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언급했으나 '어떤'으로 주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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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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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9 00:00
1. 설교록의 언급
백 목사님은 그 이름을 직접 거명한 적은 몇 번 있었으나 그 분의 결정적인 나쁜 점을 사례로 들어야 할 때는 주로 '어떤 분' '어떤 목사' 등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악랄했던 남 목사님까지도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보호해 드렸습니다. 주로 익명으로 표현 된 관련 내용은
'정치 목사의 끝은 비참해 진다' '백 목사 잘못을 15가지 적어 편지로 보냈다' 등으로 예를 들자면 많습니다. 예를 들면 '82.7.9.금새'에서
... 자기 현실에 어떤 현실이 와도, 공산주의가 와서, 많은 사람들이 매장시키려고 하는 것이 와도 그것은 절대 나를 해하지 못합니다. 아레 직원회 때에 어떤 목사가 지어 놓은 그 책이 있다고 ○장로님이 붉은 줄을 쭉쭉 쳐 가지고, 아마 이것 말 아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책을 보자 소리를 하지 않고 그래 내가 웃고만 말았습니다.
그분이 말한 것을 나한테 편지한 것이 있는데 그 편지한 것에 열다섯 가지인가 나를 정죄해 가지고 편지를 해서, 그분은 그때 목사고 나는 전도사고 이랬는데 열다섯 가지로 편지를 했습디다, 그 지방에서 나를 집회 청한다고. 그래 가지고 했는데, 그 열다섯 가지로 정죄한 정죄 편지가 아직도 내게 보관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교리 문제입니다.
교리와 신조 문제인데, 지금 보면 지금 인제 그분이 틀린 것을 했는지 내가 틀린 걸 했는지 그 교리를 지금 아마 그분도 생각하기를 많이 수정이 됐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 저는 수정이 하나도 안 됩니다. 그대로입니다....
2. 남영환
백 목사님보다 5 세나 어린 1915년생의 경북 영덕 사람인데 신사 참배를 했고 후에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만주 등지로 도망을 다녔던 분인데 해방 후인 1946년에 진해에서 시작 된 고신대 첫 강좌에 참석했다가 주남선 목사님이 거창 읍 교회의 성경 강사로 불렀던 인물입니다. 백 목사님은 당시 신사참배 6 년을 이기고 해방을 맞아 출옥한 주 목사님으로부터 주 목사님을 초빙하는 집회에 강사로 대신 나가는 등 신사 참배 환란을 승리한 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거창 지방에서 목회와 설교 등 모든 면으로 최고의 존경을 받던 인물입니다.
백 목사님은 집회 강사와 순교적 목회에 전념하느라고 신학을 하지 못하던 사이에 남 목사님은 신학교를 계속 다녀서 목사 안수를 빨리 받게 되자 주 목사님 사후 거창 지방의 유일한 목사로서 장로교 법으로 거창 지방 전체 교회의 당회장이 됩니다. 행정적으로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자 다른 교역자들은 무조건 순종을 하는데 백 목사님은 옳고 그른 것을 따져 옳아야 순종하는 분이었으므로 미움을 받게 되었고 한 편으로는 거창 지방 모든 분들이 주 목사님의 신앙적 후계자로는 백 목사님을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남 목사님은 백 목사님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됩니다.
남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강의나 연구로서는 학자도 아니요, 목회자로서는 쫓겨 다닌 분이며, 심지어 자기 밑의 교육 전도사보다 설교가 못하다 해서 거창 읍 교회로부터도 배척까지 당한 수모를 겪는 등 허무했지만 고신이 정치 집단이므로 목회나 신앙에 상관 없이 사람을 만나서 엮고 교단의 법만 활용하면 고위직에도 오를 수 있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가질 수 있는데 어린 나이에 목사가 되면서도 오래 살았기 때문에 마치 고신의 역사를 혼자 아는 듯이 되고 또한 고신은 과거 역사 하나만 가지고 한국 교계에서 버티는 곳이므로 오랜 시기 고신의 원로로 생존했었습니다.
남 목사님은 평생에 백 목사님을 비판하는 역할만 했다 할 정도였는데 거짓말이거나 신앙이 어려서 잘못 말한 것 뿐이므로 법적 책임을 물으려 했다면 아주 일찍 그런 죄를 짓지 못하게 할 수 있었으나 그런 이를 붙여 주신 것도 백 목사님이 조금이라도 삐뚤어 지면 바로 이런 비판이 사실이 된다는 하나의 경고 철책이나 가시로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하여 맞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백 목사님을 고신에서 거짓말로 제명할 때 가장 큰 공로자가 되었고 고신 내에서 백 목사님을 따르는 이들을 색출하여 처단하는 제일선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 생존 마지막 시기에 자신의 과거 잘못을 백 목사님을 직접 만나 다 회개를 해놓고 백 목사님 사후에 공회가 어지럽게 되자 또 과거 병이 도져서 이단에 준하는 비판을 하다 돌아 가셨습니다.
