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한 가지에 치우치지 마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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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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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00:00
중학교에 들어가면
과목별 담당 교사들이 자기 과목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한지 난리들입니다.
대학의 교수들이 자기 전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학교도
교수들이 자기 과목에 대하여 강조를 하는데 그 한 마디도 틀린 것은 없고
과목 중에서도 교수 별로 특별히 강조하는 대목이 따로 있어 목소리를 높힙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나
왼팔이 지나치게 돋보이면 왼팔의 기능이 특별하다 하지 않고 장애자라고 합니다.
왼팔이 없거나 움직일 수 없어도 장애자지만 왼팔이 다리만큼 크다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마치 태어난 아이가 온 몸이 고루 자라는 것처럼 신앙의 모든 면을 고루 보셨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
천주교와 종교개혁의 두 노선은 이미 결판이 났고 알미니안과 칼빈주의도 그렇습니다.
오늘에 과거 노선 분열의 역사적 사실을 잊어도 안 되지만 수백 년 전에 결판 난 일을
오늘 진행 되는 사안을 대하듯 전력하면 오늘에 급한 문제를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대하여서는
역사신학 시간에 확고하게 비교하고 원인과 진행 과정을 살펴 기억하시되
오늘 우리가 걸어갈 걸음은 칼빈주의 노선에서 더 자라 앞으로 나갈 자기 성화문제입니다.
질문자는 칼빈주의를 그렇게 외치고 있으나 오늘 칼빈주의가 있습니까?
오늘 칼빈주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칼빈주의는 장로교 신학교들 안에 가장 많이 남아 전해지고 있으나
가장 극단적인 칼빈주의라고 하는 고신 합신 총신 ... 등에도 칼빈주의는 볼 수 없습니다.
칼빈주의는
플래카드 선전하고 밴드에 장단 맞추고 주일날 불신 체육관 빌려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칼빈주의는 주일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장로 집사로 세우거나 매관매직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비교하면서 칼빈주의를 사수하려고 노력할 때가 아니라
조상들이 이미 지켜서 내려준 칼빈주의를 칼빈주의 안에서 다 내다버리고 있으니
칼빈주의가 정말 제대로 발전을 했다면 현재 모습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여
오늘의 칼빈주의 걸음을 걸어야 정말 칼빈주의가 되고 알미니안을 진정으로 이기는 것인데
칼빈주의 이름만 써먹고 역사적 논쟁만 재구성하고 있지
그렇게 하는 이들의 실제 걸음걸이는 알미니안으로 나가고 그보다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1500년대의 칼빈주의는
1600년대에 나타나 가로막던 알미니안주의의 장벽을 가볍게 넘어선 다음
1900년대에 이르러 백영희신앙노선이라는 날개를 달고 지금은 창공을 솟구치고 있습니다.
역사적 칼빈주의를 오늘까지 질주시켜 오늘 걸어갈 칼빈주의 발전 과정에 서야 하는데
과거 칼빈주의의 지식만을 가지고 무한반복기능을 가진 녹음기를 돌리듯 하거나
과거 칼빈주의 행동을 오늘에도 지킨다며 박제된 보수주의를 외치는 것은
칼빈주의의 발전적 진행에서 본다면 칼빈주의의 질주에 브레이크 노릇을 하는 꼴입니다.
질문자께서
신학교를 다니면서 신학강좌 중에서 특히 감명깊게 그리고 은혜롭게 받은 말씀에 사무쳐
지금 두 노선을 자꾸 깊이 연구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지식적으로는 현재 질문자 정도라면 답변자를 가르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충분하므로
앞으로는 오늘의 발전적 걸음에 전력하시기를 원합니다.
과목별 담당 교사들이 자기 과목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한지 난리들입니다.
대학의 교수들이 자기 전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학교도
교수들이 자기 과목에 대하여 강조를 하는데 그 한 마디도 틀린 것은 없고
과목 중에서도 교수 별로 특별히 강조하는 대목이 따로 있어 목소리를 높힙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나
왼팔이 지나치게 돋보이면 왼팔의 기능이 특별하다 하지 않고 장애자라고 합니다.
왼팔이 없거나 움직일 수 없어도 장애자지만 왼팔이 다리만큼 크다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마치 태어난 아이가 온 몸이 고루 자라는 것처럼 신앙의 모든 면을 고루 보셨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
천주교와 종교개혁의 두 노선은 이미 결판이 났고 알미니안과 칼빈주의도 그렇습니다.
오늘에 과거 노선 분열의 역사적 사실을 잊어도 안 되지만 수백 년 전에 결판 난 일을
오늘 진행 되는 사안을 대하듯 전력하면 오늘에 급한 문제를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대하여서는
역사신학 시간에 확고하게 비교하고 원인과 진행 과정을 살펴 기억하시되
오늘 우리가 걸어갈 걸음은 칼빈주의 노선에서 더 자라 앞으로 나갈 자기 성화문제입니다.
질문자는 칼빈주의를 그렇게 외치고 있으나 오늘 칼빈주의가 있습니까?
오늘 칼빈주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칼빈주의는 장로교 신학교들 안에 가장 많이 남아 전해지고 있으나
가장 극단적인 칼빈주의라고 하는 고신 합신 총신 ... 등에도 칼빈주의는 볼 수 없습니다.
