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0장으로 살펴볼 사안 - 교회의 직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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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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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3 00:00
1.장로 권사 직분을 받고
①교회에 버스를 연보했다거나 안수위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한 동기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교회 직책 중에서도
가장 큰 십자가를 제일 앞서 지고 가라고 장로 권사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하여
남은 평생 이전보다 더욱 다른 사람 신앙 유익을 위해 고통을 당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기뻐하고 감사하되
어린 교인을 위해 자기 속이 썩고 매장 당하고 종노릇하는 십자가보다
돈으로 연보하는 경제 십자가가 가장 쉽고 간단하므로 첫 인사로 교회 차량을 연보했다면
아주 정상적이며 바른 신앙 자세일 것이며 사도 바울과 나란히 놓을 신앙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장로 권사가 한 교단에 단 1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각 교단이 이렇게까지 어둡고 어지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촛대 하나만 바로 켜져도 이렇게까지 온 가정이 쑥대밭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염려스런 것은, 마20장 말씀 때문입니다.
20절 이하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정권을 잡을 때 자기 두 아들을 좌우 측근으로 끗발 부리게 해 달라고 운동하고
그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 로비에 힘을 얻게 되자
그 꼴을 본 10명의 다른 제자들은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다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25절 이하에서
주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직분을 가르치며
세상 사람들이 권력을 쥐면 제 멋대로 살면서 남들에게 십자가를 지우는데
주님의 십자가 도는 다른 사람 신앙 위해 자기 손에 못을 박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말단 공무원이 드디어 과장이 되고 국장이 되어
말단의 서러움을 다 털쳐 버리고 나도 이제 내 멋대로 하게 되었다고 기념 식수를 하듯이
교회 내 더럽고 귀찮고 하찮은 일만 하던 교인이 드디어 교회 내 중직에 선발 되었으니
세상 고위직이 권세를 부리듯 좋은 대우를 받듯 나도 교회 안에 그렇게 되었다는 기분으로
교회를 위해 한 턱 내는 자세로 버스 연보를 했다면
그 장로 권사님들도 마20:25의 죄를 짓고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죄인들이고
그런 버스를 이용하면서 자기는 돈 한 푼 안냈다고 좋게 생각하는 교인도 꼭 같습니다.
2.이미 이 시대 교회가 거의 다 그러하여 세상까지 다 알게 되었으니
크게 말하면, 이 시대를 사는 질문자와 답변자까지 포함한 우리 전부의 허물이며
가깝게 말하면,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이 있는 교회는 마23:27의 회칠한 무덤일 것인데
누가 그런 사람인지 어느 교회가 그런 교회인지 이마에 표시를 할 수 없으므로
이런 문제는 깊이 속에 넣어두고 삼가 자신을 돌아볼 사안으로 삼고
자기 소속 교회에 이런 문제가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서 비판 조롱할 것이 아니라
평소 이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교회 내의 작은 싹을 미리 잘라 버려야 합니다.
자식이 태어나던 날 애미는 죽는다고 울부짖었는데도
그 자식이 철이 없을 때도 아니고 철이 들어 10세 20세가 되어서도
자기 생일에 '내가 태어났으니 모두들 축하해라!' 이런 식으로 생일잔치를 한다면
그러면서 자기 태어나던 날 죽을 고생한 애미 수고에 눈물 겨운 감사는 하지 않고
생일 잔치상 차리라고 부모를 등쳐먹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불효자식들이 예배당 안에 와서는 장로 권사가 되었다고 하나님과 양떼를 상대로
집에서 하던 그 버릇 그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3.결국 모든 것이 다 이어지고 하나 되는 법이니
자기 생일 잔치를 남들처럼 그냥 축하받고 부모에게 용돈 받는 이런 사람이라면
자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등을 깔고 올라가서 제 얼굴 보라 할 사람일 것입니다.
