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동안 음부에서 모든 죄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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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3 18:22
원제 : 택자의 모든 죄는 주님이 다 삼일, 음부에서 해결을 하셨다. (제-관)
2020-09-02 어제 삼일밤 예배 설교의 일부를 적어 봅니다.
11분16초 ... 그런데 요나가 삼일 삼야, 삼일 밤낮을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고건 잡아 먹은 짐승 속에 있으니 요나로서는 끝났습니다. 삼일 밤낮이면 주님이 우리 죄 때문에 삼일 밤낮을 십자가에 죽으시고 금요일, 그 다음날 토요일, 그 다음 안식 후 첫날, 오늘 주일에 부활하셨으니 여기 요나의 삼일이 바로 오실 주님이 요나를 구원할 삼일이고 오늘 우리를 구원할 삼일입니다.
12분08초 ... 하나님과 반대되는 요소는 무조건 생지옥이다. 그러나 택자,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맞선 선악과 먹은 첫 죄, 인류 역사에 내려온 모든 죄, 내가 태어나며 오늘까지 지은 모든 죄,
12분27초 ... 택자의 모든 죄는 있는 대로 주님이 다 삼일, 음부에서 해결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 모든 죄가 죄로 끝나고 사망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새롭게 살아갈 새날, 새소망, 새생명의 기회가 되고 출발이 되어집니다.
‘택자의 모든 죄는 있는 대로 주님이 다 삼일 동안 음부에서 해결을 하셨다’는 대목에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기 전인 삼일 동안, 무덤 속 몸을 떠난 주님의 영과 마음은 친히 음부에서 삼일 동안 줄곧 대형의 영원한 형벌을 받고 계셨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죽음 이후는 시공간의 제한이 없기에 음부에서 택자가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주님이 찰나와 같이 순간적으로 다 받으셨는데 실제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삼일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처럼 보인 것입니까?
2020-09-02 어제 삼일밤 예배 설교의 일부를 적어 봅니다.
11분16초 ... 그런데 요나가 삼일 삼야, 삼일 밤낮을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고건 잡아 먹은 짐승 속에 있으니 요나로서는 끝났습니다. 삼일 밤낮이면 주님이 우리 죄 때문에 삼일 밤낮을 십자가에 죽으시고 금요일, 그 다음날 토요일, 그 다음 안식 후 첫날, 오늘 주일에 부활하셨으니 여기 요나의 삼일이 바로 오실 주님이 요나를 구원할 삼일이고 오늘 우리를 구원할 삼일입니다.
12분08초 ... 하나님과 반대되는 요소는 무조건 생지옥이다. 그러나 택자,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맞선 선악과 먹은 첫 죄, 인류 역사에 내려온 모든 죄, 내가 태어나며 오늘까지 지은 모든 죄,
12분27초 ... 택자의 모든 죄는 있는 대로 주님이 다 삼일, 음부에서 해결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 모든 죄가 죄로 끝나고 사망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새롭게 살아갈 새날, 새소망, 새생명의 기회가 되고 출발이 되어집니다.
‘택자의 모든 죄는 있는 대로 주님이 다 삼일 동안 음부에서 해결을 하셨다’는 대목에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기 전인 삼일 동안, 무덤 속 몸을 떠난 주님의 영과 마음은 친히 음부에서 삼일 동안 줄곧 대형의 영원한 형벌을 받고 계셨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죽음 이후는 시공간의 제한이 없기에 음부에서 택자가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주님이 찰나와 같이 순간적으로 다 받으셨는데 실제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삼일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처럼 보인 것입니까?
'주님의 십자가 죽으신 이후 3일과 음부의 형벌'에 대하여 몇 차례에 걸쳐서 논의가 있었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으로 압니다. 저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점은 보충해주시기 바랍니다.
(장사한지 삼일)
첫번째 정리. 죽음 이후는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음부에서 택자가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순간에 (죽으심과 동시에) 다 받으신 것이고, 3일이라는 숫자는 완전히 죽었다고 하는 인간의 표시일 뿐이다.
두번째 정리, 아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은 대속 완성의 과정이 아니라 결론을 말씀하신 것이다. 구원의 실패는 육신을 입고 있을 때 결정되는 것이지 죽음 이후 영계에는 변동이 없다. 대속으로 인하여 지옥의 고통은 영계의 고통이므로 하루 이틀 삼일이라는 인간의 숫자에 제한시킬 수 없지만 그렇다고 첫번째 정리처럼 순간적으로 받으셨다고 정리하기에는 백목사님의 설교록 내용이나 성구적으로 맞지 않아보인다. 따라서 장사한지 삼일의 삼일이란 말씀은 표현은 인간의 시공의 개념이나 시공을 초월한 내용을 말하고 있으며 실제 죽으신 후 삼일동안 주님은 음부에서 형벌을 받으셨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
(장사한지 삼일)
첫번째 정리. 죽음 이후는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음부에서 택자가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순간에 (죽으심과 동시에) 다 받으신 것이고, 3일이라는 숫자는 완전히 죽었다고 하는 인간의 표시일 뿐이다.
두번째 정리, 아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은 대속 완성의 과정이 아니라 결론을 말씀하신 것이다. 구원의 실패는 육신을 입고 있을 때 결정되는 것이지 죽음 이후 영계에는 변동이 없다. 대속으로 인하여 지옥의 고통은 영계의 고통이므로 하루 이틀 삼일이라는 인간의 숫자에 제한시킬 수 없지만 그렇다고 첫번째 정리처럼 순간적으로 받으셨다고 정리하기에는 백목사님의 설교록 내용이나 성구적으로 맞지 않아보인다. 따라서 장사한지 삼일의 삼일이란 말씀은 표현은 인간의 시공의 개념이나 시공을 초월한 내용을 말하고 있으며 실제 죽으신 후 삼일동안 주님은 음부에서 형벌을 받으셨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
저는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한자리에서 들어도 기억이나 정리는 제각각 조금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부족한 점은 보충해 주시고 각자 정리된 글을 서로 나누어 보고 비교해 보면 연구소 연구 차원에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집을 건축하는 데는 단 며칠이면 다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도 뚝딱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끼 고양이를 큰 고양이로 만들려면 한 달이면 한달, 꼭 시간이 걸립니다 집을 건축하는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대로 빨리 안 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생명이 있어 그렇습니다 기계적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길러야 그 생명이 보존되기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신앙 자유를 포함한 생명성의 원리는 창조 역사에서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능력으로는 단 몇초만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려야 건설이 되어지는, 인간 세계의 시간 흐름을 거스리지 않으시고 시간 법칙이라는 그 속에 생명을 길러야 하는 자유성의 원리를 함께 집어 넣어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이런 구원 도리를 가르치고자 하신 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법에 본인 스스로 맞추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 이후 부활 전까지 삼일 동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음부에서 지옥 형벌을 순간적으로 다 받으시고 죽으신 그날 부활하실 수도 있지만 삼일 기간 동안 음부 중에 계심으로 우리 택자가 받을 죄벌이 얼마나 중한가 느껴 보라고 또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도 5시간 이상 고통을 당하셨듯 죽음 이후 음부에서의 영원한 속죄인 대형의 형벌 기간이 살아 생전 육체의 고통시간 이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생명이 자랄려면 시간이 걸리듯 무한한 대형의 사죄도 삼일이라는 시간이 걸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밥을 하더라도 30분, 밥을 다 먹고 설겆이를 하더라도 30분, 양치질을 하더라도 3분이라는 시간은 걸립니다 .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의 삼일은 지금 우리에게 회개하는데도 시간이 걸림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회개 기도는 순간에도 가능하지만 똑같은 현실이 왔을 때도 유혹을 이겨야만 온전한 회개가 되는데 우리 신앙 걸음은 항상 보면 늘 갈'지'자 걸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회개가 바로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기까지 오래 참으시는 기간이 삼일인 것 같습니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다 보면 못 고칠 악습도 없겠습니다 삼일삼야 음부(스올)와 같은 환경인 큰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하던 그 기간을 요나가 다시금 생각할 때, 주님의 삼일 지옥 형벌이라는 그 고통 기간을 되새길 때, 부모님이 날 위해 삼년 동안 똥기저기 갈며 고생하시던 그 기간을 묵상할 때, 또한 내가 부모가 되어 자녀를 똑같이 뒷바라지하는 그 기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부모님의 은혜와 주님의 은혜에 진정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요나가 삼일 삼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을 몸소 체험함과 동시에 주님의 삼일간 음부의 무한한 형벌을 직간접으로 느끼며 사활 대속의 은혜에 깊이 잠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중심의 철저한 회개가 능력이 되어 요나3장에 그렇게 강퍅했던 니느웨 사람들이 하루만에 회개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서 4장에서 시기 질투하며 첫째 아들로 다시 돌아간 게 문제지만 말입니다. 