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 인용과 해석이 너무 성급하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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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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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5 00:00
1.일원론에 대한 지적에 앞서 부탁하고 싶은 자세
질문자께서
주로 제기하시는 문제들에 대하여
혹시 과거부터 오래 동안 살펴보셨는지요?
아니면 이 홈 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하여 바로 토론에 들어가고 계시는지요?
적어도
질문자께서 지적하시는 부분에 대하여
이 노선은 40년 이상을 많은 면으로 살피며 조심스럽게 정리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증인이
150년 살핀다고 해도 근본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세월이 약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노선은
여호와증인들처럼 또는 다른 자유주의신학들처럼
역사의 정통신학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더 보완 발전할 방향으로 나간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근본 방향이 같은 선에 있습니다.
이미 첫 글 몇 번 오가는 내용을 통해
중요한 핵심 논점들이 다 나왔습니다. 추가로 더 고려할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제기 된 문제를 가지고 충분히 생각할 여유를 가져 주시도록 부탁합니다.
발언을 덮거나 귀찮아서 회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홈 문답 게시판에서 볼 수 있듯이 대화할 내용은 끝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너무 반복적인 글에 대하여서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답변자가 잘 모르겠지만
답변자가 주변에서 많은 분들과 이런 문제로 대화하며 거의 모든 경우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직문직답으로 바로 해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그 자세를 고통스럽게 봅니다.
누르면 바로 해답이 도출될 수 있는 것도 신앙세계에서는 수없이 많지만
혹 해답을 받고도 그것이 내 것으로 확정되는 과정에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1700년 이상을 확정하고 내려온 교리이므로 그 토씨 하나를 더하고 뺄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이 교리가 나오면 벌떼처럼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이 교리는 그렇게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처음 브리핑을 받은 학생들로서 당연히 질문을 쏟아내야 하겠지만
질문할 만하고 또 중요 논점으로 짚어야 할 부분은 단시간에 그렇게 한 다음에
역사 1700년에 걸쳐 내려오고 다듬어진 교리라면 잠깐 오가는 문답시간을 갖고 난 다음에
오랜 시간 기도하고 성경을 찾아보고 묵상하고 되새겨 보는 반복과 세월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오해는 마셨으면
이 홈은
여호와증인이나 최근 새로 나온 이단에 이르기까지
어떤 토론도 피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방법론으로 가능한 요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홈은
몇 마디 하다가 불리할 때 홈을 덮을 그런 성향이 아니며
이 홈의 자료는 OFF LINE 에서 지난 모든 자료를 볼 수 있도록 무제한 공개되었습니다.
또 이 홈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백영희 설교자료도 한국교회에 수없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거듭 부탁드리는 것은
아무래도 질문자께서는 흔하고 흔한 우리 주변의 '정통신학 논리'라는 책의 주장을
질문자 자신이 목숨을 걸 수 있는 자신의 교리로 확정할 과정이 없었다고 읽힙니다.
답변자가 접해본 고신과 총신의 많은 신학자들 경우에도
이런 문제를 남의 논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교리로 진정 삼았다고 느낀 경우가
불과 몇 손가락 꼽을 정도입니다.
질문자께 답변자의 짐작이 성급했으면 용서하시고
차분하게 되돌아 보셔서 본인이 진심으로 그런 과정을 거쳤다면 얼마든지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지적하신 내용들은 이 홈의 설립 주요 이유 중 하나라 할 정도의 사안에 관련 되므로
이 홈은 그런 문제를 두고 진심으로 그리고 실제로 지적해 주실 분이 계신다면
따라 다니며 여쭙고 싶은 곳입니다.
3.윗글에서 새로 지적하신 몇 가지에 대하여
①지적1: '성경 기록의 도덕법을 하나님께서 어기고도 인생을 공의로 심판할 수 있는가'
살인하지 말라 하신 출20장의 제6계명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대표적인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인하라 명령하신 횟수와 직접 살인하신 숫자를 헤아려 보셨습니까?