3. 언급하지 않는 이유
너무 삐둘어 진 심사를 가진 분이어서 목회자가 되면 안 될 분이 목회자가 되었고 백 목사님의 가시로 사용 된 불행한 분인데도 남 목사님과 백 목사님 사이에는 양 쪽을 잘 아는 교인들이 너무 많아서 그 분을 비판하게 되면 돌아 오기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그 분이 돌아 오고 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백 목사님은 그 이름을 직접 거명한 적은 몇 번 있었으나 그 분의 결정적인 나쁜 점을 사례로 들어야 할 때는 주로 '어떤 분' '어떤 목사' 등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악랄했던 남 목사님까지도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보호해 드렸습니다. 주로 익명으로 표현 된 관련 내용은
'정치 목사의 끝은 비참해 진다' '백 목사 잘못을 15가지 적어 편지로 보냈다' 등으로 예를 들자면 많습니다. 예를 들면 '82.7.9.금새'에서
... 자기 현실에 어떤 현실이 와도, 공산주의가 와서, 많은 사람들이 매장시키려고 하는 것이 와도 그것은 절대 나를 해하지 못합니다. 아레 직원회 때에 어떤 목사가 지어 놓은 그 책이 있다고 ○장로님이 붉은 줄을 쭉쭉 쳐 가지고, 아마 이것 말 아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책을 보자 소리를 하지 않고 그래 내가 웃고만 말았습니다.
그분이 말한 것을 나한테 편지한 것이 있는데 그 편지한 것에 열다섯 가지인가 나를 정죄해 가지고 편지를 해서, 그분은 그때 목사고 나는 전도사고 이랬는데 열다섯 가지로 편지를 했습디다, 그 지방에서 나를 집회 청한다고. 그래 가지고 했는데, 그 열다섯 가지로 정죄한 정죄 편지가 아직도 내게 보관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교리 문제입니다.
교리와 신조 문제인데, 지금 보면 지금 인제 그분이 틀린 것을 했는지 내가 틀린 걸 했는지 그 교리를 지금 아마 그분도 생각하기를 많이 수정이 됐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 저는 수정이 하나도 안 됩니다. 그대로입니다....
2. 남영환
백 목사님보다 5 세나 어린 1915년생의 경북 영덕 사람인데 신사 참배를 했고 후에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만주 등지로 도망을 다녔던 분인데 해방 후인 1946년에 진해에서 시작 된 고신대 첫 강좌에 참석했다가 주남선 목사님이 거창 읍 교회의 성경 강사로 불렀던 인물입니다. 백 목사님은 당시 신사참배 6 년을 이기고 해방을 맞아 출옥한 주 목사님으로부터 주 목사님을 초빙하는 집회에 강사로 대신 나가는 등 신사 참배 환란을 승리한 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거창 지방에서 목회와 설교 등 모든 면으로 최고의 존경을 받던 인물입니다.
백 목사님은 집회 강사와 순교적 목회에 전념하느라고 신학을 하지 못하던 사이에 남 목사님은 신학교를 계속 다녀서 목사 안수를 빨리 받게 되자 주 목사님 사후 거창 지방의 유일한 목사로서 장로교 법으로 거창 지방 전체 교회의 당회장이 됩니다. 행정적으로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자 다른 교역자들은 무조건 순종을 하는데 백 목사님은 옳고 그른 것을 따져 옳아야 순종하는 분이었으므로 미움을 받게 되었고 한 편으로는 거창 지방 모든 분들이 주 목사님의 신앙적 후계자로는 백 목사님을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남 목사님은 백 목사님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됩니다.
남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강의나 연구로서는 학자도 아니요, 목회자로서는 쫓겨 다닌 분이며, 심지어 자기 밑의 교육 전도사보다 설교가 못하다 해서 거창 읍 교회로부터도 배척까지 당한 수모를 겪는 등 허무했지만 고신이 정치 집단이므로 목회나 신앙에 상관 없이 사람을 만나서 엮고 교단의 법만 활용하면 고위직에도 오를 수 있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가질 수 있는데 어린 나이에 목사가 되면서도 오래 살았기 때문에 마치 고신의 역사를 혼자 아는 듯이 되고 또한 고신은 과거 역사 하나만 가지고 한국 교계에서 버티는 곳이므로 오랜 시기 고신의 원로로 생존했었습니다.
남 목사님은 평생에 백 목사님을 비판하는 역할만 했다 할 정도였는데 거짓말이거나 신앙이 어려서 잘못 말한 것 뿐이므로 법적 책임을 물으려 했다면 아주 일찍 그런 죄를 짓지 못하게 할 수 있었으나 그런 이를 붙여 주신 것도 백 목사님이 조금이라도 삐뚤어 지면 바로 이런 비판이 사실이 된다는 하나의 경고 철책이나 가시로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하여 맞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백 목사님을 고신에서 거짓말로 제명할 때 가장 큰 공로자가 되었고 고신 내에서 백 목사님을 따르는 이들을 색출하여 처단하는 제일선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 생존 마지막 시기에 자신의 과거 잘못을 백 목사님을 직접 만나 다 회개를 해놓고 백 목사님 사후에 공회가 어지럽게 되자 또 과거 병이 도져서 이단에 준하는 비판을 하다 돌아 가셨습니다.
3. 언급하지 않는 이유
너무 삐둘어 진 심사를 가진 분이어서 목회자가 되면 안 될 분이 목회자가 되었고 백 목사님의 가시로 사용 된 불행한 분인데도 남 목사님과 백 목사님 사이에는 양 쪽을 잘 아는 교인들이 너무 많아서 그 분을 비판하게 되면 돌아 오기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그 분이 돌아 오고 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남영환 목사님
목사님!
백목사님 설교록에서 남영환 목사님에 대해서는 79년도 설교록에 주일 관련에 대하여만 한 번 언급하시고 다른 설교록에는 말씀이 없으셨는지요?
다른 목사님들의 말씀은 많이 하셨는데 남영환 목사님에 대하여는 별 말씀이 없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늘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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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백목사님 설교록에서 남영환 목사님에 대해서는 79년도 설교록에 주일 관련에 대하여만 한 번 언급하시고 다른 설교록에는 말씀이 없으셨는지요?
다른 목사님들의 말씀은 많이 하셨는데 남영환 목사님에 대하여는 별 말씀이 없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늘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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