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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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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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9 20:24
친구들이 기독교를 물으면 어떤 답이 가장 좋습니까?
1. 귀신을 물었는데 있다고만 하면 두려움을 느낄 것 같고 없다고 하면 여러 증거를 대며 다시 물을 것 같습니다.
귀신은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려고 매우 힘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입고 살면 내가 모르는 방해까지 방어가 되는 것을 압니다.
2. 이종교의 돼지고기를 말하던 중 기독교도 못 먹는 음식이 있느냐 물어 피라고 말했더니 선지국이나 상처에 흐르는 피도 안 먹느냐 합니다. 그렇다 했으나 너무 껍데기로 나가는 모양이라 여쭙니다.
3. 잘 몰라서 잘못 전달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당시에도 틀린 줄 알았으나 환경에 피동되 답변이랍시고 순마귀말을 실컷 한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친구들과 대화)
교회를 좀 열심히 다니다 보면 주변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가 오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당장 그 자리에서 속이 시원하게 답을 하면 좋겠지만 그러려다 보면 누구든 실수하기 쉽습니다. 뭐든지 처음 해 보는 일은 아이들이 걸음마 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하다 보면 자꾸 나아 집니다.
1. 귀신
전설이나 신화나 만화에 나오는 귀신의 그림이 많습니다. 귀신은 사람들이 상상으로 그려 본 것입니다. 낮에 무서운 것을 보면 밤에 꿈으로 나타 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낮에 본 것은 징그럽거나 그냥 무서운 개의 얼굴인데, 밤에는 이런 기억들이 내 머리 속에서 상상화를 그려서 나오는 것입니다. 낮에 본 것은 실제 있는 것이고 꿈에서 본 것은 소설이고 상상화입니다.
인류가 살아 오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그런 무서운 그림을 인도에서는 불교 세계의 귀신으로, 중국에서는 유교의 죽은 시체 강시 귀신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얼굴이나 좀 험하게 돌아 가신 시체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에 섞어서 내려 오다 보니 공통적으로 귀신 그림을 그립니다.
믿는 사람은, 성경에 나오는 귀신으로만 이야기 하면 됩니다. 귀신은 몸이 없고 마음도 없고 귀신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천사는 영으로만 된 존재여서 볼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기록할 때는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사람처럼 적어 주셨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천사의 모습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게 나타나게 한 것이지 천사와 악령은 '영'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의 눈으로 그려 볼 수는 없습니다. 귀신은 사람이 무서운 생각으로 그려 본 짐작이지 실제 모습은 없습니다. 귀신이란 우리 마음 안에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귀신의 작용입니다.
혹시 친구가 이런 설명을 두고 다시 물어 보거나 무슨 말을 하면 바로 대답하는 것보다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생각을 해보고 나서 대답해 줄께'라는 말을 평생에 주저 없이 할 수 있어야 정말 지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용기 중에 '현재는 모르겠다'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용기입니다. 그대신 '알아 볼께'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소망이 있는 큰 그릇입니다. 친구들끼리 우선은 '에이~'라고 할지 모르나 친한 친구끼리도 조심해서 말할 것은 조심할 수 있을 때 그들이 평생에 마음 속으로는 그런 친구를 남 다르게 좋아 할 수 있습니다. 답변하는 사람도 어린 시절과 중고교 학교 생활을 거쳐 봤습니다. 또 사회 시작에 서툴 때를 거쳐 봤으나 이제 말한 대로 그렇게 조심을 했던 친구들은 평생에 친구인데도 친구 이상으로 상대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답변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고 주변을 살펴 보면 그렇습니다.
2. 피
구약에는 레위기 11장에 먹지 못하는 짐승을 일일이 적었습니다. 돼지를 먹지 말라 한 것은 아무 것이나 먹고 보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구약은 어린 시절이어서 쉽게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금지했습니다. 신약은 십계명과 십일조 그리고 우상의 제물이나 피를 먹지 말라 그 정도만 금지했습니다. 그 외에는 자기 신앙에 따라 자기가 알아서 조금씩 더 조심해도 되고 또 신앙이 준비 되지 않으면 각자 알아서 자기를 살피게 되어 있습니다.
피를 먹지 말라고 했으면 사도행전 15장에 기록할 때는 우리가 잘 몰라도 이유가 있어 그렇습니다. 피는 생명을 아끼고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에 먹을 것이 천 가지 만 가지도 넘는데 성경에 2천년 전에 '피'와 '우상 제물'을 금지했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 가면서 느껴 보면 됩니다. 유치원 아이에게 대로에서 놀지 말라고 할 때 '무슨 간섭을..' 이렇게 짜증 낼 일이 아닙니다. 설명을 하려면 어려우나 한두 가지를 부탁하면 그 정도는 듣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학교 생활에서 금지하는 것이 한두 가지입니다. 몇 가지 시킬 때는 이유가 있는데 너무 외식이다, 껍데기다 라면서 반발하려면? 그래서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시키는 것을 무시하면? 아마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3. 잘 몰라서 잘못 전달한 것
솔직히 얼른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든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용감한 사람과 비겁한 사람으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잘못 된 것을 잘못했다는 용기는 이순신보다 용기 있는 일입니다. 난중일기에도 혼자 중얼 거린 이야기가 더러 나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여간 위대한 분들도 이런 용기는 참 드뭅니다. 그대신 쉽게 잘못하고, 쉽게 수정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더 큰 일이 납니다. 잘못 전한 것은 바로 잡되 앞으로는 그 것 때문에 더 신중해 지면 자기는 명품이 됩니다.
