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노선이란,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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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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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7 00:00
1.노선 선택의 행불행
노선이라는 말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대전에서 광주로 가는 길, 부산으로 가는 길, 그리고 서울로 가는 3가지 길이 있는데
만일 대전 사는 분이 서울을 목표로 삼았다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선택입니다.
대전에서 고속도로 하향선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차가 좋으면 좋아서 더 불행이고 차가 고장이 나면 이 여름에 땀을 흘려 죽을 고생입니다.
차성능, 연료량, 교통정체... 그 어떤 요소도 길을 잘못 선택한 사람에게는 저주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믿든 믿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 속의 목표가 천국인데 현재 나의 발걸음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마음만 천국을 향하면 발은 어느 길을 택하여 어떻게 걸어도 상관이 없다는 이들도 있고
천국 갈 우리 발이 평생 어느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차이가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옥 갈 불택자를 두고 논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첫째는 누가 불택자인지도 모르고 둘째는 불택자라면 아무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으로 살피고 고민하는 이유는 믿는 우리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입니다.
천국 갈 택자, 의인, 성도가 된 우리가 되었다면
세상을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마찬가지인가? 실수를 하면 다시 지옥으로 가는가?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마지막 죽을 때 회개하면 천국 가고, 회개 기회를 놓치면 지옥인가?
너무 명백하고 확고하게
택자인 우리는 무조건 천국을 가는데, 이것은 칼빈과 동역자들이 못을 잘 박아놓았고
이제 우리의 고민은 천국 갈 우리가 평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믿은 이후에
요즘 교계의 유행처럼 중들하고 환경운동하는 것이 천국 준비에 가장 좋은 길인가?
세상과 교계가 욕을 하든지 말든지 오직 복음만을 위해 사는 것이 옳은 길인가?
이 길도 허용되고 저 길도 허용되는가?
만일 '전적 복음' '복음 유일' '복음 절대'가 성경이고 그 길이 맞다면
교회 중에 남북통일운동 환경청소운동 반미운동 친미운동의 길에 선 이들은
그 길에서 돌이키기 전까지는 이래도 불행 저래도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 된 길에 올라서서
걸어가는 속도가 빠르면 더 멀리 삐뚤어질 것이고
영어를 잘하면 국제적으로 다니며 더 많은 사람을 삐뚤어진 길로 미혹할 것이고
그가 가난하고 병약하다면 그래서 또 고통스럽고 불행할 것입니다.
만일
돌이킨다면 그때부터는 이래도 복 저래도 복일 것입니다.
길을 바로 잡았다면 늦었으니 서둘러야 할 것이고 속도가 빠르면 발전이 빠를 것이고
길은 바로 잡았으나 구르고 넘어지고 깨진다면 그래도 그 길로 기어가고 앞을 향할 것이니
넘어진 것이 좋고 깨진 것을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길이 바른 이들에게는 회개가 있고
그런 실수까지도 다음 순간에는 더 힘있게 걸어갈 거름이 되고 교훈이 되므로 복입니다.
2.가인과 아벨의 노선을 구별하는 기준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라고만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칼빈주의 안에서도 회색이 있고 정통이 있습니다.
칼빈주의 정통 안에서도 자기 시대에 필요한 발전에 매진하는 노선이 있고
옳은 노선에 섰으므로 안심하고 방심하며 과거 재탕만 하면 된다는 노선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 전체를 둘로 나누는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하나만으로 주요 기준을 삼는다면
장로교의 고신과 총신은 조금도 틀린 것이 없는 칼빈주의 핵심 정통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사참배 해결 방법 문제와 교권 쟁탈 때문에 나뉘어졌습니다.
1954년 기장교단이 장로교에서 분리될 때는 칼빈주의냐 아니냐는 문제였지만
1950-52년 사이의 장로교 총회가 고신을 분리시킬 때는 신사참배 후속 처리문제였고
1961-63년의 재분리 때는 밥그릇 싸움이었습니다.
지금 국내 어느 교단의 신학교가 교육부 인가 신학대학원으로 등록하는 문제가 생긴다면
세상 정권에게 신학교 운영권을 맡기더라도 세상 간판을 얻자는 쪽이 가인일 것이고
어떤 세상 간판과 보조금이 많아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쪽이 있다면 아벨입니다.