이런 문제를 질문자께서 심각하게 그리고 미리 많은 세월 살펴보셨다면 좋겠는데
답변자가 이렇게 질문한 이 답변을 읽고 순간적으로 어떻게 방어를 할까 하는 생각에서
다시 글을 적는 식이면, 앞에서 거듭거듭 부탁드리는 답변자 요청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령한 법을 어겨놓고 나는 법 위에 있어 괜찮다는 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행하신 것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게 그 법에 상치되지 않는 행위이며
이렇게 성경 전체를 살핀 다음에 '죄'와 '불의'의 정의를 찾고 그 다음 해석을 해야 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을 학교에서 배우거나 세상에서 알았던 선입견을 가지고 단정한 다음
하나님은 이렇다 저렇다고 규정을 지우는 것 때문에
오늘 교회의 사랑과 세상이 말하는 사랑부터 혼동이 되어
기독교의 사랑은 지옥갈 인생을 천국가게 하는 구원의 사랑에서 변질되어
세상 사랑과 교회의 사랑이 뒤섞여 구별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같은 원리로 죄와 불의의 단어도 다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에게 진리의 법이 되게 하는 동시에
그 진리의 법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우리 행동을 봐가며 사후 적당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비추어 나오면서 말씀의 형태로 나타나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본성 본질은 배치가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행위로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전부가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성구를 따로 적지 않아도 어느 성경을 근거로 단정하는지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죄와 불의는 이렇게 정의가 되고 그 범위가 좁혀져 나가서 도출되어야 합니다.
②죄의 정의와 기준을 두고 예를 든 자연계의 관계
풀을 뜯어먹으면 풀에게는 학살이지만 소에게는 평화로운 식사 시간이며
풀과 소를 잡아먹어도 인간에게는 주신 복된 즐거움일 뿐입니다.
이 예는 자연계의 예인데, 자연의 이치 중에서 원래 하나님께서 내어주시고 보여주신 것은
우리에게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성경에 글자로 기록해 주신 것은 몇 자 되지 않지만
그 말씀을 판단 근거로 삼아 우리에게 주신 자연과 인간의 심리를 살펴보면
우리 현실 우리가 살고 있는 평생의 모든 접촉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하나님의 뜻이니
이런 것은 일반 신학에서도 상식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질문자께서는 엉뚱한 예라 하시면, 그 지적의 적절성을 두고는 더 설명하지 않겠으나
그것이 엉뚱한 비유인지
이번 문답을 가장 빠르고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자연계의 비유인지
시간을 두고 살펴보시기를 요청합니다.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실 때
성경 기록에 앞서 자연계를 창조하고 운영하신 다음 우리가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만사를 성경에 폭넓게 인용하셨음도 고려해 보셨으면 합니다.
성경의 법은
하나님의 내재적 속성과 본질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이 면으로 살펴도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전부 하나님 범위 안에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법의 형식적 외부적 범법한 행위가 있다고 목격된다 해도
그 법은 인간 우리를 길러가기 위해 주신 법이라는 사실 한 가지 원칙만 가지고 이해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신학교 교과서의
알미니우스나 펠라기우스 또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일관된 주장을 통해
우리는 내 주관과 내 취향과 내 희망 사항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작하려 하면 안 되는
위험성을 늘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이 선하매
하나님께서 지옥갈 사람을 우리 이용물로 만들고 그다음 지옥에 보내는 예정이 발견된다면
바로 이 대목에서 '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구나!' 우리는 이렇게 알면 되는 것이고
바로 이 대목에서 '아! 하나님께서 지옥갈 사람을 미리 예정해도 선이 되는구나!'
이렇게 깨달아서 '선'에 대하여 그동안 내가 가진 기준과 의미가
20세기 21세기 우리 사회와 오늘 불신 세상이 생각하는 인권사상과 배치가 된다 해도
우리는 성경이 적어주고 알려준 그대로만 인식하면 될 일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단어 의미를 규정짓고 나가는 것을 '성경적 해석'이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지옥갈 불택자를 예정했다는 말이 발견되는 순간 알미니우스처럼
설마 하나님께서 그런 나쁜 일을 했겠냐고 자기 생각으로 성경을 다시 해석하여
감리교식 온갖 복잡한 예정론을 내게 되면 그 끝이 오늘 해방신학 민중신학에까지 이르고
결국 참 교회다운 교회가 멸종을 했다 할 상황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이 홈의 설명은
칼빈주의적 전통 교리를 반대하는 주장으로 접근하지 마시고
칼빈주의적 전통 교리가 좀더 깊이를 더하여 과거에 미진했던 부분에 대한 보충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③거듭 '조성희사건'을 언급하셨는데
공산주의자의 무신론 사상 하나와 그 사상 관철을 위한 무력투쟁론 사상의 결합은
그 사상이 처음 제시될 때는 그 어느 누구 하나라도 죽이지 않았지만
그 사상은 향후 70년간 세계적으로 1억 이상의 사람을 죽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군중심리에 쏠리는 이들은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다는 사건 중심으로 접근하지만
원인 분석에 철저한 사람들은 그렇게 학살을 하도록 만든 최후 원인의 시작을 주목합니다.
