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할 수 있는 자연과 버려야 할 자연 - CCM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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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할 수 있는 자연과 버려야 할 자연 - CCM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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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고 찬성합니다.

비판의 자세를 가지고 계신다는 점을 반갑게 생각합니다.

동시에 무조건 비판을 경계하는 자세는 항상 진리를 찾는 바른 자세며 조심일 것입니다.

위 글의 총론은 찬성하나 각론으로 몇 말씀 올립니다.

주로 다른 분들 때문에 글이 길어집니다.


1.사회의 발전에 따른 교회의 수용


-시대 변화와 교회의 적용


모든 사람이 걸어 다닐 때는 교회의 전도인도 걸어서 전도를 했고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편리하게 사용하던 때는 자전거를 타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가용 시대이니 자가용을 타고 전도를 다닌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를 적용할 곳은 참으로 많습니다. 거부적이나 반항적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모두가 초가집에 살던 한국의 선교 초기 교회는 거의 다 초가집이었습니다.

해방 후 산업 개발 시대에 스레트 지붕으로 교체 될 때는 예배당도 스레트 지붕이었습니다.

80년 대에는 콘크리트가 건축의 중심에 섰고 교회도 그러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유리 등 첨단 기법의 각종 자재와 모양을 내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전에는 예배당 바닥을 마루로 만들었고

이후에는 예배당 바닥을 도끼다시에 의자를 두었고

요즘은 카펫에 극장식 개인 소파를 배치하되 강단을 내려다 보게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볼 몇 가지


걷다가 자전거가 나오고 자가용 시대로 바뀌는 과정에서

걸을 때 걷는 것은 말할 것 없으나

자전거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곳까지는 이용해도 막상 전도를 할 때는 내리는 것이 좋고

자가용은 그 동네까지 가다가 미리 내려서 주변에서는 걷는 것이 좋으니

전도하러 가는 데까지 이용할 수단이지 전도하는 그 순간은 과거와 오늘이 같을 것입니다.


초가에서 스레트를 거쳐 콘크리트까지 발전하고 변하여 온 것은 전적 동감합니다.

초가 스레트 콘크리트의 순서는 비용만 문제이지 기능 면이나 보기에 신앙 불편이 없으나

문제는 콘크리트 다음에 온 최근 예배당 건축은 심각하게 망설여 집니다.

건축 자재나 기법을 죄라고 할 것은 없으나 이것은 일반적인 발전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로스엔젤스의 크리스탈 예배당은 예배 분위기에 옳겠는지?

요즘 건축물이 균형 정숙 평온의 외모 대신 파행 돌출 자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이것이 예배당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예배와 신앙 생활에 옳을지?


고대 사회의 흙바닥이 마루와 의자까지 온 것은 하나님 주신 자연의 발전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전체 의자를 일괄적으로 소파식 의자로 바꾸고 강단을 깔아보는 위치에 놓는다면

이것은 지금까지 내려 온 발전의 연장 선에서 보는 대신에 인성 심성의 탈선으로 보입니다.


2.복음성가와 CCM


안 믿는 사람들이 클래식이라고 하는 근대 음악을 즐기고 그 음악이 대세일 때

그 당시 찬송가들은 가사만 신앙 내용이었지 곡은 그런 일반 사회의 분위기를 따랐습니다.


세상이 일제 전후 구슬픈 유행가를 부를 때 우리 나라 복음 성가도 그러 했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천부여 의지 없어서...

이런 복음 성가나 찬송가들은 세상 음악과 시대를 함께 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성경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실 때 세상 사람이 사용하는 일반 언어와 표현을 이용했듯이

찬송의 '곡'은 비록 세상 것이지만 그 세상의 곡이 신앙에 이용할 수 있는 자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CCM의 대세를 잡고 나가는 곡들은 자연 중에서도 금해야 할 방향입니다.


마치 세상 것이라 해도 주스는 우리가 이용을 하지만 술은 같은 세상 것인데도 금하듯이

비록 세상이 만들었다 해도 양복은 따라 입고 이용도 하지만 훌떡 벗는 옷은 피하듯이

세상 습관이지만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은 열심히 따라 하나 고려장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 사회의 일반 상황을 교회에게 주신 자연, 자연 상태, 자연 계시 차원에서 대하나

그 자연 중에서 신앙에 맞서거나 불편을 주거나 신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과거 노래는 세상 노래도 인간에게 철이 들게 하고 인생을 회고하게 하는 그런 것이었으나

요즘 노래는 마약에 취한 사람의 중얼거림, 약 먹은 쥐의 비틀림 정도가 그 대세를 이루니

흉내는 커녕 쳐다 보는 것조차 금지해야 할 상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중의 염불 소리는 내용만 바꾸면 주기도문을 그렇게 외워도 될 정도인데

국제 시장 약 파는 소리나 TV 로고송은 정상 생활에서 흉내 내면 미친 사람일 것 같습니다.


세상이 바뀔 때 따라 바뀌어야 하는 것도 있고

세상이 바뀔 때 따라 바뀌어도 되고 안 바뀌고 과거대로 해도 되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이 바뀔 때 최대한 따라 가지 말아야 할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목숨을 걸고라도 세상을 따라 가지 말고 그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할 것도 있으니

살전5:22에서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신 말씀도 참고로 살펴 보셨으면 합니다.


3.좋아하는 CCM


'목 마른 사슴 시내 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이런 곡입니다.

성탄절 주일 학생들의 특별 찬양 순서에서 들었는데 참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일반 예배 때처럼 피아노와 찬양대의 찬송 소리로 들으니까 참 좋았는데

뒤에 녹음 자료가 있어 보니까 경음악인지, 반주가 술집 흥겨운 노래 맞추듯 했습니다.

좀 은혜롭게 녹음 된 것이 있는지 찾아 봐야 없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을 들으며 참 은혜를 크게 받으면서도 한 편으로 생각할 때

말씀대로 살기 위해 현실에서 고난을 받을 때나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에 들어 간다면?

이 찬송으로 그 고난을 이기겠는가?

평소 피곤할 때 좋을 때 보통의 현실에서 보통으로 신앙 생활할 때는 그만한 은혜지만

사선을 향해 나아가는 전선의 군인의 군가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십자가 군병인데, 우리의 모든 현실과 생활 전체는 죽을 때까지 전투로 이어지는데.


쉬는 시간에 고향 생각하며 불러 보는 그런 고향의 봄 노래도 그 노래대로 의미가 있고

총알이 빗발 치는 고지를 향해 전진하는 군인들에게 힘을 주고 각오를 주는 군가도 있으니

오늘을 기독교 평화 시기로 보고 편안하게 살아 간다면 CCM 중에도 좋은 것이 더러 있고

매 현실을 한 번 밖에 없는 구원의 성패 기회로 보는 신앙이라면 찬송은 찬송 뿐입니다.


답변자 좋아하는 몇 가지 CCM을 주변에 말하지 않고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모든 면을 알면서도 때를 따라 자기 신앙에 필요하여 몇 곡 좋은 곡을 부를 수 있는데

옆에서 신앙 없는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CCM 바다에 빠져 죽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이 홈의 '/활용자료/찬송/' 게시판에 몇 개를 올리려고 이전부터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마지막 순간에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일단 말자 하는 식으로 내려 왔습니다.
질문이요~
저희 교회 찬양대에서 몇가지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1. ccm(복음성가)과 찬송가의 차이


2. ccm을 교회에서 부르도록 허용되지 않는이유와

성탄절 때 ccm이 허용되는 이유


저번에 질문에 답변해 주신것은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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