담임목사 취임 몇 주 행사를 하고
총회장 노회장 취임 축하 식사 자리가 베풀어지는 것이 가능한 곳이라면
그 규모나 강제성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십자가의 원수가 대량생산될 토양과 분위기는
필요충분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식 생일날에 자식들이 부모 고생 감사하여 부모 잔치를 해드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런 가정이 아니고 그런 자세를 체질적으로 가지지 않았다면
신앙세계에서 논하는 십자가란 그 근방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니
제5계명은 외부적으로는 세상 효도 계명이나 그 안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치려면 아주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할 일인데
그렇게 하려면 마찰이 수도없이 많을 것이므로 이 노선 길을 멀리서 지켜볼 수는 있어도
실제 이런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최근 교회 탈선상을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장로 된다고 연보 강제하는 이런 일을 두고는 아마 비판할 수 있는 교인이나 교회나 교단이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4.그래도 50여 년 전 한국교회는
교단에 상관없이 다 이런 십자가의 근본 자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속에 계신 하나님 대신 자기 외부에 있는 사람과 제도에 휩쓸려 오다보니까
지금은 자기들의 선배들이 지켰던 생명의 신앙을 거의 버렸다고 판단됩니다.
질문자께서 칭찬해 주신 '총공회'의 경우는
한국교회 초기 건전한 신앙자세를 가장 오랫동안 견지하고 있다는 정도로 평할 수는 있고
타 교단에 비하여 아직까지도 이런 면이 현저하게 건전하다 할 수 있으나
백목사님 사후 급격하게 외부 교단의 대세에 휩쓸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행히 노선의 중심에는 앞서 소개한 자세가 지금도 당연히 지켜지고 있으므로
이런 신앙노선이 하나의 불씨가 되어 혹시 기회를 주시면
다시 교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모를 것이므로 이 홈에서 열심히 살펴보고 있으나
현재 상황은 교회 별로 과거 신앙을 지키고 있는 곳은 겨우 자신들 숨쉬고 사는 정도이니
살았다면 약해서 탈이고
많고 강하다면 생명이 없어 탈이라고 탄식할 뿐입니다.
5.질문자께 죄송하지만
장로 직분이 돈으로 팔고 사는 정도에 이르게 된 우리 주변 현상을 볼 때마다
그것은 뿌리가 썩어서 가지 하나가 말라가는 정도이므로
말라가는 가지에 시선을 고정할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시기를 원합니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수많은 의문과 과제를 가지고 샅샅이 살펴 명확하게 원인을 찾고 자신을 단속하지 않으면
자신도 맨돼지 눈돼지 걱정한다는 세상 사람 말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①교회에 버스를 연보했다거나 안수위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한 동기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교회 직책 중에서도
가장 큰 십자가를 제일 앞서 지고 가라고 장로 권사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하여
남은 평생 이전보다 더욱 다른 사람 신앙 유익을 위해 고통을 당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기뻐하고 감사하되
어린 교인을 위해 자기 속이 썩고 매장 당하고 종노릇하는 십자가보다
돈으로 연보하는 경제 십자가가 가장 쉽고 간단하므로 첫 인사로 교회 차량을 연보했다면
아주 정상적이며 바른 신앙 자세일 것이며 사도 바울과 나란히 놓을 신앙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장로 권사가 한 교단에 단 1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각 교단이 이렇게까지 어둡고 어지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촛대 하나만 바로 켜져도 이렇게까지 온 가정이 쑥대밭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염려스런 것은, 마20장 말씀 때문입니다.
20절 이하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정권을 잡을 때 자기 두 아들을 좌우 측근으로 끗발 부리게 해 달라고 운동하고
그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 로비에 힘을 얻게 되자
그 꼴을 본 10명의 다른 제자들은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다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25절 이하에서
주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직분을 가르치며
세상 사람들이 권력을 쥐면 제 멋대로 살면서 남들에게 십자가를 지우는데
주님의 십자가 도는 다른 사람 신앙 위해 자기 손에 못을 박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말단 공무원이 드디어 과장이 되고 국장이 되어
말단의 서러움을 다 털쳐 버리고 나도 이제 내 멋대로 하게 되었다고 기념 식수를 하듯이
교회 내 더럽고 귀찮고 하찮은 일만 하던 교인이 드디어 교회 내 중직에 선발 되었으니
세상 고위직이 권세를 부리듯 좋은 대우를 받듯 나도 교회 안에 그렇게 되었다는 기분으로
교회를 위해 한 턱 내는 자세로 버스 연보를 했다면
그 장로 권사님들도 마20:25의 죄를 짓고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죄인들이고
그런 버스를 이용하면서 자기는 돈 한 푼 안냈다고 좋게 생각하는 교인도 꼭 같습니다.
