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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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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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8 10:31
미태복음20;40-41설교중에 요셉를기도의 사람이라 말씀 하시는데 성경어디에 근거 하여 말씀하시는지요 ?
1. 기도의 사람 요셉
요셉을 기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요셉이 어릴 때부터 꾼 꿈과 애굽에 팔려 갔을 때 꿈 해석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꿈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대개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알리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알리신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 믿음의 사람들과 관계된 이방인들에게도 꿈으로 경고하거나 계시한 일도 있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 계시하신 것과는 다른 방향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했던 아비멜렉과 야곱을 추격하던 라반에게 꿈으로 하신 말씀이 그런 경우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꿈으로 뭔가를 나타내시고 알리신다는 말은 그만큼 그들의 영안이 밝다는 뜻이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는 깊은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가 깊은 만큼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고 영안이 밝아지게 됩니다. 요셉은 어릴 때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요셉의 앞날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그만큼 요셉은 어릴 때부터 기도가 많았고 깊었다는 뜻입니다.
종으로 팔려 간 후, 보디발의 집을 거쳐 감옥에 갔을 때는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2년 후 이번에는 바로 왕이 꿈을 꾸었고,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 인연되어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민족과 나라로 생육하고 성장하는 바탕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 큰 역사의 출발선에 요셉의 기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 못지않게 꿈으로 유명한 믿음의 사람이 다니엘인데, 이 다니엘 역시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되어 있는 동안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고 매일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다니엘도 젊을 때부터 신앙이 특출했는데, 특히 다니엘은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고 했습니다. 이상이란 사람이 알 수 없는 일이고, 몽조는 꿈을 말합니다. 사람이 알기 어려운 일들을 잘 알았고, 꿈으로 보이는 여러 계시들을 다니엘은 잘 해석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웠고 그만큼 기도가 많았고 깊었다는 뜻입니다. 기도가 많고 깊은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영안이 밝아집니다.
참고로,
요셉의 꿈과 해몽 성구는, 창세기 37:5~1절과 창40:8~21, 4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질문에서
질문하신 마태복음 20장은 1절~34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혹시 설교록이 질문의 근거이면 정확한 본문이나 날짜를 알면 답변을 설교록에 근거한 내용으로 좀 더 정확하게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셉을 기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요셉이 어릴 때부터 꾼 꿈과 애굽에 팔려 갔을 때 꿈 해석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꿈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대개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알리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알리신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 믿음의 사람들과 관계된 이방인들에게도 꿈으로 경고하거나 계시한 일도 있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 계시하신 것과는 다른 방향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했던 아비멜렉과 야곱을 추격하던 라반에게 꿈으로 하신 말씀이 그런 경우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꿈으로 뭔가를 나타내시고 알리신다는 말은 그만큼 그들의 영안이 밝다는 뜻이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는 깊은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가 깊은 만큼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고 영안이 밝아지게 됩니다. 요셉은 어릴 때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요셉의 앞날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그만큼 요셉은 어릴 때부터 기도가 많았고 깊었다는 뜻입니다.
종으로 팔려 간 후, 보디발의 집을 거쳐 감옥에 갔을 때는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2년 후 이번에는 바로 왕이 꿈을 꾸었고,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 인연되어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민족과 나라로 생육하고 성장하는 바탕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 큰 역사의 출발선에 요셉의 기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 못지않게 꿈으로 유명한 믿음의 사람이 다니엘인데, 이 다니엘 역시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되어 있는 동안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고 매일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다니엘도 젊을 때부터 신앙이 특출했는데, 특히 다니엘은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고 했습니다. 이상이란 사람이 알 수 없는 일이고, 몽조는 꿈을 말합니다. 사람이 알기 어려운 일들을 잘 알았고, 꿈으로 보이는 여러 계시들을 다니엘은 잘 해석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웠고 그만큼 기도가 많았고 깊었다는 뜻입니다. 기도가 많고 깊은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영안이 밝아집니다.
