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간단하나, 실행은 어려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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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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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6 00:00
1.일단, 옳은 것에 앞서야 합니다.
일반 남편도 그렇지만 목회자는 특히 옳은 것에 있어 아내를 앞서야만 합니다.
남들은 전혀 알 수 없겠지만 지식과 판단에서 아내를 앞서기 위해 혈투를 벌여야 합니다.
성경 연구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은혜 구하며 필사적으로 아내를 신앙으로 앞서야 합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또는 남편이라고 해서 그냥 아내를 누른다면 그것은 공자 제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일단 옳은 것을 먼저 깨닫고 앞서 달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다음, 사모를 자기 첫 교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가정 다른 부부들과 그 자녀들을 내가 깨닫고 인도하는 방향으로 데려 가야 할 것인데
만일 함께 사는 자기 아내를 자기가 깨달은 옳은 방향으로 끌지 못한다면? 자격미달입니다.
사모는 남편이 좋아 순종하는지 목회자의 옳은 지도니가 순종하는지 구별이 어렵습니다.
어렵지만 잘 구별해서 남편 사랑이 아니라 옳고 바르기 때문에 순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모를 목회자의 일등 교인, 첫 교인, 가장 앞서 따라오는 교인으로 만들게 되면
목회자는 자기 양심에 진정 자기 아내가 신앙이 있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 순간을 조심하지 않으면 신앙 있는 사모를 만든 성공 뒤에 사모를 앞세우다 실패합니다.
사모가 신앙있고 실력있고 목회자에게 신앙으로 따르는 사람이 되고 나면
사모는 교회 안에서 다른 교인들이 피하는 일 험한 일 어려운 일만 해야 합니다.
남들이 다 아니 한다 해서 시켜도 우리 한국사람은 겉다르고 속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뭘 몰라서 해보고 싶을 수 있고 또 뒤에 깨닫고 좋은 마음으로 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꼭 할 사람이 없으면 시키되 늘 교인 눈치를 보고 혹시 하고 싶은데 말을 못하는지 읽다가
그런 사람이 있거나 그런 경우가 있으면 얼른 그들에게 임시 시켜보며 살펴야 합니다.
과연 진정 하기 싫은 눈치면 다시 회수하고 좋아하면 그대로 시키면서 또 지켜봐야 합니다.
3.여기서, 목회자는 또 한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 사모가 여자입니다. 그 사모를 비록 목회자의 교인으로 만들었지만 사모도 교인입니다.
사모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어느날 성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내가 딱 하나 믿고 의지하고 모든 고통을 묻고 따를 수 있는 것은
남편인 목회자를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남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목회자를 따르게 만들어라고 했지만
그것이 한꺼번에 완전하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었다 해도 그 내면은 아직 하나님과 멀고 그대신 남편이 눈 앞에 있습니다.
사모가 숨어서 궂은 일을 도맡아야 하는데 사모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운 다음에
사모를 목회자가 몰래 돕고 이해하고 잘 살피면 그 충성이 계속 되어 교회에 복이 되는데
사모야 의례 그렇게 한다 생각하여 사모에게 무심하거나 사모가 신앙이 있다고 더 누르면
어느날 사모가 자기가 견딜 수 없어 속에 불만이 밖으로 표시가 되기 시작하면!
교회는 그 목회자 부부를 두고서는 기둥 뿌리가 흔들리는 지진을 늘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사모보다 먼저 옳은 사람이 되고 그 다음 사모를 깨닫고 따라 오게 한 다음
사모에게 교회와 목회로 인한 짐을 지울 때는 교인들 보이지 않는 둘만의 사이에서
목회자는 사모에게 죄인이 되어야 하고 빚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사모가 목회자의 이런 중심과 위로와 자세를 알게 되면 더욱 교회를 위해 충성하게 되고
사모가 숨은 수고를 하여 사모 한 사람의 수고가 교인 5명 때로는 10명 이상 몫을 합니다.
사모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데 이 나라 우리들 심리에서는 표시를 내지 않아야 하니
목회자가 사모를 바로 끌고 바로 시키고 바로 다독거릴 수 있다면 굉장한 목회자일 것이고
그런 목회자는 어떤 교인들의 어떤 갈등도 무난하게 조절 조정해 나갈 목회자일 것입니다.
