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자세 - 이적과 기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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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의 자세 - 이적과 기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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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경의 모든 이적과 기사는


첫째,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보여주시는 동시에

둘째,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믿는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며

셋째, 특히 성경에 기록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믿는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성경이 완성된 시대에는

둘째와 셋째 조건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으니

성경에 기록해야 할 것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이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첫째 조건은 오늘도 믿음 어린 사람을 위해 위해 그렇게 보여 주시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누구에게든지 개별 인도를 하시면서 특별히 필요하면 이적과 기사를 보이십니다.


예수님이나 모든 선지 사도들의 이적과 기사가 앞서 설명한 3가지 때문이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더해져 있습니다.


2.현재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는 소식들은


거의 다 이단이거나 불건전한 신비주의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야 할 일은 이미 성경에 다 기록하셨으니

이제 각자에게 특별하게 필요한 경우나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셔야 할 때에 보이시는데


이적과 기사를 자기가 행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는 사람들은

전부 가짜라고 알면 될 정도입니다.


다른 종교인들도 마음의 훈련과 여러 가지 특이한 신체 훈련을 통해

일반 사람에게는 이적과 기사로 보이는 일들을 행하는 것은

성경에도 기록하셨고 또 역사적으로 많이 발견되며 오늘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필요하여 직접 행하는 것과

사람이 자기 훈련과 자기 결심에 따라 사람이 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니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람이 마음대로 행하는 이적과 기사는

우리 일반인에게는 '이적과 기사'로 보이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자연의 이치를 이용한 과학이거나

아니면 착각이거나 때로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기를 치는 경우입니다.


3.정통 교회 목회자들의 경우


정말 건전한 신비주의를 가진 신앙의 사람이라면 그 주변에 이적과 기사가 많을 것이지만

그런 이적과 기사를 자기 마음대로 행한다고 한다면 이미 그는 불건전한 신비주의입니다.


시야를 넓게 뜨면 창살없는 주관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1970년대 한국교회 보수 정통 교단들은 순복음교회를 전부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는데

1990년대에 이르러 순복음교회를 따라 하지 않는 교파가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신유 방언 축복 밴드... 등 그 사례가 수없이 많으니

1970년대 자기들이 한 말만 가지고 오늘 자신들을 따져도 스스로 이단입니다.


4.신앙 없는 이들에게 만일 이적과 기사를 보일 수 있다면


성경에 가장 많은 기사와 이적이 있었던 시기를 혹시 아십니까?

예수님이 직접 행하신 것보다도 모세가 광야에서 보여준 이적과 기사가 훨씬 많습니다.

예수님은 2번 떡으로 크게 배불리 먹이신 경우가 있었지만

모세는 40년간 매일 한번씩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광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끝까지 패역했던 것은 이적과 기사를 덜 봐서가 아니며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것도 이적과 기사를 덜 봐서가 아닙니다.




이적과 기사는

그때 그때 필요하여 행하시기도 했고 오늘도 필요하면 그런 일을 보여주시고 있으나

이적과 기사 그 자체가 사람을 완전히 돌변 시켜 믿도록 만드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고

사람이 전적 돌이켜 진정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그렇게 만들든 아니면 고요히 전하는 말씀 한 마디로 그렇게 만들든

아니면 숨죽여 배후에서 기도한 그 기도를 통해 그렇게 하든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어 젖혀야 해결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믿음이라는 것은 생겨질 수가 없습니다. 바로를 생각해 보셨으면.


5.주변에 안타까운 분들이 계신다면!


이적과 기사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으나 그 자체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으며

말씀도 기도도 모든 것도 다 그러하며

오직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젖혀야 하므로 우리는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주여! 저 강퍅한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이렇게 수없이

이렇게 오랜 세월 진심으로 구하는 분이 되시기를 진정 바랍니다.


그렇게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도 하시고 또 때로는 전도도 하시고 때로는 설득도 해보시되

늘 마음 속에는 '주님 아니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하시다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한 순간에 나의 마음에 확신을 주시면서

기도를 하도록 하거나 무슨 말을 전하게 하거나 아니면 무슨 다른 것을 명할 때가 있는데

그때에 순종을 하면 절대 열리지 않던 그 사람이 벼락같이 돌이켜 회개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무런 그런 특별한 계기도 없었는데 어느날 아주 신앙이 쑥쑥 들어가기도 합니다.


6.수많은 경험을 통해


단정하고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에도 맞고

교리에도 이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소개를 받고 따져보면 주변에서 참 복음이 흥왕되는 교회와 그런 분들에게서는

이런 일들이 아주 평범한 일이라고 분석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선 눈에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보이게 되면

이적과 기사를 보여 단번에 해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답변자처럼 확고하게 여기 관련된 내용을 아는 이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회에

어떤 일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지


오직 주님만 아시고

우리는 어떻게 순종을 하는 과정에 그런 복음 전도에 쓰여질지 모르므로

거저 매일 당하는 현실에서 주님의 명령만 고요히 찾아 순종할 뿐입니다.
이적과 기사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목사님, 평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 질문드립니다.

예수님의 이적과 표적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아이심을

우리에게 나타내보여주시기 위해 행하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이적과 표적을 행한 일은

당시의 시대배경과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은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하면서 많은 이단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심지어는 정통교회의 목사님들까지 설교시간에

신유집회를 하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근래 몇년 동안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한 시험과 아무리 기도하고 애써도

우상을 섬기는 시댁과 친정식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문제로

극심한 눌림과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이적과 기사를 현재도 행할 수만 있다면

저들도 변화되고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저들이 말씀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또 말씀으로 전한 복음릉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적과 기사를 본다 해도 변하지 안고,

믿지 않을 것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로써 끝까지 하나님의 긍훌하심이 임하시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지금 현재도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기를

하나님께 간구드리는 것이 올바르고 가능한 방법인가요?

이렇게 이적과 기사를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요?

목사님의 명쾌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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