참고로,
요셉의 꿈과 해몽 성구는, 창세기 37:5~1절과 창40:8~21, 4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질문에서
질문하신 마태복음 20장은 1절~34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혹시 설교록이 질문의 근거이면 정확한 본문이나 날짜를 알면 답변을 설교록에 근거한 내용으로 좀 더 정확하게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셉의 기도를 두고,
요셉의 기도하는 모습은 성경 기록에 달리 찾을 수 없으나 '꿈'으로는 살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기준의 꿈이란, 내 마음의 의식과 무의식이 애매하게 만나면서 '꾸며 본' 자기 내면의 모습입니다. '꾸다 > 꾸미다 > 꿈'으로 이어 집니다. 마음에 느낀 것, 그 과정에 자기도 모르게 소원한 것 애타는 것 또는 강하게 느낀 것이 자기 내면의 무의식 속에 가라 앉아 있다가 잠을 잘 때는 의식이 느슨해 지는데 이 틈에 무의식에 숨어 있던 나의 내면이 의식 세계에 평소 무의식에 들어 있던 자기의 드라마를 자기에게 영상으로 펼쳐 주는 것이 꿈입니다. 설교록에서는 '주사야몽: 낮에 생각을 하면 밤에 꿈으로 나온다'는 경험과 세상의 자연스런 관찰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의 꿈은,
평소 의식 세계 안에서 우리가 말씀을 기억하거나 깨닫거나 실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가 강하게 느낀 점이나 아쉬운 점의 일부는 의식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일부는 무의식 속에 가라 앉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평소 이 의식 세계에서 알고 느낀 것으로 진행되지만, 의식이 미처 따라 잡거나 기억해 내지 못하는 파편이나 흐름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의식이 잠에 들 때 꿈이라는 동영상으로 나타납니다. 잠을 깬 후 신앙의 신기한 장면이 기억나면 영몽이라, 성령의 계시라고 섣불리 오판하기 쉬운데 이는 불신자든 믿는 우리가 평소 생활 속에 경험하는 꿈의 연속선입니다. 즉, 신앙인의 꿈은 자기의 현재 신앙의 상황이나 미처 잊고 있거나 놓쳤던 자기 신앙의 내면이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직접 먼저 열어서 보여 주는 하늘의 비밀, 영계의 계시는 아닙니다. 무조건 아니라 하기는 죄송하나 일반적으로는 다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내 주관, 자기의 의식과 무의식을 초월하여 객관적으로 하나님이 밖에서 우리 안에다 열고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보통의 영몽은 나의 의식과 무의식, 즉 나의 마음 안에서 일어 나는 자기 내면의 현상일 뿐입니다.
성경의 꿈은 이와 다릅니다.
성경의 꿈도 별별 것이 있지만 요셉 솔로몬 다니엘의 꿈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오직 주님과 동행했던 절정의 신앙을 평소에 가졌던 분들에게,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 안에서 일어 나는 주관이 아니라, 하나님이 밖에서 직접 열고 그들에게 계시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꿈으로' 또는 '꿈에서' 계시를 보여 주셨을까? 비록 절정의 신앙으로 살았다 해도 평소 깨어 있을 때는 인간의 의식 때문에 하나님이 열고 보여 주는 하늘의 계시를 흐리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 들이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평소 자기 의식을 가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려고 전력했던 신앙의 인물, 요셉의 경우 평소에도 자기가 힘써 자기를 다 부인을 했지만 대낮에 의식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계시로 보여 주는 것보다 잠을 잘 때는 요셉의 마음에 인간적 의식이 모두 활동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가 요셉의 내면에는 요셉의 주관이 가장 배제가 되어 마음이 비어 있을 때입니다. 이런 빈 그릇에 하나님이 계시를 담아 주면 가장 좋은 상태로 전달이 됩니다. 요셉의 의식이 개입되지 않고 요셉이 인식하고 따지고 계산하는 인간적 요소가 아주 떨어 져 나갈 때 하나님이 직접 계시로 보여 준 상황입니다. 꿈에 계시가 담기는 것은 그런 여건 그런 상황 때문입니다.