평생 고쳐야 할 악습을 주님의 죽음후 삼일 안에 다 담아 주셨으니 사활간 삼일만 제대로 알아도 세월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점은 보충해 주시고 각자 정리된 글을 서로 나누어 보고 비교해 보면 연구소 연구 차원에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집을 건축하는 데는 단 며칠이면 다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도 뚝딱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끼 고양이를 큰 고양이로 만들려면 한 달이면 한달, 꼭 시간이 걸립니다 집을 건축하는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대로 빨리 안 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생명이 있어 그렇습니다 기계적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길러야 그 생명이 보존되기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신앙 자유를 포함한 생명성의 원리는 창조 역사에서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능력으로는 단 몇초만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려야 건설이 되어지는, 인간 세계의 시간 흐름을 거스리지 않으시고 시간 법칙이라는 그 속에 생명을 길러야 하는 자유성의 원리를 함께 집어 넣어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이런 구원 도리를 가르치고자 하신 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법에 본인 스스로 맞추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 이후 부활 전까지 삼일 동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음부에서 지옥 형벌을 순간적으로 다 받으시고 죽으신 그날 부활하실 수도 있지만 삼일 기간 동안 음부 중에 계심으로 우리 택자가 받을 죄벌이 얼마나 중한가 느껴 보라고 또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도 5시간 이상 고통을 당하셨듯 죽음 이후 음부에서의 영원한 속죄인 대형의 형벌 기간이 살아 생전 육체의 고통시간 이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생명이 자랄려면 시간이 걸리듯 무한한 대형의 사죄도 삼일이라는 시간이 걸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밥을 하더라도 30분, 밥을 다 먹고 설겆이를 하더라도 30분, 양치질을 하더라도 3분이라는 시간은 걸립니다 .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의 삼일은 지금 우리에게 회개하는데도 시간이 걸림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회개 기도는 순간에도 가능하지만 똑같은 현실이 왔을 때도 유혹을 이겨야만 온전한 회개가 되는데 우리 신앙 걸음은 항상 보면 늘 갈'지'자 걸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회개가 바로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기까지 오래 참으시는 기간이 삼일인 것 같습니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다 보면 못 고칠 악습도 없겠습니다 삼일삼야 음부(스올)와 같은 환경인 큰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하던 그 기간을 요나가 다시금 생각할 때, 주님의 삼일 지옥 형벌이라는 그 고통 기간을 되새길 때, 부모님이 날 위해 삼년 동안 똥기저기 갈며 고생하시던 그 기간을 묵상할 때, 또한 내가 부모가 되어 자녀를 똑같이 뒷바라지하는 그 기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부모님의 은혜와 주님의 은혜에 진정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요나가 삼일 삼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을 몸소 체험함과 동시에 주님의 삼일간 음부의 무한한 형벌을 직간접으로 느끼며 사활 대속의 은혜에 깊이 잠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중심의 철저한 회개가 능력이 되어 요나3장에 그렇게 강퍅했던 니느웨 사람들이 하루만에 회개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서 4장에서 시기 질투하며 첫째 아들로 다시 돌아간 게 문제지만 말입니다. 평생 고쳐야 할 악습을 주님의 죽음후 삼일 안에 다 담아 주셨으니 사활간 삼일만 제대로 알아도 세월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개가 바로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기까지 주님이 오래 참으시는 기간이 삼일인 것 같습니다” 요나가 회개한 기간이 삼일 삼야였습니다. 삼일 동안 제대로 회개하니 큰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 냈습니다. 이제 시키신 대로 가서 말씀을 선포할 때 그 큰 성읍 니느웨 전체가 회개를 했습니다. 요나에게는 삼일의 의미가 회개의 기간이었지만 주님에게는 대속의 형벌중이었습니다. 요나서 2장 물고기 뱃속에서는 요나가 회개했지만 요나서 4장 박 넝쿨 밑에서는 또다시 성냄으로 회개가 필요한 교만한 요나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삼일을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하고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했던 자신의 지난 삼일 삼야를 또 한번 생각해 봐야 하기에 주님이 오래 참으시는 기간의 의미를 삼일이라는 시간 속에 담아 봤습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회개하다가 또 강퍅을 반복하는 인생이니 그럴 때마다 요나의 물고기 뱃속 삼일과 주님의 음부 삼일 고통으로 돌아가 봐야만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다 보면 못 고칠 악습도 없겠습니다” 작심한 것을 삼일만에 포기하기가 쉬운데 포기하고 싶은 때마다 주님의 삼일을 생각하며 또 삼일만 더 해보다 보면 시간 문제지 악습도 다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대속 없는 작심삼일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처럼 허무하게 끝이 나지만 삼일간 대속이 원인되어 움직이면 작심삼일만 하더라도 악습을 고칠 수 있는 종자는 충분히 된다 생각하며 삼년이 걸리는 악습이면 중간에 넘어지더라도 대속이 동기가 되어 작심삼일한 그것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 결국엔 심각한 악습도 고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위 글은 아래 설교를 듣고 나름 생각된 바를 적었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일 뿐입니다.
남들은 평소 설교를 어떻게 들었는지 물어보고 답변해 보고 싶은 정도에서 적은 글에 불과합니다.
아래 설교는 연구 차원에서 올립니다. 출처는 백영희 목회 연구소입니다.
퍼온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과 견해이며 본 연구소와는 무관합니다.
<a href="https://www.younghiepaik.com/main.php"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www.younghiepaik.com/main.php</a>
1980. 2. 26. 화요일 새벽 (본문 : 베드로전서 5:6)
1982. 3. 21. 주일오전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3절 - 34절)
* 축소
“작심삼일을 반복하다 보면 못 고칠 악습도 없겠습니다” 작심한 것을 삼일만에 포기하기가 쉬운데 포기하고 싶은 때마다 주님의 삼일을 생각하며 또 삼일만 더 해보다 보면 시간 문제지 악습도 다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대속 없는 작심삼일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처럼 허무하게 끝이 나지만 삼일간 대속이 원인되어 움직이면 작심삼일만 하더라도 악습을 고칠 수 있는 종자는 충분히 된다 생각하며 삼년이 걸리는 악습이면 중간에 넘어지더라도 대속이 동기가 되어 작심삼일한 그것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 결국엔 심각한 악습도 고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위 글은 아래 설교를 듣고 나름 생각된 바를 적었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일 뿐입니다.
남들은 평소 설교를 어떻게 들었는지 물어보고 답변해 보고 싶은 정도에서 적은 글에 불과합니다.
아래 설교는 연구 차원에서 올립니다. 출처는 백영희 목회 연구소입니다.
퍼온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과 견해이며 본 연구소와는 무관합니다.
<a href="https://www.younghiepaik.com/main.php"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www.younghiepaik.com/main.php</a>
1980. 2. 26. 화요일 새벽 (본문 : 베드로전서 5:6)
1982. 3. 21. 주일오전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3절 - 34절)
* 축소
담당 9님의 질문에 답변을 하다 보니 설교록 인용까지 되었습니다 본 연구소에 혹 누가 될까 누군가 지나치게 생각할까 하여 담당 9님이 보셨다면 제 글은 비공개로 전환하셔도 되겠습니다.