3.알미니안주의 노선에 섰다면
그 노선이 대전에서 남쪽으로 길을 가야 한다고 나선 이들이니
그들이 서울 쪽으로 가까이 갈 리는 없습니다.
물론 남쪽으로 가는 그 길에서도 찬송할 것이고 거지 동냥도 주겠지만
넓은 시야로 보면 서울과 멀어지는 길입니다.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건설구원은 '제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단 안에서도 어느 한 사람이 자기는 칼빈주의 신앙성격으로 믿는다면
그런 숨은 교인들은 일반 그 교단 사람들과 다를 것이고
반대로 칼빈주의 노선으로 유명한 고신이나 총신 교단에 속했다 해도
그들이 호적만 그 노선이지 실제 걸어가는 걸음이 그 반대라고 한다면 마찬가지입니다.
답변자 알기로
고신이나 총신 안에 정통 칼빈주의를 그대로 고수하는 이들은 희귀하다고 파악합니다.
알미니안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플래카드 써붙이고
온 나라를 쏘다니고 있습니다.
정통 칼빈주의라면 그런 타협 그런 인본의 손을 잡을 리가 없습니다.
4.신앙의 중도파
'신앙의 중도'를 두고 답변을 준비하는 중
8047번으로 중도신앙에 대한 보충질문이 있었으므로
8048번에서 답변하겠습니다.
(답변 진행 중)
5.가인과 아벨의 신앙노선과 투쟁
가인은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 중심으로 자기 편한 대로 했으며
아벨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가인식 신앙생활은
많은 사람이 따르게 되고 세상이 환영하며 세상생활에 편하게 되어 있는 것이 장점이나
문제는 신앙의 본질을 완전히 잊어버렸고 신앙은 껍데기 들러리일 뿐입니다.
아벨식 신앙은
틀림없이 신앙은 신앙인데 어렵고 까다롭고 불편하여 좁은문 좁은길 가시밭 십자가 도이니
오늘 살아가는 세상에서 세상사람 뿐 아니고 믿는 교회와 교인에게까지 인기가 없습니다.
목회자라면 굶어야 한다는 말이고 교회 부흥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일 아벨 노선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한다면
교계 유행 대세에 휩쓸리지 말고 만사를 두고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과연 옳은 것인가?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과연 신앙에 유익하겠는가?
이런 과제를 가지고 수도 없이 연구하고 살피고 따지고 각오하고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전국 강단에 딴따라 밤무대 장비를 들여놓고 약에 취해 흐늘거리는 것이 찬양이라고 하는데
과연 한 목회자가 주변 원로 중진 목회자 교회들까지 그렇게 해도 된다고 다 도입하는데
채찍을 들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시키듯 모조리 쓸어 엎을 수 없겠는가?
그렇게까지 권위있게 하지는 못할 망정, 내가 맡은 나의 강단, 나의 자리, 나의 주변에는
그러지 못하게 하겠는가?
이 홈에서 한국교계를 향해
'순교'라는 단어가 해당이 없고 '신앙'이라는 표현이 해당 될 시대가 아니라고 외치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일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각 교단과 신학교와 각 교회들의 어제 기록이 그들의 오늘 행동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과거 믿은 것이 아주 구식으로 잘못 믿었다 하고 다 파묻어버리든지
과거 믿은 것이 옳다면 현재 한국교회의 신앙은 전부 잡탱이 신앙이니 이는 불신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과 행동을 하려면
가인에게는 아벨을 쳐죽일 수 있는 세상의 힘과 권세와 수단과 방법이 있습니다.
아벨은 옳은 것을 주장하고 나가되 대신 세상에서는 죽거나 매장을 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취사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것입니다.
해방 전에 신사참배 앞에 설 때, 속으로는 죄인 줄 알지만 가인의 길을 택했고
해방 후에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해야 할 줄 알지만 희생이 크므로 외면했는데
요즘 그 외면한 후예들이 세상 텔레비젼 카메라 앞에서 '신사참배 죄를 회개한다'고 하니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습니다.
이제는 회개라는 단어까지 동원하여 가인의 후예들이 의인 아벨로 상표를 바꾸고 있습니다.