4.산 너머 산
목회자가 되었다고 그날부터 종자가 달라진 것이 아닌데
교인들은 그날부터 천사가 되었고 성자가 되었으며 종자가 달라졌다는 기대를 가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극진하게 대우하는데 그 사람들이 대개 등에다 비수를 꽂을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를 모시면 의례 흠과 점과 실수가 많을 것이니 교인들이 보충할 면을 살펴야 하고
잘하면 격려하고 잘못하면 뒤에 좀 나아지도록 기대하며 충고하고 대화를 하면 되는데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머리 속에다 철필로 꼬박꼬박 기록을 해두고 한꺼번에 쏟아 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교인들이 환영한다고 우쭐하는 목회자도 불구덩이인지 모르는 사람이고
목회자가 그래 느끼도록 앞에서는 언행하고 속으로는 비수를 준비하는 교인도 문제입니다.
한겨울 새벽 4시 30분 예배를 위해 4시에 예열 기능 없는 차량 운행 고통은 모두 알 것인데
운전을 위해 월급 주는 직원을 들이든지 특별히 그 면으로 충성하는 교인이 없는 교회라면
주로 사모가 운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겨울 새벽 운전이야 서로 하려는 빛 나는 자리가 아니라 교회에서 가장 험한 일이기 때문에
사모를 시켰는데 '암송아지로 밭을 갈게 한다!'는 성구까지 인용하여 목회자를 욕한 다음
그런 성구로 목회자나 다른 교인에게 목회자가 사모 정치를 한다며 그렇게 표현하는 자신을
스스로 자랑스럽고 목회자를 지도하는 선지자라 생각하여 흐뭇해 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이럴 때도 그 교인을 철없어 마치 3세 아이가 면도칼 들고 아무에게나 휘두르는 꼴로 보고
목회자는 그 교인 부부가 겨울 새벽운전을 하고 싶은데 시키지 않아서 화가 났구나 하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교인의 마음을 읽지 못한 어두운 눈을 회개하고 이제라도 기회를 주고
그런 일에 사모를 시켜도 되는 줄 알고 시켰는데 실수를 했으니 사과하면 됩니다.
그런데 교인 전체는 목회자의 그런 행동이 옳다고 확실하게 지지하고 그 교인만 반대하면
그 교인에게 목회자가 교인이 원하면 무엇이든 고치려 하는데 다른 교인들의 의사가 다르니
교인들끼리 서로 좋게 대화해서 한 가지 의견을 만들어 오면 순종하기가 쉽고
혹시 교인들끼리 서로 의견이 나뉘어진다면 목회자로서는 전체가 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어린 교인들을 우선 배려하거나 아니면 많은 교인들의 의견을 잠정적으로 배려하면 됩니다.
5.이렇게 한 다음
오랜 후에 그 교회를 떠나게 되면
흔히 목회자 사모나 자녀들은 그 교회를 두고 그런 숨겨진 고통을 토로하고 비판하는데
진정한 목회자라면, 이런 부부를 목회자로 모셔놓고 그 기간을 참았던 교인들에게
애썼고 많이 참았으니 죄송하고 한편으로 감사하다는 자세와 언행을 해야 옳습니다.
자기를 목회자로 생각하고 자기 설교를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연보한 교인들의 수고는
목회자의 목회 수고에 비하여 결단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골교회나 도시라도 작은 교회는 교인 생활을 조금 열심히 해보면
사모라는 것은 이런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목회자보다는 사모에 대하여 걱정과 우려도 또한 안스러움과 죄송함도 더 가지게 됩니다.
철없는 사모와 애처가 남편이 목회자로 있으면서 최신식 부부 목회를 하게 될 대 폐해점.
신앙 있거나 성품이 좋은 사모가 교회에서 숨어 수고할 때의 그 고생과 교회로서 복된 점.
이 양쪽 사이에서 목회자와 사모와 교회의 지도급 교인과 일반 교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복잡한 관계는 잘 되면 교회가 지상낙원이 되고 한쪽이 잘못되면 쑥대밭 지옥이 되는데
사모 한 사람이 혀를 깨물고 이런 차원을 넘어 버리면 목회자도 모든 교인도 다 좋아지는데
사모 한 사람에게 목회자와 모든 교인이 그런 짐을 지운다는 것은 사실 잔인한 행동입니다.
6.이번 질문은
목회자가 질문하셨으니, 목회자가 설 자리와 목회자가 노력할 자리만 보시면 될 것입니다.
목회자가 사모를 바로 지도하고 바로 가르쳐 이해가 되어지면 본인들과 교회가 복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해결도 없습니다.
일반 남편도 그렇지만 목회자는 특히 옳은 것에 있어 아내를 앞서야만 합니다.