왕상3:5에 솔로몬의 꿈은 앞에서 설명 드린 우리들의 일반 심리 상태와는 아주 다른, 즉 솔로몬의 의식 세계가 완전히 배제 된 상태에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 주신 것인데 솔로몬이 낮에 깨어 있을 때는 아무리 신앙이 좋다 해도 인간적 한계가 있으나 잠을 잘 때는 솔로몬의 인지 인식 의식이 제일 배제 된 상태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가장 맑게 가장 밝게 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신앙이 되려면 솔로몬이나 다니엘이나 요셉은 평소 의식이 깨어 있을 때도 그 의식이 몸을 통해 외부와의 활동에 치중하는 것보다 내면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말씀을 깊이 뜨겁게 묵상하며 하나님과 정말 가깝게 동행하며 살아야 의식이 활동을 완전히 멈추는 잠자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것을 직접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평소 의식으로 자기 내면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대화하며 노력하여 자기를 깨끗하게 정결하게 만들어 인간적인 것을 쳐내지 않으면 꿈에서 가르쳐 줘도 곧 바로 잊어 버리거나 예사롭게 생각하고 넘어 갑니다. 그냥 꿈이었다고. 요셉이 평소 기도를 할 때 일반적으로 기도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깊게 깊게 깊게 주님과 밀접히 기도했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인간적 요소를 모두 털어 내고 씻어 낼 수 있었고, 그렇게 준비 된 요셉이 그런 깨끗한 의식조차 중단이 되었을 때 꿈으로 계시를 주셨으니, 요셉의 꿈이 요셉의 희망 사항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알아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세세히 담은 것을 볼 때 요셉의 평소 기도 생활은 참으로 깊었고 뜨겁고 철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람은 선지자였으나 대낮에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직접 나타 나서 죽이려고 했지만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도 기어코 그 길을 걸어 갔습니다. 민수기 22장에서 발람은 비록 꿈이라고 명시 되어 있지 않으나 '밤'이라는 환경을 적어 주시며 밤에 말씀을 했었습니다. 발람에게 인간적이고 세상적이며 주변 환경적인 것을 떨쳐 버릴 수 있는 환경에서 가지 말라고 분명히 세세히 설명을 했으나 발람 속에 물질 욕심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부 무시를 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밤보다 더 은밀하고 자기 주관을 더욱 벗어 날 수 있는 꿈에서 말씀하시면 오히려 그 말씀을 꿈에서 본 헛소리라며 더욱 의심하고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요셉이 꿈의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직접 역사하시고 보여 주셨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요셉의 평소는 얼마나 내면의 깊은 기도로 이어진 사람이라는 표시입니다.
요셉의 꿈을 두고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은 창세기 43:3 이하에서 베냐민을 애굽에 보내지 않으려던 야곱이 유다의 말을 듣고 맡기게 되는데, 유다에 대하여 목사님은 간단한 몇 가지 기록으로 깊게 분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기도하는 모습은 성경 기록에 달리 찾을 수 없으나 '꿈'으로는 살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기준의 꿈이란, 내 마음의 의식과 무의식이 애매하게 만나면서 '꾸며 본' 자기 내면의 모습입니다. '꾸다 > 꾸미다 > 꿈'으로 이어 집니다. 마음에 느낀 것, 그 과정에 자기도 모르게 소원한 것 애타는 것 또는 강하게 느낀 것이 자기 내면의 무의식 속에 가라 앉아 있다가 잠을 잘 때는 의식이 느슨해 지는데 이 틈에 무의식에 숨어 있던 나의 내면이 의식 세계에 평소 무의식에 들어 있던 자기의 드라마를 자기에게 영상으로 펼쳐 주는 것이 꿈입니다. 설교록에서는 '주사야몽: 낮에 생각을 하면 밤에 꿈으로 나온다'는 경험과 세상의 자연스런 관찰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의 꿈은,
평소 의식 세계 안에서 우리가 말씀을 기억하거나 깨닫거나 실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가 강하게 느낀 점이나 아쉬운 점의 일부는 의식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일부는 무의식 속에 가라 앉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평소 이 의식 세계에서 알고 느낀 것으로 진행되지만, 의식이 미처 따라 잡거나 기억해 내지 못하는 파편이나 흐름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의식이 잠에 들 때 꿈이라는 동영상으로 나타납니다. 잠을 깬 후 신앙의 신기한 장면이 기억나면 영몽이라, 성령의 계시라고 섣불리 오판하기 쉬운데 이는 불신자든 믿는 우리가 평소 생활 속에 경험하는 꿈의 연속선입니다. 즉, 신앙인의 꿈은 자기의 현재 신앙의 상황이나 미처 잊고 있거나 놓쳤던 자기 신앙의 내면이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직접 먼저 열어서 보여 주는 하늘의 비밀, 영계의 계시는 아닙니다. 무조건 아니라 하기는 죄송하나 일반적으로는 다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내 주관, 자기의 의식과 무의식을 초월하여 객관적으로 하나님이 밖에서 우리 안에다 열고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보통의 영몽은 나의 의식과 무의식, 즉 나의 마음 안에서 일어 나는 자기 내면의 현상일 뿐입니다.