예. 설교록 인용은 축소하고 설교록 날짜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삼일'에 대하여 전체적인 해석의 방향과 의미는 공감하나, 삼일을 완전히 시공의 기간으로 확정하는 것에는 '사후 오늘'이라는 눅 23:43절 성구와 상충됩니다.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하여 예전에 한번 깊은 토론과 글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함께 이전과 중복되는 부분은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하면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이 자리는 소개하고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토론하는 자리이므로 형편에 맞도록, 그리고 회원B님과 보다 편안하게 토론하하도록 '담당'이라는 이름은 내려놓고 '부공3회원'의 이름으로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삼일'에 대하여 전체적인 해석의 방향과 의미는 공감하나, 삼일을 완전히 시공의 기간으로 확정하는 것에는 '사후 오늘'이라는 눅 23:43절 성구와 상충됩니다.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하여 예전에 한번 깊은 토론과 글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함께 이전과 중복되는 부분은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하면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이 자리는 소개하고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토론하는 자리이므로 형편에 맞도록, 그리고 회원B님과 보다 편안하게 토론하하도록 '담당'이라는 이름은 내려놓고 '부공3회원'의 이름으로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누가복음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죽으면 죽으신 그날이 금요일 오늘, 예수님이 행악자와 함께 부활 전까지 삼일동안 낙원에 가 계신다는 말씀인가? 사후 오늘 주님이 낙원에 가 계시기에 음부에 삼일간 가 계신다는 말씀과는 서로 상충된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바로 이해했다면 음부 삼일간 계신 것을 수정하든지 아니면 사후 오늘부터 삼일간 낙원에 계신 것을 다른 각도로 해석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구 과정이라 단정은 없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다 보니 표현상 서툰 점은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행악자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그 말을 듣고서 그 때부터 죽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이룰 구원을 얼마나 많이 단번에 이루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라도 오직 주님 생각 뿐, 오직 낙원 생각 뿐이지 세상 고민이나 세상 욕망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죽어가는 이 순간에도 옆에 달리신 주님과 함께 하고 있음에 기쁘고 죄사함 받은 택자로서 낙원에 갈 생각을 하니 무한한 감사가 될 것 같습니다. 몸은 십자가에 달려 힘들지만 마음만은 이미 낙원에 가서 주님과 손잡고 동거동행하는 모습을 마음판에 새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죽어도 오늘입니다. 죽음 직후인 대략 오후3시부터 그날 24시까지를 오늘이라 정의해 본다면, 죽음 직후 행악자는 낙원에 가 있을 것입니다. 낙원에 가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주님과 동하고 정하며 주님 모시고 살며 우주 종말의 재림과 자신의 몸의 부활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릴 것 같습니다. 낙원에서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 모시고 살며 행악자 본인으로서는 - 생각상으로 - ‘주님과 함께’ 재림을 기다리는 그 모습을 두고, ‘사후 오늘의 그 모습’을 미리 앞당겨 예수님이 생전에 표현하시기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닌가?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죽으신 직후인 금요일인 사후 오늘에 예수님이 낙원에 가셔서 부활전까지 쭈욱 거기서만 계셨다고 한다면 아래 설교 말씀과는 상충되는 것 같아(제가 설교록을 곡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저는 누가복음23:43절의 사후 오늘을 위와 같이 해석해 봤습니다. 똑같은 중복으로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성장 과정 중 1살 때와 1살 6개월 때의 아주 미묘한 차이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870614주전 이 지극히 큰 화친의 구원을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그 이루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루셨는데 그 죽으심은 언제까지 죽으셨느냐 하면 늘 당신이 희생하신 것은 계속 희생을 하셨고 이제 마지막으로 희생하는 그 죽으심은 금요일날부터 죽으시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까지 죽으심 속에 음부 아래 계셔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다. 출처: 백영희목회연구소(부산)
871030금새
주님의 사랑이 어데까지 깊은가? 저 지옥 밑층에 저 끝에도 주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 거기 가 가지고 있어. 당신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거게까지 가셨어. 지옥 밑층까지 가셨어. 가셔 가지고 나를 거게서 건져 냈어. 주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 이것보다 시간적으로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시간적으로 지옥 밑층까지 가셔서 얼마동안 계셨는가? 금요일만? 아니면 금요일부터 토요일 자정까지?) 출처: 백영희목회연구소(부산)
삼일동안 순간음부, 낙원계속 인가? 아니면 음부계속, 낙원그후 인가? 아무리 연구하고 고민해 봐도 제 개인적으로 확정은 안됩니다. 제 속에 인간 지식이 가득 차 있으니 성경의 성구 해석도 설교록 해석도 단어 하나까지 알아 듣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자기 중심의 고집을 꺾고 바로 깨달을 나이가 찰 때까지는 제게 반대 지식을 가르치시기 위한 숙제로 남겨 두신 게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질문하며 답변을 들으며 글 대화를 통해 제 속에 무지와 관철의 악습을 고칠 수 있는 이런 공간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죽으면 죽으신 그날이 금요일 오늘, 예수님이 행악자와 함께 부활 전까지 삼일동안 낙원에 가 계신다는 말씀인가? 사후 오늘 주님이 낙원에 가 계시기에 음부에 삼일간 가 계신다는 말씀과는 서로 상충된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바로 이해했다면 음부 삼일간 계신 것을 수정하든지 아니면 사후 오늘부터 삼일간 낙원에 계신 것을 다른 각도로 해석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구 과정이라 단정은 없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다 보니 표현상 서툰 점은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행악자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그 말을 듣고서 그 때부터 죽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이룰 구원을 얼마나 많이 단번에 이루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라도 오직 주님 생각 뿐, 오직 낙원 생각 뿐이지 세상 고민이나 세상 욕망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죽어가는 이 순간에도 옆에 달리신 주님과 함께 하고 있음에 기쁘고 죄사함 받은 택자로서 낙원에 갈 생각을 하니 무한한 감사가 될 것 같습니다. 몸은 십자가에 달려 힘들지만 마음만은 이미 낙원에 가서 주님과 손잡고 동거동행하는 모습을 마음판에 새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죽어도 오늘입니다. 죽음 직후인 대략 오후3시부터 그날 24시까지를 오늘이라 정의해 본다면, 죽음 직후 행악자는 낙원에 가 있을 것입니다. 낙원에 가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주님과 동하고 정하며 주님 모시고 살며 우주 종말의 재림과 자신의 몸의 부활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릴 것 같습니다. 낙원에서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 모시고 살며 행악자 본인으로서는 - 생각상으로 - ‘주님과 함께’ 재림을 기다리는 그 모습을 두고, ‘사후 오늘의 그 모습’을 미리 앞당겨 예수님이 생전에 표현하시기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닌가?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죽으신 직후인 금요일인 사후 오늘에 예수님이 낙원에 가셔서 부활전까지 쭈욱 거기서만 계셨다고 한다면 아래 설교 말씀과는 상충되는 것 같아(제가 설교록을 곡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저는 누가복음23:43절의 사후 오늘을 위와 같이 해석해 봤습니다. 똑같은 중복으로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성장 과정 중 1살 때와 1살 6개월 때의 아주 미묘한 차이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870614주전 이 지극히 큰 화친의 구원을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그 이루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루셨는데 그 죽으심은 언제까지 죽으셨느냐 하면 늘 당신이 희생하신 것은 계속 희생을 하셨고 이제 마지막으로 희생하는 그 죽으심은 금요일날부터 죽으시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까지 죽으심 속에 음부 아래 계셔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다. 출처: 백영희목회연구소(부산)
871030금새
주님의 사랑이 어데까지 깊은가? 저 지옥 밑층에 저 끝에도 주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 거기 가 가지고 있어. 당신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거게까지 가셨어. 지옥 밑층까지 가셨어. 가셔 가지고 나를 거게서 건져 냈어. 주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 이것보다 시간적으로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시간적으로 지옥 밑층까지 가셔서 얼마동안 계셨는가? 금요일만? 아니면 금요일부터 토요일 자정까지?) 출처: 백영희목회연구소(부산)
삼일동안 순간음부, 낙원계속 인가? 아니면 음부계속, 낙원그후 인가? 아무리 연구하고 고민해 봐도 제 개인적으로 확정은 안됩니다. 제 속에 인간 지식이 가득 차 있으니 성경의 성구 해석도 설교록 해석도 단어 하나까지 알아 듣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자기 중심의 고집을 꺾고 바로 깨달을 나이가 찰 때까지는 제게 반대 지식을 가르치시기 위한 숙제로 남겨 두신 게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질문하며 답변을 들으며 글 대화를 통해 제 속에 무지와 관철의 악습을 고칠 수 있는 이런 공간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귀를 제대로 못 알아 듣거나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하는 습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21:21-23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요한복음21:21-23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회원B님의 말씀대로 십자가 상에서 주님과의 동행의 순간을 말씀하신 것이라면 현재형이라야 하는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는 현재형이 아니고 미래형입니다. 사후 '삼일'은 해석이 아니라 반드시 실제적 삼일이라야 되고, 미래형으로 적힌 함께 있으리라의 '오늘'은 실제가 아니라 뜻으로 해석을 해야 되는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함께 연구 과제로 삼고 연구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겸손한 말씀은 이제 조금 줄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부족합니다. 더 나아지고 하는 소망만 붙들고 함께 성경을 연구하고자 하오니, 같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겸손한 말씀은 이제 조금 줄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부족합니다. 더 나아지고 하는 소망만 붙들고 함께 성경을 연구하고자 하오니, 같은 마음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전까지, 낙원에 가신 것은 너무 당연하게 믿어 왔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도 명백하고...2000년 기독교 모두 그렇게 믿어왔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만약에 3공회가 예수님이 낙원에 안가셨다고 교리적으로 믿는다면..저는 3공회를 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도 안되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당연한교리이고...모든 교파가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인데...이 부분을 가지고 백목사님설교록에 온갖 논리가 다 나오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약에 3공회가 예수님이 낙원에 안가셨다고 교리적으로 믿는다면..저는 3공회를 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도 안되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당연한교리이고...모든 교파가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인데...이 부분을 가지고 백목사님설교록에 온갖 논리가 다 나오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저도 실수 많은 사람인지라 종종 오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3공회교인님의 폭넖은 이해를 구합니다.
오판이 아니라...의도를 가지고 계속 대화하고 있는것이 아닌지?
