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사회의 직업과 신앙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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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의 직업과 신앙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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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에게 '직업'이란


우선 먹고 사는 방편이며, 그 문제가 해결되면 자기 성취의 방편입니다.


2. 우리에게 '직업'이란


타락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 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돌아 올 길을 주신 것입니다.

지옥 갈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속이나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잔당 소탕은 직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직업이란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말씀 실행 장소입니다.


우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데 그 일을 통해 죄값을 '실감'하여 회개 생활에 유익하고

다음,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보니 하나님 '은혜'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지고

또한, 받은 말씀 배운 그 말씀대로 실제 살아 가는 자기 '훈련'에 없어 안 되는 곳입니다.


3. 직업이 되려면


얼굴에 땀이 흘러야 합니다. 얼굴의 땀은 있는 힘을 다해야 하는 '수고'를 말합니다.

타락한 세상의 구조에서는 우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인데

오늘은 거저 먹는 사회 제도도 있고 쉽게 버는 방법도 많으며 부모 덕에 살 수도 있으나

성경이 '땀이 흘러야' 한다 하셨으니 자기 힘을 다하여 벌면 직업이고 아니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회의 지원 제도란 믿는 사람으로 최대한 줄이고 피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또 상속이 아무리 많아도 그 돈의 관리 사용은 별개이고 자기 직업은 따로 있어야 하니

게으르거나 방심하고 긴장을 풀고 느긋하면 이미 직업 면을 두고는 죄에게 삼켰습니다.

물론 직업의 종류는 각기 따로 주시니 직업의 귀천은 없습니다. 충성 정도가 문제입니다.


4. 오늘 우리 사회와 직업 환경


우리의 앞 세대까지만 해도 먹고 사는 직업의 종류와 충성은 아주 구별하기가 쉬웠습니다.

질문자 말씀처럼 오늘 직업 환경은 숨 가쁠 만큼 변하고 직업의 내면이 복잡해 졌습니다.

바로 앞 세대는 농사든 노동이든 무엇이든 땀 흘려 자기 직업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땀은 기계와 기술이 맡고 사람은 갈수록 전체 속에 한 분야만 맡아 관리하는 차원인데

이런 생산 구조에 맞서 고전적으로 땀 흘려 일하는 직업으로는 이제 먹고 살 수 없습니다.


지금 필연적으로 그리고 그 속도가 무서울 만큼 바뀌는 직업 환경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극 소수의 관리자는 정신적 노동이라도 해서 기계와 기술의 힘으로 엄청나게 벌게 되지만

그 외 사람들은 정신 노동조차 할 자리를 갖지 못하고 사회의 지원을 받아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와 기업과 모든 종류의 사업자들이 그들 원하는 대로 효율 있게 일을 하려 한다면

현재 고용하고 있는 직원을 엄청나게 해고 시킬 수 있고 앞으로 그 속도는 더할 것입니다.

실제 그 직원들이 필요 없는데 사회 문제가 되어 폭동이 날까 해서 채용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필요한 인원이 아닌데 채용이 된 상태의 사람들의 직업은 직업이 아닙니다.


과거 거지는 각 개인으로부터 직접 얻어 먹고 살았으나 오늘은 사회가 제도로 먹여 살리니

사회 보장 제도의 모든 혜택이 구걸이며 그 범위에는 불 필요 직업인까지 들어 있습니다.

현대 삼성 LG와 같은 국내 최 정상급의 회사들은 물론 국내 진출 해외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원대로 다 해직 시키면 당장도 많겠고 그보다 앞으로 일자리 숫자는 정말 적을 것입니다.

즉, 현재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땀을 흘리고 싶어도 그것이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만일 여기에 사회가 착각하여 공연히 만들어 놓은 일자리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인데

정말 필요한 만큼의 실용 교육 과정만 남겨 둔다면 오늘은 신앙의 최악의 시대일 것입니다.


말세란

주님 오실 때이니 죄가 창궐하여 그 멸망의 모습이 극에 달한 상태를 주로 말하는데

실은 타락 후 처음 말씀하신 그 하나만 가지고 살펴도 그 면으로 지금은 말세입니다.


5. 교인의 직업과 지도


답변자 교회는 시골이어서 다른 지역과 마찬 가지로

노인들은 고전적 직업인들이니 그들께는 그 직업에서 어떻게 믿느냐는 것을 가르쳐야 했고

젊은이들은 실력이 없어 직업에 상관 없거나 아니면 부모 주변 도움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젊은이들께 땀 흘려 일하여 먹고 사는 인생의 기본이며 근본을 가르쳐야 하는데

어린 시절, 배울 학생 시절, 사회 첫 출발에 필요한 기회까지 다 허송한 사람들인데

결혼까지 한 상태이어서 첫 출발을 정상으로 하려면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땀 흘려 일할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지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를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죄 되지 않으면, 남을 때려 빼앗는 것만 아니면, 일단 땀 흘리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땀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면 그 다음 그 자리의 성격을 파악 시켜서

그 자리가 취업하라고 사회가 만든 자리인가, 아니면 그 돈에 부끄럽지 않은 직업인가,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은 자기의 실력이 합당한가, 버는 돈과 흘린 땀을 비교할 수 있는가...


