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2:44 - 예수님의 마음상태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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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2:44 - 예수님의 마음상태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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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질문 1 0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눅22:44 에 대하여 회의론자들(기독교 신앙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땀이 핏방울이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실제 그렇지 않았는데 상상력이 지나쳐 과장을 했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인 중에는, 의사 누가는 예수님께서 하도 땀을 비 오듯 흘려 마치 환부에서 흐르는 피처럼 보였다는 의미로 그렇게 썼을 수도 있었다 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의학박사이면서 성경학자인 알렉산더 메드럴은 땀이 핏방울이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의학적으로 혈한증이라고 불리는 상태라고 합니다. 혈한증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을 때 일어나는 일인데, 사람이 심하게 고민하면 땀샘에 있는 모세관을 파괴하는 화학성분이 몸에서 나오는데 그 결과로,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땀을 흘릴 때 피가 섞여서 나오게 됩니다. 즉 아주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극도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있을 때 불안이 극에 달하면 화학물질이 분비 되면서 땀샘의 모세혈관이 터져서 그 결과 소량의 피가 땀샘에 스며들어 땀이 핏빛으로 변합니다. 많은 피는 아니고 극히 소량입니다.


질문1) 공회에서는 눅22:44에서 예수님의 땀피 핏방울로 되었는 것이 실제 그러한 일이 있었떤 것으로 보는지 궁금합니다.


질문2)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에 대한 공회의 해석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고통 당하실때도, 주님은 원망 불평 억지가 전혀 없었고 하나님을 향한 지극한 찬송의 마음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눅22:44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을 앞두고 땀이 핏방울로 되기까지 기도하셨을때의 예수님의 마음상태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이때의 예수님의 마음에는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 스트레스가 없었는지? 예수님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하게 기도하셨다면 그때의 예수님의 마음상태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3) 눅22:42 "가라사대 아버지의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옯기옵소서. 그러나 내 원재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잔을 내게서 옯기옵소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나 크서 두려워서) 마음에 부담이 되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라고 하신 것이 아닌지? 아니라면 이 "이 잔을 내게서 옯기옵소서"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담당 2025.09.09 17:27  
(성경의 인체 기록)
아담의 인체는 출생 과정도 그 이후도 오늘 우리의 인체와 다릅니다. 타락한 후부터는 우리와 같습니다. 노아까지 초기 조상들은 90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타락 후 아담과 홍수 후 노아와 아브라함의 근친 결혼을 했으나 장애자가 없었고 오히려 자손이 번창하여 오늘의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최대한 성경 안에서만 살피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아예 불가능하지만 성경의 이런 명백한 기록에 의문이 생기면 신자와 불신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분이고, 이런 기록을 믿는다면 우리는 신자들입니다. 신자들만의 대화로 이어 갑니다. 이 기록은 과학적으로 아주 무리를 해야 가능합니다.

생화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아브라함 부부의 출산, 에녹 엘리야의 승천, 마리아의 첫 출산은 애매한 정도가 아니라 과학을 아예 초월해 버렸습니다. 자연의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서 자연의 환경을 중단 시키거나 달리 운영한 결과입니다. 이런 상황에 의문을 하려면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창세기 1장의 창조부터 바꾸면 됩니다. 그렇다면 타 종교가 됩니다. 이 곳은, 그리고 현재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 가는 우리는 이런 것을 기록 그대로 믿을 때 비로소 교인입니다.