조승희씨에게 죽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죽은 것이
그렇게 천인공로할 사건이라면
한국에는 그보다 수십 배 더 많은 사람이 죽은 광주사태가 있고
한국에는 그보다 수십만 배 더 많은 사람이 죽은 6.25 전쟁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던 배경은
한 사람의 잘못 판단한 생각이나 사상이나 욕심이나 순간적 감정 하나로 시작되었으니
교리를 연구할 때는 누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느냐는 것을 살피지 않고 그 출처가 무엇이냐
이것을 살피는 것이니다.
그 가장 제일 중심에
그 가장 최고 책임자 자리에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이원론이 되고
이원론이 된다는 말은 또 하나의 자존자가 도출 되어야 하는데
만일 이렇게 된다면 여호와증인이 삼위일체의 예수님 신성 부인 한 글자로 이단 되었듯이
이원론이란 그보다 더 앞선 신론의 이단이 될 사안입니다만
서로가 정통 교리에 확고하게 서있고 다만 설명하는 과정의 차이이므로
상대를 그렇게 단정하거나 짐작하는 일은 없습니다.
참고로
1989년 현재 목회지에 부임했을 때 당시 야당에서 인권탄압 전국 100만명 서명 받고 할 때
1개 시도의 1600여 개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서명 받는 책임자가 교회를 방문하여
전부 다 서명을 받고 총공회 소속 교회 3개만 서명을 받지 못했다며 항의한 적이 있었으며
당시 그 분은 '이 나라 독재정권이 무고한 학생을 고문해서 죽이는데 이 불의한 일을 두고 교회가 왜 서명하지 않느냐!'는 압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답변자는
'야당이든 여당이든, 독재자든 민주투사든, 세상 일은 약육강식이고 양쪽이 다 도둑이고
모두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해서 상대방을 삼키는 전법상 하나는 몽둥이를 들고 한쪽은 자연주의 철학을 무기로 들고 싸우는데 거기에 무슨 하나님 앞에 불의가 있고 의가 있고 죄가 있고 정의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1600여 개 교회 안에는 질문자께서 앞에 언급하신 고신교파도 있고 합동도 있고 개혁교단도 있습니다. 또 그런 신학교에서 또는 신학교수들은 한쪽에서는 독재정권을 지지했고 한쪽에서는 민주화운동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그런 세상 일에는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이든 살리든 그것은 없어질 세상 안에서 죄인들의 소망 없는 일 중에 하나로 볼 뿐입니다.
조승희씨가 10여 명 사람을 죽인 것이나
아프간에서 23명 교민을 죽이려 한 것이나
절에서 불쌍한 사람 밥 먹인다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나
하나님 떠난 사람의 말씀 떠난 행동이란 그 어떤 형태로 나타나도 동일합니다.
수년 전 여호와증인 한 사람이 이 홈에서 토론을 하자면 줄기차게 물고 늘어진 것은
아프리카에서 기독교인들이 반대파 종교인 부족을 대량학살 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세상 뉴스는 될지라도
교회에서는 그 나라의 기독교인들이 세상 땅 따먹기를 위해 죽이고 전쟁한 것은
세상 일로 보지 교회 신앙 문제와는 아예 구분하고 있습니다.
김영삼장로님이 대통령으로 한 일이 잘못 되었으면 교회나 성경이 잘못 된 것이 아니고
그가 대한민국 사람으로 잘못 한 것이며 그 정당과 그 사람 개인이 그렇게 한 것이니
교회를 욕할 일이 아니고 김씨를 욕하고 한국민을 욕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제로 따진다면
그분이 대통령 선거 하면서 주일에 유세 다닌 행동, 바로 그것이 4계명의 죄가 되는 것이고
교회가 그를 두고 문제를 삼는다면 바로 이런 면입니다.
④바로의 경우
혹시 이전에도
이 성구를 이런 주제의 토론에서 미리 연구하고 살피신 것을 말씀 하셨다면
성경 전체의 다른 성구를 다시 찾아가며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 해석의 임기응변이 전체 해석을 어떻게 모순으로 만든다는 것을 안내하고 싶으나
우선
질문자께서 살핀 내용대로 6번째부터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한 것이 맞다고 해도
하나님은 바로의 강퍅에 대한 책임이 질문자 논리에 의하여 눈꼽만큼도 없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상대방이 너무 강퍅하면 하나님께서 이왕 죄인이니까
그런 죄인에게는 한 가지 죄를 짓도록 만드는 죄의 조성자 역할을 하느냐는 문제가 생기니
질문자께서 답변자가 할 설명을 명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불택자들은 이미 아담의 범죄로 모두가 하나님과 대적하는 죄인의 상태로 들어간 것이기에 죄의 원인을 아담의 타락 내지는 아담을 타락시킨 사탄에게 돌려야 합니다.'라고 하신 바로 그 논리를 가지고
그 사탄이 타락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 하나님의 제작자 책임은 없을지요?