노선이라는 말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대전에서 광주로 가는 길, 부산으로 가는 길, 그리고 서울로 가는 3가지 길이 있는데
만일 대전 사는 분이 서울을 목표로 삼았다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선택입니다.
대전에서 고속도로 하향선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차가 좋으면 좋아서 더 불행이고 차가 고장이 나면 이 여름에 땀을 흘려 죽을 고생입니다.
차성능, 연료량, 교통정체... 그 어떤 요소도 길을 잘못 선택한 사람에게는 저주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믿든 믿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 속의 목표가 천국인데 현재 나의 발걸음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마음만 천국을 향하면 발은 어느 길을 택하여 어떻게 걸어도 상관이 없다는 이들도 있고
천국 갈 우리 발이 평생 어느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차이가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옥 갈 불택자를 두고 논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첫째는 누가 불택자인지도 모르고 둘째는 불택자라면 아무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으로 살피고 고민하는 이유는 믿는 우리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입니다.
천국 갈 택자, 의인, 성도가 된 우리가 되었다면
세상을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마찬가지인가? 실수를 하면 다시 지옥으로 가는가?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마지막 죽을 때 회개하면 천국 가고, 회개 기회를 놓치면 지옥인가?
너무 명백하고 확고하게
택자인 우리는 무조건 천국을 가는데, 이것은 칼빈과 동역자들이 못을 잘 박아놓았고
이제 우리의 고민은 천국 갈 우리가 평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믿은 이후에
요즘 교계의 유행처럼 중들하고 환경운동하는 것이 천국 준비에 가장 좋은 길인가?
세상과 교계가 욕을 하든지 말든지 오직 복음만을 위해 사는 것이 옳은 길인가?
이 길도 허용되고 저 길도 허용되는가?
만일 '전적 복음' '복음 유일' '복음 절대'가 성경이고 그 길이 맞다면
교회 중에 남북통일운동 환경청소운동 반미운동 친미운동의 길에 선 이들은
그 길에서 돌이키기 전까지는 이래도 불행 저래도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 된 길에 올라서서
걸어가는 속도가 빠르면 더 멀리 삐뚤어질 것이고
영어를 잘하면 국제적으로 다니며 더 많은 사람을 삐뚤어진 길로 미혹할 것이고
그가 가난하고 병약하다면 그래서 또 고통스럽고 불행할 것입니다.
만일
돌이킨다면 그때부터는 이래도 복 저래도 복일 것입니다.
길을 바로 잡았다면 늦었으니 서둘러야 할 것이고 속도가 빠르면 발전이 빠를 것이고
길은 바로 잡았으나 구르고 넘어지고 깨진다면 그래도 그 길로 기어가고 앞을 향할 것이니
넘어진 것이 좋고 깨진 것을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길이 바른 이들에게는 회개가 있고
그런 실수까지도 다음 순간에는 더 힘있게 걸어갈 거름이 되고 교훈이 되므로 복입니다.
2.가인과 아벨의 노선을 구별하는 기준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라고만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칼빈주의 안에서도 회색이 있고 정통이 있습니다.
칼빈주의 정통 안에서도 자기 시대에 필요한 발전에 매진하는 노선이 있고
옳은 노선에 섰으므로 안심하고 방심하며 과거 재탕만 하면 된다는 노선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 전체를 둘로 나누는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하나만으로 주요 기준을 삼는다면
장로교의 고신과 총신은 조금도 틀린 것이 없는 칼빈주의 핵심 정통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사참배 해결 방법 문제와 교권 쟁탈 때문에 나뉘어졌습니다.
1954년 기장교단이 장로교에서 분리될 때는 칼빈주의냐 아니냐는 문제였지만
1950-52년 사이의 장로교 총회가 고신을 분리시킬 때는 신사참배 후속 처리문제였고
1961-63년의 재분리 때는 밥그릇 싸움이었습니다.
지금 국내 어느 교단의 신학교가 교육부 인가 신학대학원으로 등록하는 문제가 생긴다면
세상 정권에게 신학교 운영권을 맡기더라도 세상 간판을 얻자는 쪽이 가인일 것이고
어떤 세상 간판과 보조금이 많아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쪽이 있다면 아벨입니다.