2.이미 이 시대 교회가 거의 다 그러하여 세상까지 다 알게 되었으니
크게 말하면, 이 시대를 사는 질문자와 답변자까지 포함한 우리 전부의 허물이며
가깝게 말하면,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이 있는 교회는 마23:27의 회칠한 무덤일 것인데
누가 그런 사람인지 어느 교회가 그런 교회인지 이마에 표시를 할 수 없으므로
이런 문제는 깊이 속에 넣어두고 삼가 자신을 돌아볼 사안으로 삼고
자기 소속 교회에 이런 문제가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서 비판 조롱할 것이 아니라
평소 이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교회 내의 작은 싹을 미리 잘라 버려야 합니다.
자식이 태어나던 날 애미는 죽는다고 울부짖었는데도
그 자식이 철이 없을 때도 아니고 철이 들어 10세 20세가 되어서도
자기 생일에 '내가 태어났으니 모두들 축하해라!' 이런 식으로 생일잔치를 한다면
그러면서 자기 태어나던 날 죽을 고생한 애미 수고에 눈물 겨운 감사는 하지 않고
생일 잔치상 차리라고 부모를 등쳐먹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불효자식들이 예배당 안에 와서는 장로 권사가 되었다고 하나님과 양떼를 상대로
집에서 하던 그 버릇 그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3.결국 모든 것이 다 이어지고 하나 되는 법이니
자기 생일 잔치를 남들처럼 그냥 축하받고 부모에게 용돈 받는 이런 사람이라면
자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등을 깔고 올라가서 제 얼굴 보라 할 사람일 것입니다.
담임목사 취임 몇 주 행사를 하고
총회장 노회장 취임 축하 식사 자리가 베풀어지는 것이 가능한 곳이라면
그 규모나 강제성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십자가의 원수가 대량생산될 토양과 분위기는
필요충분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식 생일날에 자식들이 부모 고생 감사하여 부모 잔치를 해드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런 가정이 아니고 그런 자세를 체질적으로 가지지 않았다면
신앙세계에서 논하는 십자가란 그 근방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니
제5계명은 외부적으로는 세상 효도 계명이나 그 안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치려면 아주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할 일인데
그렇게 하려면 마찰이 수도없이 많을 것이므로 이 노선 길을 멀리서 지켜볼 수는 있어도
실제 이런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최근 교회 탈선상을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장로 된다고 연보 강제하는 이런 일을 두고는 아마 비판할 수 있는 교인이나 교회나 교단이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4.그래도 50여 년 전 한국교회는
교단에 상관없이 다 이런 십자가의 근본 자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속에 계신 하나님 대신 자기 외부에 있는 사람과 제도에 휩쓸려 오다보니까
지금은 자기들의 선배들이 지켰던 생명의 신앙을 거의 버렸다고 판단됩니다.
질문자께서 칭찬해 주신 '총공회'의 경우는
한국교회 초기 건전한 신앙자세를 가장 오랫동안 견지하고 있다는 정도로 평할 수는 있고
타 교단에 비하여 아직까지도 이런 면이 현저하게 건전하다 할 수 있으나
백목사님 사후 급격하게 외부 교단의 대세에 휩쓸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행히 노선의 중심에는 앞서 소개한 자세가 지금도 당연히 지켜지고 있으므로
이런 신앙노선이 하나의 불씨가 되어 혹시 기회를 주시면
다시 교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모를 것이므로 이 홈에서 열심히 살펴보고 있으나
현재 상황은 교회 별로 과거 신앙을 지키고 있는 곳은 겨우 자신들 숨쉬고 사는 정도이니
살았다면 약해서 탈이고
많고 강하다면 생명이 없어 탈이라고 탄식할 뿐입니다.
5.질문자께 죄송하지만
장로 직분이 돈으로 팔고 사는 정도에 이르게 된 우리 주변 현상을 볼 때마다
그것은 뿌리가 썩어서 가지 하나가 말라가는 정도이므로
말라가는 가지에 시선을 고정할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시기를 원합니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수많은 의문과 과제를 가지고 샅샅이 살펴 명확하게 원인을 찾고 자신을 단속하지 않으면
자신도 맨돼지 눈돼지 걱정한다는 세상 사람 말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교회직분?
