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목사의 시대적 역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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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의 시대적 역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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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2 0
하나님께서 전광훈 목사에게 선지자로서의 일정한 시대적 사명과 역할을 주셨다고 보시는지요?
주일 현장예배를 고수하던 전광훈 목사를
기성교단마저 등을 돌리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것은 말세적 환란이라고 볼 수 있는지요




 
담당9 2021.01.01 07:40  
1. 시대적 사명과 역할
하나님은 전광훈 목사님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 각자에게 개별 사명과 역할을 일일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각 개인이 이 사명과 역할을 착각하여 넘치거나 또는 절망하는 것이 문제인데, 전광훈 목사님에게는 확실히 오해를 하신 부분이 있다고 보입니다.

2. 오해
교회는 우파도 좌파도 아닙니다. 세상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과 교회의 관계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교회를 세상 안에 두어 세상 안에서 구원을 이루도록 하셨기 때문에, 세상을 세상만큼 바로 알아야 불변의 세계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본래 목적에서 어긋나서 혼란스러워지면 세상 속 믿는 사람들도 혼란스러워지게 되고 그러면 신앙생활에 피해가 가게 되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칠 때마다 교회는 교인에게 세상 지도를 하게 됩니다. 만일 전 목사님이 본인 교인들이 현재 공산주의 극 좌파로 치우치고 있는 국내 현실을 신앙에 좋은 상황으로 착각하여 신앙을 망치고 있기 때문에 자기 교인을 지도하겠다고 하는 것은 목회 차원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교육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담을 뛰어넘어 교회를 세상 정치세력에 사용하는 것은 문제로 보입니다.

그러면 이 분을 비판하는 기성교단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 사명대로 정확하게 하고 있는가? 지금 전 목사님은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잘못된 세상이라고 외치는 반대편의 섬으로, 넓게 보면 전 목사님 자신의 목사직과 그 교회까지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격이라면, 전 목사님을 비판하는 분들은 아예 세상 양심조차 없이 처음부터 그냥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있는 것이니, 앞서 말씀드린 믿는 사람 누구에게나 주시는 하나님의 시대적 사명과 역할이 이 분들에게만큼은 아예 해당이 없는 정도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담당 2021.01.01 17:30  
(한국의 전광훈식 운동)
앞에 답변에 더하여, 전광훈 목사님만 가지고 질문을 하셨으나 '전광훈 방식' 차원에서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한국 교회는 쏠림 현상이 특이하여 이런 표현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신앙의 전체 면을 살필 때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한경직식이 있습니다. 불신자가 봐도 점 잖고 지성적인 분입니다. 조용기식이란 학문과 점잖은 면을 빼고 몰아 쳐서 성공한 방식입니다. 백영희식이란 무식하나 성경 하나만 들고 오로지 한 길만 걸었습니다.

(전광훈식 신앙 운동)
* 일반적 성향
미국의 도움을 받은 남한과 교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고 소련 중국에 붙들린 평양은 세계 최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경제 자유 교회의 외부 활동 면에서 보면 분명히 맞습니다. 그런데 중국 평양으로 이어 지는 남한 내 좌파가 수십 년을 헐고 파서 남한을 내부적으로 내려 앉히고 있고 이런 사실을 한국 사회의 중심에 선 교회가 앞 장 서서 세상이 하지 못하는 정치 사회 운동까지 일선에 나섰습니다. 북한의 교회를 초토화 시킨 북한, 중국 대륙의 교회 전부를 공산당의 부속 기관으로 만든 중국, 북한과 중국과 뒤로 손을 잡고 남한의 교회와 사회를 미국과 분리 시키고 북한과 중국식으로 만들어 가는 남한 내 좌파를 어떻게 해야 하나? 총칼을 들 수 있다면 목숨 바쳐 전쟁이라도 해서 물리쳐야 하나 문화국이며 법치국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법 안에서 투쟁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가장 좋은 일은 국민을 설득하여 투표 숫자로 정권을 잡은 다음에 법적으로 적을 물리 치자는 기독교 내 운동을 전광훈 식이라고 하면 될 듯합니다.