눅22:44 예수께서 ..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앞에 나온 기록을 믿는다면 이런 기록은 과학적 근거나 가능성이나 우발적 현상을 굳이 비교하거나 따질 일이 아니라 기록한 그대로 '아! 그렇구나' 라면서 있는 그대로 읽고 읽은 그대로 받아 들이면 스폰지가 물을 머금듯 우리 내면의 지식방이 아름답게 잘 정돈이 되고 깔끔해 집니다. 여기에 과학의 일반 이론을 조금만 참고하려고 기웃거리는 순간 우리의 지식방은 정리 정돈의 체계가 흐트러 지면서 멀미를 하게 됩니다. 이 설명을 불신 과학자가 읽는다면 미신 맹신의 생성 과정이라고 흥미롭게 주목하겠지만 지금 질문의 글을 적으신 분과 안내를 하고 있는 이 글은 미신이나 맹신의 수준을 넘어 선 상황입니다. 미신 맹신을 넘어 서는 사람이 성경의 비과학 초과학을 진지하게 잘 받아 들이면 이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믿음은 내 마음의 희망 사항이거나 희망 사항이 반복되면서 일어 나는 착각이나 자기 마취나 도취나 세뇌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밖에서 우리 생각 자체를 바꿔 주신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인체는 그 출발부터 아버지가 없는데도 아버지가 있는 일반인과 같았으니 인간의 인체이면서 인간의 인체와 달랐습니다. 금식을 하면 배가 고픈 육체였으나 타락하기 전 처음 만들었을 때의 아담과 같았습니다. 첫 인류 아담과 하와만은 남녀의 자연 생육법이 아닌 인체를 가졌습니다. 이 육체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할 때 그 집중력은 우리와 달라서 우리는 마음 따로 몸 따로가 자연스러우나 주님은 심신이 늘 일치 되었습니다. 마음이 슬프면 몸이 마음의 슬픔을 고스란히 반영했고, 마음이 기쁘면 육체가 기뻐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기쁨의 표정을 자연스럽게 고스란히 담아 냈습니다. 주님의 몸과 마음은 이중이 없고 착오가 없으며 분리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돌아 가셔서 마음이 슬퍼해야 하는데 눈에서 눈물이 잘 나오지 않아 남들 보기에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시부모의 경우.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절명의 최후 순간까지 사단의 시험은 우주적이 될 터인데 그 순간에 심신의 어떤 부분이라도 한순간만 빈틈이 생기면 대속은 실패가 되고 주님이 사람 되어 고난을 당하시는 모든 과정은 헛일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목적도 하나님 자체도 우리의 구원도 전부 무너집니다. 그래서 죄가 없는 주님이지만 십자가의 최후 절정을 앞에 둔 주님의 마음은 영원 전 하나님 자체의 목적, 그 동안의 예정과 섭리 역사, 그리고 이 십자가 이후 벌어질 영원 영생의 세계를 전부 펼쳐 놓고 일점일획도 가감없는 순종을 각오해야 했고 점검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자기 일생을 결정하는 단 한번의 기회를 두고 마음을 졸이는 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이런 무한의 세계를 유한한 주님의 심신 안으로 밀어 넣고 응축하던 순간에 주님의 인체 속 혈류 상황은 우리가 평소 겪을 수 있는 극단과는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체는 너무 압박을 받으면 혈류와 신경에 혼선도 생기고 심장이 멎거나 돌아 버리거나 눈에 핏줄이 터지거나 코피가 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인체는 죄가 없으시니 죄로 저주 받은 우리의 심신보다는 성능이나 용량이 훨씬 탁월합니다. 그렇다고 주님의 심신 자체가 물질인데 물질이 무한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죄인 자리, 자격,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보다는 탁월하지만 물질의 한계는 분명히 가진 상태에서 우주적인 고난을 이기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 절정의 순간만 절정이지 않았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로 준비할 때부터 이미 그런 절정을 감당할 자신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조차 코피가 터지고 눈에 핏대가 서다가 그보다 더한 출혈 현상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만은 우리도 아주 가끔 또는 주변에서 한번씩 접할 수 있는 상식입니다. 그런 상식과 비교할 수 없는 극단의 세계에서 주님의 인체 중 그 피부 그 얼굴에 땀이 흐르던 평소보다 그 얼굴 피부 쪽에서 혈관까지 터질 수 있다는 것은 의학 전문가의 설명을 굳이 채용하지 않고도 성경의 기록만으로 주님의 상황을 충분히 우리 내면에 담아 낼 수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꾸 노력해 보면 점점 나아질 듯합니다. 이런 묵상, 이런 명상, 이런 내면의 세계를 자꾸 추구하다 보면 이 부분뿐 아니라 창세기 1장의 첫 말씀부터 계시록 마지막의 기록까지 모든 성경의 표현을 원래 기록한 말씀에 더 가까이 나아 갈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가 '어머니'라는 단어를 압니다. 이 단어도 고대 사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음과 기록에 변동이 많았을 듯합니다. 한글의 변동은 아직까지는 1천 년 정도밖에 추적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기록은 벌써 2천년이나 되었습니다. 성경의 첫 기록은 3500여 년 전입니다. 성경의 원본 첫 기록은 정확무오했지만 이후 배껴 적는 과정에 혼란이 좀 있었으며, 원본이 보존 되었다 해도 구약은 주님을 처형했을 것이고, 그 원본이 오늘까지 있었다 해도 번역 과정에 오류는 심각한 법이며 우리가 히브리어 헬라어 원어민이라 치고 원본 기록 성경을 손에 든다 해도 우리의 믿음이란 그 원본을 찢어 버릴 수준입니다. 모세가 첫 원본 성경을 깨트려 없애 버렸다는 사실이 이런 설명의 성경적 근거입니다. 과학이나 세상 상식은 전문적으로 들어 가지 마시고 일반적으로 아는 정도에서 '자연계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배경에서 성경의 말씀을 일단 접할 때 이 번 설명의 첫 대목처럼 적은 그대로 하나씩 읽고, 읽은 대로 내 지식의 방에 고이 모시고 그리고 나의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잘 받아 들이다 보면 조금씩 말씀에 가까워 집니다. 그렇게 된 상태로 다시 질문하신 눅22:44을 읽어 보면 그 말씀이 잘 와 닿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말씀과 함께 모든 말씀을 그렇게 받아 새기다 보면 다른 성경의 의문도 갈수록 명료해 질 듯합니다. 신학이나 이론이나 세상 전문 지식을 밀쳐 놓고 말씀을 말씀으로 모시고 걸어 간 분들이 가르친 것을 기억하며 그 분들의 부탁을 대신 소개해 드립니다.