목사님
늘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일반교회 신자로서 늘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면이 있는데 권사/장로로 피택되신 분들이 피택에 감사해서 교회에 대형버스를 새로 사서 헌납하기도 하고 뭔가 물질적인 면을 봉헌하는것을 여러교회에서 듣기도하고 알기도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가 수고가 많다고 하여 성도들이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고위직(?)인 권사나 장로로 피택해 줄리도 없지마는 간혹 피택된다해도 피택선물 때문에 빚을 내는 경우도 봅니다.
왜 피택헌금을 할 까요?
교회는 고위직,중위직,하위직이 아니고 그래서 교회는 직분이라는 용어를 쓰는것 같은데 교회직분이 계급이 되고 또 실제로 하나의 계급사회가 된것 같기도 합니다.
일반교회는 권사들은 권사회를 만들어서 권사들 끼리 놀고, 안수집사는 안수집사회를 만들어서 주말마다 이집 저집 돌아가며 먹고 마시는 유희를 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권사들은 일반여전도회에 소속되지도 않습니다. 왜 그래야만 할까요?
무엇을 위한 권사고 무엇을 위한 안수집사일까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입고 천국소망을 갖게된 우리는 끼리끼리 모이는 못된 소행을 저지르면 안될것 같은데 총공회는 어떠합니까?
장로를 포함한 당회는 대의행정기관으로 어쩔 수 업는 의사결정기구라 하더라도, 다른 권사회,안수집사회가 왜 필요할까요?
그들은 하위직 성도들과 지위가 다르고 노는 물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교회에도 하위직, 중위직, 고위직이이라는 용어가 있는것이 맞습니까?
권사, 장로, 안수집사를 계급으로 알고 상전으로 대해야 하는지요?
물론 총공회소속 교회나 성도분들이야 돌들로 떡을 만들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이라 교회제도에 무엇을 둔들 문제가 돼겠습니까, 그래서 총공회가 부러운 곳이지요. 그래서 총공회인이란 말은 참으로 귀하고 어려운 말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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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늘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일반교회 신자로서 늘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면이 있는데 권사/장로로 피택되신 분들이 피택에 감사해서 교회에 대형버스를 새로 사서 헌납하기도 하고 뭔가 물질적인 면을 봉헌하는것을 여러교회에서 듣기도하고 알기도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가 수고가 많다고 하여 성도들이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고위직(?)인 권사나 장로로 피택해 줄리도 없지마는 간혹 피택된다해도 피택선물 때문에 빚을 내는 경우도 봅니다.
왜 피택헌금을 할 까요?
교회는 고위직,중위직,하위직이 아니고 그래서 교회는 직분이라는 용어를 쓰는것 같은데 교회직분이 계급이 되고 또 실제로 하나의 계급사회가 된것 같기도 합니다.
일반교회는 권사들은 권사회를 만들어서 권사들 끼리 놀고, 안수집사는 안수집사회를 만들어서 주말마다 이집 저집 돌아가며 먹고 마시는 유희를 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권사들은 일반여전도회에 소속되지도 않습니다. 왜 그래야만 할까요?
무엇을 위한 권사고 무엇을 위한 안수집사일까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입고 천국소망을 갖게된 우리는 끼리끼리 모이는 못된 소행을 저지르면 안될것 같은데 총공회는 어떠합니까?
장로를 포함한 당회는 대의행정기관으로 어쩔 수 업는 의사결정기구라 하더라도, 다른 권사회,안수집사회가 왜 필요할까요?
그들은 하위직 성도들과 지위가 다르고 노는 물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교회에도 하위직, 중위직, 고위직이이라는 용어가 있는것이 맞습니까?
권사, 장로, 안수집사를 계급으로 알고 상전으로 대해야 하는지요?
물론 총공회소속 교회나 성도분들이야 돌들로 떡을 만들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이라 교회제도에 무엇을 둔들 문제가 돼겠습니까, 그래서 총공회가 부러운 곳이지요. 그래서 총공회인이란 말은 참으로 귀하고 어려운 말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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