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예수여' > '예수님'으로 바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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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20:13
174호, 1989.1.25. 수요일 밤 설교 때 백영희 목사님은 '예수여!'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맞다고 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찬송가 29장 후렴에 '예수여, 예수여'를 왜 바꾸지 않았는지 아쉽습니다. 급하게 출간하느라고 그랬다는 말도 있습니다. 앞으로 공회 찬송가를 새로 인쇄할 때 이런 것은 수정할 수 없을지요?
설교록을 보면 미국의 자녀들 때문에 '백영희'를 '백영희 목사'로 했다가 연구소 직원들의 반대 의견에 따라 다시 '역사적 이름'이므로 '백영희'로 돌려 놓았다고 구 게시판에서 읽었습니다. 루터 칼빈 바울은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자녀분 중에는 심지어 '백영희'라고 적은 것을 두고 비하했다고 시비를 했다는데 역사적 표현을 몰라서 나온 실수로 생각합니다.
공회 찬송 19장에도 '자비하신 예수여'를 '자비하신 예수님'으로 바꾸면 자연스러울 듯합니다. 그냥 '예수 공로 입어서 감당하게 합소서'와 같은 설명문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최소한 '예수여!'처럼 부를 때만은 '님'을 붙여 보시면 어떨지요?
1989.1.25. 수요일 밤의 끝에 발표한 내용입니다.
또 하나 광고합니다. 이민봉씨라는 분이 신고함에 써넣었는데
하나는 예배 인도하는 분들과 기도 인도를 하는 분들이 기도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이 존칭어를 쓰지 않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러니까 아주 그 학생들에게나 또 뭐 어린 신앙에 아주 거북스럽다고. 뭐 님자를 안 붙여도 되지만 제가 전에도 한번 말하기를 님자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님자 안 붙이는 것은 어디서 요 말이 온 거냐 하면 영어니 그런 말에는 님자 붙이는 그런 것이 표가 안 나도 그래도 거게도 다 존칭어가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이래야 좋은데, 저도 그 전에 고신교파에 유력한 목사님이 '예수여 예수여' 이렇게 하면서 그 분이 기도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속으로 언짢은 생각이 나서 그때 저도 좀 거게 대해서 조금 반동되는 생각이 나는 것을 기억합니다...
'반사 선생님' 대학 교수 선생님보다도 더 위대한 선생님입니다. 하나님의 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그래서 반사 선생님. 보조반사들도 보조반사니까 반사 선생님 이렇게 존칭어를 붙이는 것이 옳습니다.
공연히 서양 문화가 와 가지고 영어에 그런 것이 없으니까 거게 따라서, 우리 나라 말은 우리 나라 말이고 그 나라 말은 그 나라 말이지 그 나라 말을 우리 말에다 갖다 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도 그거 조금 넘치고 조금 교만하고 조금 건방된 짓입니다.
설교록을 보면 미국의 자녀들 때문에 '백영희'를 '백영희 목사'로 했다가 연구소 직원들의 반대 의견에 따라 다시 '역사적 이름'이므로 '백영희'로 돌려 놓았다고 구 게시판에서 읽었습니다. 루터 칼빈 바울은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자녀분 중에는 심지어 '백영희'라고 적은 것을 두고 비하했다고 시비를 했다는데 역사적 표현을 몰라서 나온 실수로 생각합니다.
공회 찬송 19장에도 '자비하신 예수여'를 '자비하신 예수님'으로 바꾸면 자연스러울 듯합니다. 그냥 '예수 공로 입어서 감당하게 합소서'와 같은 설명문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최소한 '예수여!'처럼 부를 때만은 '님'을 붙여 보시면 어떨지요?
1989.1.25. 수요일 밤의 끝에 발표한 내용입니다.
또 하나 광고합니다. 이민봉씨라는 분이 신고함에 써넣었는데
하나는 예배 인도하는 분들과 기도 인도를 하는 분들이 기도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이 존칭어를 쓰지 않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러니까 아주 그 학생들에게나 또 뭐 어린 신앙에 아주 거북스럽다고. 뭐 님자를 안 붙여도 되지만 제가 전에도 한번 말하기를 님자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님자 안 붙이는 것은 어디서 요 말이 온 거냐 하면 영어니 그런 말에는 님자 붙이는 그런 것이 표가 안 나도 그래도 거게도 다 존칭어가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이래야 좋은데, 저도 그 전에 고신교파에 유력한 목사님이 '예수여 예수여' 이렇게 하면서 그 분이 기도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속으로 언짢은 생각이 나서 그때 저도 좀 거게 대해서 조금 반동되는 생각이 나는 것을 기억합니다...
'반사 선생님' 대학 교수 선생님보다도 더 위대한 선생님입니다. 하나님의 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그래서 반사 선생님. 보조반사들도 보조반사니까 반사 선생님 이렇게 존칭어를 붙이는 것이 옳습니다.
공연히 서양 문화가 와 가지고 영어에 그런 것이 없으니까 거게 따라서, 우리 나라 말은 우리 나라 말이고 그 나라 말은 그 나라 말이지 그 나라 말을 우리 말에다 갖다 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도 그거 조금 넘치고 조금 교만하고 조금 건방된 짓입니다.
통일찬송가는 '예수여' 그대로이고, 2000년 이후에 다시 나온 찬송가에 '예수님'
그럼...주여 주여 할때는 주님 주님으로 바꿔야할까요?
