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자기 힘으로 끝까지 버틸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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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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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1 00:00
부부가 함께 살다가
신앙문제로 다툼이 생기면 믿는 쪽은 안 믿는 상대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습니다.
참고 기도하고 상대방이 감동이 되어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희생과 노력을 다하되
하나님께서 주신 실력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만일 자기 신앙에 끝까지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면
고전7:15에서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아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죽어도 볼 수 없다는 남편이 있다면
그 남편 소원대로 해 줄 수 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사람이니 끝까지 노력은 해보는 것이 옳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불교 때문에 싸움이 나든
여당과 야당을 따로 찬성하는 부부가 정치 문제로 싸움을 하든
부부가 최대한 이해하고 노력하면 좋겠으나 죽어도 안 되겠다고 한다면
죽는 것보다야 살아 남아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윗글 질문하신 경우에 있어
믿는 분이 상대방과 신앙 문제로 갈등이 있을 때는 돈 문제와 같은 세상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완전히 포기해야 신앙 문제를 자유할 수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돈이나 세상 문제를 포기한다면 그것이 연보가 되고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교회를 다니는 부인이 정말 신앙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남편도 비록 아쉽지만 그런 아내를 속으로는 좋아하게 되어 있는데
부인에게도 분명히 남편과 단 두 사람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다른 문제가 있을지 모릅니다.
윗글의 경우 목회자의 개입은
전혀 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특수하게 인도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교인의 경제 문제에 목회자가 직접 개입하고 손해 보지 않는 경우가 없는데
만일 부부간의 문제에 목회자가 개입한다면 이는 손해를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부 문제도 일반 문제가 아니라 윗글 정도의 갈등이라면 절대 엄금할 일입니다.
개입하여 잘 해결이 된다 해도 세월이 좀 지나고 나면 생각 못한 오해의 씨가 될 수 있고
개입하여 잘 해결되는 경우 자체를 보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윗글과 같은 경우는 그 갈등의 내용과 성격이 그러합니다.
목회자로서 교인의 고통을 지켜만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이 없는데
사실 바로 이런 사건은 그 교인에게는 다니엘이 사자굴 입구에서 당하는 것과 같으니
바로 그런 극한 어려움을 겪어야 그 속에서 신앙의 참 경험이 생기며 장성하게 됩니다.
윗글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제를 포기하고 신앙 자유를 얻는 것이 신앙의 근본 원리인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되었다 해도 그것은 현재 마음이고
그 집사님이 좀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렇게 한 것을 후회하게 될 때도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이런 경우에 대하여서는 은밀하게 기도하되
이런 일이 나기 전에 평소 배운 말씀을 바로 이런 일에 스스로 적용할 수 없다면
이번 일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준비할 수 있을 때 준비를 하지 못해서 실패한 것입니다.
신앙문제로 다툼이 생기면 믿는 쪽은 안 믿는 상대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습니다.
참고 기도하고 상대방이 감동이 되어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희생과 노력을 다하되
하나님께서 주신 실력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만일 자기 신앙에 끝까지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면
고전7:15에서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아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죽어도 볼 수 없다는 남편이 있다면
그 남편 소원대로 해 줄 수 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사람이니 끝까지 노력은 해보는 것이 옳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불교 때문에 싸움이 나든
여당과 야당을 따로 찬성하는 부부가 정치 문제로 싸움을 하든
부부가 최대한 이해하고 노력하면 좋겠으나 죽어도 안 되겠다고 한다면
죽는 것보다야 살아 남아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윗글 질문하신 경우에 있어
믿는 분이 상대방과 신앙 문제로 갈등이 있을 때는 돈 문제와 같은 세상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완전히 포기해야 신앙 문제를 자유할 수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돈이나 세상 문제를 포기한다면 그것이 연보가 되고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교회를 다니는 부인이 정말 신앙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남편도 비록 아쉽지만 그런 아내를 속으로는 좋아하게 되어 있는데
부인에게도 분명히 남편과 단 두 사람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다른 문제가 있을지 모릅니다.
윗글의 경우 목회자의 개입은
전혀 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특수하게 인도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교인의 경제 문제에 목회자가 직접 개입하고 손해 보지 않는 경우가 없는데
만일 부부간의 문제에 목회자가 개입한다면 이는 손해를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부 문제도 일반 문제가 아니라 윗글 정도의 갈등이라면 절대 엄금할 일입니다.
개입하여 잘 해결이 된다 해도 세월이 좀 지나고 나면 생각 못한 오해의 씨가 될 수 있고
개입하여 잘 해결되는 경우 자체를 보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윗글과 같은 경우는 그 갈등의 내용과 성격이 그러합니다.
목회자로서 교인의 고통을 지켜만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이 없는데
사실 바로 이런 사건은 그 교인에게는 다니엘이 사자굴 입구에서 당하는 것과 같으니
바로 그런 극한 어려움을 겪어야 그 속에서 신앙의 참 경험이 생기며 장성하게 됩니다.
윗글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제를 포기하고 신앙 자유를 얻는 것이 신앙의 근본 원리인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되었다 해도 그것은 현재 마음이고
그 집사님이 좀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렇게 한 것을 후회하게 될 때도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이런 경우에 대하여서는 은밀하게 기도하되
이런 일이 나기 전에 평소 배운 말씀을 바로 이런 일에 스스로 적용할 수 없다면
이번 일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준비할 수 있을 때 준비를 하지 못해서 실패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