불신자들도 사용자의 사용자 책임과 함께 기계 제작자에게는 제작자 책임을 물리는데.
⑤대안으로 말씀하신 바 '사탄의 계략을 허용하신 허용의 작정'이 더 성경적인가?
사탄의 계략을 허용하신 책임만 하나님께서 지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의하지 않으실까!
출21:33에서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덮지 아니하여 소나 나귀가 빠지면
주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4.이 홈에 올려진 글은
답변 없이 그냥 두는 경우
많은 분들이 자료 검색을 통해 이 곳 자료를 참고할 때
반론 없는 한쪽 생각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때로는 적지 않을 글을 적는 때가 많습니다.
질문자의
이번 지적은 질문자께서 새겨보고 살펴보는 과정이 거의 없다고 느껴지며
이런 경우 답변자가 글을 적는 것은
마치 교리 문제를 두고 컴퓨터 게임하는 학생들과 같다는 피해 의식을 갖게 됩니다.
요즘은 도서가 많고 컴퓨터 검색 기능이 워낙 좋아서 아무나 검색을 통해
어떤 논쟁이라도 전문가 차원의 글들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 시키기 위해서 무작정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 교리 한 깨달음이 나와 나의 신앙 앞날에 어떤 길로 연관이 될 것인지를 두고
실제 신앙으로 걸어 갈 고민과 과제를 전제로 두고 살펴보는 사람들입니다.
나와 별 상관이 없거나 안다 해도 내가 그렇게 지키고 살아가지 않을 교리인데
내가 그럴 듯 하다고 느껴지는 이 쪽 논리를 가지고 반대편 주장에 옮겨 따져보는
이런 방향이라면 이 홈이 가장 피하고 싶은 무익한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깊이 그리고 많이 사고해 보신 다음에 말씀하셔야 할 내용이라 느껴지는 대목이 많은데
몇 시간 만에 또는 하루 만에 대답이 나오는 것을 보며
과연 이런 문제를 과거에 많이 생각을 해보셨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지적을 하시는가?
특히 바로의 성구나 '불의'에 관련 된 성구를 과연 성경 앞뒤와 전체 면을 비교해 본 다음
말씀하셨을까?
상대방의 논리에 이런 성구를 들이대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성구는 한도 없이 많은데
그렇게 성구를 갖다 댄 다음에 그 성구 해석이 성경 전체와 다른 면으로 이어질 때까지를
철저하게 공부해 보시고 나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이런 면에 대하여
질문자를 상대로 현재 답변자가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질문자를 제외 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신학자 목회자 신학생들과 대화를 해봤으나
성구 해석을 인용하면서 그 한 해석의 뒤를 폭넓게 생각하고 두렵게 성구를 대하는 경우를
만나 본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노선은 한 교리 한 깨달음을 발표할 때
정말 오래 동안 그리고 정말 많은 면으로 연구한 다음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꼭 필요한 토론이지만 토론하는 과정과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답변자의 우려를 깊이
참고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질문자께서
주로 제기하시는 문제들에 대하여
혹시 과거부터 오래 동안 살펴보셨는지요?
아니면 이 홈 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하여 바로 토론에 들어가고 계시는지요?
적어도
질문자께서 지적하시는 부분에 대하여
이 노선은 40년 이상을 많은 면으로 살피며 조심스럽게 정리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증인이
150년 살핀다고 해도 근본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세월이 약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노선은
여호와증인들처럼 또는 다른 자유주의신학들처럼
역사의 정통신학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더 보완 발전할 방향으로 나간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근본 방향이 같은 선에 있습니다.
이미 첫 글 몇 번 오가는 내용을 통해
중요한 핵심 논점들이 다 나왔습니다. 추가로 더 고려할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제기 된 문제를 가지고 충분히 생각할 여유를 가져 주시도록 부탁합니다.
발언을 덮거나 귀찮아서 회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홈 문답 게시판에서 볼 수 있듯이 대화할 내용은 끝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너무 반복적인 글에 대하여서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답변자가 잘 모르겠지만
답변자가 주변에서 많은 분들과 이런 문제로 대화하며 거의 모든 경우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직문직답으로 바로 해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그 자세를 고통스럽게 봅니다.
