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에 있어서 '영'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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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구원에 있어서 '영'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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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생'의 성격


중생의 본질은 '영생'이 아니고 '생명'입니다.

범죄 전 하나님과 한번 연결되었던 적이 있었으니 그때 생명이 첫 생명이었고

범죄 후 대속으로 다시 연결되어 생명을 다시 가지게 되었으니 둘째 생명입니다.

둘째 생명, 다시 얻은 생명이라는 뜻이 '중'이라는 뜻이며 '생'은 생명입니다.


중생으로 다시 가진 생명이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이 믿은 이후 가지고 있는 참 생명인데

이 중생의 생명이 믿은 이후에 얼마나 또 어떻게 말씀대로 살았느냐에 따라

각자가 가진 생명의 실력과 활동과 다를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삶의 모습이니

중생 후 생명이 평생을 활동한 결과 그대로가 천국의 '영원한 삶'이므로

이를 영생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질문자 이해는 정확합니다.


2.중생만으로는 '미결'이며, 자라가는 것이 완성되어야 '완결'인가?


지옥 갈 우리가 천국 가게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표현한다면

우리는 중생을 가진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완전 구원, 영원 구원을 갖게 됩니다.

처음 믿을 때 중생을 가지게 되면 그 이후 우리 몸과 마음이 어떻게 살든지 상관이 없으나


천국 간 성도들의 영원한 모습을 또 다른 차원의 '구원'이라고 표현한다면

중생 후 죽을 때까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천국의 실력과 영광이 다를 것이니

중생은 '시작'일 뿐이요, 마지막 죽는 순간이 중생의 '땅 위에서 임무 완료'일 것입니다.


3.따라서 영의 영광 실력 기쁨은


모든 성도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움직일 때는 발이 가장 수고할 것이고 대화를 할 때는 귀와 입이 그러할 것입니다.

평생 믿을 때 어떻게 믿었느냐에 따라 하늘나라 영원한 영생의 모습과 활동은 다르며

그 다름에 따라 다른 기쁨 다른 영광 다른 실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분류할 때는 그 어떤 경우라 해도

믿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꼭 같이 받아가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기본구원이라 하고

다른 것이 있으니 그것은 각자 신앙건설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건설구원이라고 합니다.


4.영의 자람과 육의 구원은 비례하는가?


정확하게 일치하게 됩니다.

오늘 세상에서는 영이 앞서가고 마음이 뒤따라가며, 마음이 앞서가고 몸이 뒤따라가면서

여러 모순과 불편과 고장이 있습니다만

이는 우리 심신 속에 있는 옛사람의 활동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다음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는 자기 심신 속의 모든 옛사람 요소가 제거되므로

그때는 영이 세상에서 마음과 몸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그 상태 그 실력 차원에서

완벽하게 하나되어 살 것입니다.


영과 육의 성장에 있어

영은 먼저 끌어 당기는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심신은 따라가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잘 끌어당겨서 잘 데리고 길러가는 것은 영의 실력이며 성장이고

잘 끌려서 따라가는 과정은 육이 영에게 피동되면서 육이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최종의 책임은 영은 심신의 일체 문제를 책임지게 되고 마음은 몸을 책임지게 되지만

영이 인도할 때 마음은 스스로 배반하고 이탈 할 수 있으므로 마음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 중에 가장 실력이 있고 최고 권력을 가진 상태지만

대통령이 국민을 잘 데리고 이끌어가게 되면 대통령 자신도 이전보다 실력이 늘게 되고

백성은 따라가면 되지만 얼마나 자원하므로 잘 순종했느냐에 따라 백성 실력이 됩니다.


영이 실력이 탁월하다 해도 자기 육을 50점 만큼 길렀으면 그것이 영과 육의 실력이고

영이 70점 실력인데 육을 60점으로 길렀으면 그 영과 육은 60점 실력으로 영생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계산해 볼 수 있지만

실은 최종 60점으로 길렀다면 그것이 원래 영의 실력인데 70점으로 보인 것은

우리가 어두워 우리 기준으로 그렇게 봤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 목회자의 실력으로 비교해 본다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90점 실력 목회자가 50점 교회를 만들었으면 그 목회자와 교인은 함께 50점입니다.

70점 목회자가 60점 교회를 만들었다면 다 함께 60점입니다.

그런데 처음 90점으로 본 것은 우리가 일반 세상 기준으로 잘못 본 것입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열매는 그 나무를 최종 판정짓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계산법을 알아야 실수하지 않을 듯 합니다.