 * 십자군 운동
교회 역사는 전광훈 식을 간단히 줄여서 '십자군 운동'이라 합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슬람교를 유럽의 기독교 국가와 교인이 칼을 들고 가서 싸워서 되 찾자는 운동이 800여 년 전에 있었습니다. 교회가 세상 안에서 세상이 만든 법이라는 기준과 정치 사회적인 환경 속으로 들어 가서 그들의 방법으로 세상을 교회에 유리하게 만들자는 운동입니다.

(답변)
1. 전광훈 목사에게 선지자 사명과 역할이 있을까?
기독교의 근본 원칙에서 보면 전광훈 식 운동에 시대적 선지 사명과 역할이 있다고 한다면, 십자군 운동을 바른 운동으로 평가해야 하고, 해방 후 교회들이 이북의 공산당과 실제 기독교인 단위로 싸운 소규모 운동이 있었는데 이 것도 옳다고 해야 합니다. 이 것을 옳다고 하는 순간 이렇게 하지 않은 교회는 잘못 된 교회가 됩니다. 그렇다면 일제 때는 교회가 독립 운동을 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 전체 분위기로 보면, 전광훈 식 신앙 운동은 옳습니다. 공회를 뺀 거의 대부분 정통 교회들은 일제 하에 교회가 독립 운동을 했다며 긍지를 가지고 늘 기념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6.25 전쟁 때는 교회가 반공에 앞 장을 섰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옳다고 하려면 일본 교회는 천황 교회가 되어야 하고, 북한 교회는 김일성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찌 히틀러 밑에 독일 교회는 나찌 교회가 되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공회는 일본 교회가 친일을 해서 안 되듯이 나찌 하 교회가 히틀러 교회가 되면 안 되듯이 한국의 교회는 문재인 교회가 되어도 안 되고 같은 논리로 한국 교회가 이승만 이명박 교회가 되어도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이 정도까지 살피다 보면 공회 입장이 맞을 듯합니다. 다만 공회 입장은 어느 쪽에게든지 세상 다수와 여론에게는 맞아 죽기 좋을 만할 듯합니다. 그래도 말이 맞고 논리가 맞고 아마 이 것이 진리지 않을까요?

2. 기성 교단의 전광훈 비판
한국의 대표적 교단 거의 전부와 지도자 전부는 전광훈 목사님을 지지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전광훈 목사님 때문에 여론의 비판을 받고 정권에게 코로나 핑계로 탄압을 받을 시점이 되자 일제히 거리를 두거나 비판적으로 돌아 섰습니다. 이 것을 교회 역사로 살펴 보면 늘 그러했습니다. 일제 때 신사참배를 앞 장 서서 반대하던 주기철 주남선 손양원 등을 처음에는 장하다며 지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칼을 시퍼렇게 갈고 번쩍 들게 되자 갑자기 주기철 주남선 손양원은 아주 사이비 정도로 몰아 세웠습니다.

한국의 거의 대부분 정통 교회들은 전광훈 목사님의 표현과 행동까지는 하지 않았다 해도 속으로는 대신 말을 해 주고 대신 행동에 나서 준다면서 좋아 했습니다. 아마 전 목사님이 청와대에 수류탄을 던졌다면 겉으로는 안 돼! 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좋아서 춤을 췄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과격한 이미지를 피하고 속으로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심리입니다.

3. 전광훈 목사님의 주일 예배 고수
전 목사님을 잘 모르지만 주일에 광화문에 가서 살다 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전 목사님은 주일과 예배를 모르는 분입니다. 한국의 모든 교단과 전 목사님을 기준으로 한다면 주일과 주일의 예배를 현장에서 고수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을 쉽게 하는데 그 분들은 놀러 가고 싶으면 주일에 예배도 없이 놀러 가는 분들이고, 그 분들은 주일에 데모하러 갈 대는 광화문에도 가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주일에 예배당에서 모이고 싶은데 정권이 기독교가 싫다고 교회만 콕 찍어서 예배당 출입문에 못을 박으려고 하자 대든 것입니다.