도시 교인들은 나름대로 육체 노동이든 정신 노동이든 땀 흘려 일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자세하게 분석해 들어 가면 답변자 시골 교회 경우와 그렇게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고

특히 정말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일을 하며 땀 흘린 댓가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 해도

그 직업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상태 세상을 살아 가는데 최소한 필요한지 살펴 본다면

어떤 직업은 그 직업 자체가 없어야 할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90년대 이전의 보험업은 그 보험업이라는 것 전체가 없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직업에서 발로 뛰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게 했다는 점에서는 장점이나 과연 그 직업이라야 했는가?

여기까지 생각해 나가다 보면 믿는 사람의 직업은 정말 하나님 능력 아니고는 안 됩니다.


꼭 같은 직업 여건에서도 주일과 평일 예배와 십일조와 다른 행동에 제한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직업이 과연 내가 가져서 될 직업이냐를 생각한다면 보통 어렵지 않습니다.

지혜도 주셔야겠고 능력도 받아야겠습니다. 생각 없이 달린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6. 질문 내용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면


따지고 또 따져 봐도 남자는 '노동자' 여자는 '식모'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했는데

이제는 그 노동조차 사실 장비로 하면 되는데 일자리 마련해 주려고 생긴 경우일 것이니

땀 흘린 것 자체는 의미가 있으나 그 돈을 받아 오면서 못내 찝찝한 점이 많습니다.

직업 종류도 너무 많고, 그 직업에서 교인이 해야 할 일을 소개할 내용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간단하게


- 최근 환호 직업


믿는 사람은 직업을 택할 때부터 신앙 생활에 유리한지를 먼저 살피는 것은 기본입니다.

돈벌이에 아무리 유리하고 그 직장을 세상이 아무리 선호한다 해도 우리는 성도들입니다.

운수업, 여행업, 관광업, 위락업, 스포츠, 연예업은 주일과 함께 죄와 분리가 어렵습니다.


- 일반 선호 직업


공무원, 교사, 대기업은 일견 무난해 보이나 집단 속의 하나가 되어 큰 문제가 있습니다.

업무나 부서에 따라 혼자 빠질 수 없거나 알면서 눈 감아야 할 사안들이 너무 많습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 세월이 가면 무디어 지고 어느 덧 한 패가 되어 버립니다.


- 소위 전문 직업


교수 의사 회계사 연구직 등은 소신껏 하고도 모든 면에서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는데

그 자리에 가기까지 또 바로 유지하려면 몸은 내 것이나 마음은 전공의 것이 될 수 있어

그 자리에 막상 간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를 가질 것입니다.

건강 실력 등이 탁월하여 무리 없이 가질 수 있고 유지할 수 있으면 그에게는 좋을 것이나

그 자리의 세상 영광과 돈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면 대개는 가장 말릴 분야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제 실력이 있다 해도 그 분야에서 살아 남으려면 고도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니

직업 하나를 두고도 어디 남 모를 곳에 숨어 충성과 땀과 말씀으로 살 공간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지금이 말세라는 사실은 너무 실감합니다.


- 말세 환경


귀신이 세상을 계속 이렇게 잡아 조아 들이고 있어 멋 모르고 세상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

이 것도 저 것도 모르고 휩쓸려서 따라 가는 사람들은 성도라도 이미 세상에 삼켰습니다.

계13장에서 경제를 초월하지 못하면 마지막에는 모두 붙들릴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합니다.

16절에서 작은 자나 빈궁한 자는 살아 남으려면 세상 시키는 대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고

큰 자나 부자나 자유한 자들은 그 세상을 가졌으니 가지기 위해 그 세상이 것이 되었고

그 가진 세상 것이 무언지도 모르고 그 것으로 누리고 사니 크고 부자며 자유는 가졌는데

악령이 쳐 놓은 그물 안에 갇힌 상태에서 그 안에서의 자유며 활동일 뿐입니다.

안팎을 다 알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경제 직업 생각 자체를 완전히 넘어 서서

오직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주신 그 말씀대로 살면서 모든 것은 맡기고 가는 것이니

이런 생활을 하고서도 살아 남았다면 그 자체가 능력이며 전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한 각오라면 천하 경제와 직업 환경이 어떻게 요동을 쳐도 넉넉히 밟고 살 수 있으나

그 어느 하나라도 세상에서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 있다면 10절에서 사로 잡힌 자입니다.


- 조심할 것은


양심을 가지고 말씀을 제대로 살피다 보면 결국 목회자나 교회 직원으로 숨어 들게 됩니다.

