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2:30과 막9:40은 모순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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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2:30과 막9:40은 모순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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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12 0
막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마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두 성구는 모순으로 보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쪽이 옳은지 몰라서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판단이 늦거나 체질적으로 만사가 늦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양쪽에서 보면 중간에 선 사람이 됩니다. 막9:40을 기준으로 보면 중간에 선 사람은 우리 편입니다. 그러나 마12:30으로 보면 중간에 선 사람은 다 반대 편이 됩니다. 왜 반대로 기록했을까요?
교인 2020.11.28 21:22  
믿음이 좋았던 사무엘을 비롯하여 사람은 외모로 판단을 많이 하지만 주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마다 변화 가능한 시간차가 있기에 사람이 사람의 중심을 단정하기란 어렵습니다 또한 사람은 어떤 사람 인생의 처음과 끝을 다 모릅니다 구약의 사울왕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쳤고 신약의 핍박자 바울은 육체로 시작했다가 성령의 순교로 그 생을 마쳤습니다  사울왕은 주님과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이면서 주님을 반대하는 자였고 바울은 처음에는 주님과 함께 아니하는 뱐대자처럼 보였으나 뒤에 보니 주님을 반대하지 않는 참 주님을 위하는 자였습니다 

예를 들면 소신 때문에 어떤 의견에 대하여 동참하여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대립되는 그 주장에 대해 자유의사를 존중하며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배수진을 치고 끝까지 싸우겠다면 그리하라 내가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주장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끝까지 투쟁하다 순교하기 보다 바벨론 포로가 되는 것이 나는 더 옳다 믿으니 나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반대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순교의 사명일 수 있으니 막을 수 없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런 사명을 받지 못했으니 함께 하지는 않는다 본인에게 주신 분량과 사명은 각자 사람마다 다르니 동참 안한다고 비겁하다 생각 마셨으면 함께 하지 않으면서 또한 끝까지 반대하는 자도 있는데 나는 그런 부류들과는 다름을 인정해 달라
신학생 2020.11.29 05:09  
마태복음 12장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가리켜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요 곧 나를 반대하는 자라 말씀하신 것 같고 마가복음 9장은 우리를 따라 함께 하지는 않지만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라 하신 것을 보니 믿는 사람인데 믿는 길이 조금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치유 사역자, 귀신을 전문으로 쫓아내는 사역자 정도로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말년에는 타락할 가능성은 있지만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그 당시 그 즉시로 주님을 비방할 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간혹 성구 인용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회 내에서 어떤 결정에 대해 한 교회가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마태복음 12장을 근거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니 우리를 반대하지 자라 하여 적으로 삼는데 이런 상황은 마가복음 12장에 따라 함께는 하지 아니해도 반대는 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사람은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니 대적으로 삼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 바른 지도라 생각합니다
담당8 2020.11.29 07:27  
연구소 내부의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여 빠르면 29일, 늦으면 30일까지 담당자가 적겠습니다.
연구1 2020.12.01 18:17  
마태
앞뒤의 흐름은 예수님이 귀신을 힘입지아니하시고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시는 말씀을 하시는 내용이므로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귀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마가에서의 반대하지 않는 자는 복음(또는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힙니다.
연구2 2020.12.01 18:17  
1. 막9:40
-우리 : 예수님과 제자
-반대자 : 복음활동을 반대(바리새인, 서기관 등)
-중간자 : 복음을 받을 대상

2. 마12:30
-나와 함께 하는 자(모으는 자) : 주님과 동행
-나를 반대하는 자(헤치는 자) :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자,
-중간자가 없음

3. 소결론
-모순 성구가 아니라 면이 다른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생명과 반대의 사망운동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복음운동에 있어서는 반대자의 반대운동도 있지만 반대하지 않는 자는 복음운동의 대상이요, 함께 할 수 있는 대상으로 판단됩니다.
연구3 2020.12.01 20:44  
마12:30은 반대하는 자에 대한 말씀이고
막9:40은 찬성하는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두 성구는 모순이 아니고 각각의 대상에 해당된 말씀입니다.

컵에 물이 반이 남았을 때
‘반밖에 남지 않았네’ 하는 말도 맞고
‘반이나 남았네’ 하는 말도 맞듯이

위 성구도 둘 다 맞는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모순이 아닙니다.
연구4 2020.12.01 20:44  
마12:30 ‘반대’의 경우(막12:22~32)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성령을 힘입어야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데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요,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성령을 훼방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나를 반대하는 자’라는 말은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여지없이 성령의 원수가 된다는 말입니다.     