누르면 바로 해답이 도출될 수 있는 것도 신앙세계에서는 수없이 많지만
혹 해답을 받고도 그것이 내 것으로 확정되는 과정에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1700년 이상을 확정하고 내려온 교리이므로 그 토씨 하나를 더하고 뺄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이 교리가 나오면 벌떼처럼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이 교리는 그렇게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처음 브리핑을 받은 학생들로서 당연히 질문을 쏟아내야 하겠지만
질문할 만하고 또 중요 논점으로 짚어야 할 부분은 단시간에 그렇게 한 다음에
역사 1700년에 걸쳐 내려오고 다듬어진 교리라면 잠깐 오가는 문답시간을 갖고 난 다음에
오랜 시간 기도하고 성경을 찾아보고 묵상하고 되새겨 보는 반복과 세월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오해는 마셨으면
이 홈은
여호와증인이나 최근 새로 나온 이단에 이르기까지
어떤 토론도 피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방법론으로 가능한 요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홈은
몇 마디 하다가 불리할 때 홈을 덮을 그런 성향이 아니며
이 홈의 자료는 OFF LINE 에서 지난 모든 자료를 볼 수 있도록 무제한 공개되었습니다.
또 이 홈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백영희 설교자료도 한국교회에 수없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거듭 부탁드리는 것은
아무래도 질문자께서는 흔하고 흔한 우리 주변의 '정통신학 논리'라는 책의 주장을
질문자 자신이 목숨을 걸 수 있는 자신의 교리로 확정할 과정이 없었다고 읽힙니다.
답변자가 접해본 고신과 총신의 많은 신학자들 경우에도
이런 문제를 남의 논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교리로 진정 삼았다고 느낀 경우가
불과 몇 손가락 꼽을 정도입니다.
질문자께 답변자의 짐작이 성급했으면 용서하시고
차분하게 되돌아 보셔서 본인이 진심으로 그런 과정을 거쳤다면 얼마든지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지적하신 내용들은 이 홈의 설립 주요 이유 중 하나라 할 정도의 사안에 관련 되므로
이 홈은 그런 문제를 두고 진심으로 그리고 실제로 지적해 주실 분이 계신다면
따라 다니며 여쭙고 싶은 곳입니다.
3.윗글에서 새로 지적하신 몇 가지에 대하여
①지적1: '성경 기록의 도덕법을 하나님께서 어기고도 인생을 공의로 심판할 수 있는가'
살인하지 말라 하신 출20장의 제6계명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대표적인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인하라 명령하신 횟수와 직접 살인하신 숫자를 헤아려 보셨습니까?
이런 문제를 질문자께서 심각하게 그리고 미리 많은 세월 살펴보셨다면 좋겠는데
답변자가 이렇게 질문한 이 답변을 읽고 순간적으로 어떻게 방어를 할까 하는 생각에서
다시 글을 적는 식이면, 앞에서 거듭거듭 부탁드리는 답변자 요청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령한 법을 어겨놓고 나는 법 위에 있어 괜찮다는 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행하신 것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게 그 법에 상치되지 않는 행위이며
이렇게 성경 전체를 살핀 다음에 '죄'와 '불의'의 정의를 찾고 그 다음 해석을 해야 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을 학교에서 배우거나 세상에서 알았던 선입견을 가지고 단정한 다음
하나님은 이렇다 저렇다고 규정을 지우는 것 때문에
오늘 교회의 사랑과 세상이 말하는 사랑부터 혼동이 되어
기독교의 사랑은 지옥갈 인생을 천국가게 하는 구원의 사랑에서 변질되어
세상 사랑과 교회의 사랑이 뒤섞여 구별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같은 원리로 죄와 불의의 단어도 다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달리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에게 진리의 법이 되게 하는 동시에
그 진리의 법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우리 행동을 봐가며 사후 적당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비추어 나오면서 말씀의 형태로 나타나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본성 본질은 배치가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행위로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전부가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성구를 따로 적지 않아도 어느 성경을 근거로 단정하는지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죄와 불의는 이렇게 정의가 되고 그 범위가 좁혀져 나가서 도출되어야 합니다.
②죄의 정의와 기준을 두고 예를 든 자연계의 관계
풀을 뜯어먹으면 풀에게는 학살이지만 소에게는 평화로운 식사 시간이며
풀과 소를 잡아먹어도 인간에게는 주신 복된 즐거움일 뿐입니다.