물론 게으르고 세상에서 먹고 살 것이 없어 처음부터 목회를 생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 실력도 의지도 있는데 이 말씀대로 산다면 뻔한 것이니 피하는 이들,

이들은 환란을 피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세상에 져서 도망한 실패 낙오자일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다 살면서도 그리고 세상 속에서 땀 흘려 자기 직업에서 안팎으로 깨끗하게 살고

그리고 그 직업 아니면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고 할 수 없는 구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직업을 가지고 그리고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는 교인이라면

그는 일반 교인 자리에 앉아 있어도 이미 하나님 앞에 자기 현실의 선지가일 것입니다.

선지자라는 목회자들도 세상을 피한 사람 패전한 사람 세상에 주눅 든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만일 교인 자리에서 세상을 이긴 사람, 초월한 사람, 세상을 먹고 힘으로 삼은 사람이라면

이미 그는 목회자 중에서도 대 목회자요 이 시대의 빛으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 이런 점에서


교인들의 직업이란 목사님들에게 자기 교회 운영비를 내는 자금 확보 통로 차원이 아니고

교인들 자신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거나 세상에 왔다 가는 자기의 활동 무대 차원이 아니며

믿는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을 가지고 악령 소굴 그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 보는 실전이며

이미 받은 구원에다 이 말씀 실행을 통해서만 나의 신앙 실력과 수준을 높혀 갈 수 있으니

직업은 우리 믿는 사람의 평생에 말씀대로 실행할, 바로 우리들의 현실의 다른 이름입니다.


직업 생활이 바로 되면 그의 천국이 바로 될 것이며 잘못되면 그 천국은 허무할 것입니다.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들어 가는 것은 믿는 순간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만

천국에 들어 가게 될 우리 성도들의 모습과 실력과 영생의 삶의 차이는 천차만별일 것이고

오늘이 바로 다시는 변동하지 않을 영생을 마련하는 기회들이니 직업 면에서 살폈습니다.


제대로 된 직업에서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을 하는 교인이 있다면

그 교인보다 나은 목회자가 되려면 정말 하늘의 별 따기가 어렵다 할 만큼 어렵습니다.

목회자란 직업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직업인데 그 직업을 가진 동기가 너무 허무하고

또 실제 목회하는 내용이 세상 직업인과 비교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직업인이 손님에게 하는 태도를 생각한다면 목회자가 교인에게 대할 태도가 그래 되겠으며

직업인이 확보한 전문성과 비교한다면 과연 목회자들이 가진 전문성은 어떠한가?

직업인이 출근에 느끼는 그 긴장과 목사가 목회 현장을 대하는 그 자세가 어떠한가?

하나씩 비교하다 보면 세상에서 먹고 살지도 못할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목회자가 되고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은 커녕 세상에서 거지로 얻어 먹고 살지도 못할 수준도 너무 많으니

세상 밑바닥이라고 하는 도둑 강도 사기꾼과 비교해서 그래도 낫다 할 사람도 없습니다.

도둑은 도둑질을 하기 위해 사전 탐사가 있고 눈치가 있고 행동이라도 민첩하고

강도는 운동으로 단련한 몸과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을 습득하려고 얼마나 노력할 터인데

목회자들에게 지금 세상 제일 밑바닥의 도둑과 강도를 시킨다면 그 짓이라도 제대로 할까?

얻어 먹는 거지를 시킨다면 거지 노릇이나 제대로 할 목회자는 그래도 많겠는가?

아니라고 봅니다. 목회자를 집중 비판하는 것은 답변자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제 욕입니다.


오늘 추운 이 세상 속에서 지금도 돈 벌이 때문에 애쓰는 교인들께

지금 애쓰고 노력하는 돈 버는 자리, 그 직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설명했습니다.
산업화 분업화 사회에서 땀흘려 일하는것
생업의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창조원리에 대해 여쭐려고 합니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첫사람 아담에게 얼굴에 땀흘려야 식물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명령에 비추어 보면, 현대의 산업화/분업화 사회경제구조는 철저히 얼굴에 땀흘리지 않고도 살아가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구조는 육체노동을 해야하는 소신민들과 하층민들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 바탕위에서 유지되게금 만들어져 있습니다.


비단 한 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제 개인의 현실을 보아도 제가 하고있는 노동은 이동을 많이 하긴 하지만 직접적인 육체의 노동이 아닙니다. 즉 다른 사람들 혹은 기계가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참 많은 것을 기대로 있다고 늘상 생각합니다.


모두가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만 짓으면서 산다고, 창세기의 명령을 순종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점점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되는 현실구조속에서 믿음의 길과 배치되는 것들이 있지 않나 의문이 듭니다. 지나치는 대형화는 결국 고도의 효율성이 뒷바침되어야 운영되며 필연적으로 지나칠정도로 세분화된 분업화을 추구합니다.


아래 답변 중에, 고핫자손의 글도 그러합니다만, 신앙의 생활, 교회에서의 생활뿐만아니라, 직업과 생업의 현장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창조원리에 맞는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이전에 백목사님의 지도나 현재 이 노선의 훌륭한 원리와 원칙이 있는지 여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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