객관에 확신이 없으면 독립 신앙을 가질 수 없고
확신에 객관이 없으면 자기 주관으로 흘러가서 결국 헛일이 됩니다.
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 평생 믿는 사람의 숙제이고 시행착오는 누구나 있는 것입니다.
회원B님은 설교록에 입각하여 깊은 공회신앙을 지니고 있는 귀한 분이고, 다만 십자가 사후 '삼일'에 대하여 확실히 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문을 닫아 걸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분도 아니고 도리어 너무 조심하여 줄여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함께 찾고 있었고 너무 간절하다보니 표현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3공회 교인님께서도 너무 극단적인 말씀은 조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객관의 세계를 연구하는데 함께 마음을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확신에 객관이 없으면 자기 주관으로 흘러가서 결국 헛일이 됩니다.
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 평생 믿는 사람의 숙제이고 시행착오는 누구나 있는 것입니다.
회원B님은 설교록에 입각하여 깊은 공회신앙을 지니고 있는 귀한 분이고, 다만 십자가 사후 '삼일'에 대하여 확실히 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문을 닫아 걸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분도 아니고 도리어 너무 조심하여 줄여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함께 찾고 있었고 너무 간절하다보니 표현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3공회 교인님께서도 너무 극단적인 말씀은 조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객관의 세계를 연구하는데 함께 마음을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낙원에 계셨다는것은 객관이 아닌지? 초신자라면 의문을 가질 수 있겠으나...
이 부분 가지고 백목사님설교록을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자체가...
일반교단도 다 아는 내용인데...
이 부분 가지고 백목사님설교록을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자체가...
일반교단도 다 아는 내용인데...
공회 안에는 일반 교단과 비교할 수 없는 요소가 많습니다. 공회의 교리는 깊기 때문에 일반교단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오해하기 딱 좋은 내용들도 있습니다. 틀리거나 다른게 아니라, 깊이 차이입니다. 그러니 일반교단을 기준으로 공회인을 판단하시는 것은 삼가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만 성경이 아니고,
우리가 알다시피 주님의 대속의 수고를 상징하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이 성구도 성경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삼일동안 음부에서 택자의 지옥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 동시성과 이에 따른 합당한 해석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이 문제는 깊이 고민해볼 문제가 맞습니다.
또한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만 성경이 아니고,
우리가 알다시피 주님의 대속의 수고를 상징하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이 성구도 성경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삼일동안 음부에서 택자의 지옥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 동시성과 이에 따른 합당한 해석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이 문제는 깊이 고민해볼 문제가 맞습니다.
제 말을 오해 하신 것 같은데...
일반교단에서 삼위일체를 믿고...신앙생활하다 공회에 들어왔는데
누군가 백목사님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설교를 하셨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논리를 말한다면...
어느누가 이상하게 생각을 안하겠습니까?
공회교리가 깊은것과...일반교단에서도 당연히 믿고있는것을 부정하는건...다른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낙원에 계셨던것은 너무 당연한 내용이고
최소15년전부터 믿고 있었는데
공회교인분이 백목사님은 예수님이 낙원에 안계셨다고
주장했다고 이야기 하면
저보고 어떻하라는 겁니까?
일반교단에서 삼위일체를 믿고...신앙생활하다 공회에 들어왔는데
누군가 백목사님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설교를 하셨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논리를 말한다면...
어느누가 이상하게 생각을 안하겠습니까?
공회교리가 깊은것과...일반교단에서도 당연히 믿고있는것을 부정하는건...다른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낙원에 계셨던것은 너무 당연한 내용이고
최소15년전부터 믿고 있었는데
공회교인분이 백목사님은 예수님이 낙원에 안계셨다고
주장했다고 이야기 하면
저보고 어떻하라는 겁니까?
충분히 설명을 드렸음에도.
주님이 죽으시고 낙원에 계셨다는 것만이 진리라고 계속 이렇게 역정을 내신다면, 사흘 밤낮 땅속에 계셨다는 성구도 똑같이 진리로 상대하셔야 합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주님이 땅 속에 계셨다는 뜻을 주님의 육신이 땅에 묻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어 땅에 묻힌 것은 주님의 육신이나 육신을 말함이 아니고, 땅 속이란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말하는데, 이 권세 아래 음부에서 택자의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는 대속의 고통을 당하셨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죽으시고 낙원에만 계신 줄 알았는데 삼일동안 낙원에도 계시고, 땅 속에도 계시고, 음부에도 계셨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그러니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자라고 깊어지면서 이치를 찾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연구해볼 일입니다. 그 과정에 약간 과격한 표현은 일반 교단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고 깊어져가는 약간의 성장통이라고 보이는데, 이것을 오해신 것 같습니다. 두 번 오해할 일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낙원에 계셨다는 것만이 진리라고 계속 이렇게 역정을 내신다면, 사흘 밤낮 땅속에 계셨다는 성구도 똑같이 진리로 상대하셔야 합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주님이 땅 속에 계셨다는 뜻을 주님의 육신이 땅에 묻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어 땅에 묻힌 것은 주님의 육신이나 육신을 말함이 아니고, 땅 속이란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말하는데, 이 권세 아래 음부에서 택자의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는 대속의 고통을 당하셨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죽으시고 낙원에만 계신 줄 알았는데 삼일동안 낙원에도 계시고, 땅 속에도 계시고, 음부에도 계셨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그러니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자라고 깊어지면서 이치를 찾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연구해볼 일입니다. 그 과정에 약간 과격한 표현은 일반 교단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고 깊어져가는 약간의 성장통이라고 보이는데, 이것을 오해신 것 같습니다. 두 번 오해할 일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제 글에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해 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전까지 낙원에만 계셨다고(제가 알기로는 거의 모든 기독교가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음부에 내려가셨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가 이단이야기 까지 나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낙원에 가셨다는 일반교단에선 너무 당연한 신앙이고..회원님이 이야기 하신 `마12:40`은 당연히
주님의 죽음을 강조한 표현이지..실제 주님이 음부에 가셨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주님이 낙원에만 계셨다고..역정을 내었기보다는(제가 감정이 들어간 면은 있는것 같습니다.)
일반교단에서 너무 당연히 믿고 있는것을...백목사님은 부정했다고 이야기 하는것처럼 저는 느꼈습니다.
(두서가 없네요 이해바랍니다)
현재 문제제기를 한 분은 제가 느끼기로...`백목사님은 예수님은 음부에만 가셨고 예수님은 낙원에 안가셨다`
라고 주장을 하시는 것 같은데...제 생각이 맞는지?
그렇다면 저는 제 입장에선 문제를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전까지 낙원에만 계셨다고(제가 알기로는 거의 모든 기독교가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음부에 내려가셨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가 이단이야기 까지 나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낙원에 가셨다는 일반교단에선 너무 당연한 신앙이고..회원님이 이야기 하신 `마12:40`은 당연히
주님의 죽음을 강조한 표현이지..실제 주님이 음부에 가셨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주님이 낙원에만 계셨다고..역정을 내었기보다는(제가 감정이 들어간 면은 있는것 같습니다.)
일반교단에서 너무 당연히 믿고 있는것을...백목사님은 부정했다고 이야기 하는것처럼 저는 느꼈습니다.
(두서가 없네요 이해바랍니다)
현재 문제제기를 한 분은 제가 느끼기로...`백목사님은 예수님은 음부에만 가셨고 예수님은 낙원에 안가셨다`
라고 주장을 하시는 것 같은데...제 생각이 맞는지?
그렇다면 저는 제 입장에선 문제를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이 낙원에 가셨는데..음부에도 가신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
로 이야기 한다면 저도 전적으로 수용을 합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선...예수님이 음부에 가셨다는 이치와 근거구절이 있다해서, 예수님이 낙원에 가신것을
부정한다면...저는 강하게 반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로 이야기 한다면 저도 전적으로 수용을 합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선...예수님이 음부에 가셨다는 이치와 근거구절이 있다해서, 예수님이 낙원에 가신것을
부정한다면...저는 강하게 반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설교록에 예수님이 삼일동안 낙원에 계셨다는 설교는 아직 제가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백목사님이 '삼일동안 주님이 낙원에는 안가셨다고 말했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일날 새벽까지 음부 아래 계셔서 우리를 대속하셨다는 이 부분에서 금요일 죽으시고 주일 새벽까지는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대신 형벌 받는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대속을 하는 중에 계셨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지옥 밑층까지 가셔 가지고 나를 거게서 건져 냈어 라는 설교를 통해 분명 주님이 지옥 밑층인 음부로 가셔서 우리를 대속하셨다는 사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저는 죽음 후 삼일동안 주님이 낙원에는 안 가셨고
음부에서만 삼일동안 계시면서 대신 형벌을 받으며 대속을 하고 계신 것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은 행악자 입장에서 표현하신 내용 같습니다.
