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재독예배 - 찬송 재독, 기도 재독, 말씀 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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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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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31 00:00
1.예배의 본질
예배는
말씀과 찬송과 기도 3가지를 모아서 예배라고 합니다.
예배는
전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상대하는 생활이니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모습이니 그 뜻을 배우고 찾게 되면
찬송은,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께 그 찾은 뜻을 가지고 의논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뜻, 즉 말씀을 배우고 말씀으로 감사하고 말씀으로 구하는 신앙생활이니
이런 3가지 내용만 있으면 다 예배라고 합니다.
대청마루에서도 이 3가지 내용이 진행되면 예배장소가 될 수 있고 예배시간도 될 수 있으며
학교교실에서도 여행 간 숙박업소 안에서도 들판에서도 혼자 굴 속에서도
이 3가지 내용만 있으면 예배가 되고 그 장소는 예배당이 됩니다.
이 3가지는 없어지고
예배당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예배당식 건물만 지어놓고
그 속에서 인간끼리 재미있게 놀면서 '헌신예배' '무슨예배'라고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예배의 내용이 빠지면 이름과 간판과 건물이 어떻게 되어도 예배가 되지 않습니다.
2.예배의 방법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말씀을 배우는데 어떤 방법이 좋은가?
그것은 교회마다 교인마다 교단마다 서로 다를 수가 있으니
그 방법이 다르다면 어떤 방법이 더 나은지 또 누구에게는 어떤 방법이 더 좋은지
따져보고 연구하여 신앙에 정말 유익된 방법이 있다면 자꾸 발전시켜 나가면 됩니다.
혹시 그 따져보는 과정에서
일시 자기의 주관이나 감정에 치우쳐
자기에게 우선 좋으니까 남들도 좋아야 한다, 이 방법은 무조건 은헤가 된다
이렇게 단정하지 마시고 심각하게 신중하게 넓게 판단해야 합니다.
예배를
낮에 모이는 것과 밤에 모이는 것
목회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과 각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알아서 예배를 인도하는 법
찬송시간을 많게 하는 것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것 아니면 말씀 중심으로 하는 것
눈을 뜨고 기도하는 것과 감고 기도하는 것
설교를 조용하게 하는 것과 북과 장구를 치며 찬송을 하는 법 그리고 묵상이나 통성기도
그 어떤 것도 그 자체가 죄 된다고 할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 더 나으냐는 것을 결정할 때 서툴게 섣불리 성급하게 결정하지 마셨으면.
우리의 천국은 오늘 땅 위에서 준비 되는 것이고
이 땅 위에서 우리의 모든 생활은 예배가 중심이니 인생 전체를 통해 가장 소중한 예배!
예배가 어떤 모습 어떤 방법 어떤 진행이라야 하겠는가?
천주교처럼
예배라고 해놓고 우상을 만들어 절을 하게 한다거나
뜻도 모르는 말을 이방종교처럼 중언부언 무한정 반복만 한다거나
내용은 상관없고 형식 절차만 맞추게 한다면 죄가 되겠지만
만일
예배의 내용에 중심을 두고
각 개인과 각 개교회와 각 교단이 각자 신앙에 유익한 면을 찾아 노력한다면
신약교회는 신앙자유라는 차원에서 폭넓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3.재독예배
현재 답변자 기억에
재독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파 교회는 없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독예배라 하면
말씀 찬송 기도라는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나 둘 또는 전부를 재독하는 경우인데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하나인 찬송을
예배시간마다 새로운 찬송을 지어 부르는 교회나 교단은 알지를 못합니다.
10년 전에 한번 지어 불렀던 찬송을 10년이 지나도록 예배 때마다 다시 부르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찬송을 심지어 800년 전의 찬송이 오늘까지도 예배시간에 재독되고 있습니다.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하나인 기도도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재독하지 않는 교회는 거의 보지를 못했습니다.
기도는 찬송과 달리 예배 때마다 새로운 기도도 하는데
2천년 전에 주님이 주신 그 기도 그리고 그 후 몇백 년 후에 만들어진 사도신경이라는 기도
이 기도는 지금도 거의 모든 교회가 반드시 예배에 포함을 시켜야 한다고
신학교 교과서에 적어놓고 있습니다.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하나인 말씀의 경우
천주교 1천 년간 교회가 완전히 우상종교가 된 것을 5백 년 전에 다시 되살려 놓았는데
그때를 종교개혁시기라고 함니다. 그 시기에는 한번 배운 말씀을 받아 적어놓았닥
다음 예배 때 다시 반복해서 읽어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는 경우가 있었다고 듣고 있는데
지금은 설교를 설교답게 하는 분들이 거의 없어 한번 들은 말씀을 기록했다가 반복을 하면
시시하고 아니면 철 지난 과일처럼 이상하고 아니면 이미 다 아는 것이라 그럴 필요가 없어
예배 중에 말씀을 재독으로 진행하는 곳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4.이 노선은
무조건 재독을 해야 한다거나 무조건 재독을 하면 안된다거나
각박하게 인정사정없이 딱 잘라 기준을 세워 무조건 따라 하라고 강제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이 '예배의 본질'이므로
예배의 본질만 지켜진다면
개인마다 교회마다 교단마다 주어진 환경과 신앙의 수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어느 부분을 어떻게 재독을 하느냐는 것은 알아서 결정하게 합니다.