막9:40 ‘반대’의 경우(막9:38~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따르지는 않지만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는 자’라는 말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은 사람은 마음으로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를 위해 일한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주의 이름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 사람은 당장 주를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결론
마12:30의 ‘반대’와 막9:40의 ‘반대’는 단어는 같은 단어를 사용했지만
마12:30의 ‘반대’는 원수의 의미로, 여지가 없는 경우에 사용했고
막9:40의 ‘반대’는 원수의 의미가 아니고, 포괄적인 경우로 사용했습니다.
연구5 2020.12.01 20:45  
마태복음 12장 30절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란?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라를 치료하시는 것을 보고 이 역사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역사하신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힘입어 한 일로 생각하는 자로 주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

마가복음 9장 40절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38절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보고라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 구원은 인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의 현실이 우리(제자들과 예수님)와 공간적으로 함께 할 수 없는 현실로 여겨지며
현실이 허락하면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위 두 절의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모순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담당 2020.12.02 05:22  
(현재 결론)
마12장은 복음을 대적하는 상황입니다. 이 때는 우리 편이 아니면 중간에 있는 사람도 박해를 돕는 원수가 됩니다.
막9장은 복음을 전하는 상황입니다. 나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도 전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 편입니다.

신앙이 자라 가는 준비의 과정에는 곳곳에서 별별 사람을 통해 복음 운동을 합니다. 자기 복음만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평소 전한 복음으로 고난을 당합니다. 시험의 때인데도 상관 없는 사람은 복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앞에 의견들)
앞서 설명한 내용 대부분이 공회의 난해절 해석에 대한 기본을 알기 때문에 잘 설명하셨다고 보입니다. 하나의 과제에 대하여 연구해 가는 과정을 알려 드리기 위해 연구소 내부의 몇 가지 의논을 소개했습니다. 대개 질문에 대한 안내는 연구소 단일의 입장만 드리지만, 모순으로 보이는 성경 해석이 답변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며 신앙의 난제는 풀 수 있게 주셨다는 점에서 바른 해석은 존재하는 법입니다. 다만 찿아 가는 과정에 교파도 생기고 교회 분쟁과 함께 살아 가는 모든 분란이 발생합니다. 공회는 이럴 때 '심의'라는 표현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삼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는 연구'를 심의라 합니다.
방청 2020.12.02 05:55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하는 자가 아니고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나를 반대하는 자도 있고 함께 하지는 않지만 반대하지 않고 우리를 위하는 자도 있다는 말씀 같습니다

다윗과 압살롬, 아렉 사람 후새와 아히도벨, 후새는 다윗과 함께 하지 못하고 궁으로 돌아가 압살롬과 함께 있었지만 압살롬과는 속으로 대적했고 압살롬이 볼 때는 다윗을 반대하는 자처럼 보였지만 진정 다윗을 위한 후새였다 아히도벨은 다윗과 함께 하지도 않으면서 다윗을 반대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한 자였다 다윗이 볼 때 아히도벨은 마태복음12장의 반대자 후새는 마가복음9장의 위하는 자의 경우처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해석의 적용도 달라진다

지금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반대하는 자라 단정 지을 수 없고 지금 나와 함께 한다고 해서 나를 위하는 자라 할 수도 없으며 지금 나와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해서 섣불리 나의 대적이라 말할 수도 없다 어제의 사울이 오늘에는 바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해 용서와 축복을 빌었던 스데반은 이 사실을 알았다 그 순교의 열매가 사도 바울이었던 것처럼 오늘의 측근이 내일에는 원수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원수가 내일에는 최측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성구로 받아들여진다.
연구6 2020.12.02 11:19  
말씀의 대상이 다르다 생각됩니다. 막9:40은 새사람, 유대인, 택자 같으며 마12:30은 옛사람, 이방인, 불택자 같습니다. 그러므로 막9:40의 ‘중간에 선 사람’은 어리고 연약하여 자라가는 과정의 사람으로 ‘우리’(주님과 제자들) 편이며, 마12:30의 ‘중간에 선 사람’은 그 어느 위치에 있든 모두 ‘나’(주님)의 반대편이 될 수밖에 없다 생각됩니다.

두 성구는 반대로 기록된 것처럼 보이나 모순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주교 2020.12.03 05:55  
두 성구를 종합해 볼 때,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나를 반대하는 자도 있고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서 나를 반대하지 않고 나를 위하는 자도 있다 겉으로 함께 하느냐 안 하느냐 속으로 반대하느냐 안 하느냐 사람의 겉과 속을 장시간을 두고 다 살피면 사람을 판단할 때 적군과 우방을 잘 분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적군을 우방으로 우방을 적군으로 오인하여 사살하면 이보다 더한 비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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