즉 행악자가 죽어 낙원에 가면 주님만 모시고 주님만 생각하는 그 모습을 두고 주님이 표현하시기를
"너가 낙원에 가면 나만 좋다고 나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니 그것이 곧 나와 함께 낙원에 있는 것이다"로 깨닫습니다.
순간이든 아니든 '음부에도 계셨고 낙원에도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음부에서만 삼일동안 계셨다'로 정리합니다.
'죽으심으로 사죄'에서 그 죽으심의 시작이 십자가에서 목숨이 끊어진 순간부터가 죽음의 시작점이고
삼일동안 음부에서 대속 중으로 주일 새벽 부활하기 전까지를 죽으심의 마지막 시점이라 본다면
그 죽으심의 삼일 기간 동안 주님이 우리 대신 형벌을 받고 계셨다면 음부가 맞겠는가? 낙원이 맞겠는가?
제 주관은 이러한데 지금부터는 여러 다양한 독자분들의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을 듣겠습니다.
문답방답게 많은 분들의 생각과 대화가 오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10사람이 모이면 10사람 생각이 조금씩 다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자이크를 다들 한 조각씩 가지고 계셔서 10조각이 모여야 작품이 완성되기도 하더군요.
그렇다고 백목사님이 '삼일동안 주님이 낙원에는 안가셨다고 말했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일날 새벽까지 음부 아래 계셔서 우리를 대속하셨다는 이 부분에서 금요일 죽으시고 주일 새벽까지는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대신 형벌 받는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대속을 하는 중에 계셨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지옥 밑층까지 가셔 가지고 나를 거게서 건져 냈어 라는 설교를 통해 분명 주님이 지옥 밑층인 음부로 가셔서 우리를 대속하셨다는 사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저는 죽음 후 삼일동안 주님이 낙원에는 안 가셨고
음부에서만 삼일동안 계시면서 대신 형벌을 받으며 대속을 하고 계신 것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은 행악자 입장에서 표현하신 내용 같습니다.
즉 행악자가 죽어 낙원에 가면 주님만 모시고 주님만 생각하는 그 모습을 두고 주님이 표현하시기를
"너가 낙원에 가면 나만 좋다고 나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니 그것이 곧 나와 함께 낙원에 있는 것이다"로 깨닫습니다.
순간이든 아니든 '음부에도 계셨고 낙원에도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음부에서만 삼일동안 계셨다'로 정리합니다.
'죽으심으로 사죄'에서 그 죽으심의 시작이 십자가에서 목숨이 끊어진 순간부터가 죽음의 시작점이고
삼일동안 음부에서 대속 중으로 주일 새벽 부활하기 전까지를 죽으심의 마지막 시점이라 본다면
그 죽으심의 삼일 기간 동안 주님이 우리 대신 형벌을 받고 계셨다면 음부가 맞겠는가? 낙원이 맞겠는가?
제 주관은 이러한데 지금부터는 여러 다양한 독자분들의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을 듣겠습니다.
문답방답게 많은 분들의 생각과 대화가 오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10사람이 모이면 10사람 생각이 조금씩 다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자이크를 다들 한 조각씩 가지고 계셔서 10조각이 모여야 작품이 완성되기도 하더군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성구 수정:2020-09-07 6:52) 이 성구 하나만 깊이 파다가 믿는 사람에게 장차 돌아갈 신령 천국은 없고 천국은 이 땅 위에 내려왔다고 극단적인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한 수많은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돌아갈 본향 천국은 전제해두고 다른 측면으로 말씀하신 것들을 다들 오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2천년 기독교 교리사적으로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낙원'으로 가셨다고 보는 것이 정통입니다. 백 목사님께서도 이 정통 위에 또 다른 건설구원의 해석을 덧붙이신 것이지 이 토대를 허물어버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기본 생각을 반대로 하고 계신 것 같아서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과거 문의답변에서 2가지 참고 자료를 올려드리니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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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9:27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 때문에 제자들은 모두가 죽는 날까지 자기들 생전에 주님이 다시 오실까 하여 기다렸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말씀 때문에 성경은 과장이 많고 거짓이 많다 합니다.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는 하지 말고,
우주적 말세 - 주님이 오셔서 세상을 전부 불태우고 우주의 마지막이 되는 모두의 최종 말세
개인적 말세 - 한 개인이 죽으면 주님을 직접 바로 만나게 되니 세상은 있고 자기만 말세
시대적 말세 - 노아 홍수나 신사참배처럼 한 시대를 마감하는 주님의 최종 심판인 사건적 말세
신구약 말세 - 구약 전체를 두고 볼 때 주님이 오셔서 열리게 된 신약은 구약에 대하여 말세
성경은 이렇게 말세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말씀합니다. 한 가지만 가지고 알면 혼란스럽습니다.
말세가 그러하듯이 '천국' '하나님의 나라' '낙원'과 같은 표현도 장소적으로도 그리 사용 되나
내용적 실질적으로 하나님과 다시는 끊어 짐이 없고 영원히 하나 되는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든 설교 내용에서 강도에게 말씀하신 낙원을 잘못 오해하면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그런
낙원이 따로 없는 것처럼 들리기 쉬운데 그 말이 아니라 한 강도가 비록 십자가에 매달렸지만
그 사망의 견딜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주님을 모신 그 강도의 마음은 그 날부터 영원히 주님과
동거동행하는 상태가 시작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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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흘 동안 '형벌 받으셨다'라고만 되어 있고 어디에서 어떤 형벌을 받으셨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답변)
2015-09-14 15:37:43 연구부
인성은 음부, 신성은 낙원
1. 예수님의 몸은 예루살렘 주변의 묘실
시체를 싸서 묘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예수님의 몸은 당연히 3일 동안 예루살렘 주변의 '요셉'의 묘에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의 마음과 영은 음부
예수님의 마음과 영은 3일동안 음부에서 우리가 받을 영원한 지옥형벌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니 3일동안 예수님은 음부에 계셨습니다.
3. 예수님의 신성은 낙원에도
다만 예수님의 신성은 이 땅 위에서도 그 인성의 고난에 자원함으로 동참했듯이 몸이 죽은 후 음부의 3일동안의 고난에도 동참하되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또 음부에서 받는 그 고난이 우리의 낙원을 열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구원면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두고 또 예수님의 구원전개의 범위를 두고 예수님은 눅23:43에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서 십자가에 달린 분도 예수님의 몸이셨고 강도에게 그 말씀을 하신 분도 예수님의 몸 중에서 '입'인데 그 몸과 그 입은 그 날 낙원에 계시지 않고 요셉이 판 묘에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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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9:27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 때문에 제자들은 모두가 죽는 날까지 자기들 생전에 주님이 다시 오실까 하여 기다렸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말씀 때문에 성경은 과장이 많고 거짓이 많다 합니다.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는 하지 말고,
우주적 말세 - 주님이 오셔서 세상을 전부 불태우고 우주의 마지막이 되는 모두의 최종 말세
개인적 말세 - 한 개인이 죽으면 주님을 직접 바로 만나게 되니 세상은 있고 자기만 말세
시대적 말세 - 노아 홍수나 신사참배처럼 한 시대를 마감하는 주님의 최종 심판인 사건적 말세
신구약 말세 - 구약 전체를 두고 볼 때 주님이 오셔서 열리게 된 신약은 구약에 대하여 말세
성경은 이렇게 말세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말씀합니다. 한 가지만 가지고 알면 혼란스럽습니다.
말세가 그러하듯이 '천국' '하나님의 나라' '낙원'과 같은 표현도 장소적으로도 그리 사용 되나
내용적 실질적으로 하나님과 다시는 끊어 짐이 없고 영원히 하나 되는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든 설교 내용에서 강도에게 말씀하신 낙원을 잘못 오해하면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그런
낙원이 따로 없는 것처럼 들리기 쉬운데 그 말이 아니라 한 강도가 비록 십자가에 매달렸지만
그 사망의 견딜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주님을 모신 그 강도의 마음은 그 날부터 영원히 주님과
동거동행하는 상태가 시작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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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흘 동안 '형벌 받으셨다'라고만 되어 있고 어디에서 어떤 형벌을 받으셨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답변)
2015-09-14 15:37:43 연구부
인성은 음부, 신성은 낙원
1. 예수님의 몸은 예루살렘 주변의 묘실
시체를 싸서 묘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예수님의 몸은 당연히 3일 동안 예루살렘 주변의 '요셉'의 묘에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의 마음과 영은 음부
예수님의 마음과 영은 3일동안 음부에서 우리가 받을 영원한 지옥형벌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니 3일동안 예수님은 음부에 계셨습니다.