그리고 성경에도 예수여로 번역된 곳이 많은데 잘못된 번역일까요?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행7:59)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그리고 성경에도 예수여로 번역된 곳이 많은데 잘못된 번역일까요?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행7:59)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1. 찬송가 '예수여'는 그 속에 담긴 뜻은 존귀한 주님에게 감사의 표시지만 그 표현의 형식은 존칭이 아닙니다.
2. 설교록의 본문과 그 상황을 본다면 백목사님이 강조하신 '예수님'으로 정정하여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이유는
- 이런 단어 하나로 지극히 조심하며 두려움으로 상대해야할 주님에 대해서 경외감을 감소시킬 수 있는 면이 있고
- 더더구나 어린 신앙에 있어서는 이런 이름만 호칭이 되어진다면 저변에 경외함을 가지지 못하여 신앙의 손해와 더불어 삐뚤어질 수 있어서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함부로이 사용되어져서 그 의미가 변하지 않도록 반드시 '--님'으로 정정이 되어져야 하겠습니다.
3. 이와같이 오늘날 세상 매스컴에서 '목사'로만 지칭되는 각종 뉴스를 보면서 그 자체 기독교 성직은 하나님이 세운 권위가 있으니 일반 호칭에서부터 '목사님' '집사님' 이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이런 면에서 본다면 어리다 하더라도 그 직책에 존칭을 붙인다면 주님을 높이는 결과가 되어질 것입니다.
2. 설교록의 본문과 그 상황을 본다면 백목사님이 강조하신 '예수님'으로 정정하여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이유는
- 이런 단어 하나로 지극히 조심하며 두려움으로 상대해야할 주님에 대해서 경외감을 감소시킬 수 있는 면이 있고
- 더더구나 어린 신앙에 있어서는 이런 이름만 호칭이 되어진다면 저변에 경외함을 가지지 못하여 신앙의 손해와 더불어 삐뚤어질 수 있어서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함부로이 사용되어져서 그 의미가 변하지 않도록 반드시 '--님'으로 정정이 되어져야 하겠습니다.
3. 이와같이 오늘날 세상 매스컴에서 '목사'로만 지칭되는 각종 뉴스를 보면서 그 자체 기독교 성직은 하나님이 세운 권위가 있으니 일반 호칭에서부터 '목사님' '집사님' 이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이런 면에서 본다면 어리다 하더라도 그 직책에 존칭을 붙인다면 주님을 높이는 결과가 되어질 것입니다.
눅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강도가 주님을 예수여 라고 불렀습니다 죄인인 강도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죄송하고 황송하오나 이 죄인을 건져 달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 절박한 면을 강조하다 보니 예수여, 구원자여, 메시야여, 이 죄인을 구원하소서 이 죄인을 받으소서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보다 예수여 가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존칭 보다는 구원해 달라는 그 면이 더 강조된 것 같습니다 예수여 부르는 것이 주여! 간절, 갈급으로 주님을 부르는 것이니 예수님 안했다고 버릇이 없이 막 불렀다기 보다는 주여 예수여 구원자여 복음서에도 보면 소경들이 눈 뜨기 원하여 주님을 예수여 라고 불렀습니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주여 주여 예수여...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강도가 주님을 예수여 라고 불렀습니다 죄인인 강도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죄송하고 황송하오나 이 죄인을 건져 달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 절박한 면을 강조하다 보니 예수여, 구원자여, 메시야여, 이 죄인을 구원하소서 이 죄인을 받으소서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보다 예수여 가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존칭 보다는 구원해 달라는 그 면이 더 강조된 것 같습니다 예수여 부르는 것이 주여! 간절, 갈급으로 주님을 부르는 것이니 예수님 안했다고 버릇이 없이 막 불렀다기 보다는 주여 예수여 구원자여 복음서에도 보면 소경들이 눈 뜨기 원하여 주님을 예수여 라고 불렀습니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주여 주여 예수여...
국어사전은 '-여'에 대해
"정중하게 부르는 뜻을 나타내는 격 조사. 흔히 감탄이나 호소의 뜻이 포함된다."
고 설명합니다.
'-여'는 단순히 부르는 말을 넘어 감탄, 호소의 의미까지 들어있는데, '-님'은 부르는 말의 의미밖에 없어서 말맛이 다릅니다.
예수여를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님'은 같은 지위의 동료 사이에서도 가볍게 높여 부르기 위해 많이 쓰이는 말이나,
'-여'는 동료의 이름뒤에는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여'에는 모종의 경외감을 담아 쓰기 때문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들고 있는 다음 예문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겨레여, 잠에서 깨어나라.그대여 내 마음을 알아주오.주여, 잘못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렇게 본다면 예수여가 낮추어 부르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간절함과 경외심을 담아 부르는 말이므로
예수님보다는 예수여가 더 어울리는 말자리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중하게 부르는 뜻을 나타내는 격 조사. 흔히 감탄이나 호소의 뜻이 포함된다."
고 설명합니다.
'-여'는 단순히 부르는 말을 넘어 감탄, 호소의 의미까지 들어있는데, '-님'은 부르는 말의 의미밖에 없어서 말맛이 다릅니다.
예수여를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님'은 같은 지위의 동료 사이에서도 가볍게 높여 부르기 위해 많이 쓰이는 말이나,
'-여'는 동료의 이름뒤에는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여'에는 모종의 경외감을 담아 쓰기 때문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들고 있는 다음 예문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겨레여, 잠에서 깨어나라.그대여 내 마음을 알아주오.주여, 잘못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렇게 본다면 예수여가 낮추어 부르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간절함과 경외심을 담아 부르는 말이므로
예수님보다는 예수여가 더 어울리는 말자리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