성경의 꿈은 이와 다릅니다.
성경의 꿈도 별별 것이 있지만 요셉 솔로몬 다니엘의 꿈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오직 주님과 동행했던 절정의 신앙을 평소에 가졌던 분들에게,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 안에서 일어 나는 주관이 아니라, 하나님이 밖에서 직접 열고 그들에게 계시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꿈으로' 또는 '꿈에서' 계시를 보여 주셨을까? 비록 절정의 신앙으로 살았다 해도 평소 깨어 있을 때는 인간의 의식 때문에 하나님이 열고 보여 주는 하늘의 계시를 흐리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 들이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평소 자기 의식을 가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려고 전력했던 신앙의 인물, 요셉의 경우 평소에도 자기가 힘써 자기를 다 부인을 했지만 대낮에 의식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계시로 보여 주는 것보다 잠을 잘 때는 요셉의 마음에 인간적 의식이 모두 활동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가 요셉의 내면에는 요셉의 주관이 가장 배제가 되어 마음이 비어 있을 때입니다. 이런 빈 그릇에 하나님이 계시를 담아 주면 가장 좋은 상태로 전달이 됩니다. 요셉의 의식이 개입되지 않고 요셉이 인식하고 따지고 계산하는 인간적 요소가 아주 떨어 져 나갈 때 하나님이 직접 계시로 보여 준 상황입니다. 꿈에 계시가 담기는 것은 그런 여건 그런 상황 때문입니다.
왕상3:5에 솔로몬의 꿈은 앞에서 설명 드린 우리들의 일반 심리 상태와는 아주 다른, 즉 솔로몬의 의식 세계가 완전히 배제 된 상태에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 주신 것인데 솔로몬이 낮에 깨어 있을 때는 아무리 신앙이 좋다 해도 인간적 한계가 있으나 잠을 잘 때는 솔로몬의 인지 인식 의식이 제일 배제 된 상태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가장 맑게 가장 밝게 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신앙이 되려면 솔로몬이나 다니엘이나 요셉은 평소 의식이 깨어 있을 때도 그 의식이 몸을 통해 외부와의 활동에 치중하는 것보다 내면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말씀을 깊이 뜨겁게 묵상하며 하나님과 정말 가깝게 동행하며 살아야 의식이 활동을 완전히 멈추는 잠자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것을 직접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평소 의식으로 자기 내면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대화하며 노력하여 자기를 깨끗하게 정결하게 만들어 인간적인 것을 쳐내지 않으면 꿈에서 가르쳐 줘도 곧 바로 잊어 버리거나 예사롭게 생각하고 넘어 갑니다. 그냥 꿈이었다고. 요셉이 평소 기도를 할 때 일반적으로 기도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깊게 깊게 깊게 주님과 밀접히 기도했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인간적 요소를 모두 털어 내고 씻어 낼 수 있었고, 그렇게 준비 된 요셉이 그런 깨끗한 의식조차 중단이 되었을 때 꿈으로 계시를 주셨으니, 요셉의 꿈이 요셉의 희망 사항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알아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세세히 담은 것을 볼 때 요셉의 평소 기도 생활은 참으로 깊었고 뜨겁고 철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람은 선지자였으나 대낮에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직접 나타 나서 죽이려고 했지만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도 기어코 그 길을 걸어 갔습니다. 민수기 22장에서 발람은 비록 꿈이라고 명시 되어 있지 않으나 '밤'이라는 환경을 적어 주시며 밤에 말씀을 했었습니다. 발람에게 인간적이고 세상적이며 주변 환경적인 것을 떨쳐 버릴 수 있는 환경에서 가지 말라고 분명히 세세히 설명을 했으나 발람 속에 물질 욕심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부 무시를 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밤보다 더 은밀하고 자기 주관을 더욱 벗어 날 수 있는 꿈에서 말씀하시면 오히려 그 말씀을 꿈에서 본 헛소리라며 더욱 의심하고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요셉이 꿈의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직접 역사하시고 보여 주셨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요셉의 평소는 얼마나 내면의 깊은 기도로 이어진 사람이라는 표시입니다.