이 예는 자연계의 예인데, 자연의 이치 중에서 원래 하나님께서 내어주시고 보여주신 것은
우리에게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성경에 글자로 기록해 주신 것은 몇 자 되지 않지만
그 말씀을 판단 근거로 삼아 우리에게 주신 자연과 인간의 심리를 살펴보면
우리 현실 우리가 살고 있는 평생의 모든 접촉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하나님의 뜻이니
이런 것은 일반 신학에서도 상식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질문자께서는 엉뚱한 예라 하시면, 그 지적의 적절성을 두고는 더 설명하지 않겠으나
그것이 엉뚱한 비유인지
이번 문답을 가장 빠르고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자연계의 비유인지
시간을 두고 살펴보시기를 요청합니다.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실 때
성경 기록에 앞서 자연계를 창조하고 운영하신 다음 우리가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만사를 성경에 폭넓게 인용하셨음도 고려해 보셨으면 합니다.
성경의 법은
하나님의 내재적 속성과 본질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이 면으로 살펴도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전부 하나님 범위 안에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법의 형식적 외부적 범법한 행위가 있다고 목격된다 해도
그 법은 인간 우리를 길러가기 위해 주신 법이라는 사실 한 가지 원칙만 가지고 이해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신학교 교과서의
알미니우스나 펠라기우스 또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일관된 주장을 통해
우리는 내 주관과 내 취향과 내 희망 사항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작하려 하면 안 되는
위험성을 늘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이 선하매
하나님께서 지옥갈 사람을 우리 이용물로 만들고 그다음 지옥에 보내는 예정이 발견된다면
바로 이 대목에서 '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구나!' 우리는 이렇게 알면 되는 것이고
바로 이 대목에서 '아! 하나님께서 지옥갈 사람을 미리 예정해도 선이 되는구나!'
이렇게 깨달아서 '선'에 대하여 그동안 내가 가진 기준과 의미가
20세기 21세기 우리 사회와 오늘 불신 세상이 생각하는 인권사상과 배치가 된다 해도
우리는 성경이 적어주고 알려준 그대로만 인식하면 될 일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단어 의미를 규정짓고 나가는 것을 '성경적 해석'이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지옥갈 불택자를 예정했다는 말이 발견되는 순간 알미니우스처럼
설마 하나님께서 그런 나쁜 일을 했겠냐고 자기 생각으로 성경을 다시 해석하여
감리교식 온갖 복잡한 예정론을 내게 되면 그 끝이 오늘 해방신학 민중신학에까지 이르고
결국 참 교회다운 교회가 멸종을 했다 할 상황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이 홈의 설명은
칼빈주의적 전통 교리를 반대하는 주장으로 접근하지 마시고
칼빈주의적 전통 교리가 좀더 깊이를 더하여 과거에 미진했던 부분에 대한 보충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③거듭 '조성희사건'을 언급하셨는데
공산주의자의 무신론 사상 하나와 그 사상 관철을 위한 무력투쟁론 사상의 결합은
그 사상이 처음 제시될 때는 그 어느 누구 하나라도 죽이지 않았지만
그 사상은 향후 70년간 세계적으로 1억 이상의 사람을 죽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군중심리에 쏠리는 이들은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다는 사건 중심으로 접근하지만
원인 분석에 철저한 사람들은 그렇게 학살을 하도록 만든 최후 원인의 시작을 주목합니다.
조승희씨에게 죽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죽은 것이
그렇게 천인공로할 사건이라면
한국에는 그보다 수십 배 더 많은 사람이 죽은 광주사태가 있고
한국에는 그보다 수십만 배 더 많은 사람이 죽은 6.25 전쟁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던 배경은
한 사람의 잘못 판단한 생각이나 사상이나 욕심이나 순간적 감정 하나로 시작되었으니
교리를 연구할 때는 누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느냐는 것을 살피지 않고 그 출처가 무엇이냐
이것을 살피는 것이니다.
그 가장 제일 중심에
그 가장 최고 책임자 자리에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이원론이 되고
이원론이 된다는 말은 또 하나의 자존자가 도출 되어야 하는데
만일 이렇게 된다면 여호와증인이 삼위일체의 예수님 신성 부인 한 글자로 이단 되었듯이
이원론이란 그보다 더 앞선 신론의 이단이 될 사안입니다만
서로가 정통 교리에 확고하게 서있고 다만 설명하는 과정의 차이이므로
상대를 그렇게 단정하거나 짐작하는 일은 없습니다.