(질문1)
공회는 눅22:44에서 예수님의 땀피 핏방울로 되었다는 기록을 있는 그대로 읽고 그대로 마음에 담고 삽니다.

(질문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십자가에서 주님은 육체적 고통이 극단적일 때 이미 준비한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동행적 은혜가 넘쳤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원망스럽거나 불평하면서 자포자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 육체를 대속의 제물로 찢는 것을 감사하며 찬송하는 상황이었다고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 53:12, 십자가에서 마지막 운명하시던 순간에 로마 군병과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천주교 성당에 그려 놓은 표정처럼 보였으나 그 것은 사람이 자기 된 대로 보여 진 것을 표시했고, 택한 모든 백성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해결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당시 그 주변에 그렇게 오판하던 이들 중에 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고 역사의 모든 택자 우리를 위해 도리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그릴 때마다 우리가 주님을 심방하고 위로해 드리고 힘 내시라 하고 또 감사하다며 위로하지만 주님은 속으로 웃고 계십니다. 니들이나 정신 차리라 하시며 우리 위해 도리어 기도하셨습니다.

이 해석이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구약의 제사장은 성전에서 제물을 잡을 때마다 원망 고통 불만 억지의 마음이라야 합니다. 무슨 팔자가 소 잡는 백정이 되어 항상 이렇게 잡아 대는가.. 구약의 제사장들의 자세가 그럴 때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백성과 자기의 지은 죄로 절망의 저주뿐인데 양을 잡아 해결이 되니 그 제사의 진행은 조심스럽게 두렵고 떨리며 실수하지 않도록 절제했으나 속으로는 축제였습니다. 성전의 제사가 진정 축제가 될 때 구약의 이스라엘은 번창했고, 하기는 하면서 먹는 데만 관심이 있거나 아니면 팔자 타령하며 마지 못해 잡아 댈 때 이스라엘은 황폐해 졌습니다.


그렇다면 눅22:44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을 앞두고 땀이 핏방울로 되기까지 기도하셨을 때의 마음 상태는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옷 하나 입는 것과 자기들을  씻는 것과 걸음 걸이 하나와 제사의 모든 절차를 진행할 때 만의 하나라도 실수하면 나답과 아비후처럼 불이 삼켜 죽여 버릴 수 있는 두려움으로 조심을 하였고, 이 것은 주님이 죄와 마귀와 사망에게 유혹을 받거나 협박을 당하거나 고통 때문에 죄를 짓는다면 다 헛일이 되어 그 절차 그 과정 그 진행은 두렵고 떨림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내용적으로는 구약의 제단 위의 희생이 구약 교회의 구원이며 소망이며 하늘의 복이었고 주님의 십자가는 신구약 모든 택자와 하늘의 영원한 영광의 완전 영원 단번의 해결이니 기뻐 춤을 추는 순간이었습니다.


(질문3)
 눅22:42 "..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옯기옵소서'
이렇게 영광의 전부며 절정이며 영원 불변의 나라가 시작되는 이 순간을 도성인신의 주님 인체에게 사명을 주셨으니 주님의 심신으로서야 무한 영광이지만 이런 영광의 위치, 사명, 그 순간도 주님이 내가 차지하겠다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중심이 되고 결정을 하고 주님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시라도 구원의 최종 결정은 성부 하나님이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고 결정을 하시면 아들로서 영광이든 수치든 죽든 살든 순종만 하겠습니다.. 다만 제게 맡기는 감사히 맡아서 진행을 하지만 그 과정에 예수님의 심신이 물질이어서 만일 실수를 하고 죄를 지으면 예수님부터 죄인이 되고 예수님이 실패하면 두번의 기회가 없으니 이 막중한 사명 때문에 만일 예수님 외에 다른 선지자나 다른 구원의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국가 대표 선수로 선발이 된다면 뇌물을 주고 조작을 해서라도 내가 나가고 싶습니다. 경쟁자가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내가 나가서 은메달을 따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자기 중심이며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말 순수한 애국자가 있다면 내가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고 내가 제일 나으니 내가 대표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며 선발대회에 나섭니다. 그런데 그 마음으로는 만의 하나 나보다 나은 선수가 국내에 있다면, 만의 하나 예상 못한 경쟁국의 더 나은 선수가 나온다면, 내가 나가서 만의 하나 은메달이 될 수 있다면 대표단 책임자에게 나보다 나은 선수가 있다면 언제든 양보하겠습니다.. 세상 나라도 애국자라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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