요셉의 꿈을 두고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은 창세기 43:3 이하에서 베냐민을 애굽에 보내지 않으려던 야곱이 유다의 말을 듣고 맡기게 되는데, 유다에 대하여 목사님은 간단한 몇 가지 기록으로 깊게 분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꿈은 육체의잠을 잘때에 나타 나는것 기도는 하나님과 친교중에영감으로계시하시는것 아닙니까 꿈을기도의사람이라 할수 있읍니가 조금 이해 안되여 목사님의 영적 세계를 조금 깊이알여고 댓글를
꿈이 기도라는 것이 아니라
꿈으로 특별한 계시를 보여 주실 정도가 되는 사람은 평소 기도 생활이 아주 깊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깨어 있을 때 우리가 마음으로 합니다. 꿈은 우리가 잠이 들어 의식이 없을 때 진행이 되는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깨어 있을 때 기도를 하되
마6:7처럼 중언부언하지않고
마6:5처럼 남 보기에 기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겉돌지 않고
마6:6에 따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마음 깊이 기도가 진행되면 평소 기도로서는 깨끗하고 좋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대로 된 기도가 계속 되면서 하나님과 관계가 가까워지고,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 주셔야 하는 신령한 면이 있을 때, 일반적인 정도가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계시를 직접 주실 때는 사람을 의식이 없도록 재워 놓고 꿈을 통해 보여 주시는 것이 성경의 꿈에서 받는 계시입니다.
조금 애매하거나 조금 신령한 면이 되어 이해가 어렵거나 또는 옳은지를 살펴 봐야 하실 때는, 과제로 두고 시간을 좀 지내 봐 보시면 좋겠습니다. 백 목사님도 스스로 그렇게 하셨고 주변에서 직접 배우는 사람들도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씩 알아 왔습니다.
꿈으로 특별한 계시를 보여 주실 정도가 되는 사람은 평소 기도 생활이 아주 깊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깨어 있을 때 우리가 마음으로 합니다. 꿈은 우리가 잠이 들어 의식이 없을 때 진행이 되는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깨어 있을 때 기도를 하되
마6:7처럼 중언부언하지않고
마6:5처럼 남 보기에 기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겉돌지 않고
마6:6에 따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마음 깊이 기도가 진행되면 평소 기도로서는 깨끗하고 좋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대로 된 기도가 계속 되면서 하나님과 관계가 가까워지고,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 주셔야 하는 신령한 면이 있을 때, 일반적인 정도가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계시를 직접 주실 때는 사람을 의식이 없도록 재워 놓고 꿈을 통해 보여 주시는 것이 성경의 꿈에서 받는 계시입니다.
조금 애매하거나 조금 신령한 면이 되어 이해가 어렵거나 또는 옳은지를 살펴 봐야 하실 때는, 과제로 두고 시간을 좀 지내 봐 보시면 좋겠습니다. 백 목사님도 스스로 그렇게 하셨고 주변에서 직접 배우는 사람들도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씩 알아 왔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 내용이 아내의 꿈속에 나타났다면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그 생각을 알 수 있는 무언의 행동이나 어떤 모습이 있었다면 아내가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꿈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주사야몽이란 이런 것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꿈이라고 다 하나님이 알리시는 계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평범하지 않은 꿈이라면 그냥 무시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혹시 그렇게 알리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꿈의 내용에 따라 할 일이면 하고, 고칠 것이면 고치고, 노력할 것은 노력하여, 신앙의 유익한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직접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하더라도 서로의 구원 유익을 위해서 꿈을 선용하는 것이니 손해 볼 것은 없겠습니다. 다만, 그런 꿈을 두고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 답변 중에 '담당'께서 꿈에 대해서 세밀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글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꿈이라고 다 하나님이 알리시는 계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평범하지 않은 꿈이라면 그냥 무시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혹시 그렇게 알리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꿈의 내용에 따라 할 일이면 하고, 고칠 것이면 고치고, 노력할 것은 노력하여, 신앙의 유익한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직접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하더라도 서로의 구원 유익을 위해서 꿈을 선용하는 것이니 손해 볼 것은 없겠습니다. 다만, 그런 꿈을 두고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 답변 중에 '담당'께서 꿈에 대해서 세밀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글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