3.알미니안주의 노선에 섰다면
그 노선이 대전에서 남쪽으로 길을 가야 한다고 나선 이들이니
그들이 서울 쪽으로 가까이 갈 리는 없습니다.
물론 남쪽으로 가는 그 길에서도 찬송할 것이고 거지 동냥도 주겠지만
넓은 시야로 보면 서울과 멀어지는 길입니다.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건설구원은 '제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단 안에서도 어느 한 사람이 자기는 칼빈주의 신앙성격으로 믿는다면
그런 숨은 교인들은 일반 그 교단 사람들과 다를 것이고
반대로 칼빈주의 노선으로 유명한 고신이나 총신 교단에 속했다 해도
그들이 호적만 그 노선이지 실제 걸어가는 걸음이 그 반대라고 한다면 마찬가지입니다.
답변자 알기로
고신이나 총신 안에 정통 칼빈주의를 그대로 고수하는 이들은 희귀하다고 파악합니다.
알미니안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플래카드 써붙이고
온 나라를 쏘다니고 있습니다.
정통 칼빈주의라면 그런 타협 그런 인본의 손을 잡을 리가 없습니다.
4.신앙의 중도파
'신앙의 중도'를 두고 답변을 준비하는 중
8047번으로 중도신앙에 대한 보충질문이 있었으므로
8048번에서 답변하겠습니다.
(답변 진행 중)
5.가인과 아벨의 신앙노선과 투쟁
가인은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 중심으로 자기 편한 대로 했으며
아벨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가인식 신앙생활은
많은 사람이 따르게 되고 세상이 환영하며 세상생활에 편하게 되어 있는 것이 장점이나
문제는 신앙의 본질을 완전히 잊어버렸고 신앙은 껍데기 들러리일 뿐입니다.
아벨식 신앙은
틀림없이 신앙은 신앙인데 어렵고 까다롭고 불편하여 좁은문 좁은길 가시밭 십자가 도이니
오늘 살아가는 세상에서 세상사람 뿐 아니고 믿는 교회와 교인에게까지 인기가 없습니다.
목회자라면 굶어야 한다는 말이고 교회 부흥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일 아벨 노선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한다면
교계 유행 대세에 휩쓸리지 말고 만사를 두고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과연 옳은 것인가?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과연 신앙에 유익하겠는가?
이런 과제를 가지고 수도 없이 연구하고 살피고 따지고 각오하고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전국 강단에 딴따라 밤무대 장비를 들여놓고 약에 취해 흐늘거리는 것이 찬양이라고 하는데
과연 한 목회자가 주변 원로 중진 목회자 교회들까지 그렇게 해도 된다고 다 도입하는데
채찍을 들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시키듯 모조리 쓸어 엎을 수 없겠는가?
그렇게까지 권위있게 하지는 못할 망정, 내가 맡은 나의 강단, 나의 자리, 나의 주변에는
그러지 못하게 하겠는가?
이 홈에서 한국교계를 향해
'순교'라는 단어가 해당이 없고 '신앙'이라는 표현이 해당 될 시대가 아니라고 외치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일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각 교단과 신학교와 각 교회들의 어제 기록이 그들의 오늘 행동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과거 믿은 것이 아주 구식으로 잘못 믿었다 하고 다 파묻어버리든지
과거 믿은 것이 옳다면 현재 한국교회의 신앙은 전부 잡탱이 신앙이니 이는 불신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과 행동을 하려면
가인에게는 아벨을 쳐죽일 수 있는 세상의 힘과 권세와 수단과 방법이 있습니다.
아벨은 옳은 것을 주장하고 나가되 대신 세상에서는 죽거나 매장을 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취사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것입니다.
해방 전에 신사참배 앞에 설 때, 속으로는 죄인 줄 알지만 가인의 길을 택했고
해방 후에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해야 할 줄 알지만 희생이 크므로 외면했는데
요즘 그 외면한 후예들이 세상 텔레비젼 카메라 앞에서 '신사참배 죄를 회개한다'고 하니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습니다.
이제는 회개라는 단어까지 동원하여 가인의 후예들이 의인 아벨로 상표를 바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