참고로
1989년 현재 목회지에 부임했을 때 당시 야당에서 인권탄압 전국 100만명 서명 받고 할 때
1개 시도의 1600여 개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서명 받는 책임자가 교회를 방문하여
전부 다 서명을 받고 총공회 소속 교회 3개만 서명을 받지 못했다며 항의한 적이 있었으며
당시 그 분은 '이 나라 독재정권이 무고한 학생을 고문해서 죽이는데 이 불의한 일을 두고 교회가 왜 서명하지 않느냐!'는 압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답변자는
'야당이든 여당이든, 독재자든 민주투사든, 세상 일은 약육강식이고 양쪽이 다 도둑이고
모두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해서 상대방을 삼키는 전법상 하나는 몽둥이를 들고 한쪽은 자연주의 철학을 무기로 들고 싸우는데 거기에 무슨 하나님 앞에 불의가 있고 의가 있고 죄가 있고 정의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1600여 개 교회 안에는 질문자께서 앞에 언급하신 고신교파도 있고 합동도 있고 개혁교단도 있습니다. 또 그런 신학교에서 또는 신학교수들은 한쪽에서는 독재정권을 지지했고 한쪽에서는 민주화운동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그런 세상 일에는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이든 살리든 그것은 없어질 세상 안에서 죄인들의 소망 없는 일 중에 하나로 볼 뿐입니다.
조승희씨가 10여 명 사람을 죽인 것이나
아프간에서 23명 교민을 죽이려 한 것이나
절에서 불쌍한 사람 밥 먹인다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나
하나님 떠난 사람의 말씀 떠난 행동이란 그 어떤 형태로 나타나도 동일합니다.
수년 전 여호와증인 한 사람이 이 홈에서 토론을 하자면 줄기차게 물고 늘어진 것은
아프리카에서 기독교인들이 반대파 종교인 부족을 대량학살 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세상 뉴스는 될지라도
교회에서는 그 나라의 기독교인들이 세상 땅 따먹기를 위해 죽이고 전쟁한 것은
세상 일로 보지 교회 신앙 문제와는 아예 구분하고 있습니다.
김영삼장로님이 대통령으로 한 일이 잘못 되었으면 교회나 성경이 잘못 된 것이 아니고
그가 대한민국 사람으로 잘못 한 것이며 그 정당과 그 사람 개인이 그렇게 한 것이니
교회를 욕할 일이 아니고 김씨를 욕하고 한국민을 욕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제로 따진다면
그분이 대통령 선거 하면서 주일에 유세 다닌 행동, 바로 그것이 4계명의 죄가 되는 것이고
교회가 그를 두고 문제를 삼는다면 바로 이런 면입니다.
④바로의 경우
혹시 이전에도
이 성구를 이런 주제의 토론에서 미리 연구하고 살피신 것을 말씀 하셨다면
성경 전체의 다른 성구를 다시 찾아가며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 해석의 임기응변이 전체 해석을 어떻게 모순으로 만든다는 것을 안내하고 싶으나
우선
질문자께서 살핀 내용대로 6번째부터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한 것이 맞다고 해도
하나님은 바로의 강퍅에 대한 책임이 질문자 논리에 의하여 눈꼽만큼도 없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상대방이 너무 강퍅하면 하나님께서 이왕 죄인이니까
그런 죄인에게는 한 가지 죄를 짓도록 만드는 죄의 조성자 역할을 하느냐는 문제가 생기니
질문자께서 답변자가 할 설명을 명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불택자들은 이미 아담의 범죄로 모두가 하나님과 대적하는 죄인의 상태로 들어간 것이기에 죄의 원인을 아담의 타락 내지는 아담을 타락시킨 사탄에게 돌려야 합니다.'라고 하신 바로 그 논리를 가지고
그 사탄이 타락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 하나님의 제작자 책임은 없을지요?
불신자들도 사용자의 사용자 책임과 함께 기계 제작자에게는 제작자 책임을 물리는데.
⑤대안으로 말씀하신 바 '사탄의 계략을 허용하신 허용의 작정'이 더 성경적인가?
사탄의 계략을 허용하신 책임만 하나님께서 지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의하지 않으실까!
출21:33에서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덮지 아니하여 소나 나귀가 빠지면
주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4.이 홈에 올려진 글은
답변 없이 그냥 두는 경우
많은 분들이 자료 검색을 통해 이 곳 자료를 참고할 때
반론 없는 한쪽 생각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때로는 적지 않을 글을 적는 때가 많습니다.
질문자의
이번 지적은 질문자께서 새겨보고 살펴보는 과정이 거의 없다고 느껴지며
이런 경우 답변자가 글을 적는 것은
마치 교리 문제를 두고 컴퓨터 게임하는 학생들과 같다는 피해 의식을 갖게 됩니다.