3. 예수님의 신성은 낙원에도
다만 예수님의 신성은 이 땅 위에서도 그 인성의 고난에 자원함으로 동참했듯이 몸이 죽은 후 음부의 3일동안의 고난에도 동참하되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또 음부에서 받는 그 고난이 우리의 낙원을 열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구원면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두고 또 예수님의 구원전개의 범위를 두고 예수님은 눅23:43에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서 십자가에 달린 분도 예수님의 몸이셨고 강도에게 그 말씀을 하신 분도 예수님의 몸 중에서 '입'인데 그 몸과 그 입은 그 날 낙원에 계시지 않고 요셉이 판 묘에 계셨습니다.
우선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의 글을 제공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백 목사님께서도 이 정통 위에 또 다른 건설구원의 해석을 덧붙이신 것이지 이 토대를 허물어버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기본 생각을 반대로 하고 계신 것 같아서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저에 대한 우려나 걱정 또한 감사함으로 받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하려 함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오신 주님처럼 '기존 질서 위에 건설한다'는 이치 때문에 저 또한 늘 조심한다고 노력함에도 양면 중에 한 면은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종종 오해를 낳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적어 주신 내용을 가지고 연구해 본 후에 다시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백 목사님께서도 이 정통 위에 또 다른 건설구원의 해석을 덧붙이신 것이지 이 토대를 허물어버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기본 생각을 반대로 하고 계신 것 같아서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저에 대한 우려나 걱정 또한 감사함으로 받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하려 함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오신 주님처럼 '기존 질서 위에 건설한다'는 이치 때문에 저 또한 늘 조심한다고 노력함에도 양면 중에 한 면은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종종 오해를 낳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적어 주신 내용을 가지고 연구해 본 후에 다시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성경연구에 있어 '객관화 작업'이 중요함을 거듭 깨닫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고 간 댓글을 참고하여 초안을 작성해 봅니다.
부공3회원님, 3교회교인님을 비롯, 여러 독자님들의 감수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십자가 죽음 이후부터 부활 전까지 삼일간 예수님의 기록.
하나님이 사람되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말할 때 보통 '신인양성일위'로 표현한다. 쉽게 말하면 참하나님이면서 참사람이다. 교리적으로 조금 길게 풀어 설명한다면 신성의 하나님과 인성의 사람이, 신성과 인성이 서로 섞이지도 않고 둘로 분리되지도 않고 두 신인 양성이 한 격위로 존재하는 분이 예수님이다. 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죽음 이후부터 부활전까지를 글로 적어서 정리해 본다.
예수님의 몸이 죽으면 인성의 영과 마음은 몸으로부터 분리된다. 몸으로부터 분리된 인성의 영과 마음은 우리가 지옥에서 받아야 할 무한한 형벌을 대속하기 위해 지옥의 밑바닥인 음부로 가셔서 금요일, 토요일, 주일 새벽 부활전까지 대속을 하고 계시다가 주일날 부활하신다. 이 때 예수님의 신성도 인성과 함께 대형의 대속에 동참하신다. 그 기간은 순간이 아닌 삼일이다. 그럼과 동시에 예수님의 신성은 강도와 함께 낙원에서도 함께 하신다. 지금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재림을 준비하시면서 동시에 내 마음 속에도 내주하시는 것처럼 죽음 이후 예수님의 신성은 음부와 낙원, 두 공간에서의 공존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음부에도 계셨고 낙원에도 계셨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인성인 영과 마음 그리고 신성이 동참하여 음부에 삼일동안 계셨고 낙원에는 예수님의 신성만 강도와 함께 계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인 영과 마음이 삼일동안 낙원에도 계셨다고 한다면 본인으로서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죽음 이후 예수님의 신성은 음부와 낙원 두 공간을 오갈 수 있지만 예수님의 인성인 영과 마음은 음부나 낙원 두 곳 중에 한 곳에만 거할 수 있지 신성처럼 두 공간에 공존하거나 음부로 먼저 갔다가 그 이후 낙원에 갔다고 할 수도 없다고 본다. 예수님의 인성이 삼일동안 음부에 계셨든지 낙원에 계셨든지 이것이 이 연구과제의 핵심 포인트다.
표현을 단정으로 적은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간결체로 적은 것이고 초안인 만큼 틀린 부분이 많을 것이니
언제든지 변동 가능함을 밝힙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고 간 댓글을 참고하여 초안을 작성해 봅니다.
부공3회원님, 3교회교인님을 비롯, 여러 독자님들의 감수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십자가 죽음 이후부터 부활 전까지 삼일간 예수님의 기록.
하나님이 사람되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말할 때 보통 '신인양성일위'로 표현한다. 쉽게 말하면 참하나님이면서 참사람이다. 교리적으로 조금 길게 풀어 설명한다면 신성의 하나님과 인성의 사람이, 신성과 인성이 서로 섞이지도 않고 둘로 분리되지도 않고 두 신인 양성이 한 격위로 존재하는 분이 예수님이다. 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죽음 이후부터 부활전까지를 글로 적어서 정리해 본다.
예수님의 몸이 죽으면 인성의 영과 마음은 몸으로부터 분리된다. 몸으로부터 분리된 인성의 영과 마음은 우리가 지옥에서 받아야 할 무한한 형벌을 대속하기 위해 지옥의 밑바닥인 음부로 가셔서 금요일, 토요일, 주일 새벽 부활전까지 대속을 하고 계시다가 주일날 부활하신다. 이 때 예수님의 신성도 인성과 함께 대형의 대속에 동참하신다. 그 기간은 순간이 아닌 삼일이다. 그럼과 동시에 예수님의 신성은 강도와 함께 낙원에서도 함께 하신다. 지금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재림을 준비하시면서 동시에 내 마음 속에도 내주하시는 것처럼 죽음 이후 예수님의 신성은 음부와 낙원, 두 공간에서의 공존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음부에도 계셨고 낙원에도 계셨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인성인 영과 마음 그리고 신성이 동참하여 음부에 삼일동안 계셨고 낙원에는 예수님의 신성만 강도와 함께 계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인 영과 마음이 삼일동안 낙원에도 계셨다고 한다면 본인으로서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죽음 이후 예수님의 신성은 음부와 낙원 두 공간을 오갈 수 있지만 예수님의 인성인 영과 마음은 음부나 낙원 두 곳 중에 한 곳에만 거할 수 있지 신성처럼 두 공간에 공존하거나 음부로 먼저 갔다가 그 이후 낙원에 갔다고 할 수도 없다고 본다. 예수님의 인성이 삼일동안 음부에 계셨든지 낙원에 계셨든지 이것이 이 연구과제의 핵심 포인트다.
표현을 단정으로 적은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간결체로 적은 것이고 초안인 만큼 틀린 부분이 많을 것이니
언제든지 변동 가능함을 밝힙니다.