남들은 전혀 알 수 없겠지만 지식과 판단에서 아내를 앞서기 위해 혈투를 벌여야 합니다.
성경 연구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은혜 구하며 필사적으로 아내를 신앙으로 앞서야 합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또는 남편이라고 해서 그냥 아내를 누른다면 그것은 공자 제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일단 옳은 것을 먼저 깨닫고 앞서 달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다음, 사모를 자기 첫 교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가정 다른 부부들과 그 자녀들을 내가 깨닫고 인도하는 방향으로 데려 가야 할 것인데
만일 함께 사는 자기 아내를 자기가 깨달은 옳은 방향으로 끌지 못한다면? 자격미달입니다.
사모는 남편이 좋아 순종하는지 목회자의 옳은 지도니가 순종하는지 구별이 어렵습니다.
어렵지만 잘 구별해서 남편 사랑이 아니라 옳고 바르기 때문에 순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모를 목회자의 일등 교인, 첫 교인, 가장 앞서 따라오는 교인으로 만들게 되면
목회자는 자기 양심에 진정 자기 아내가 신앙이 있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 순간을 조심하지 않으면 신앙 있는 사모를 만든 성공 뒤에 사모를 앞세우다 실패합니다.
사모가 신앙있고 실력있고 목회자에게 신앙으로 따르는 사람이 되고 나면
사모는 교회 안에서 다른 교인들이 피하는 일 험한 일 어려운 일만 해야 합니다.
남들이 다 아니 한다 해서 시켜도 우리 한국사람은 겉다르고 속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뭘 몰라서 해보고 싶을 수 있고 또 뒤에 깨닫고 좋은 마음으로 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꼭 할 사람이 없으면 시키되 늘 교인 눈치를 보고 혹시 하고 싶은데 말을 못하는지 읽다가
그런 사람이 있거나 그런 경우가 있으면 얼른 그들에게 임시 시켜보며 살펴야 합니다.
과연 진정 하기 싫은 눈치면 다시 회수하고 좋아하면 그대로 시키면서 또 지켜봐야 합니다.
3.여기서, 목회자는 또 한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 사모가 여자입니다. 그 사모를 비록 목회자의 교인으로 만들었지만 사모도 교인입니다.
사모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어느날 성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내가 딱 하나 믿고 의지하고 모든 고통을 묻고 따를 수 있는 것은
남편인 목회자를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남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목회자를 따르게 만들어라고 했지만
그것이 한꺼번에 완전하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었다 해도 그 내면은 아직 하나님과 멀고 그대신 남편이 눈 앞에 있습니다.
사모가 숨어서 궂은 일을 도맡아야 하는데 사모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운 다음에
사모를 목회자가 몰래 돕고 이해하고 잘 살피면 그 충성이 계속 되어 교회에 복이 되는데
사모야 의례 그렇게 한다 생각하여 사모에게 무심하거나 사모가 신앙이 있다고 더 누르면
어느날 사모가 자기가 견딜 수 없어 속에 불만이 밖으로 표시가 되기 시작하면!
교회는 그 목회자 부부를 두고서는 기둥 뿌리가 흔들리는 지진을 늘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사모보다 먼저 옳은 사람이 되고 그 다음 사모를 깨닫고 따라 오게 한 다음
사모에게 교회와 목회로 인한 짐을 지울 때는 교인들 보이지 않는 둘만의 사이에서
목회자는 사모에게 죄인이 되어야 하고 빚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사모가 목회자의 이런 중심과 위로와 자세를 알게 되면 더욱 교회를 위해 충성하게 되고
사모가 숨은 수고를 하여 사모 한 사람의 수고가 교인 5명 때로는 10명 이상 몫을 합니다.
사모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데 이 나라 우리들 심리에서는 표시를 내지 않아야 하니
목회자가 사모를 바로 끌고 바로 시키고 바로 다독거릴 수 있다면 굉장한 목회자일 것이고
그런 목회자는 어떤 교인들의 어떤 갈등도 무난하게 조절 조정해 나갈 목회자일 것입니다.
4.산 너머 산
목회자가 되었다고 그날부터 종자가 달라진 것이 아닌데
교인들은 그날부터 천사가 되었고 성자가 되었으며 종자가 달라졌다는 기대를 가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극진하게 대우하는데 그 사람들이 대개 등에다 비수를 꽂을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를 모시면 의례 흠과 점과 실수가 많을 것이니 교인들이 보충할 면을 살펴야 하고
잘하면 격려하고 잘못하면 뒤에 좀 나아지도록 기대하며 충고하고 대화를 하면 되는데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머리 속에다 철필로 꼬박꼬박 기록을 해두고 한꺼번에 쏟아 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교인들이 환영한다고 우쭐하는 목회자도 불구덩이인지 모르는 사람이고
목회자가 그래 느끼도록 앞에서는 언행하고 속으로는 비수를 준비하는 교인도 문제입니다.