종교개혁의 역사와 참 뜻을 알면 이런 조처는 아주 자연스런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개혁주의' '개혁교회'라고 합니다. 즉 천주교 타락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이 노선은
기도의 경우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철저히 반복하도록 하기 위해 외우지 않으면 학습도 주지 않습니다.
특히 신앙출발기에 있는 주일학생들은 수도 없이 외우게 하여 이 면에서 탁월합니다.
다만
예배시간에는 너무 환하게 잘 외우고 알고 있기 때문에
예배시간에 무조건 기계적으로 외우도록 순서에 넣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천주교 꼴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교회에서 예배 시간의 전체 진행에 따라 알아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 재독 문제는 일반 교단은 철저한 편이고 공회 교단은 좀 자유롭습니다.
일반교단의 경우 최근 교단 차원에서 기도문을 각 교회로 내려보내고 그 기도문을
재독하여 기도를 대신 하는 경우를 기독교 뉴스에서 종종 보고 있습니다.
찬송의 경우
찬송도 그 찬송의 기준이 '말씀 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므로
은혜 있는 찬송이면 찬송이 최근 나온 것이든 오래 된 것이든 예배 때마다 새로 만들든
상관하지 않느데
최근 100여년 세월에 세계교회의 신앙이 황폐화가 되어 은혜 있는 찬송이 나오지 않으므로
과거 100여년 전에 세계교회가 신앙으로 깨어있을 때 지어진 찬송을 재독하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 되지 않은 찬송가 중에서도 유재현목사님의 찬송은 너무 은혜가 있어
최근 것인데도 많이 재독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과 기도를 비교한다면
기도는 은혜면만 있으면 되는데 찬송은 은혜에 예술성을 더해야 하므로
기도는 대개 예배마다 새로운 기도를 많이 하지만 찬송은 거의 재독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의 경우
보통 설교라고 하는데
성경에 기록하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니
설교는 아무라도 설교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설교 강단에 쉽게 올라가는 것을 보는데
말을 잘하거나 설득을 잘 시키거나 남이 들을 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예배 드리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전하는 것이 말씀이요 설교이므로
실제 설교를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설교를 다시 들어보면 설교라고 들을 정도가 아니므로
설교는 재독으로 반복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시기는 참으로 깨어 있고 훌륭했던 종들이 있었기 때문에
은혜 있는 설교를 한번 하고 그것을 기록했다가 다시 한번 더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그 시대 그 교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는데 도움이 되고
재독으로 설교를 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현재 이 노선에는
이 홈에서 소개하는 5천 개 녹음 자료가 있고 1만 6천개 노트 기록 자료가 있어
이 설교 내용들을 가지고 다시 재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신다면 재독설교가 됩니다.
시대마다
설교자의 말씀 증거가 너무 훌륭하여 재독으로 계속할 만한 분들이 적지 않았는데
당시는 기록의 방법이 좋지 않아서 재독을 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으나
백목사님 생전에는 녹음기술이 편리하여 백목사님의 설교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한국과 세계교회가 암흑기라 할 정도여서 기록했다가 재독할 정도의
설교가들이 별로 없어 기도나 찬송과 달리 설교 말씀의 재독은 거의 사례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말씀 재독은, 재독할 정도의 수준에 있는 설교가 없어 말씀 재독 예배는 거의 없고
찬송 재독은, 과거 찬송가만큼 은혜 될 새로운 찬송가가 거의 없어 재독만 거의 하고 있고
기도 재독은, 아무나 기도에 자신이 있다 생각하여 주기도문 사도신경 외에는 없습니다.
5.질문 내용에 집중한다면
재독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단은 없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재독을 하지 않는다 해도 예배의 근본 원리상
예배는 재독이냐 아니냐는 것을 가지고 따질 것이 아니고
예배가 얼마나 은혜가 있느냐는 것이므로 은혜 기준으로 각자 각 교회가 결정할 일입니다.
예배는
말씀과 찬송과 기도 3가지를 모아서 예배라고 합니다.