죽으심으로 사죄, 부활하심으로 사죄 두 면으로 나누어 연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풍 교회의 요나 설교를 들으며 나름 글로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정도 아니요 발표도 아니요 그냥 순전히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친구에게 물어 본 정도인데 3공회교인님 말씀을 들어보니 할말 안할 말, 제가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글을 적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죽으심이 십자가 상에서 목숨이 끊어진 그 순간까지가 죽으심이라 생각했는데 설교록을 접하면서 죽음 이후부터 부활 전까지인 삼일동안도 죽으심의 기간이며 사죄가 완료되기 전인 대형중, 사죄중, 대속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공3교인님 말씀을 들으며 주님이 낙원에도 음부에도 계실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입을 본 것은 주님의 희생이 시간적으로 얼마나 깊고 넓고 중량이 무겁고 높은지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십자가 상 보이는 면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면의 대속적인 사랑까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면을 깨닫고 보니 보이지 않게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움 주신 부공3교인님, 3공회교인님, 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글은 앞으로 많은 분들의 비판 그리고 수정과 많은 보완이 필요합니다. 늘 배우고자 하는 연구 태도와 자세로 앞으로도 더욱 조심껏 소신껏 발언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죽으심이 십자가 상에서 목숨이 끊어진 그 순간까지가 죽으심이라 생각했는데 설교록을 접하면서 죽음 이후부터 부활 전까지인 삼일동안도 죽으심의 기간이며 사죄가 완료되기 전인 대형중, 사죄중, 대속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공3교인님 말씀을 들으며 주님이 낙원에도 음부에도 계실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입을 본 것은 주님의 희생이 시간적으로 얼마나 깊고 넓고 중량이 무겁고 높은지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십자가 상 보이는 면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면의 대속적인 사랑까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면을 깨닫고 보니 보이지 않게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움 주신 부공3교인님, 3공회교인님, 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글은 앞으로 많은 분들의 비판 그리고 수정과 많은 보완이 필요합니다. 늘 배우고자 하는 연구 태도와 자세로 앞으로도 더욱 조심껏 소신껏 발언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수정 2020-09-08 8:42)
1. 신인양성일위
하나님이 인간되어 오셨으나 신성과 인성이 뒤섞인 것이 아니라 각 개별로 계시나 한 분이심을 믿는 것이 신인양성 일위 교리입니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으나, 삼위일체 교리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정통 교리입니다. 이 교리로 인하여 사후 삼일동안 예수님의 몸은 무덤에 영과 마음은 음부에 계시고 신성은 낙원에 계셨으나 나뉘거나 분리가 된 상태가 아니라 한 분 주님으로 시공을 초월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인양성일위 교리가 깊어지며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2. 십자가가 절정
설교록은 십자가의 대속만 주님의 대속의 희생의 전부인줄 알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음부에서의 주님의 대속의 희생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는 의미이고, 마귀의 시험은 주님이 심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그 절정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을 다 이루셨으면 이제 나머지는 뒤따라오는 결과입니다. 부활로 대속이 완성이 되었는가? 드러난 결과로는 그렇습니다. 이몽룡이 춘향이 앞에서 나타나서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쳤을 때에 진짜 암행어사가 된 것인가? 아니면 춘향이는 모르지만 서울에서 장원급제를 발표했을 때 이미 암행어사가 된 것인가? 심신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의 대속과 부활의 실상은 이루어졌고, 사후 삼일은 이 실상을 완성하는 남은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통의 형벌은 음부가 십자가보다 훨씬 더 크지만, 시험은 십자가가 절정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을 때에 따르는 고통을 알기에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이 고통은 진짜 아이를 낳는 고통보다 덜하지만 이 시험이 진짜 시험이고 이 시험을 이기고 아이를 낳고 끝까지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뒤따르는 고통은 지극한 고통임은 분명하나 그 고통을 다 통과해야만이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진짜임을 증명한다가 아니라 이미 뛰어넘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 그리고 음부에서의 주님의 대속의 완성과 과정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신인양성일위
하나님이 인간되어 오셨으나 신성과 인성이 뒤섞인 것이 아니라 각 개별로 계시나 한 분이심을 믿는 것이 신인양성 일위 교리입니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으나, 삼위일체 교리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정통 교리입니다. 이 교리로 인하여 사후 삼일동안 예수님의 몸은 무덤에 영과 마음은 음부에 계시고 신성은 낙원에 계셨으나 나뉘거나 분리가 된 상태가 아니라 한 분 주님으로 시공을 초월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인양성일위 교리가 깊어지며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2. 십자가가 절정
설교록은 십자가의 대속만 주님의 대속의 희생의 전부인줄 알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음부에서의 주님의 대속의 희생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는 의미이고, 마귀의 시험은 주님이 심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그 절정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을 다 이루셨으면 이제 나머지는 뒤따라오는 결과입니다. 부활로 대속이 완성이 되었는가? 드러난 결과로는 그렇습니다. 이몽룡이 춘향이 앞에서 나타나서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쳤을 때에 진짜 암행어사가 된 것인가? 아니면 춘향이는 모르지만 서울에서 장원급제를 발표했을 때 이미 암행어사가 된 것인가? 심신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의 대속과 부활의 실상은 이루어졌고, 사후 삼일은 이 실상을 완성하는 남은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통의 형벌은 음부가 십자가보다 훨씬 더 크지만, 시험은 십자가가 절정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을 때에 따르는 고통을 알기에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이 고통은 진짜 아이를 낳는 고통보다 덜하지만 이 시험이 진짜 시험이고 이 시험을 이기고 아이를 낳고 끝까지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뒤따르는 고통은 지극한 고통임은 분명하나 그 고통을 다 통과해야만이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진짜임을 증명한다가 아니라 이미 뛰어넘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 그리고 음부에서의 주님의 대속의 완성과 과정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후 삼일동안
예수님의 몸은 무덤 있었고
예수님의 인성인 영과 마음은 음부에 계셨고
예수님의 신성은 낙원에 계셨다로 정리해 주시니 이해가 바로 됩니다.
(단, 사후 낙원에 계신 주님의 신성은 나뉘지 않고 개별 한 분 주님으로 시공을 초월했다는 설명만 보충합니다.)
분리나 나뉨, 또는 혼합이나 섞임이 아닌 사후에도 인성과 신성이 '개별로 계시나 한 분 주님으로 시공을 초월하셨다'는 것이 신인양성일위 교리가 깊어지며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교리라는 추가 말씀에 전적 동감합니다. 이후 절정에 대한 적절한 예도 이해를 돕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살아 생전, 장성한 양의 적절한 때가 되면 내 자리에 한번 앉아서 따라해 보는 시늉이라도 해 보라, 부족한 실수나 교만해질 수 있는 위험성은 하면서 고치면 된다. 내 이름을 빌려 주어 처음에는 서툴더라도 자녀나 교인도 나처럼 똑같은 이름의 역사를 따라해 보게 하며 사람을 길러가는 이것이 공회의 숨은 저력이듯 교리 깨달음의 연구과정도 이치는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무덤 있었고
예수님의 인성인 영과 마음은 음부에 계셨고
예수님의 신성은 낙원에 계셨다로 정리해 주시니 이해가 바로 됩니다.
(단, 사후 낙원에 계신 주님의 신성은 나뉘지 않고 개별 한 분 주님으로 시공을 초월했다는 설명만 보충합니다.)
분리나 나뉨, 또는 혼합이나 섞임이 아닌 사후에도 인성과 신성이 '개별로 계시나 한 분 주님으로 시공을 초월하셨다'는 것이 신인양성일위 교리가 깊어지며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교리라는 추가 말씀에 전적 동감합니다. 이후 절정에 대한 적절한 예도 이해를 돕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살아 생전, 장성한 양의 적절한 때가 되면 내 자리에 한번 앉아서 따라해 보는 시늉이라도 해 보라, 부족한 실수나 교만해질 수 있는 위험성은 하면서 고치면 된다. 내 이름을 빌려 주어 처음에는 서툴더라도 자녀나 교인도 나처럼 똑같은 이름의 역사를 따라해 보게 하며 사람을 길러가는 이것이 공회의 숨은 저력이듯 교리 깨달음의 연구과정도 이치는 똑같은 것 같습니다.
지금 주님이 내 마음에도 계시지만 실상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재림의 주님으로 계실 때는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다로 표현을 강조하고 세상 현실에서 동거동행의 주님으로 계심을 강조할 때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강하게 강조해서 말했다고 해서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이 부정될 수는 없고 내 안에 주님이 계심을 강하게 강조한다 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주님이 계심을 부정될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후에도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고 한 분 주님으로 계십니다. 그 주님이 삼일동안 음부에 계셨다면 주님의 인성과 신성이 함께한 온전한 주님이 대속의 주님으로 우리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대신 받고 계시는, 대형과 대속의 주님으로 계신 것을 강조한 표현이고 삼일동안 낙원에도 계셨다면 강도와 함께 동거동행의 주님으로 계심을 강조한 것 표현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재림 준비의 주님을 강조하듯 삼일간 음부에서 대속하고 계시는 주님이 더 마음에 와 다았고 3공회 교인님은 우리 안에 동행하는 주님을 강조하듯 삼일간 낙원에서 강도와 동행한 주님이 마음에 더 와 다으신 듯 합니다.
부공3교인님의 최종 결론을 기다립니다.
결론을 각자 자기 말과 글로 정리해 두면 후세대 신앙전수를 위해서도 좋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후에도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고 한 분 주님으로 계십니다. 그 주님이 삼일동안 음부에 계셨다면 주님의 인성과 신성이 함께한 온전한 주님이 대속의 주님으로 우리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대신 받고 계시는, 대형과 대속의 주님으로 계신 것을 강조한 표현이고 삼일동안 낙원에도 계셨다면 강도와 함께 동거동행의 주님으로 계심을 강조한 것 표현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재림 준비의 주님을 강조하듯 삼일간 음부에서 대속하고 계시는 주님이 더 마음에 와 다았고 3공회 교인님은 우리 안에 동행하는 주님을 강조하듯 삼일간 낙원에서 강도와 동행한 주님이 마음에 더 와 다으신 듯 합니다.
부공3교인님의 최종 결론을 기다립니다.
결론을 각자 자기 말과 글로 정리해 두면 후세대 신앙전수를 위해서도 좋겠습니다.
설명이 길어지면 이해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에서 직'위'(職位)나 '위'치(位置)를 뜻하는 '위'는 삼이고 몸'체'는 하나다. 그래서 삼위일체인데 알기 쉽게 말하면 위는 세분이지만 몸은 한분이다. 세분이면서 한분이라. 이는 3차원의 이 세상 공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적 설명 같다.
