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의 신앙 (7128번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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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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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5 00:00
제목분류 : [~설교록~재독~소선집~]
내용분류 : [-설교록-재독-소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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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말씀 은혜 가운데 계신다 하시니
기록으로 남겨진 경우만 가지고 말한다면
백목사님 설교 자료만큼 성경을 깊게 은혜롭게 안내한 자료를 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 기록은 백목사님보다 더 은혜를 끼친 분들이 있다고 전하고 있으나
그때는 녹음시대가 아니어서 요약 형태로 기록이 전하므로
그 기록들은 은혜 면보다는 성경해석이나 교리 논리에서 큰 역할을 할 정도이지
당시 전한 말씀의 은혜가 백목사님 경우처럼 생생하게 전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집중적으로 연구하시면
말씀의 세계가 그냥 신학서에서 깊다고 하니까 깊다고 옮기는 그런 수준에서 벗어나
질문자 심신을 온통 뒤흔들며 울려나오는 질문자의 체험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질문하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면
':1.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구한 엘리사의 신앙'
- 엘리야가 성령에 강하게 붙들려 하나님 원하시는 바를 거침없이 그대로 나타냈습니다. 사람 실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수행했던 일들입니다. 그것을 목도한 엘리사는 천하 모든 것 중에서 엘리야를 붙든 성령의 권능을 가장 귀하게 보았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마지막 하나 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자 '엘리야가 받은 영감'을 구했습니다. '갑절'을 구한 것은, 엘리야보다 배나 악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엘리야를 계대하려면 그렇게 구해야 했습니다.
': 2.영감이 무엇인지'
성령의 감화 감동을 줄여서 '영감'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감화와 감동을 통해 가르치시며 힘을 주시니
바로 이런 순간에 그 가르침을 받고 행하는 만큼 영감의 사람입니다.
': 엘리사의 신앙 3단계 4단계'
3단계 신앙은 '여리고' 수준이었고
4단계 신앙은 '요단강'을 건너는 신앙입니다.
여리고는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맨손으로 여리고성을 돌아 성벽을 하나님 능력으로 무너지게 한 '능력의 신앙'면을 말합니다. 일반 세상 자연현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신앙세계의 특별한 경험과 체험, 기적의 신앙 단계를 말합니다. 주님을 따라 가다가 세상복을 많이 받게 되면 그것이 신앙의 최종인 줄 아는 1단계, 예배 생활 잘하는 것으로 전부인 줄 아는 제 2단계를 넘어 하나님이 권능으로 함께 하는 신앙차원이 3단계입니다. 그리고 주님 인도라면 생명까지 바쳐놓고 따르는 사선을 넘는 신앙이 '요단강'을 건너 엘리야를 따라가는 신앙단계입니다. '요단강'은 죽음을 가르칩니다. 사선을 말하는 지명입니다.
3.앞서 질문하신 설교 내용은 분량이 많아서 간단히 답변하겠습니다.
...............
...............
사람의 행동은 겉으로는 사람들이 알아서 마음대로 행하는 것 같지만, 실은 성령이 붙들고 움직이든지 아니면 모조리 악령에게 붙들려 움직입니다. 악령은 인류를 타락시켜오늘까지 죄를 짓게 했습니다. 인간 속에서 왕노릇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 대속으로 중생된 사람이 아니면 인간 스스로는 절대 악령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만 악령이 어떤 때는 살인처럼 무서운 모습으로 어떤 때는 인류 평화를 외치는 좋은 모습으로 이용하지만 깊은 속에는 결국 성령에게 붙들리지 않은 순간은 악령에게 붙들린 상태입니다.
엡2:1 이하에서 우리 중생된 사람은 예수님이 구원하셨으니 이제 악령에게서 벗어나서 성령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중생된 후에도 과거처럼 악령에게 또 다시 우리의 마음과 몸이 붙들려 실수할 수 있으니 믿는 우리는 항상 악령을 벗어나고 성령에 붙들려 살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구한 것은 바로 이 노력이 가장 귀한 것이며 성령에게만 붙들리면 가장 복된 줄 알았습니다.
한편 악령은 불신자 전부를 자기 손아귀에 쥐고 있고
또 한편으로 믿는 우리들은 성령에게 붙들리지 않을 때만 악령이 붙들고 움직일 수 있는데
믿는 사람이 악령에게 다시 붙들리도록 성령이 지는 것은 힘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를 길러가시려고 우리가 우리 자유성으로 자라가는 과정에 지켜보시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도 항상 믿는 사람의 영은 중생 이후 다시는 악령에게 침노 당하는 수가 없으나 늘 우리의 마음과 몸이 이쪽에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요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악령의 사이에서 믿는 우리가 만일 성령을 택하여 성령에게 붙들려 살려 한다면 악령은 강제로 우리를 막을 수 없고, 반대로 우리가 악령으로 살겠다고 나서면 하나님이시라도 그냥 지켜만 볼 뿐입니다. 인간은 성령 하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악령과 비교해도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는 약한 존재지만, 다만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느냐는 것만큼은 하나님의 법으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국민은 힘이 없고 대통령은 무서운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단 대통령을 뽑는 것은 국민의 투표에 달려 있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만일 악령에게 붙들리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전부 악령적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성령에게 붙들리면 우리는 순식간에 마치 천사처럼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합니다.