예배는
전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상대하는 생활이니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모습이니 그 뜻을 배우고 찾게 되면
찬송은,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께 그 찾은 뜻을 가지고 의논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뜻, 즉 말씀을 배우고 말씀으로 감사하고 말씀으로 구하는 신앙생활이니
이런 3가지 내용만 있으면 다 예배라고 합니다.
대청마루에서도 이 3가지 내용이 진행되면 예배장소가 될 수 있고 예배시간도 될 수 있으며
학교교실에서도 여행 간 숙박업소 안에서도 들판에서도 혼자 굴 속에서도
이 3가지 내용만 있으면 예배가 되고 그 장소는 예배당이 됩니다.
이 3가지는 없어지고
예배당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예배당식 건물만 지어놓고
그 속에서 인간끼리 재미있게 놀면서 '헌신예배' '무슨예배'라고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예배의 내용이 빠지면 이름과 간판과 건물이 어떻게 되어도 예배가 되지 않습니다.
2.예배의 방법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말씀을 배우는데 어떤 방법이 좋은가?
그것은 교회마다 교인마다 교단마다 서로 다를 수가 있으니
그 방법이 다르다면 어떤 방법이 더 나은지 또 누구에게는 어떤 방법이 더 좋은지
따져보고 연구하여 신앙에 정말 유익된 방법이 있다면 자꾸 발전시켜 나가면 됩니다.
혹시 그 따져보는 과정에서
일시 자기의 주관이나 감정에 치우쳐
자기에게 우선 좋으니까 남들도 좋아야 한다, 이 방법은 무조건 은헤가 된다
이렇게 단정하지 마시고 심각하게 신중하게 넓게 판단해야 합니다.
예배를
낮에 모이는 것과 밤에 모이는 것
목회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과 각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알아서 예배를 인도하는 법
찬송시간을 많게 하는 것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것 아니면 말씀 중심으로 하는 것
눈을 뜨고 기도하는 것과 감고 기도하는 것
설교를 조용하게 하는 것과 북과 장구를 치며 찬송을 하는 법 그리고 묵상이나 통성기도
그 어떤 것도 그 자체가 죄 된다고 할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 더 나으냐는 것을 결정할 때 서툴게 섣불리 성급하게 결정하지 마셨으면.
우리의 천국은 오늘 땅 위에서 준비 되는 것이고
이 땅 위에서 우리의 모든 생활은 예배가 중심이니 인생 전체를 통해 가장 소중한 예배!
예배가 어떤 모습 어떤 방법 어떤 진행이라야 하겠는가?
천주교처럼
예배라고 해놓고 우상을 만들어 절을 하게 한다거나
뜻도 모르는 말을 이방종교처럼 중언부언 무한정 반복만 한다거나
내용은 상관없고 형식 절차만 맞추게 한다면 죄가 되겠지만
만일
예배의 내용에 중심을 두고
각 개인과 각 개교회와 각 교단이 각자 신앙에 유익한 면을 찾아 노력한다면
신약교회는 신앙자유라는 차원에서 폭넓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3.재독예배
현재 답변자 기억에
재독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파 교회는 없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독예배라 하면
말씀 찬송 기도라는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나 둘 또는 전부를 재독하는 경우인데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하나인 찬송을
예배시간마다 새로운 찬송을 지어 부르는 교회나 교단은 알지를 못합니다.
10년 전에 한번 지어 불렀던 찬송을 10년이 지나도록 예배 때마다 다시 부르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찬송을 심지어 800년 전의 찬송이 오늘까지도 예배시간에 재독되고 있습니다.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하나인 기도도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재독하지 않는 교회는 거의 보지를 못했습니다.
기도는 찬송과 달리 예배 때마다 새로운 기도도 하는데
2천년 전에 주님이 주신 그 기도 그리고 그 후 몇백 년 후에 만들어진 사도신경이라는 기도
이 기도는 지금도 거의 모든 교회가 반드시 예배에 포함을 시켜야 한다고
신학교 교과서에 적어놓고 있습니다.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하나인 말씀의 경우
천주교 1천 년간 교회가 완전히 우상종교가 된 것을 5백 년 전에 다시 되살려 놓았는데
그때를 종교개혁시기라고 함니다. 그 시기에는 한번 배운 말씀을 받아 적어놓았닥
다음 예배 때 다시 반복해서 읽어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는 경우가 있었다고 듣고 있는데
지금은 설교를 설교답게 하는 분들이 거의 없어 한번 들은 말씀을 기록했다가 반복을 하면
시시하고 아니면 철 지난 과일처럼 이상하고 아니면 이미 다 아는 것이라 그럴 필요가 없어
예배 중에 말씀을 재독으로 진행하는 곳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4.이 노선은
무조건 재독을 해야 한다거나 무조건 재독을 하면 안된다거나
각박하게 인정사정없이 딱 잘라 기준을 세워 무조건 따라 하라고 강제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이 '예배의 본질'이므로
예배의 본질만 지켜진다면
개인마다 교회마다 교단마다 주어진 환경과 신앙의 수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예배의 3가지 요소 중 어느 부분을 어떻게 재독을 하느냐는 것은 알아서 결정하게 합니다.