지금까지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후에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고 신인양성일위의 한 분 예수님으로 계신다. 그 신인양성일위의 모습 그대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음부에서 삼일간 계시면서 우리 택자들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대속하고 계셨고 또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낙원에서 삼일간 계시면서 강도와 같은 택자들과 함께 동거동행하고 계셨다. 이를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예수님의 '사후 오늘의 삼일간 역사'로 정의해 본다. 이해는 낯설다. 우선 이렇게 정의한 후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마치 삼위일체 교리처럼 말이다.
삼위일체(三位一體)에서 직'위'(職位)나 '위'치(位置)를 뜻하는 '위'는 삼이고 몸'체'는 하나다. 그래서 삼위일체인데 알기 쉽게 말하면 위는 세분이지만 몸은 한분이다. 세분이면서 한분이라. 이는 3차원의 이 세상 공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적 설명 같다.
지금까지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후에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고 신인양성일위의 한 분 예수님으로 계신다. 그 신인양성일위의 모습 그대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음부에서 삼일간 계시면서 우리 택자들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대속하고 계셨고 또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낙원에서 삼일간 계시면서 강도와 같은 택자들과 함께 동거동행하고 계셨다. 이를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예수님의 '사후 오늘의 삼일간 역사'로 정의해 본다. 이해는 낯설다. 우선 이렇게 정의한 후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마치 삼위일체 교리처럼 말이다.
'삼위일체' 교리가 세 분인데 한 분이 될 수 없고 한 분이 세 분이 될 수 없는 인간의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듯이 '신인양성일위'도 마찬가지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분명 분리되어 있으나 한 분입니다. 결코 나눌 수 없으나 나눌줄 알아야 하고, 또 나눌 수 있으나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1. 낙원과 음부로 나눌 떄에는
대속이란, 대속하려는 대상과 같은 존재가 되어 그의 모든 형벌을 그대로 전가받아 값을 치뤄야 대속이 됩니다. 택자의 대속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 인간이 되셨고 택자의 몸, 마음, 영이 받을 그대로 형벌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택자의 몸이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생명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몸의 고난 당하심으로 대속하셨고. 택자의 마음, 영이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은 죽은지 삼일동안 음부에서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성이 택자가 받을 형벌을 담당하실 때에는 신성은 절대로 돕지 못하고 돕지 않았습니다. 그 표현이 신성은 낙원에, 인성은 음부에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대상과 똑같은 조건이라야 한다는 것이 대속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2. 나눌 수 없을 때는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대속의 완성입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대속이 안됩니다. 또한 이 네가지 대속 각각에는 나머지 3가지의 대속의 효력이 포함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대속이 완성이 됩니다. 예를 들어 형벌을 대신 받음으로 사죄를 이루려해도 그 안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칭의, 하나님과의 연결 화친, 천국 소망의 나머지 대속의 3요소가 들어 있지 않으면 사죄가 안됩니다. 그렇다면, 사죄를 위하여 주님의 몸이 모든 고난을 당하다가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마음과 영이 음부에서 고난을 다 받을 때에 신성은 과연 손놓고 낙원에서 쉬고 계셨겠는가? 아니면, 형벌은 인성이 받아야 하나, 사죄 안에 이뤄야 할 나머지 칭의와 화친과 소망의 대속의 역사는 신성이 아니면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분야는 다르지만 매 순간 매 초 인성과 함께 택자의 대속을 완성하고 계시지 않않겠는가? 그러므로 주님의 신성과 인성은 나눠지나 결코 나눠질 수 없는 신인양성일위의 한 분 하나님, 버러지 같은 나를 대속하기 위하여 신성과 인성의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신 내 구주 예수님이시라.
마지막으로, 택자 구원의 주님 대속의 극한은 십자가도 아니고 음부도 아니라, 부활로 인성을 영원히 벗지 않고 택자의 소망의 구주가 되어주신 그 희생이라는 것까지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1. 낙원과 음부로 나눌 떄에는
대속이란, 대속하려는 대상과 같은 존재가 되어 그의 모든 형벌을 그대로 전가받아 값을 치뤄야 대속이 됩니다. 택자의 대속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 인간이 되셨고 택자의 몸, 마음, 영이 받을 그대로 형벌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택자의 몸이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생명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몸의 고난 당하심으로 대속하셨고. 택자의 마음, 영이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은 죽은지 삼일동안 음부에서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성이 택자가 받을 형벌을 담당하실 때에는 신성은 절대로 돕지 못하고 돕지 않았습니다. 그 표현이 신성은 낙원에, 인성은 음부에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대상과 똑같은 조건이라야 한다는 것이 대속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2. 나눌 수 없을 때는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대속의 완성입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대속이 안됩니다. 또한 이 네가지 대속 각각에는 나머지 3가지의 대속의 효력이 포함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대속이 완성이 됩니다. 예를 들어 형벌을 대신 받음으로 사죄를 이루려해도 그 안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칭의, 하나님과의 연결 화친, 천국 소망의 나머지 대속의 3요소가 들어 있지 않으면 사죄가 안됩니다. 그렇다면, 사죄를 위하여 주님의 몸이 모든 고난을 당하다가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마음과 영이 음부에서 고난을 다 받을 때에 신성은 과연 손놓고 낙원에서 쉬고 계셨겠는가? 아니면, 형벌은 인성이 받아야 하나, 사죄 안에 이뤄야 할 나머지 칭의와 화친과 소망의 대속의 역사는 신성이 아니면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분야는 다르지만 매 순간 매 초 인성과 함께 택자의 대속을 완성하고 계시지 않않겠는가? 그러므로 주님의 신성과 인성은 나눠지나 결코 나눠질 수 없는 신인양성일위의 한 분 하나님, 버러지 같은 나를 대속하기 위하여 신성과 인성의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신 내 구주 예수님이시라.
마지막으로, 택자 구원의 주님 대속의 극한은 십자가도 아니고 음부도 아니라, 부활로 인성을 영원히 벗지 않고 택자의 소망의 구주가 되어주신 그 희생이라는 것까지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부공3회원님의 답변을 토대로 재구성해 봅니다.
생전 주님의 인성(참사람)은 택자 한 사람의 죄를 담당하고 여기에 주님의 신성이(참하나님) 더해지심으로 택자 전부의 죄를 대속한다. 사후도 마찬가지다. 주님의 인성은 삼일동안 음부에서 지옥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이 때 주님의 신성도 함께 하시어 나머지 대속을 완수해 나가신다. 이와 동시에 낙원에 계신 주님의 신성은 인성과 함께 강도를 포함한 택자들과 함께 하신다. 이를 우리는 '사후에도 신인양성일위로 계신 주님이 음부에도 낙원에도 동일하게 각각 삼일동안 계셨다'로 표현한다. 그리고 부활과 동시에 사람의 몸을 영원토록 입으신 그 희생을 통해 대속의 절정을 완성하신다.
위 정리를 기억하기 좋도록 삼위일체나 신인양성일위처럼 한 단어로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생전 주님의 인성(참사람)은 택자 한 사람의 죄를 담당하고 여기에 주님의 신성이(참하나님) 더해지심으로 택자 전부의 죄를 대속한다. 사후도 마찬가지다. 주님의 인성은 삼일동안 음부에서 지옥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이 때 주님의 신성도 함께 하시어 나머지 대속을 완수해 나가신다. 이와 동시에 낙원에 계신 주님의 신성은 인성과 함께 강도를 포함한 택자들과 함께 하신다. 이를 우리는 '사후에도 신인양성일위로 계신 주님이 음부에도 낙원에도 동일하게 각각 삼일동안 계셨다'로 표현한다. 그리고 부활과 동시에 사람의 몸을 영원토록 입으신 그 희생을 통해 대속의 절정을 완성하신다.
위 정리를 기억하기 좋도록 삼위일체나 신인양성일위처럼 한 단어로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나중에 기억하기 좋도록 소제목을 붙여서 정리해 봅니다.
음부에서 삼일동안 계실 때는
택자들을 위해 대속하는 주님으로 계셨고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낙원에서 삼일동안 계실 때는
택자들과 함께 동행하는 주님으로 계셨다.
음부삼일대속(陰府三日代贖)
낙원삼일동행(樂園三日同行)
근거 성구
1. 음부삼일대속 마태복음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2. 큰 물고기 뱃속 = 밤낮 사흘 땅속 = 음부 요나2: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음부)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낙원삼일동행 누가복음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음부에서 삼일동안 계실 때는
택자들을 위해 대속하는 주님으로 계셨고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낙원에서 삼일동안 계실 때는
택자들과 함께 동행하는 주님으로 계셨다.
음부삼일대속(陰府三日代贖)
낙원삼일동행(樂園三日同行)
근거 성구
1. 음부삼일대속 마태복음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2. 큰 물고기 뱃속 = 밤낮 사흘 땅속 = 음부 요나2: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음부)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낙원삼일동행 누가복음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