말도 행동도 욕심도 생각도 모든 것이 인간 타고난 선천 후천에 달린 것 같아도 실제로는 성령에게 붙들리면 바울같은 무서운 살인마도 복음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놓고 평생을 살게 되고, 성령에 붙들린 그 어떤 성자라도 악령에게 붙들리면 금방 귀신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자기 몸 밖에 무슨 운동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문제가 아니고
자기 속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성령과 악령의 지배를 두고 어느 쪽을 내 심신이 택하느냐는 것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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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설교록-재독-소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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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남겨진 경우만 가지고 말한다면
백목사님 설교 자료만큼 성경을 깊게 은혜롭게 안내한 자료를 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 기록은 백목사님보다 더 은혜를 끼친 분들이 있다고 전하고 있으나
그때는 녹음시대가 아니어서 요약 형태로 기록이 전하므로
그 기록들은 은혜 면보다는 성경해석이나 교리 논리에서 큰 역할을 할 정도이지
당시 전한 말씀의 은혜가 백목사님 경우처럼 생생하게 전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집중적으로 연구하시면
말씀의 세계가 그냥 신학서에서 깊다고 하니까 깊다고 옮기는 그런 수준에서 벗어나
질문자 심신을 온통 뒤흔들며 울려나오는 질문자의 체험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질문하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면
':1.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구한 엘리사의 신앙'
- 엘리야가 성령에 강하게 붙들려 하나님 원하시는 바를 거침없이 그대로 나타냈습니다. 사람 실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수행했던 일들입니다. 그것을 목도한 엘리사는 천하 모든 것 중에서 엘리야를 붙든 성령의 권능을 가장 귀하게 보았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마지막 하나 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자 '엘리야가 받은 영감'을 구했습니다. '갑절'을 구한 것은, 엘리야보다 배나 악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엘리야를 계대하려면 그렇게 구해야 했습니다.
': 2.영감이 무엇인지'
성령의 감화 감동을 줄여서 '영감'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감화와 감동을 통해 가르치시며 힘을 주시니
바로 이런 순간에 그 가르침을 받고 행하는 만큼 영감의 사람입니다.
': 엘리사의 신앙 3단계 4단계'
3단계 신앙은 '여리고' 수준이었고
4단계 신앙은 '요단강'을 건너는 신앙입니다.
여리고는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맨손으로 여리고성을 돌아 성벽을 하나님 능력으로 무너지게 한 '능력의 신앙'면을 말합니다. 일반 세상 자연현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신앙세계의 특별한 경험과 체험, 기적의 신앙 단계를 말합니다. 주님을 따라 가다가 세상복을 많이 받게 되면 그것이 신앙의 최종인 줄 아는 1단계, 예배 생활 잘하는 것으로 전부인 줄 아는 제 2단계를 넘어 하나님이 권능으로 함께 하는 신앙차원이 3단계입니다. 그리고 주님 인도라면 생명까지 바쳐놓고 따르는 사선을 넘는 신앙이 '요단강'을 건너 엘리야를 따라가는 신앙단계입니다. '요단강'은 죽음을 가르칩니다. 사선을 말하는 지명입니다.
3.앞서 질문하신 설교 내용은 분량이 많아서 간단히 답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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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행동은 겉으로는 사람들이 알아서 마음대로 행하는 것 같지만, 실은 성령이 붙들고 움직이든지 아니면 모조리 악령에게 붙들려 움직입니다. 악령은 인류를 타락시켜오늘까지 죄를 짓게 했습니다. 인간 속에서 왕노릇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 대속으로 중생된 사람이 아니면 인간 스스로는 절대 악령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만 악령이 어떤 때는 살인처럼 무서운 모습으로 어떤 때는 인류 평화를 외치는 좋은 모습으로 이용하지만 깊은 속에는 결국 성령에게 붙들리지 않은 순간은 악령에게 붙들린 상태입니다.
엡2:1 이하에서 우리 중생된 사람은 예수님이 구원하셨으니 이제 악령에게서 벗어나서 성령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중생된 후에도 과거처럼 악령에게 또 다시 우리의 마음과 몸이 붙들려 실수할 수 있으니 믿는 우리는 항상 악령을 벗어나고 성령에 붙들려 살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구한 것은 바로 이 노력이 가장 귀한 것이며 성령에게만 붙들리면 가장 복된 줄 알았습니다.
한편 악령은 불신자 전부를 자기 손아귀에 쥐고 있고
또 한편으로 믿는 우리들은 성령에게 붙들리지 않을 때만 악령이 붙들고 움직일 수 있는데
믿는 사람이 악령에게 다시 붙들리도록 성령이 지는 것은 힘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를 길러가시려고 우리가 우리 자유성으로 자라가는 과정에 지켜보시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도 항상 믿는 사람의 영은 중생 이후 다시는 악령에게 침노 당하는 수가 없으나 늘 우리의 마음과 몸이 이쪽에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요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악령의 사이에서 믿는 우리가 만일 성령을 택하여 성령에게 붙들려 살려 한다면 악령은 강제로 우리를 막을 수 없고, 반대로 우리가 악령으로 살겠다고 나서면 하나님이시라도 그냥 지켜만 볼 뿐입니다. 인간은 성령 하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악령과 비교해도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는 약한 존재지만, 다만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느냐는 것만큼은 하나님의 법으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국민은 힘이 없고 대통령은 무서운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단 대통령을 뽑는 것은 국민의 투표에 달려 있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만일 악령에게 붙들리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전부 악령적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성령에게 붙들리면 우리는 순식간에 마치 천사처럼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합니다.
말도 행동도 욕심도 생각도 모든 것이 인간 타고난 선천 후천에 달린 것 같아도 실제로는 성령에게 붙들리면 바울같은 무서운 살인마도 복음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놓고 평생을 살게 되고, 성령에 붙들린 그 어떤 성자라도 악령에게 붙들리면 금방 귀신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자기 몸 밖에 무슨 운동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문제가 아니고
자기 속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성령과 악령의 지배를 두고 어느 쪽을 내 심신이 택하느냐는 것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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