종교개혁의 역사와 참 뜻을 알면 이런 조처는 아주 자연스런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개혁주의' '개혁교회'라고 합니다. 즉 천주교 타락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이 노선은
기도의 경우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철저히 반복하도록 하기 위해 외우지 않으면 학습도 주지 않습니다.
특히 신앙출발기에 있는 주일학생들은 수도 없이 외우게 하여 이 면에서 탁월합니다.
다만
예배시간에는 너무 환하게 잘 외우고 알고 있기 때문에
예배시간에 무조건 기계적으로 외우도록 순서에 넣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천주교 꼴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교회에서 예배 시간의 전체 진행에 따라 알아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 재독 문제는 일반 교단은 철저한 편이고 공회 교단은 좀 자유롭습니다.
일반교단의 경우 최근 교단 차원에서 기도문을 각 교회로 내려보내고 그 기도문을
재독하여 기도를 대신 하는 경우를 기독교 뉴스에서 종종 보고 있습니다.
찬송의 경우
찬송도 그 찬송의 기준이 '말씀 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므로
은혜 있는 찬송이면 찬송이 최근 나온 것이든 오래 된 것이든 예배 때마다 새로 만들든
상관하지 않느데
최근 100여년 세월에 세계교회의 신앙이 황폐화가 되어 은혜 있는 찬송이 나오지 않으므로
과거 100여년 전에 세계교회가 신앙으로 깨어있을 때 지어진 찬송을 재독하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 되지 않은 찬송가 중에서도 유재현목사님의 찬송은 너무 은혜가 있어
최근 것인데도 많이 재독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과 기도를 비교한다면
기도는 은혜면만 있으면 되는데 찬송은 은혜에 예술성을 더해야 하므로
기도는 대개 예배마다 새로운 기도를 많이 하지만 찬송은 거의 재독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의 경우
보통 설교라고 하는데
성경에 기록하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니
설교는 아무라도 설교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설교 강단에 쉽게 올라가는 것을 보는데
말을 잘하거나 설득을 잘 시키거나 남이 들을 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예배 드리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전하는 것이 말씀이요 설교이므로
실제 설교를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설교를 다시 들어보면 설교라고 들을 정도가 아니므로
설교는 재독으로 반복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시기는 참으로 깨어 있고 훌륭했던 종들이 있었기 때문에
은혜 있는 설교를 한번 하고 그것을 기록했다가 다시 한번 더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그 시대 그 교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는데 도움이 되고
재독으로 설교를 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현재 이 노선에는
이 홈에서 소개하는 5천 개 녹음 자료가 있고 1만 6천개 노트 기록 자료가 있어
이 설교 내용들을 가지고 다시 재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신다면 재독설교가 됩니다.
시대마다
설교자의 말씀 증거가 너무 훌륭하여 재독으로 계속할 만한 분들이 적지 않았는데
당시는 기록의 방법이 좋지 않아서 재독을 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으나
백목사님 생전에는 녹음기술이 편리하여 백목사님의 설교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한국과 세계교회가 암흑기라 할 정도여서 기록했다가 재독할 정도의
설교가들이 별로 없어 기도나 찬송과 달리 설교 말씀의 재독은 거의 사례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말씀 재독은, 재독할 정도의 수준에 있는 설교가 없어 말씀 재독 예배는 거의 없고
찬송 재독은, 과거 찬송가만큼 은혜 될 새로운 찬송가가 거의 없어 재독만 거의 하고 있고
기도 재독은, 아무나 기도에 자신이 있다 생각하여 주기도문 사도신경 외에는 없습니다.
5.질문 내용에 집중한다면
재독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단은 없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재독을 하지 않는다 해도 예배의 근본 원리상
예배는 재독이냐 아니냐는 것을 가지고 따질 것이 아니고
예배가 얼마나 은혜가 있느냐는 것이므로 은혜 기준으로 각자 각 교회가 결정할 일입니다.
재독예배
재독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재독예배를 드려도 괜챦은 것입니까?
성경을 읽으면 다 믿어지다가도 불현듯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 것일까? 사람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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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재독예배를 드려도 괜챦은 것입니까?
성경을 읽으면 다 믿어지다가도 불현듯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 것일까? 사람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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