한겨울 새벽 4시 30분 예배를 위해 4시에 예열 기능 없는 차량 운행 고통은 모두 알 것인데
운전을 위해 월급 주는 직원을 들이든지 특별히 그 면으로 충성하는 교인이 없는 교회라면
주로 사모가 운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겨울 새벽 운전이야 서로 하려는 빛 나는 자리가 아니라 교회에서 가장 험한 일이기 때문에
사모를 시켰는데 '암송아지로 밭을 갈게 한다!'는 성구까지 인용하여 목회자를 욕한 다음
그런 성구로 목회자나 다른 교인에게 목회자가 사모 정치를 한다며 그렇게 표현하는 자신을
스스로 자랑스럽고 목회자를 지도하는 선지자라 생각하여 흐뭇해 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이럴 때도 그 교인을 철없어 마치 3세 아이가 면도칼 들고 아무에게나 휘두르는 꼴로 보고
목회자는 그 교인 부부가 겨울 새벽운전을 하고 싶은데 시키지 않아서 화가 났구나 하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교인의 마음을 읽지 못한 어두운 눈을 회개하고 이제라도 기회를 주고
그런 일에 사모를 시켜도 되는 줄 알고 시켰는데 실수를 했으니 사과하면 됩니다.
그런데 교인 전체는 목회자의 그런 행동이 옳다고 확실하게 지지하고 그 교인만 반대하면
그 교인에게 목회자가 교인이 원하면 무엇이든 고치려 하는데 다른 교인들의 의사가 다르니
교인들끼리 서로 좋게 대화해서 한 가지 의견을 만들어 오면 순종하기가 쉽고
혹시 교인들끼리 서로 의견이 나뉘어진다면 목회자로서는 전체가 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어린 교인들을 우선 배려하거나 아니면 많은 교인들의 의견을 잠정적으로 배려하면 됩니다.
5.이렇게 한 다음
오랜 후에 그 교회를 떠나게 되면
흔히 목회자 사모나 자녀들은 그 교회를 두고 그런 숨겨진 고통을 토로하고 비판하는데
진정한 목회자라면, 이런 부부를 목회자로 모셔놓고 그 기간을 참았던 교인들에게
애썼고 많이 참았으니 죄송하고 한편으로 감사하다는 자세와 언행을 해야 옳습니다.
자기를 목회자로 생각하고 자기 설교를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연보한 교인들의 수고는
목회자의 목회 수고에 비하여 결단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골교회나 도시라도 작은 교회는 교인 생활을 조금 열심히 해보면
사모라는 것은 이런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목회자보다는 사모에 대하여 걱정과 우려도 또한 안스러움과 죄송함도 더 가지게 됩니다.
철없는 사모와 애처가 남편이 목회자로 있으면서 최신식 부부 목회를 하게 될 대 폐해점.
신앙 있거나 성품이 좋은 사모가 교회에서 숨어 수고할 때의 그 고생과 교회로서 복된 점.
이 양쪽 사이에서 목회자와 사모와 교회의 지도급 교인과 일반 교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복잡한 관계는 잘 되면 교회가 지상낙원이 되고 한쪽이 잘못되면 쑥대밭 지옥이 되는데
사모 한 사람이 혀를 깨물고 이런 차원을 넘어 버리면 목회자도 모든 교인도 다 좋아지는데
사모 한 사람에게 목회자와 모든 교인이 그런 짐을 지운다는 것은 사실 잔인한 행동입니다.
6.이번 질문은
목회자가 질문하셨으니, 목회자가 설 자리와 목회자가 노력할 자리만 보시면 될 것입니다.
목회자가 사모를 바로 지도하고 바로 가르쳐 이해가 되어지면 본인들과 교회가 복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해결도 없습니다.
교역자와 사모
교역자와 사모의 관계는 성경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요?
어떤 교역자는 사모에게 완전히 잡혀서 사모에 말만 듯는것 같던데
바른 교역자부부에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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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와 사모의 관계는 성경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요?
어떤 교역자는 사모에게 완전히 잡혀서 사모에 말만 듯는것 같던데
바른 교역자부부에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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