 현재는 더욱 아닙니다.
말씀드렸던 제사문제 중인 양에게 말씀이 들려야 하겠기에 아기도 봐주지만 그것을 본인이 거부할 때도 있고 자연스럽게 오후예배로 나올 형편을 만들었지만 결국은 안되었습니다. 예배 한번 가지고는 양식이 모자랄 것인데... 기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하는지? 제사문제도 꺼낸 적이 있지만 현실이 집안에서 제사를 안지내지 않는 한 지낼 사람이 자기몫이라는 것입니다. 본인의 신앙이 없으면 안될 문제기에 말씀의 조급함이 앞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사안이기에 자꾸 생각이 나고 양도 죄가 없어져야 복을 받겠기에 생각할 때마다 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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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세밀한 답변을 위해 더 자세히 상황을 전합니다. 저는 첫신앙이 들어 참으로 예
배시간이 기다려지고 주일오전에서 오후,삼일,새벽예배를 그리고 연보에 이르기까지 누가 하자고 해서 하지않고 스스로 했었습니다.교회의 봉사도 말입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저를 전도하신 집사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의 구역식구들은 말을 해야만 되는데 그러다보니 지혜도 필요하고 경제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엄청난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말씀의 은혜, 이 귀한 직분의 사명, 또 이로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제 손이 많이 가야하는 어린애를 제쳐두고 제 딴에는 고민이 많습니다. 그것을 어찌 이 미약한 인간이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이왕이면 많이 끌어다 쓰고 싶습니다. 이 귀한 일에 쓰임을 받은 제가 여태껏 나태하고 소홀히 여긴 불충을 회개합니다. 그래서 맡은 직분 감당하려다 보니 유한한 인간이지라,틈나면 심방하고 (마음심방이든 찾는 심방포함)품다보니까 제 가정에는 표날만큼 소홀해집니다. 제 식구도 돌보아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신 부모처럼 지도하는 목자도 현재는 더욱 아닙니다.
말씀드렸던 제사문제 중인 양에게 말씀이 들려야 하겠기에 아기도 봐주지만 그것을 본인이 거부할 때도 있고 자연스럽게 오후예배로 나올 형편을 만들었지만 결국은 안되었습니다. 예배 한번 가지고는 양식이 모자랄 것인데... 기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하는지? 제사문제도 꺼낸 적이 있지만 현실이 집안에서 제사를 안지내지 않는 한 지낼 사람이 자기몫이라는 것입니다. 본인의 신앙이 없으면 안될 문제기에 말씀의 조급함이 앞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사안이기에 자꾸 생각이 나고 양도 죄가 없어져야 복을 받겠기에 생각할 때마다 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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