교회를 탄압하는 공산 정권처럼 우리 정부가 교회만 콕 찍어서 탄압을 하는 것은 분명한데 문제는 전 목사님은 주일과 예배당 예배 때문에 맞섰는가? 제가 볼 때는 현재 정권 자체를 반대하여 정권과 싸운 것으로 보이지 주일과 주일의 예배당 고수 때문에 피치 못하게 부딪힌 것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 년 동안 광화문 운동은 토요일과 주일에 지속 되었는데 전 목사님은 그 중심에 있었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 교인들도 그랬을 듯합니다.

주일과 주일의 예배를 고수하려고 부딪혔다면 주일 날 김일성이 선거를 해서 남한 대통령이 될 상황에서도 교회는 주일 날 선거에 나가지 않습니다. 김일성을 좋아 하고 싫어 하기 전에, 김일성이 교회를 탄압하느냐 마느냐 이전에 주일은 내 목숨보다 이 나라 운명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4. 한국 교회의 전광훈 비판은 말세적 환란일까?
전광훈 식 교회 운동 그 자체는 교회 내의 말세적 현상입니다.
한국 사회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좌익 공산주의로 달려 가는 것은 세상 전체의 말세적 현상입니다.
코로나에 이렇게 벌벌 떠는 것은 전 인류와 세계의 말세 현상입니다.

1970년대, 공회만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한국의 국부로 이 나라 굶어 죽던 민족을 살려 놓은 국가적 은인이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현재 전광훈 식 신앙 운동을 하는 현재 우파 기독교 지도자 거의 전부가 독재를 비판했고 김일성 좋아 할 만한 일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공회 혼자 펴놓고 이승만 박정희를 마구 치켜 세울 때 공회는 '교회 기준' '신앙 기준'으로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불신 세상을 기준으로 볼 때 굶어 죽던 이 나라를 이렇게 마구 발전 시킨 것은 이승만 박정희며, 이 두 독재자를 반대하는 이들은 민주화나 인권을 좋아 해서 독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철이 없는 아이들이어서 공산당 앞잡이 노릇을 하는 줄도 모르고 그런 짓을 한다며 극언을 동원하며 비판을 했습니다. 그 비판은 세상 기준으로 비판하면서 설교 시간에 예를 든 것입니다. 세상이 세상 기준으로 이런 은인을 욕하고 세상을 마구 망치는 인간을 이렇게 우대하는데, 교회를 다니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두고 우리도 우리 신앙에 손해 볼 사람은 좋아 하고 우리를 참으로 좋게 할 사람은 너무 모르고 반대한다는 예를 들었습니다. 덧붙여 실제 공산화가 되는 날 어떻게 되느냐? 이승만 박정희 욕하던 저 인간들이 공산당들에게 먼저 처형을 당할 것이고 이승만 박정희를 좋아하고 이 나라를 발전 시킬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의 살 길은 찾을 것인데  문제는 그런 시대가 오면 공회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싶은 순수한 교인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데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본주의 우파 속에서는 모든 것이 좋아서 신앙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니 이 것도 소리 없는 전쟁이고, 공산당이 점령을 하게 되면 소리 없는 전쟁을 할 것도 없이 모조리 쓸어 버릴 터이니 준비할 기회조차 없다. 이래도 탈이고 저래도 탈이라... 이 것이 공회의 입장입니다.



한국 교회가 빠짐 없이 삼일운동 기념 예배를 드릴 때, 공회는 삼일운동 기념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원리 때문에 전광훈 목사님 방식의 투쟁을 교회가 나서는 것은 공회가 반대합니다. 그리고 전 목사님을 반대하는 이유가 공회처럼 이런 신앙 이유가 아니라 세상적으로 전 목사님의 방식을 싫어 하는 이들, 그들은 공산당을 자기가 알고 지지하든 모르는 사이에 지지하는 결과가 되든 적을 이롭게 할 사람들입니다. 설교록에는 평양에 가서 김일성과 만나서 환영을 받았던 문익환 목사에 대한 비판이 아주 많습니다. 바로 그 원리 때문에 전광훈 목사님이 '목사'와 '교회'의 이름으로 정치 운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 사회가 공산화가 될 판이니 교회와 목사들이 평소 정치 운동을 이미 했다는 점에서 이왕이면 공산당을 환영하다 망하는 것보다 공산당을 반대하다가 탄압을 받는 것이 자체 논리로 볼 때는 맞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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