칼빈주의는
플래카드 선전하고 밴드에 장단 맞추고 주일날 불신 체육관 빌려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칼빈주의는 주일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장로 집사로 세우거나 매관매직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비교하면서 칼빈주의를 사수하려고 노력할 때가 아니라
조상들이 이미 지켜서 내려준 칼빈주의를 칼빈주의 안에서 다 내다버리고 있으니
칼빈주의가 정말 제대로 발전을 했다면 현재 모습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여
오늘의 칼빈주의 걸음을 걸어야 정말 칼빈주의가 되고 알미니안을 진정으로 이기는 것인데
칼빈주의 이름만 써먹고 역사적 논쟁만 재구성하고 있지
그렇게 하는 이들의 실제 걸음걸이는 알미니안으로 나가고 그보다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1500년대의 칼빈주의는
1600년대에 나타나 가로막던 알미니안주의의 장벽을 가볍게 넘어선 다음
1900년대에 이르러 백영희신앙노선이라는 날개를 달고 지금은 창공을 솟구치고 있습니다.
역사적 칼빈주의를 오늘까지 질주시켜 오늘 걸어갈 칼빈주의 발전 과정에 서야 하는데
과거 칼빈주의의 지식만을 가지고 무한반복기능을 가진 녹음기를 돌리듯 하거나
과거 칼빈주의 행동을 오늘에도 지킨다며 박제된 보수주의를 외치는 것은
칼빈주의의 발전적 진행에서 본다면 칼빈주의의 질주에 브레이크 노릇을 하는 꼴입니다.
질문자께서
신학교를 다니면서 신학강좌 중에서 특히 감명깊게 그리고 은혜롭게 받은 말씀에 사무쳐
지금 두 노선을 자꾸 깊이 연구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지식적으로는 현재 질문자 정도라면 답변자를 가르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충분하므로
앞으로는 오늘의 발전적 걸음에 전력하시기를 원합니다.
저주의 의미는?
갈라디아서 1장 8~9절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시대때 다른 복음은 율법주의라 생각되어 집니다.
알미니안이나, 중도교리도 결국은 율법주의로 생각됩니다.
이 시대에 다른 복음에 들어가는 것은 칼빈주의 외에 전부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칼빈주의 외에는 결국 전부 알미니안 이니깐요.
(율법주의- 천국을 전적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으로 갈려는 것)
질문1. 갈라디아서 에서저주를 받는 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주해사전에도 저주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나오지 않은것 같습니다.
질문2. 가인노선에 서면 이래도 저주, 저래도 저주라고 이목사님께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래도 저주, 저래도 저주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질문3. 현재 감리교는 거의 알미니안으로 알고 있으며, 장로신학대 신학도 교리가 알미니안
으로 많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것은 아님)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는 것입니까?
질문4. 칼빈주의 교리외에 다른 교리를 가진 택자들은 전부 하나님의 저주아래에 있는것입
니까? 그들도 지극히 크고, 무한한 가치를 가진 기본구원을 입은 자들인데
그들이 저주아래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기본구원을 입은 것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었는데, 저주를 받은자라
하니...
질문5. 백목사님 말씀중에, 역사는 2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밖에.
그렇다면 알미니안이나 중도교리를 가진 자들이 살아가는 것은 모두 마귀의
역사 입니까? 알미니안이나 중도교리를 가진 택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건설구원을
이루어 간다면 그 건설구원은 모두 마귀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까?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 전도하고, 예언하고 ,병을 고치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를 모른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마귀의 역사였기 때문에...
그들은 아벨노선을 가진자들을 위해 이용되는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절대예정과 성취면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줄 믿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고
마귀의 역사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건설구원은
송두리째 날아 갈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질문은 5가지 지만 모두 연결되고 공통되는 질문입니다.
위의 질문은 좀 민감한 질문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신자들에게 마귀 역사가
일어난다고 해야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현재 하나님께서 알미니안과 중도교리에 대해서 집중을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속한 교단은 전체적으로 중도교리로 가기 때문에 그런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세 교리는 알미니안이나 칼빈주의 보다는 중도교리가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미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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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8~9절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시대때 다른 복음은 율법주의라 생각되어 집니다.
알미니안이나, 중도교리도 결국은 율법주의로 생각됩니다.
이 시대에 다른 복음에 들어가는 것은 칼빈주의 외에 전부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칼빈주의 외에는 결국 전부 알미니안 이니깐요.
(율법주의- 천국을 전적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으로 갈려는 것)
질문1. 갈라디아서 에서저주를 받는 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주해사전에도 저주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나오지 않은것 같습니다.
질문2. 가인노선에 서면 이래도 저주, 저래도 저주라고 이목사님께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래도 저주, 저래도 저주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질문3. 현재 감리교는 거의 알미니안으로 알고 있으며, 장로신학대 신학도 교리가 알미니안
으로 많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것은 아님)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는 것입니까?
질문4. 칼빈주의 교리외에 다른 교리를 가진 택자들은 전부 하나님의 저주아래에 있는것입
니까? 그들도 지극히 크고, 무한한 가치를 가진 기본구원을 입은 자들인데
그들이 저주아래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기본구원을 입은 것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었는데, 저주를 받은자라
하니...
질문5. 백목사님 말씀중에, 역사는 2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밖에.
그렇다면 알미니안이나 중도교리를 가진 자들이 살아가는 것은 모두 마귀의
역사 입니까? 알미니안이나 중도교리를 가진 택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건설구원을
이루어 간다면 그 건설구원은 모두 마귀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까?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 전도하고, 예언하고 ,병을 고치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를 모른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마귀의 역사였기 때문에...
그들은 아벨노선을 가진자들을 위해 이용되는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절대예정과 성취면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줄 믿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고
마귀의 역사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건설구원은
송두리째 날아 갈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질문은 5가지 지만 모두 연결되고 공통되는 질문입니다.
위의 질문은 좀 민감한 질문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신자들에게 마귀 역사가
일어난다고 해야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현재 하나님께서 알미니안과 중도교리에 대해서 집중을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속한 교단은 전체적으로 중도교리로 가기 때문에 그런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세 교리는 알미니안이나 칼빈주의 보다는 중도교리가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미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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