교회를 좀 열심히 다니다 보면 주변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가 오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당장 그 자리에서 속이 시원하게 답을 하면 좋겠지만 그러려다 보면 누구든 실수하기 쉽습니다. 뭐든지 처음 해 보는 일은 아이들이 걸음마 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하다 보면 자꾸 나아 집니다.
1. 귀신
전설이나 신화나 만화에 나오는 귀신의 그림이 많습니다. 귀신은 사람들이 상상으로 그려 본 것입니다. 낮에 무서운 것을 보면 밤에 꿈으로 나타 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낮에 본 것은 징그럽거나 그냥 무서운 개의 얼굴인데, 밤에는 이런 기억들이 내 머리 속에서 상상화를 그려서 나오는 것입니다. 낮에 본 것은 실제 있는 것이고 꿈에서 본 것은 소설이고 상상화입니다.
인류가 살아 오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그런 무서운 그림을 인도에서는 불교 세계의 귀신으로, 중국에서는 유교의 죽은 시체 강시 귀신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얼굴이나 좀 험하게 돌아 가신 시체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에 섞어서 내려 오다 보니 공통적으로 귀신 그림을 그립니다.
믿는 사람은, 성경에 나오는 귀신으로만 이야기 하면 됩니다. 귀신은 몸이 없고 마음도 없고 귀신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천사는 영으로만 된 존재여서 볼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기록할 때는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사람처럼 적어 주셨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천사의 모습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게 나타나게 한 것이지 천사와 악령은 '영'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의 눈으로 그려 볼 수는 없습니다. 귀신은 사람이 무서운 생각으로 그려 본 짐작이지 실제 모습은 없습니다. 귀신이란 우리 마음 안에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귀신의 작용입니다.
혹시 친구가 이런 설명을 두고 다시 물어 보거나 무슨 말을 하면 바로 대답하는 것보다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생각을 해보고 나서 대답해 줄께'라는 말을 평생에 주저 없이 할 수 있어야 정말 지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용기 중에 '현재는 모르겠다'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용기입니다. 그대신 '알아 볼께'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소망이 있는 큰 그릇입니다. 친구들끼리 우선은 '에이~'라고 할지 모르나 친한 친구끼리도 조심해서 말할 것은 조심할 수 있을 때 그들이 평생에 마음 속으로는 그런 친구를 남 다르게 좋아 할 수 있습니다. 답변하는 사람도 어린 시절과 중고교 학교 생활을 거쳐 봤습니다. 또 사회 시작에 서툴 때를 거쳐 봤으나 이제 말한 대로 그렇게 조심을 했던 친구들은 평생에 친구인데도 친구 이상으로 상대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답변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고 주변을 살펴 보면 그렇습니다.
2. 피
구약에는 레위기 11장에 먹지 못하는 짐승을 일일이 적었습니다. 돼지를 먹지 말라 한 것은 아무 것이나 먹고 보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구약은 어린 시절이어서 쉽게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금지했습니다. 신약은 십계명과 십일조 그리고 우상의 제물이나 피를 먹지 말라 그 정도만 금지했습니다. 그 외에는 자기 신앙에 따라 자기가 알아서 조금씩 더 조심해도 되고 또 신앙이 준비 되지 않으면 각자 알아서 자기를 살피게 되어 있습니다.
피를 먹지 말라고 했으면 사도행전 15장에 기록할 때는 우리가 잘 몰라도 이유가 있어 그렇습니다. 피는 생명을 아끼고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에 먹을 것이 천 가지 만 가지도 넘는데 성경에 2천년 전에 '피'와 '우상 제물'을 금지했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 가면서 느껴 보면 됩니다. 유치원 아이에게 대로에서 놀지 말라고 할 때 '무슨 간섭을..' 이렇게 짜증 낼 일이 아닙니다. 설명을 하려면 어려우나 한두 가지를 부탁하면 그 정도는 듣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학교 생활에서 금지하는 것이 한두 가지입니다. 몇 가지 시킬 때는 이유가 있는데 너무 외식이다, 껍데기다 라면서 반발하려면? 그래서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시키는 것을 무시하면? 아마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3. 잘 몰라서 잘못 전달한 것
솔직히 얼른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든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용감한 사람과 비겁한 사람으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잘못 된 것을 잘못했다는 용기는 이순신보다 용기 있는 일입니다. 난중일기에도 혼자 중얼 거린 이야기가 더러 나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여간 위대한 분들도 이런 용기는 참 드뭅니다. 그대신 쉽게 잘못하고, 쉽게 수정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더 큰 일이 납니다. 잘못 전한 것은 바로 잡되 앞으로는 그 것 때문에 더 신중해 지면 자기는 명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