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구원)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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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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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0 23:27
■ 달란트(구원)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요?
'이 달란트는 우리 택한 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또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를 가리켜서 달란트로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87.8.16 주후 말씀 중)
‘이래 가지고서 당신이 나에게 이제 많이 맡겨 주시면 내가 많은 걸 맡을 수 있고 많은 것도 이 달란트 한 낭중 맡긴 자와 같이 빼앗아 버렸다 말이오. 빼앗으면 뺏긴다 그거요. 제가 반사 노릇 하다가 반사하기 싫어서 안 하니까 제 딴에는 제가 뭐 안 하고 하는 것 같지마는 주님이 뺏들어 버렸어. 뺏드니까 제가 뺏겼다 그 말이오“ (87.11.8 주새 말씀 중)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25:29)
▶달란트는 3가지 은혜 즉 예수님의 대속, 영감, 진리를 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충성의 유무에 따라 달란트는 빼앗길 수도 있고, 더하여 주실 수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한 불충한 자의 달란트는 그 현실에서 빼앗긴 것입니다.
▶구원(기본구원, 건설구원)은 사람사이에 서로 주거나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도 ‘나의 구원’을 빼앗아 그것을 ‘남’에게 주실 수 없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 질문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25:28)
열 달란트 받은 자에게 한 달란트 받은 자의 ‘그 달란트’를 주라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어떤 사람의 실패한 달란트(구원: 대속, 영감,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신다는 뜻인지요?
공회는 어떻게 마25:28을 해석하시는지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자존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니 변동될 수 없고, 당연히 이 사람의 구원을 저 사람에게 줄 수 없는 것이며,
건설구원은
기본구원 받은 사람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루되 각자의 행한 대로, 행한 만큼 이루어지는 것이니 자체의 성화구원, 행위구원적인 면에서 이 사람의 자체구원 실패가 저 사람의 자체구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기본적으로 건설구원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달란트는 예수님의 대속 공로와 영감과 진리라 하셨습니다. 불택자에게는 애초에 해당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한 달란트든 열 달란트든 달란트를 받았다는 것은 택자라는 뜻입니다. 택자가 불택자가 될 수 없고, 택자라도 이 사람의 구원을 저 사람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달란트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은혜의 분량’입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가 달란트인데 이것을 사람마다 다르게 주셨다는 것은 그 은혜를 입고 살 수 있는 분량을 사람마다 달리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달란트와 백 목사님이 받은 달란트와 우리가 받은 달란트는 그 분량이 다릅니다. 주신 하나님은 주신 만큼 요구하시니 받은 사람은 자기 받은 분량만큼만 감당하면 되는 것인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조차 안 했기 때문에 빼앗긴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은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의 실패한 자체구원을 말함이 아니고 그 사람의 감당치 않은 ‘분량’을 말씀하신 것이며, 그 분량은 다른 사람이 대신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전도하고 심방해서 구원해야 할 대상이 있는데,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불충하여 못 했을 때 그 사람은 가진 달란트를 빼앗기는 것이 되겠고, 열 달란트 가진 사람이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하지 못한 그 사람을 전도하고 심방하여 구원했다면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감당치 못한 그 분량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이 감당했으니 열 달란트 가진 사람은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의 것까지 가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치로 생각해 봅니다.
아래 성구들도 같은 원리로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되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막4:25)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19:26)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음 성구로 응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하나님의 자존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니 변동될 수 없고, 당연히 이 사람의 구원을 저 사람에게 줄 수 없는 것이며,
건설구원은
기본구원 받은 사람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루되 각자의 행한 대로, 행한 만큼 이루어지는 것이니 자체의 성화구원, 행위구원적인 면에서 이 사람의 자체구원 실패가 저 사람의 자체구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기본적으로 건설구원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달란트는 예수님의 대속 공로와 영감과 진리라 하셨습니다. 불택자에게는 애초에 해당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한 달란트든 열 달란트든 달란트를 받았다는 것은 택자라는 뜻입니다. 택자가 불택자가 될 수 없고, 택자라도 이 사람의 구원을 저 사람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달란트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은혜의 분량’입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가 달란트인데 이것을 사람마다 다르게 주셨다는 것은 그 은혜를 입고 살 수 있는 분량을 사람마다 달리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달란트와 백 목사님이 받은 달란트와 우리가 받은 달란트는 그 분량이 다릅니다. 주신 하나님은 주신 만큼 요구하시니 받은 사람은 자기 받은 분량만큼만 감당하면 되는 것인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조차 안 했기 때문에 빼앗긴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은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의 실패한 자체구원을 말함이 아니고 그 사람의 감당치 않은 ‘분량’을 말씀하신 것이며, 그 분량은 다른 사람이 대신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전도하고 심방해서 구원해야 할 대상이 있는데,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불충하여 못 했을 때 그 사람은 가진 달란트를 빼앗기는 것이 되겠고, 열 달란트 가진 사람이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하지 못한 그 사람을 전도하고 심방하여 구원했다면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감당치 못한 그 분량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이 감당했으니 열 달란트 가진 사람은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의 것까지 가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치로 생각해 봅니다.
아래 성구들도 같은 원리로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되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막4:25)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19:26)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음 성구로 응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