요즘은 도서가 많고 컴퓨터 검색 기능이 워낙 좋아서 아무나 검색을 통해
어떤 논쟁이라도 전문가 차원의 글들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 시키기 위해서 무작정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 교리 한 깨달음이 나와 나의 신앙 앞날에 어떤 길로 연관이 될 것인지를 두고
실제 신앙으로 걸어 갈 고민과 과제를 전제로 두고 살펴보는 사람들입니다.
나와 별 상관이 없거나 안다 해도 내가 그렇게 지키고 살아가지 않을 교리인데
내가 그럴 듯 하다고 느껴지는 이 쪽 논리를 가지고 반대편 주장에 옮겨 따져보는
이런 방향이라면 이 홈이 가장 피하고 싶은 무익한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깊이 그리고 많이 사고해 보신 다음에 말씀하셔야 할 내용이라 느껴지는 대목이 많은데
몇 시간 만에 또는 하루 만에 대답이 나오는 것을 보며
과연 이런 문제를 과거에 많이 생각을 해보셨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지적을 하시는가?
특히 바로의 성구나 '불의'에 관련 된 성구를 과연 성경 앞뒤와 전체 면을 비교해 본 다음
말씀하셨을까?
상대방의 논리에 이런 성구를 들이대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성구는 한도 없이 많은데
그렇게 성구를 갖다 댄 다음에 그 성구 해석이 성경 전체와 다른 면으로 이어질 때까지를
철저하게 공부해 보시고 나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이런 면에 대하여
질문자를 상대로 현재 답변자가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질문자를 제외 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신학자 목회자 신학생들과 대화를 해봤으나
성구 해석을 인용하면서 그 한 해석의 뒤를 폭넓게 생각하고 두렵게 성구를 대하는 경우를
만나 본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노선은 한 교리 한 깨달음을 발표할 때
정말 오래 동안 그리고 정말 많은 면으로 연구한 다음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꼭 필요한 토론이지만 토론하는 과정과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답변자의 우려를 깊이
참고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절대예정을 조승희 사건을 예로 들면
절대예정과 관련하여 죄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겠느냐는 변론에서
목사님께서 구약의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예로 드시면서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든지 하나님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펴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은
인간에게 죄를 지은 책임을 묻고 공의로써 심판을 하셨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논리는 오히려 그러한 죄를 짓도록 하나님이 조성하셨는데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주인이시니 문제 없다는 논리를 펴셨지요.
이는 하나님께 아주 불경스러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하는 구절과 신명기 말씀을 보시지요.
소돔성을 타락을 정해놓고 다시 불심판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의 공의가 서겠습니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세기 18:25)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신명기 32: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해 전제 조건이 죄책을 하나님께 돌릴 수 없다는 것으로 작정교리와 예정교리를 펼쳐 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총공회에서는 운명주의, 숙명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신조를 변형한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승희 사건을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면 말이 되겠나요?
다시 말하지만 죄에 관한한 제2원인인 사탄에게 돌리는 이원론적인 것이 오히려 성경적이며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이원론적이면 안된다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을까요?
천사는 오히려 인간보다 고차원적이며 많은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한 능력을 인간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를 조성하는데 오용한 책임은 해당 천사에게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다만 그 오용을 시한을 두고 허용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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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예정과 관련하여 죄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겠느냐는 변론에서
목사님께서 구약의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예로 드시면서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든지 하나님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펴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은
인간에게 죄를 지은 책임을 묻고 공의로써 심판을 하셨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논리는 오히려 그러한 죄를 짓도록 하나님이 조성하셨는데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주인이시니 문제 없다는 논리를 펴셨지요.
이는 하나님께 아주 불경스러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하는 구절과 신명기 말씀을 보시지요.
소돔성을 타락을 정해놓고 다시 불심판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의 공의가 서겠습니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세기 18:25)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신명기 32: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해 전제 조건이 죄책을 하나님께 돌릴 수 없다는 것으로 작정교리와 예정교리를 펼쳐 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총공회에서는 운명주의, 숙명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신조를 변형한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승희 사건을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면 말이 되겠나요?
다시 말하지만 죄에 관한한 제2원인인 사탄에게 돌리는 이원론적인 것이 오히려 성경적이며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이원론적이면 안된다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을까요?
천사는 오히려 인간보다 고차원적이며 많은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한 능력을 인간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를 조성하는데 오용한 책임은 해당 천사에게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다만 그 오용을 시한을 두고 허용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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