90점 목회자가 10점 교인을 데리고 50점 교회를 만들었다면 최종 점수는 50점이지만

50점 목회자가 50점 교인을 데리고 50점 교회를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10점을 50점 만들기까지 과정을 따로 평가하실 것입니다.


건설구원 교리가

이론적으로만 기독교 교리사를 시대적으로 획을 그을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이 매순간 자기 생활 속에서 평생 긴장하며 정말 죽도록 충성할 수 있고 충성하게끔 만들며 충성하려 할 때 더없이 좋고 자세한 정밀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5.영은 그 자체가 단일체로서 완전인지?


영은 단일체는 맞지만

완전 여부로 질문을 하게 되면

지옥을 가지 않고 천국을 가게 되었으며

이 면으로는 절대 흔들림이 없다는 기준에서 표현한다면 '완전'이 맞습니다.

완전 구원으로 완전 구원해 놓은 완전 무결 무흠의 영입니다.


그러나 영이 하나님을 목표로 자라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 영 자체가 완전인가 라고 살펴보게 된다면 하나님 외에는 그런 존재가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인성조차도 눅2:40에서 '자라며'라고 했습니다.


발전적이며 향상적인 면으로 본다면

그리고 그 기준이 하나님이므로

영은 이런 면에서는 완전일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한데 점점 자라갑니다.

따라서 영도 성화구원으로 자라가며

심신의 경우는 자체 속에 옛사람 요소를 빼고 새사람 요소로 자가가는 성화구원이지만

영은 그 속에 옛사람 요소가 없으므로 그냥 자라가는 면만 있습니다.


6.마4장의 예수님 시험은


그 시험으로 완전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악령은 예수님을 죄짓게 만드려고 노력했습니다.

십자가 마지막 죽음으로 악령의 시험은 끝이 났습니다.

이 문제는 예수님의 대속에서 따로 살펴 볼 내용이며 조직신학 등을 참고해 주셨으면


간단히 우선 요약하면


우리를 대신하셨으므로

하나님 법을 어긴 죄인 대신 예수님은 십자가 최종까지 하나님 모든 명령을 순종했고

악령이 우리 죄인의 왕이었으므로 우리 대신 악령에게 십자가 최종까지 다 당했습니다.
영의 자람과 육의 구원외 1
1.영의 자람과 육의 구원에서

영이 단번 중생후 자란다는 것은 중생은 생명이지 영생은 아니라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또한 중생만으로는 미결이요 자라는 것의 완성으로 영의 구원이 완결이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영의 자람이 다 제각각으로 다를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데요

그럼 영의 구원의 영광,실력,기쁨등의 차이가 있다는 말씀인지요

이것이 기본구원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중생된 영이 자라는 것을 영이 심신을 잘 다스려서 심신이 중생된 영을 통하여 피와 성령과 진리와 연결되어 살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영의 자람과 육의 구원(심신의 기능구원)은 비례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영의 자람은 심신의 편에서 볼때에 심신이 피 성령 진리에 잘 복종해 사는 것을 보고 영이 자란 것으로 볼 뿐이지 실은 영은 그 자체가 단일체로서 완전인지...


아니면 영에도 성화구원의 면이 있는지...


2.예수님 광야40일 금식후 시험의 의미

예수님의 인성은 죄없는 인성이요 인성의 영마음몸 전부 죄없으므로 죄지을 수 있는 인성이요 지정의가 있는 인격체이지만 신인양성일위이므로 단번 3가지(물질 권력 부영)시험을 성령과 말씀의 기도로 통과하신 것으로 이제는 마귀의 시험은 없고 단번에 첫째아담이 시험에서 져서 빼앗긴 실패를 주님의 도전으로 승리하여 챔피온이 되셔서 다시 싸우지 않는(사견:내부적 이유으로는 신인양성일위이며 단일, 불변이시므로 동일한 실력자의 대결은 동일한 결과만 나올 뿐이며 내부적 이유으로는 계약이행의 재이행이 필요없으므로)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그 이후에도

1)주님께서 베드로가 주님을 구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 후 주님의 십자가 대속의 역사를 부인할 때에 주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시므로 그 때에도 넘어질 수 있슴을 말씀하시고

2)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같은 땀방울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것도 마귀와의 미결의 전투가 남아 있어서 이때에 주님은 대속을 실패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천상 참사람의 약한 모습에서 인지(그렇다면 주님의 인성은 대속을 단번시험통과로 해결할 수 없고 성도의 성화구원처럼 현실을 통과하면서 점점 그 온전(완전대속)이 이루어 지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만족하시기까지의 완전순종만을 목표로 인성면에서의 조심하심인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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